박지성(29·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은 한국축구의 ‘산소탱크’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한국이 원정 사상 첫 16강 진출에 성공한 것도 주장인 그의 공이 컸다. 박지성은 대회에서 한 골밖에 터뜨리지 못했지만 조별 예선 3경기와 16강전 등 매 경기에서 가장 많은 거리를 뛰며 한국팀의 월드컵 사상 원정 첫 16강 진출을 진두지휘했다.
박지성 같은 선수가 많아지면 한국축구는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까. 박지성 키즈(kids)가 많아지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기자 다시금 그의 성장기가 궁금해진다. 최근 ‘가슴으로 꾼 꿈이 행복한 미래를 만든다’(서울문화사)를 펴낸 박지성 선수의 아버지 박성종씨(50)를 만나 그의 성장과정을 이야기해달라고 청한 것도 그 때문이다.
“지성이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축구부에서 활동했어요. 외동아들이 혹여 다칠까 싶어 반대했지만 조용한 아들이 축구만 하면 즐거워하니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약속을 받아냈어요. ‘아버지 반대를 무릅쓰고 선택한 것이니 조금 하다가 싫다고 그만두면 안 된다’고 말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어려움이 있었어도 끈질기게 해왔습니다.”
가난했던 시절, 키 작고 허약한 축구 지망생 아들에게 아버지는 해줄 것이 없었다. 친구 아들이 개구리를 먹고 키가 자랐다는 얘기를 듣고 개구리 울음소리가 가득하다는 천수만 간척지를 헤집는가 하면 노모와 함께 전남 고흥 시골에 가서 겨울잠 자던 개구리들을 생포해와 개구리 즙을 만들어 ‘허약한 아들’에게 먹이기를 수차례. 그는 그런 노력으로 ‘산소 탱크’ 박지성의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만들어냈다고 자부하지만 그간 아들이 한 마음고생을 떠올리면 마음이 짠하다. 아들의 삶이 곧 전화위복의 역사인 까닭이다. 나쁜 일을 언제나 좋은 일로 만드는 사람, 그가 바로 박성종씨의 아들 박지성 선수다.
안용중학교를 거쳐 수원공고에 진학했을 때 박지성 선수는 체구가 왜소해 그다지 눈에 띄는 선수가 아니었다. 노력한 만큼 실력을 인정받지 못해 벤치 신세를 지는 일도 있었다. 박성종씨는 이에 관한 일화를 들려줬다.
“지성이가 고등학교 때 수원공고가 전국고교축구대회 준결승에 진출한 적이 있었어요. 상대팀은 배재고였고, 차두리 선수가 그 팀 주전 공격수로 출전했죠. 그 경기에 지성이가 주전으로 뛰고 텔레비전에 중계된다기에 온 친척들한테 전화해 방송을 보라고 했죠. 그런데 경기가 진행된 90분 내내 단 한 번도 우리 지성이는 (텔레비전에) 안 나오는 거예요. 알고 보니 감독님이 벤치에 앉아 있게 했더라고요. 무척 실망했지만 아들한테는 내색 않고 이렇게 말했어요. ‘주전으로 뛰는지 안 뛰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앞으로 주전으로 뛸 수 있도록 얼마나 노력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이에요. 지성이가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단점을 장점으로 만든 내 아들 박지성”
고3 막바지, 연고지 프로팀인 수원 삼성 2군에서 테스트를 받았으나 역시 ‘체구가 작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대학과 다른 프로팀 감독들도 “실력은 둘째치고 체격부터 키워 오라”며 외면했다. 그때 마침 신입생 선발에서 결원이 생긴 김희태, 당시 명지대 감독의 부름을 받고서야 간신히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대학에 입학한 박지성 선수는 이를 악물고 웨이트트레이닝 등으로 체력을 다졌고, 올림픽 대표팀과의 연습 경기를 하다 허정무 감독 눈에 띄어 꿈에 그리던 올림픽 대표팀 선수로 발탁됐다. 이후 일본 교토퍼플상가에 입단해 톱 멤버로 활약한 데 이어 2002 한일 월드컵 국가대표로 그라운드를 누비게 됐다.
박지성 선수에겐 대한민국 국민이면 다 아는 핸디캡이 있다. 축구선수에게 치명적인 평발이라는 것. 박지성 자신이 평발임을 안 것은 축구를 시작한 지 10년째 되던 지난 2001년이다. 남들보다 발이 쉽게 피곤해지고 더 많이 부르터 발의 3분의 2 이상에 굳은살이 박였지만 그의 열정 앞에선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박지성 축구센터’는 박지성의 또 다른 미래가 펼쳐질 무대다.
2002 월드컵 이후 늘 승승장구했을 것 같지만, 박성종씨는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면이 전부가 아니다. 말 못할 아픔도 많이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히딩크 감독과의 인연이 계기가 돼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으로 이적했지만, 부상을 당해 제대로 뛰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진 것이다. 기량 발휘를 하지 못하자 에인트호번 팬들은 야유 세례를 퍼부었고 그때마다 박지성 선수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맥주 캔을 집어던지며 항의하는 관중까지 나왔다. 그 와중에 박지성 선수는 또 한 차례 부상을 당해 수술까지 받으며 그간 경험하지 못한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박지성 선수 자신도 이때가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흔들림 없이 자신을 믿으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성실히 노력했고, 결국 팀을 챔피언스 리그 4강으로 이끌었다. 덕분에 ‘박지성 송’이라는 응원가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어 유럽 진출 2년6개월 만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해 한국 최고의 프리미어리거가 됐다. 맨유에 입단할 당시 영국 언론은 그가 티셔츠를 팔러 왔다며 비아냥거렸지만 경기 때마다 적재적소에서 기량을 뽐냈고 지금은 ‘다이너마이트’ ‘두 개의 심장’ ‘슈퍼 박’이라 불리며 감독과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럼에도 박지성 선수와 아버지 박성종씨는 겸손하다.
“지성이는 골을 전문적으로 넣는 선수는 아니니까, 기록상으로는 팬들에게 아쉬움을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감독의 지시를 충실히 수행하고 그라운드에서 팀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는 것에 만족합니다. 그리고 경기 전체를 지배하는 선수가 된다면 그때 최고라고 얘기해도 될 것 같습니다.”
스포츠로 사람들에게 희망 주고 싶어
아들 뒷바라지를 위해 오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면서까지 축구부 총무 일에 매진했던 아버지는 더 큰 꿈을 향해 달리는 아들을 위해 다시금 뛰어볼 생각이다.
인터뷰가 진행된 곳은 ‘박지성삼거리’와 ‘박지성길’이라는 표지판이 내걸린 수원 영통구 망포동에 위치한 ‘박지성 축구센터’. 아버지는 아들의 미래가 펼쳐질 장소를 만들기 위해 박지성 및 에이전트와 협력해 적지 않은 돈과 열정을 쏟아붓고 있다. 유소년 축구장이 마련된 센터 한쪽에는 박지성 선수의 전시실이 마련돼 있는데, 이곳에는 그간 아버지가 모아온 아들의 추억이 담겨 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입었던 축구복이며, 수상성과며, 일기를 보노라면 박지성 선수가 얼마만큼 노력을 하며 자라났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아들의 성장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아버지는 박지성 선수의 미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다음 월드컵에는 안 나갔으면 싶어요. 지성이 엄마도,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외국과 한국을 오가며 연습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거든요. 그때가 되면 지성이도 나이가 많아지고요.”
아버지 박성종씨는 아들의 몸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미래를 준비하길 원한다. 박지성 선수도 ‘축구 행정가’가 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올 초부터 모교인 명지대에서 체육학과 석사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지성이는 ‘스포츠 외교관’을 꿈꾸고 있어요. 아시아 자선 축구단체를 만들어서 세 나라를 돌며 매년 한 차례씩 자선 축구를 하려는 계획도 세워두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축구로 희망을 주고 싶기 때문이에요. 우선 베트남은 1순위로 들어갈 것 같습니다. 축구에 대한 열정도 많고 축구협회 정문에 박지성 사진이 걸려 있을 만큼 지성이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해요.”
아들이 대견스럽지만 혹여 작은 실수라도 할까 조심스러운 것이 아버지 박성종씨의 마음. 그래서 그는 늘 아들에게 “축구를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좋은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한국 축구의 ‘산소탱크’ 박지성은 2010 남아공 월드컵 기간에 가장 많은 거리를 뛰었고 최고의 플레이를 펼쳤다.
“축구선수로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인생을 잘못 살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잖아요. 경기도 측에서 지성이의 축구 실력을 높이 사 ‘박지성길’ ‘박지성삼거리’라는 지명도 만들어줬는데, 만에 하나 음주운전이라도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사람들의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겠죠.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너는 이제 아무렇게나 행동하면 안 된다’고 말이죠. 그리고 지성이가 요즘엔 대접받는 자리만 많이 가기 때문에 혹여 돈 내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될까봐 걱정됩니다. 돈의 가치를 알라고 카드 대신 현금을 꼭 쥐여주면서 네가 낼 자리에서는 꼭 계산하라고 하는데, 잘 하는지 모르겠어요(웃음).”
“요즘엔 여자 외모보다 성격 보는 것 같아 다행”
박지성 선수의 아버지가 ‘결혼’에 관심을 두는 것도 그래서다. 인생에서 성공하려면 결혼을 잘해야 한다는 것이 아버지의 지론이다.
“지성이에게 늘 ‘나는 (지성이) 엄마가 싫지만(웃음), 너는 엄마 같은 사람 만나라’고 해요. 겉만 번지르르하지 않고 마음이 넓은 사람 만나라고 하죠. 예전에는 지성이가 외모만 보고 사람 됨됨이를 보지 않았는데, 다행스럽게도 요즘에는 여자 보는 눈이 많이 성숙해졌어요. 지금은 제가 봐도 인정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스스로도 엄마 같은 여자를 만나고 싶다고 말해요(웃음).”
그러나 박지성 선수는 여자 만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요즘처럼 경기가 없을 때도 스폰서 방문하랴, 화보 촬영하랴, 축구 행사에 참여하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 때문이다. 데이트하는 것도 쉽지 않다. 예전에는 자유롭게 다니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지만 요즘에는 꼬마 아이도 알아보기 때문에 행동반경이 좁다. 더 큰 문제는 상대방이 슈퍼스타 박지성을 부담스러워한다는 점이다. 박지성 선수는 한 인터뷰에서 “노력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시켜달라고 한다. 솔직히 상대방이 부담을 많이 느낀다. 열애를 해도 눈감아달라”며 어려움을 토로한 바 있다.
이처럼 만남을 갖는 것조차 어렵기 때문에 “지성이가 좋아하는 여자라면 누구나 OK”라는 아버지지만 유일하게 내미는 조건이 있다. ‘직업 가진 며느리는 안 된다’는 것.
“자기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 본업을 하느라 지성이를 지원해주는 데 한계가 있어요. 내가 원하는 며느릿감은 ‘내조 잘하는 여자’예요. 지성이도 마찬가지고요. 요즘 같은 세상에 너무 진부한 사고방식이 아니냐고 반문해도 할 수 없습니다. 부와 명예, 외모에 대한 관심보다는 운동하는 남편을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참한 여성이 내 아들의 평생 반려자가 되면 좋겠습니다. 부모의 욕심인지는 모르지만 그래야 지성이가 축구에만 전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아버지의 바람이 이루어지려면 적어도 1년의 시간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진중한 박지성 선수가 “1년 이상은 교제해야 결혼을 결심할 수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축구 주역, 박지성 선수 아버지와의 인터뷰를 마치며 아들의 경쟁력을 물었다.
“축구 좋아하는 사람들도, 열심히 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런데 지성이가 이렇듯 결실을 이룬 것은 그만큼 절박하게 운동했기 때문이에요. 지성이는 축구선수로 성공하지 못하면 밤에 치킨집 하면서 낮에 축구하겠다고 말해왔어요. 축구선수밖에 할 게 없다는 절박감 덕분에 오늘의 박지성이 있는 거겠죠. 앞으로도 제 아들 지성이에게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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