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방영된 TV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던 이름이다. 그런데 어디선가 불쑥 나타난 이 작가의 작품은 시청자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2010년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드라마 ‘추노’. 이 매력적인 작품을 창조해낸 천성일 작가(39)는 다소 특이한 경력을 지녔다. 지난 1월 개봉한 영화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의 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 제작자로 ‘원스 어폰 어 타임’‘7급 공무원’의 시나리오도 썼다. 대부분 코미디 작품이다. 그는 “수많은 장르의 시나리오가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비슷한 장르의 영화만 개봉됐다”고 말하지만 인터뷰 내내 기자를 웃게 만든 그의 입담은 녹록지 않았다. ‘추노’에서의 맛깔스런 대사들이 떠오를 정도로 재치가 가득했다.
현장에서 배우 보며 좋아하는 수줍은 작가
- 영화 시나리오를 쓰다 드라마 대본을 쓰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이유는 없어요. 영화사에서 영화를 기획하다 보면 영화로 만들기 힘든 아이템들이 있거든요. ‘추노’도 원래는 영화로 생각하고 쓴 작품인데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 것 같고, 영화로 담아내기엔 내용이 방대하다는 평을 들었어요. 그래서 드라마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했죠.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무조건 대본을 들고 드라마 제작사들을 찾아다녔는데 가는 곳마다 퇴짜를 맞았어요. 사극은 몇 회 분량인지가 굉장히 중요하더라고요. 전 그것도 모르고 미국이나 일본 드라마도 10~12회 분량인데 안 될 게 뭐 있나 하는 마음으로 12부작을 기획해서 다녔거든요(웃음). 그 정도로 무지했어요. 달리 드라마에 뜻을 품고 쓴 것은 아닙니다.”
- 시나리오 작가와 영화 제작사 대표를 겸하고 있는 이력이 특이합니다.
“대학 전공도 이과입니다(웃음). 군대 제대하고 서른 살이 넘어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웠어요. 먼저 영화 마케팅 회사에 입사했는데 생각과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기획 일을 시작했고, 영화 ‘삼거리 극장’도 기획했어요. 시나리오 작가가 된 것도 큰 뜻이 있다거나 소질이 있다고 생각해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영화 제작은 작가가 많아야 하고 비용도 많이 드는데다 리스크도 굉장히 커요. 작품이 촬영단계에 가기까지 2~3년은 족히 걸리고, 2천~3천 편의 시나리오 중 영화화되는 건 1백 편도 안 되죠. 그래서 사무실에서 이야기의 기본 틀 정도는 잡을 수 있겠다 싶어 시작하게 됐어요. 마케팅 일을 하면서 보도자료 및 기획서를 많이 썼고, 수백 편의 시나리오를 분석한 것이 기초가 된 것 같아요.”
- 이국적인 외모의 오지호가 사극에 출연하고, 무명배우이던 한정수도 비중 있는 역할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캐스팅 비화가 궁금합니다.
“집필 단계에서 캐릭터와 맞는 배우를 생각해둘 경우 배우 이미지에 따라 캐릭터가 갇히기 때문에 캐스팅은 전적으로 감독님 몫이었습니다. 덩달아 제가 바쁘기도 했어요. ‘추노’ 크랭크인 3일 뒤에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가 크랭크인 됐고, ‘추노’가 첫 방송된 다음주에 영화가 개봉해서 캐스팅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어요. 장혁씨는 방송국 간부 중 한 분이 추천했고, 장혁씨 본인도 대본을 읽고 확신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저는 ‘맘대로 하세요’주의였고, 캐스팅이 확정된 후 감독님으로부터 ‘중년 F4로 뽑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웃음). 현장에 서 인사한 배우도 있을 정도인데요. 그것도 어느 날 친구 어머니께서 돌아가셔서 지방으로 문상 가는 길에 촬영장에 들러 구경한 정도예요. 촬영장 근처에서 ‘설화다! 대길이다!’ 하고 신기해하며 봤지요. 그래도 다른 데 가면 ‘우리 다해~ 우리 혁이~’해요.”
- 출연배우 가운데 기대보다 특별히 잘해준다거나 고마운 배우가 있나요.
“황희 정승 우화처럼 소들이 들을까봐 다 좋다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다들 자기 위치에서 빛내주는 사람들이라서 너무 감사할 뿐이에요. 선과 선이 만나면 면이 되고 이게 2차원인데 전 대본이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 면과 면을 이어 3차원을 만들고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게 바로 연출, 배우들이죠. 전 솔직히 지나가는 단역 배우 한 분도 너무너무 감사한 심정입니다.”
“모자이크? 방송 보고 알았어요”
도망친 노비와 그들을 쫓는 추격자 ‘추노꾼’들의 이야기를 다룬 액션 멜로 드라마 ‘추노’는 최첨단 장비와 세련된 연출, 파격적인 음악 선곡 등으로 ‘스타일리시 사극’의 표본이 되고 있다. 하지만 그 안에 논란도 많다. 남자 캐릭터에만 치중된 스토리, 그리고 선정적 장면과 모자이크 처리가 뜨거운 감자다. “배꼽 맞췄어?” “속곳을 내렸으면 이불 속 얘기를 해야지” 등 아슬아슬한 수위의 외설적 대사도 마찬가지다.
- 항간에는 남자배우만 빛나는 드라마라는 말도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여자 캐릭터가 잘 살지 못한다는 지적입니다. 특히 ‘언년’의 캐릭터는 민폐형이란 질타도 있습니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이다해씨에겐 미안합니다. 하지만 다른 남자 캐릭터는 처음부터 끝까지 확고하게 캐릭터가 잡힌 것과 달리 언년이는 변화하면서 발전하는 캐릭터입니다. 사실 ‘추노’의 배경인 조선시대를 놓고 보면 그 시대를 이끌어간 주역은 남자고, 여자들은 스스로 인생을 정할 수가 없어 어찌 살아갈지도 모르던 시절이었죠. ‘여자는 밥 잘하고 아이 잘 낳는 게 최고’라는 대사처럼 조선시대 여자들은 정말로 그것 외에 할일이 없었어요. 도망친 언년도 그런 고민을 하죠. 뭘 하고는 싶은데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인 거예요. 가장 평범했던 여자가 격동의 시기에 자신을 찾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언년 자신이 할 일을 찾으면 앞으로 변화해가고 성장해가지 않을까요.”
- 언년 캐릭터만큼이나 언년 가슴 부분의 ‘모자이크’처리 등 선정적 장면도 논란이 됐습니다. 의도가 있었나요.
“애초에 드라마 제작에 들어가면서 감독님과 상의한 게 제가 대본을 쓰고, 그걸 해석하는 건 전적으로 감독님의 몫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모자이크는 방송을 보고서야 알았어요. 별다른 느낌은 없었고, 드라마 사상 최초로 공중파 모자이크라서 ‘기록 세웠구나’ 생각했죠. 아, 지인들이 그 방송 이후 저보고 ‘에로 작가네~’라고 해서 ‘이로써 에로작가 되는구나!’하고 껄껄댔습니다(웃음).”
- 기존 사극의 틀을 깬 외설적 대사도 화제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방송을 몰라서 틀이 갖춰져 있지 않아요. 그래서 감독님이 ‘수위 조절은 내가 할 테니 해보자’하셨죠. 저의 애초 시도는 저잣거리의 질펀한 농담거리를 맛깔나게 살려보자는 것이었어요. 대사 중 고서에서 본 내용들도 있고, 가능하면 사실에 가까운 표현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한 거지 선정성으로 사람들을 낚자 이런 의도는 없었습니다. 대본을 쓰면서 수위를 영화 ‘춘향뎐’으로 잡았어요. 전 아름답고 파격적인 멜로라고 생각을 했는데 ‘추노’가 드라마라는 사실을 감안을 못했어요. 사실적 묘사가 과한 요소로 작용한 것 같아요. 좀 더 대중적으로 다가갈 수도 있었을 텐데 제가 부족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 여러 논란 가운데도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시청률 1위를 기록했을 때 기분은 어땠나요.
“저는 시청률 집계방식도 어떻게 하는지 몰랐어요(웃음). 첫 회 시청률이 20%를 넘었다며 축하한다는 전화를 받았는데, 사실 잘 모르겠더라고요. 영화에서 좌석 점유율이 20%면 망하는 건데 시청률이 와 닿지는 않았어요. 다만 잘된다고 하니 책임감이 더 커졌어요. 지금 욕심이 있다면 이 상태로 끝까지 갔으면 하는 거죠.”
“성공? 다음 작품이 절박합니다!”
‘추노’를 드라마화 하는 처음 시도도 그랬지만 드라마가 진행되는 과정 역시 혼란의 연속이었다. 드라마 세계에 첫발을 디딘 그로서는 모든 게 생소할 따름이다. 영화와 다른 면이 많은 현장과 드라마만의 방식이 그렇다. 한 가정의 아들이자 남편으로서도 변화가 크다.
- 드라마를 하며 힘든 점이 있나요.
“기억할 게 많아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예요. ‘몇 회에 그 대사가 어떤 느낌이었지?’까지도 생각해야 하죠. 가장 힘든 점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에요. 영화는 모든 장면, 모든 캐릭터가 엔딩을 향해 달려가잖아요. 드라마도 끝을 향해 가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매회 이야기의 매력, 캐릭터의 매력을 보여줘야 해요. 영화가 단판 승부라면 드라마는 풀리그전이랄까요. 그리고 힘들다기보다 신기했던 건 대본 리딩이었어요. 영화는 작가가 리딩연습 때 들어가지 않거든요. 들어가면 오히려 좋아하지 않죠. 그런데 드라마는 작가가 참석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작가에 따라 대사 톤도 지적해주신다는데 저는 한마디도 못하고 대본도 없어서 옆 사람 대본 보며 앉아 있었어요(웃음).”
- 드라마의 호흡이 빠른 탓에 생활의 변화도 있었을 듯합니다.
“영화 시나리오를 쓸 땐 밖으로 나돌았는데 드라마를 시작하고는 집에만 있는 게 가장 큰 변화예요. 그래서 아내가 귀찮아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내는 오히려 좋대요(웃음). 부모님도 제 일을 인식하셨다고 해야 하나, 영화를 만든다고 할 땐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셨는데 TV는 접근성도 좋고, 제 이름이 나오니까 많이 좋아하시더라고요.”
- 다음 작품 구상은 하셨는지, 어떤 작품이 나올지 기대됩니다.
“영화를 제작하기까지 10년 가까이 소요됐는데, 그간의 실패가 쌓여 경험이 됐어요. 그런데 처음 쓴 드라마가 방영되고 시청률까지 좋다니까 무서워지더라고요. 준비 안 된 상태에서는 실패도 힘들지만 성공도 힘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말 하고 싶은 건 ‘다음 작품’이에요! 절박합니다(웃음). 사실 드라마도 재미있고, 매력 있는데 다음 작품이 영화일지 드라마일지는 모르겠어요. 써놓은 작품은 많지만 정해놓은 것도 없고요. 굳이 꼽자면 SF 장르에 도전하고 싶어요. 제가 만들어가는 ‘무한도전’이랄까요. 지켜봐주세요.”
현장에서 배우 보며 좋아하는 수줍은 작가
- 영화 시나리오를 쓰다 드라마 대본을 쓰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이유는 없어요. 영화사에서 영화를 기획하다 보면 영화로 만들기 힘든 아이템들이 있거든요. ‘추노’도 원래는 영화로 생각하고 쓴 작품인데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 것 같고, 영화로 담아내기엔 내용이 방대하다는 평을 들었어요. 그래서 드라마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했죠.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무조건 대본을 들고 드라마 제작사들을 찾아다녔는데 가는 곳마다 퇴짜를 맞았어요. 사극은 몇 회 분량인지가 굉장히 중요하더라고요. 전 그것도 모르고 미국이나 일본 드라마도 10~12회 분량인데 안 될 게 뭐 있나 하는 마음으로 12부작을 기획해서 다녔거든요(웃음). 그 정도로 무지했어요. 달리 드라마에 뜻을 품고 쓴 것은 아닙니다.”
- 시나리오 작가와 영화 제작사 대표를 겸하고 있는 이력이 특이합니다.
“대학 전공도 이과입니다(웃음). 군대 제대하고 서른 살이 넘어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웠어요. 먼저 영화 마케팅 회사에 입사했는데 생각과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기획 일을 시작했고, 영화 ‘삼거리 극장’도 기획했어요. 시나리오 작가가 된 것도 큰 뜻이 있다거나 소질이 있다고 생각해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영화 제작은 작가가 많아야 하고 비용도 많이 드는데다 리스크도 굉장히 커요. 작품이 촬영단계에 가기까지 2~3년은 족히 걸리고, 2천~3천 편의 시나리오 중 영화화되는 건 1백 편도 안 되죠. 그래서 사무실에서 이야기의 기본 틀 정도는 잡을 수 있겠다 싶어 시작하게 됐어요. 마케팅 일을 하면서 보도자료 및 기획서를 많이 썼고, 수백 편의 시나리오를 분석한 것이 기초가 된 것 같아요.”
- 이국적인 외모의 오지호가 사극에 출연하고, 무명배우이던 한정수도 비중 있는 역할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캐스팅 비화가 궁금합니다.
“집필 단계에서 캐릭터와 맞는 배우를 생각해둘 경우 배우 이미지에 따라 캐릭터가 갇히기 때문에 캐스팅은 전적으로 감독님 몫이었습니다. 덩달아 제가 바쁘기도 했어요. ‘추노’ 크랭크인 3일 뒤에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가 크랭크인 됐고, ‘추노’가 첫 방송된 다음주에 영화가 개봉해서 캐스팅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어요. 장혁씨는 방송국 간부 중 한 분이 추천했고, 장혁씨 본인도 대본을 읽고 확신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저는 ‘맘대로 하세요’주의였고, 캐스팅이 확정된 후 감독님으로부터 ‘중년 F4로 뽑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웃음). 현장에 서 인사한 배우도 있을 정도인데요. 그것도 어느 날 친구 어머니께서 돌아가셔서 지방으로 문상 가는 길에 촬영장에 들러 구경한 정도예요. 촬영장 근처에서 ‘설화다! 대길이다!’ 하고 신기해하며 봤지요. 그래도 다른 데 가면 ‘우리 다해~ 우리 혁이~’해요.”
- 출연배우 가운데 기대보다 특별히 잘해준다거나 고마운 배우가 있나요.
“황희 정승 우화처럼 소들이 들을까봐 다 좋다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다들 자기 위치에서 빛내주는 사람들이라서 너무 감사할 뿐이에요. 선과 선이 만나면 면이 되고 이게 2차원인데 전 대본이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 면과 면을 이어 3차원을 만들고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게 바로 연출, 배우들이죠. 전 솔직히 지나가는 단역 배우 한 분도 너무너무 감사한 심정입니다.”
“모자이크? 방송 보고 알았어요”
도망친 노비와 그들을 쫓는 추격자 ‘추노꾼’들의 이야기를 다룬 액션 멜로 드라마 ‘추노’는 최첨단 장비와 세련된 연출, 파격적인 음악 선곡 등으로 ‘스타일리시 사극’의 표본이 되고 있다. 하지만 그 안에 논란도 많다. 남자 캐릭터에만 치중된 스토리, 그리고 선정적 장면과 모자이크 처리가 뜨거운 감자다. “배꼽 맞췄어?” “속곳을 내렸으면 이불 속 얘기를 해야지” 등 아슬아슬한 수위의 외설적 대사도 마찬가지다.
- 항간에는 남자배우만 빛나는 드라마라는 말도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여자 캐릭터가 잘 살지 못한다는 지적입니다. 특히 ‘언년’의 캐릭터는 민폐형이란 질타도 있습니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이다해씨에겐 미안합니다. 하지만 다른 남자 캐릭터는 처음부터 끝까지 확고하게 캐릭터가 잡힌 것과 달리 언년이는 변화하면서 발전하는 캐릭터입니다. 사실 ‘추노’의 배경인 조선시대를 놓고 보면 그 시대를 이끌어간 주역은 남자고, 여자들은 스스로 인생을 정할 수가 없어 어찌 살아갈지도 모르던 시절이었죠. ‘여자는 밥 잘하고 아이 잘 낳는 게 최고’라는 대사처럼 조선시대 여자들은 정말로 그것 외에 할일이 없었어요. 도망친 언년도 그런 고민을 하죠. 뭘 하고는 싶은데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인 거예요. 가장 평범했던 여자가 격동의 시기에 자신을 찾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언년 자신이 할 일을 찾으면 앞으로 변화해가고 성장해가지 않을까요.”
- 언년 캐릭터만큼이나 언년 가슴 부분의 ‘모자이크’처리 등 선정적 장면도 논란이 됐습니다. 의도가 있었나요.
“애초에 드라마 제작에 들어가면서 감독님과 상의한 게 제가 대본을 쓰고, 그걸 해석하는 건 전적으로 감독님의 몫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모자이크는 방송을 보고서야 알았어요. 별다른 느낌은 없었고, 드라마 사상 최초로 공중파 모자이크라서 ‘기록 세웠구나’ 생각했죠. 아, 지인들이 그 방송 이후 저보고 ‘에로 작가네~’라고 해서 ‘이로써 에로작가 되는구나!’하고 껄껄댔습니다(웃음).”
- 기존 사극의 틀을 깬 외설적 대사도 화제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방송을 몰라서 틀이 갖춰져 있지 않아요. 그래서 감독님이 ‘수위 조절은 내가 할 테니 해보자’하셨죠. 저의 애초 시도는 저잣거리의 질펀한 농담거리를 맛깔나게 살려보자는 것이었어요. 대사 중 고서에서 본 내용들도 있고, 가능하면 사실에 가까운 표현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한 거지 선정성으로 사람들을 낚자 이런 의도는 없었습니다. 대본을 쓰면서 수위를 영화 ‘춘향뎐’으로 잡았어요. 전 아름답고 파격적인 멜로라고 생각을 했는데 ‘추노’가 드라마라는 사실을 감안을 못했어요. 사실적 묘사가 과한 요소로 작용한 것 같아요. 좀 더 대중적으로 다가갈 수도 있었을 텐데 제가 부족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 여러 논란 가운데도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시청률 1위를 기록했을 때 기분은 어땠나요.
“저는 시청률 집계방식도 어떻게 하는지 몰랐어요(웃음). 첫 회 시청률이 20%를 넘었다며 축하한다는 전화를 받았는데, 사실 잘 모르겠더라고요. 영화에서 좌석 점유율이 20%면 망하는 건데 시청률이 와 닿지는 않았어요. 다만 잘된다고 하니 책임감이 더 커졌어요. 지금 욕심이 있다면 이 상태로 끝까지 갔으면 하는 거죠.”
“성공? 다음 작품이 절박합니다!”
‘추노’를 드라마화 하는 처음 시도도 그랬지만 드라마가 진행되는 과정 역시 혼란의 연속이었다. 드라마 세계에 첫발을 디딘 그로서는 모든 게 생소할 따름이다. 영화와 다른 면이 많은 현장과 드라마만의 방식이 그렇다. 한 가정의 아들이자 남편으로서도 변화가 크다.
- 드라마를 하며 힘든 점이 있나요.
“기억할 게 많아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예요. ‘몇 회에 그 대사가 어떤 느낌이었지?’까지도 생각해야 하죠. 가장 힘든 점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에요. 영화는 모든 장면, 모든 캐릭터가 엔딩을 향해 달려가잖아요. 드라마도 끝을 향해 가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매회 이야기의 매력, 캐릭터의 매력을 보여줘야 해요. 영화가 단판 승부라면 드라마는 풀리그전이랄까요. 그리고 힘들다기보다 신기했던 건 대본 리딩이었어요. 영화는 작가가 리딩연습 때 들어가지 않거든요. 들어가면 오히려 좋아하지 않죠. 그런데 드라마는 작가가 참석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작가에 따라 대사 톤도 지적해주신다는데 저는 한마디도 못하고 대본도 없어서 옆 사람 대본 보며 앉아 있었어요(웃음).”
- 드라마의 호흡이 빠른 탓에 생활의 변화도 있었을 듯합니다.
“영화 시나리오를 쓸 땐 밖으로 나돌았는데 드라마를 시작하고는 집에만 있는 게 가장 큰 변화예요. 그래서 아내가 귀찮아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내는 오히려 좋대요(웃음). 부모님도 제 일을 인식하셨다고 해야 하나, 영화를 만든다고 할 땐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셨는데 TV는 접근성도 좋고, 제 이름이 나오니까 많이 좋아하시더라고요.”
- 다음 작품 구상은 하셨는지, 어떤 작품이 나올지 기대됩니다.
“영화를 제작하기까지 10년 가까이 소요됐는데, 그간의 실패가 쌓여 경험이 됐어요. 그런데 처음 쓴 드라마가 방영되고 시청률까지 좋다니까 무서워지더라고요. 준비 안 된 상태에서는 실패도 힘들지만 성공도 힘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말 하고 싶은 건 ‘다음 작품’이에요! 절박합니다(웃음). 사실 드라마도 재미있고, 매력 있는데 다음 작품이 영화일지 드라마일지는 모르겠어요. 써놓은 작품은 많지만 정해놓은 것도 없고요. 굳이 꼽자면 SF 장르에 도전하고 싶어요. 제가 만들어가는 ‘무한도전’이랄까요. 지켜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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