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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아픔을 딛고

임신 7개월에 아이 잃은 이혜은 가슴 아픈 심경

아이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힘들었던 시간, 첫째에 대한 애틋함 더 커졌어요”

글 김유림 기자 사진 조영철 기자

2009. 11. 25

세상의 모든 엄마는 열 달 동안 소중한 생명을 품은 채 생애 최고의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때로는 그 행복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기도 한다. 임신 7개월에 접어들어 둘째 아이를 잃은 이혜은. 한동안 실의에 빠져 있던 그가 가슴에 묻은 사연을 털어놓았다.

임신 7개월에 아이 잃은 이혜은 가슴 아픈 심경

고통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지난 여름은 탤런트 이혜은(36)에게 참으로 힘든 시기였다. 올가을 둘째 출산을 앞두고 있었지만 임신 7개월에 태아를 잃은 것. 그 일이 있기 불과 보름 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둘째 출산을 앞둔 행복한 심경을 들려준 바 있기에 이번 소식은 더욱 안타깝게 다가왔다.
가을 햇살이 눈부시던 날, 서울 강남 한 카페에서 만난 이혜은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인지 비교적 안정된 모습이었다. 그는 걱정 어린 눈빛을 보내는 기자에게 도리어 “남편과 현서를 생각해서라도 빨리 털고 일어나야 하지 않겠냐”며 미소를 지었다. 두 살배기 현서는 결혼 6년 만에 얻은, 그의 가장 귀한 보물이다.
태아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7월 중순 병원에 정기검진을 받으러 가서다. 한 달 전 양수검사를 받을 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던 터라 이번에도 그는 아이 모습을 볼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남편과 함께 병원을 찾았다고 한다. 하지만 들뜬 마음도 잠시, 부부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접했다.
“보통은 20~30분이면 초음파 검사가 끝나는데 그날은 1시간 가까이 검사가 진행됐어요. 뭔가 문제가 있는 건가 싶어 슬슬 불안한 마음이 드는 순간, 초음파 보시는 분께서 원장선생님을 부르더라고요. 검사를 마친 뒤에는 의사선생님이 ‘임신을 중단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순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고, 시간이 멈춘 것 같았어요.”
임신 7개월째 성장 멈춘 아이… 운명처럼 다녀간 잊지 못할 사랑
문제는 태아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한다는 거였다. 흉곽이 발달하지 못해 장기가 제대로 생성되지 않았던 것. 특히 폐가 자라지 못해 설령 태어난다 하더라도 생명을 이어가기 힘들다는 게 의사 소견이었다. 빠른 시일 내에 수술을 하는 게 좋다고 말하는 의사에게 부부는 더 큰 병원에서 재검을 받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후 두 사람은 서울대병원을 찾았는데, 그곳에서도 똑같은 소리를 들었다.
“병원에서는 빨리 결정을 내리는 게 좋다고 했어요. 하지만 차마 제 입으로는 어떤 말도 못하겠더라고요. 대신 남편이 앞장서서 일을 진행했고, 저는 한발 물러선 상태에서 결정에 따랐죠. 남편도 많이 힘들었을 텐데…, 전적으로 남편에게 일을 떠맡긴 것 같아 미안했어요.”
임신 중단을 결정한 뒤 진행된 상황들은 그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수술이 아닌 유도분만으로 아이를 낳아야 했던 것. 첫째 때 무통분만을 했던 그는 처음보다 오히려 강도 높은 산통을 겪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출산과 똑같은 과정을 거쳤기에 산후조리도 필요했다.
“며칠 지나니까 모유가 나오더라고요. 그때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모유는 나오는데 아이는 없으니까…. 친정에서 산후조리를 했는데 어머니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앞으로 현서도 잘 키워야 하고, 네가 할 일이 많으니까 마음 약하게 먹으면 안된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런 말들이 힘이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내색을 하지 못하니까 속으로는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일주일 뒤 친정에 온 남편을 보고는 왈칵 눈물을 쏟았죠.”
이혜은은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중 SBS 추석특집극 ‘아버지, 당신의 자리’에 출연했다. 컨디션이 그리 좋지 않아 잠시 출연을 망설였지만 일을 하면서 기분 전환하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더군다나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가족을 잃은 슬픔을 연기하면서 그동안 참고 있던 울음을 마음껏 터뜨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드라마 ‘아버지, 당신의 자리’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한 할머니가 과거 자신이 유괴한 아이의 가족을 찾아와 용서를 구하는 내용으로, 이혜은은 유괴된 아이의 누나 역을 맡았다.
“동생이 유괴당한 뒤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할머니를 원망하며 우는 장면이 있었는데, 연기하는 동안 예전과는 사뭇 다른 감정이 북받쳐올랐어요. 연기를 마치고 나니까 ‘그동안 내가 씩씩한 척했지만 많이 힘들었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당시 제 사정을 모르던 PD는 ‘기대했던 것보다 좋은 신이 나왔다’며 흡족해했죠.”
속 시원하게 감정을 풀어낸 덕분인지 그는 드라마 촬영 후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고 한다. 그리고 늦게나마 지인들에게 그간의 정황을 털어놓았고 위로도 많이 받았다. 그러면서 그는 조금씩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혜은은 “때로는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저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일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둘째는 몸과 마음이 안정된 뒤 천천히 가질 생각
이혜은은 이번 일을 겪으면서 현서에 대한 마음이 더욱 애틋해졌다고 한다. 건강하게 잘 자라주는 아이가 고마워 문득 눈물이 날 때도 있다고. 올봄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현서는 요즘 들어 부쩍 넉살이 늘었다고 한다. 말썽을 피워 혼을 내려고 하면 엄마의 눈을 피하는 척하다가 이내 배시시 웃으며 애교를 부린다고. 아이의 웃는 모습을 보면 그의 마음도 눈처럼 녹아내린다. 아들이어서 그런지 아빠에 대한 질투도 강해졌다. 이혜은은 “현서를 보면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실감한다”며 웃었다.
“남편한테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할 것 같아요. 아이에게 집착하면 남편은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특히 남편은 결혼 후 한동안 아이를 갖지 말자고 했을 정도로 아이보다 부부가 중심이 되는 결혼생활을 원했기에 더욱 조심스러워요. 처음에는 아이 돌보는 것도 서툴렀는데 그래도 요즘은 아이가 말도 곧잘 하고, 재롱도 많이 피우니까 아이와 노는 걸 무척 좋아해요(웃음).”
현서는 성격이 활달해 생긋생긋 잘 웃고 낯가림도 심하지 않다. 지난 추석 때는 엄마가 부엌에서 일하는 동안 처음 본 어른들 품에 안겨 잘 노는 등 의젓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이혜은은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울고 떼쓰는 게 의사표현의 전부였던 아이가 어느새 자라 어른처럼 말귀를 알아듣는 게 신기하다”며 웃었다.
둘째 계획을 묻는 질문에 그는 “당분간은 힘들겠지만 몸과 마음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 다시 노력할 생각”이라고 답했다. 이번 일로 다시 아이를 가져야 할지 고민하던 그에게 남편이 먼저 둘째를 갖자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대신 서두르지 말고 차분히 기다리자며 그를 위로했다고. 아이를 잃은 뒤 정확한 원인을 알기 위해 병원에 검사를 의뢰한 것도 둘째 임신을 염두에 둬서다.
“나중에라도 둘째를 낳으려면 정확한 원인이 뭔지 알아야 미리 위험 요소를 차단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정확한 원인을 알고 나면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질 것 같아요.”
앞으로 그는 연기에 더욱 집중할 생각이다.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얼마 전 소속사도 옮겼다. 올해로 연기생활 13년째인 그는 뒤돌아 생각해보면 아쉬운 점이 많다고 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이 성에 차지 않으면 조급해하고, 작은 바람에도 흔들려 좌절할 때가 많았던 것. 그는 “모든 정황을 한눈에 꿰뚫어보는 능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서서히 자기 자신을 알게 됐고, 결혼과 출산을 경험하면서 연기자로서의 도량도 커졌다.
“예전에는 촬영장에 나가는 게 버거운 적도 있었어요. 성격이 외향적이지 못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이어가는 게 쉽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여유가 생기고, 연기에 대한 욕심도 커지면서 앞으로의 연기활동이 더욱 기대돼요. ‘작은 배우는 있어도 작은 배역은 없다’는 걸 저도 실감해보고 싶어요.”
흔히들 ‘한 가지를 잃으면 다른 한 가지를 얻는 게 인생의 이치’라고 말한다. 하루빨리 밝은 모습으로 브라운관을 누빌 이혜은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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