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숙(43)과 대중 사이의 거리는 이웃집만큼 가깝다. 동네 골목에서 마주치면 살갑게 말을 붙일 수 있는 이웃집 언니 같은 친근한 배우다. 그래서일까. 첫 대면인데도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처럼 덥석 손부터 잡고 주저리주저리 속내를 털어놓고 싶어졌다. 그의 평생 일터인 방송국 근처에서 사진촬영을 끝내고, 인근 카페로 이동했다. 다소 먼 거리였지만 그는 걷기를 자처했다. 털털한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요즘 장시간 차를 타고 돌아다녀서 좀 걸어야 해요. 드라마 촬영하느라 서울에서 담양과 평택을 왔다 갔다 하는데, 미터기로 찍어보니 일주일에 1000km 이상 달렸더라고요.”
요즘 박현숙은 KBS ‘아가씨를 부탁해‘에서 재벌 상속녀 강혜나(윤은혜)가 사는 대저택 레이디캐슬의 메이드장으로 출연 중이다. 우아한 외모와는 달리 가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지만 주인공을 엄마처럼, 언니처럼 따뜻하게 감싸안는 역할이다.
잡지 표지 모델로 시작, 순탄한 생활 했지만 생활인으로선 빵점
이번 드라마는 윤은혜를 비롯해 주연급 연기자 대부분이 나이가 젊다. 선배 박현숙은 주연이 빛나야 작품이 빛난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후배의 뒤를 기꺼이 받쳐주고 있다. 특히 윤은혜와 같이 나오는 장면이 부쩍 늘어난 요즘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의견을 많이 나눈다.
“윤은혜는 열정이 굉장히 많은 친구예요. 첫 회 나가고 연기력 논란 때문에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그만큼 너에게 관심이 있다는 증거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한번은 저한테 ‘아줌마 이건 뭐야!’ 라는 대사를 하는데, 막 달려와서 ‘저 아줌마라고 부르기 싫어요’ 하면서 미안해하는 거예요. 심성이 착한 친구 같아요.”
그 역시 수많은 선배로부터 위로와 힘이 되는 조언을 많이 받았다. 사실 젊은 배우에겐 하늘 같은 선배와 함께 작업하는 것 자체가 큰 공부였다. 선배의 조언 가운데 지금도 가슴을 뜨겁게 하는 말이 있다. ‘예뻐서 배우가 아니고, 그렇다고 못나서 배우가 아니다. 네가 가지고 있는 평범함 안에서 끄집어낼 수 있는 것이 무한대다. 큰 욕심 부리지 말고 성실하게 연기한다면 70대까지 배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몇 해 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배우 이미경이 해준 말이다.
“주조연급으로 점점 밀려날 때 너무 속상해서 (이)미경 언니한테 고민상담을 자주 했어요. 언니가 하는 말이 ‘주조연인데 속상해?’였어요. 지금은 한 장면 나오든 두 장면 나오든 다 주인공이라고 생각해요. 대본을 보고 제 역할 위주로 생각하니까 스트레스도 별로 없고요.”
박현숙은 수많은 별이 뜨고 지는 연예계에서 꾸준히 자신의 길을 밝혀왔다. 사실 처음엔 이 일을 이렇게 오랫동안 하리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여학생’이라는 잡지 표지 모델이 된 것이 운명의 시작이었다. 학창시절 추억으로 남겨보자는 생각에서 찍었던 그 표지가 당시 화제가 됐다. 그러던 중 청소년을 겨냥한 화장품 광고 모델 제의가 들어왔다. 그의 어머니는 계약서에 도장부터 쾅쾅 찍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1년 전속 계약이었다. 화장품 광고 역시 인기를 끌었다. 이후 방송국에서 전화가 빗발쳤고, ‘푸른 교실’을 통해 연기자로 데뷔하기에 이르렀다.
“처음 1, 2년은 죽기보다 하기 싫었어요. 친구들과 놀고 싶은데 어유, 또 여의도에 가야 하나 하는 심정이었어요. 아침에 드라마 찍고, 점심에 화보 찍고, 저녁에 광고 찍고…, 이런 스케줄이 몇 년 동안 계속 됐어요. 그런데 그게 얼마나 감사한 건지 그땐 몰랐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저를 알아봐도 그냥 그런가보다 했어요. 어차피 1년 계약서에 사인했으니까 그때까지만 하자는 생각이었죠. 그러다 어느 순간 방송일이 재미있어지면서 지금까지 하게 된 거죠.”
영화 ‘달콤한 신부들’과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등에 출연하며 숨 가쁘게 달려오던 어느 날 슬럼프가 찾아왔다. 지난해 ‘가문의 영광’에 출연하기 전 1년 반을 쉬는 동안 집 밖에도 거의 나가지 않을 정도로 우울증에 빠졌다. 그를 가장 괴롭혔던 고민은 연기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하다못해 은행에서 공과금을 내는 것도 어렵더라고요. 요즘은 기계로 다 처리하잖아요. 한번은 은행에 가서 어찌할 바를 몰라 고지서 든 채 한참을 서 있었더니 제복 입은 아저씨가 오더라고요. ‘이거 내러 왔는데, 저 기계다 넣으면 안 되는 거죠?’ 물으니까 현금카드를 넣으래요. 시키는 대로 했는데, 이젠 비밀번호를 누르래요. 깜짝 놀라서 ‘제 비밀번호를 아저씨가 왜요?’ 거기서부터 저 자신이 바보가 되는 거죠.”
마흔에 찾아온 슬럼프, 등산과 운동으로 극복
이렇듯 지난 세월에 대한 회의에 빠져 있는 동안 살도 많이 쪘다. 이젠 늙었구나 절망했다. 게다가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넉넉지 않았고, 사람 만나는 것도 꺼려졌다.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우울증도 더해갔다. 어느 순간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었다. 그때부터 등산과 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연기에 대한 의욕도 다시 살아났다.
“마흔 되는 해 바로 전날, 일본에서 권해효 선배와 함께 행사를 한 적이 했어요. 송년회 겸 술이나 한잔 하자고 청했어요. 그날 너무 우울해서 권 선배에게 ‘나 조금 있으면 마흔 돼’ 했더니 선배가 ‘여자 나이 마흔이 얼마나 섹시하고 아름다운 나인지 아냐?’며 정색하고 말하더라고요. 그땐 ‘나를 위로하려고 별 쓸데없는 소리도 다 하는구나’ 싶었는데, 지금은 알겠어요.”
마흔 살에 치른 일종의 몸살이었는지 모른다. 심하게 앓고 나면 세상이 달리 보이는 것처럼 그 역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소소한 것에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생기면서, 배우로서의 인생도 사랑하게 됐다. 젊은 시절 일에 치여 쫓기듯 살았다면, 지금은 블록을 하나하나 쌓아가듯 일을 즐기면서 살 수 있다. 마흔이 넘어서 비로소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가족은 결코 변치 않을 그의 영원한 팬이다. 처음엔 교사이던 아버지는 연기를 하겠다는 딸을 못 마땅히 여겼다. ‘자식이란 한 배 속에서 나왔어도 오랭이조랭이라더니 별게 다 나왔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배우로서의 딸을 그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한다.
“얼마 전 아버지가 친구 분들과 함께 ‘가문의 영광’ 촬영지가 있는 태백으로 놀러갔다 오셨는데, 생전 그런 말씀 없으시다가 ‘거기에 네 사진이 걸려 있기에 휴대전화로 찍어 왔어’ 하시는 거예요. 다른 배우들이 안 좋은 일로 신문에 오르내릴 때마다 항상 전화가 와요. ‘너는 그러면 안 된다.’ 그런 말씀이 가장 큰 질책이자 응원이죠. 저희 어머니는 처음부터 반대 안 하셨어요. 제가 드라마에서 두르고 나오는 목도리도 다 어머니가 떠주신 거예요. 아마 한라산 꼭대기에서 뭘 캐오라고 해도 캐오실 거예요.”
언니와 오빠들도 힘이 되는 존재이긴 마찬가지다. 형제들과 터울이 많이 져서 어릴 적 별명이 ‘덤’이었다. 덤으로 하나 더 낳았다는 의미다. 하지만 별명과는 달리 예쁨을 듬뿍 받고 자랐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데, 어린 시절 오빠 둘이 이웃집 형제와 치고받고 싸운 적이 있다. 서로 ‘내 동생이 예쁘다, 아니 내 동생이 더 예쁘다’가 그 이유였다. ‘중고등학교 시절 사진을 보면 자신이 봐도 예뻤다’며 흐뭇하게 웃는 박현숙. 그 순간 그는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막내로 돌아가 있었다.
조카도 다섯이다. 그가 데뷔하던 해 태어난 큰 조카는 벌써 대학교 3학년이다. 남자친구 문제를 상의하거나 술 한잔 사달라고 조를 나이가 됐다. 가끔 그의 집에 들러 가방과 신발을 슬쩍 들고 가기 일쑤인데, 그만큼 허물없는 사이라서 가능하다.
“한번은 조카가 놀러 와서 제 대본을 보더니 한마디 해요. ‘주인공은 아닌가봐?’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니까 ‘이젠 안 되는 거 알잖아~’ 이래요. 가장 날카로운 게 가족이죠. 저희 집이 재산이 많지는 않아도 사랑이 많은 집이에요. 그게 제가 살아가는 힘이죠.”
드라마 촬영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요즘 쉬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다. 간혹 여유가 주어지면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수다를 떨기도 하고, 그것도 귀찮으면 집으로 초대해 맛있는 음식을 해 먹곤 한다.
“집 밖으로 15분 이상 벗어나지 않아요. (김)호진이 같은 경우는 맛집도 잘 찾아다니던데. 호진이는 전화해서 ‘누나 성북동 어디 가면 진짜 맛있는 집 있다’ 그러곤 해요. ‘야 거기까지 가려면 진이 다 빠져 허기질 텐데, 당연히 맛있지!’ 저는 그러고. 호진이는 1년에 한 번 통화해도 어제 통화한 것처럼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예요. ‘에덴의 동쪽’ 하면서 친해진 (이)미숙 언니와 (전)미선이는 사생활까지 털어놓는 사이고요. 오늘 아침에도 미숙 언니와 전화 통화를 했는데, ‘여성동아’와 인터뷰 한다고 했더니 깔깔깔 웃으며 ‘너를 여성으로 생각하는 거야’하더라고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화통하죠. 천생 여자같은 면도 있고요.”
밖에 잘 돌아다니지 않는 대신 드라마를 끝내면 꼭 여행을 간다. 최근에는 ‘가문의 영광’ 스태프와 함께 일본 오타루에 다녀왔다. 주로 작품을 같이했던 사람들과 동행하는데, 그동안의 시간을 추억하기 위한 일종의 종영파티라 할 수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사실 외로울 틈이 별로 없다. 그는 싱글인 현재의 삶에 충분히 만족한다. 아침에 ‘오늘은 뭐 할까?’ 항상 기대하면서 눈을 뜨게 된다. 그의 싱글라이프는 시계추처럼 움직인다.
“친구가 전화해서 ‘또 사과 먹고 있어? 네가 무슨 백설공주야’라고 놀릴 정도로 아침에 일어나면 반드시 챙겨먹는 것이 있어요. 홍삼액·양파즙 한 컵, 사과 하나, 플레인 요구르트, 어제는 윤은혜가 민들레즙 좋다고 해서 전화번호 받아왔는데, 이제 그것도 먹어야죠. 암튼 그런 거 다 먹는 데만 해도 두 시간쯤 걸려요. 또 현미·검은콩·율무 등으로 잡곡밥을 해서 세끼를 꼭 챙겨 먹어요. 시간 나는 대로 집 앞 등산로로 해서 남산을 오르고요. 산에 못 가는 날은 헬스장에 가서 러닝머신 위에서라도 70분씩 걸어요. 반신욕은 일주일에 네 번쯤 하는 것 같아요.”
자신을 위해 시간 투자할 수 있는 싱글의 삶에 만족
어느 날 아는 언니 하나가 ‘외롭지 않냐’고 물었다. 세상은 참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대가 없는 일은 없다. 그는 지구상에서 1백 명, 1천 명당 한 명이 가질까 말까 한 복을 타고났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일과 가족…, 거기다 사랑까지 완벽할 순 없는 노릇이다. 사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연기하는 데 집중도가 떨어지지 않을까 살짝 겁이 나기도 한다. 사랑을 하면 그 에너지 때문에 더 잘 할 수 있다고 누군가 말해줬지만 아직 잘 모르겠다. ‘반드시 남자를 만나야 돼, 결혼해야 돼’ 이런 생각은 없지만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결혼할 생각이다.
“지금이 저에겐 정말 중요한 때인 것 같아요. 정신 바짝 차리고 열심히 하지 않으면 평생 연기자로 살 수 있는 자격을 놓칠 수 있거든요. 어느 순간 잊히는 배우들이 얼마나 많아요. 지난해부터 내년까지가 딱 그 시기인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욕심이 생겨요. 액션신에도 도전해보고 싶어서 액션스쿨을 다녀볼까 생각 중이에요.”
60, 70세에도 에너지 넘치는 여배우로 살고 싶다는 박현숙. 노천카페에 앉아서도 힐끗거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런 소탈함처럼 브라운관 속에서도 그는 언제나 거리감이 없는 배우였다. 그렇게 대중과 호흡하며 평생 배우로 살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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