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 출근. 모든 언론사 뉴스를 빠르게 훑어본 뒤 아이템을 낸다. 오후 5시 전까지 출연진 섭외. 인터뷰 질문지를 만들고 저녁을 먹는다. 석간 신문을 스크랩한 뒤 출연진과의 대담 부분을 미리 녹화한다. 밤 12시10분 MBC ‘뉴스24’ 진행. 새벽 1시 반 퇴근. 하루일과를 정리한 후 새벽 5시 잠이 든다. 오전 9시 일어나 아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준 뒤 밀린 집안일을 한다. 김주하 앵커(36)의 하루 스케줄이다.
“편하게 잠을 잔 적이 언제였나 싶어요. 한 시간만 더 자고 싶은데, 아이가 꼭 9시에 깨워요. 몇 달 사이에 체중이 5kg 정도 줄었죠. 남들은 살 빠져서 좋겠다고 부러워하지만 잠 못 자서 살 빠지면 늙어 보인대요.”
마감뉴스인 ‘뉴스24’ 진행을 2시간여 앞둔 저녁 9시30분. 김주하의 살인적인 스케줄을 비집고 들어갔다. 그는 기자의 질문에 빠르고 논리정연하게 대답했다. 잘 짜여진 1시간짜리 뉴스를 녹화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First keyword ·도·전
“긴장감 넘치는 생활로 24시간 발 동동 구르지만 후회 안 해요”
“그러게요, 제가 왜 옮겼을까요. 그때는 이렇게 힘들 줄 몰랐죠. 하하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생활에 만족하냐고 묻자 김주하는 호탕하게 웃었다. 지난 5년은 그에게 짜릿함과 스트레스를 동시에 안겨준 시간이었다고 한다. 그는 ‘뉴스데스크’ 진행을 맡아 스타 아나운서로 발돋움한 지난 2004년 안정된 자리를 버리고 사내기자 시험에 응시해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수습기자들이 거치는 험한 경찰기자 생활도 굳이 하겠다고 우겼다. 선배 기자들로부터 ‘그렇게밖에 못하냐’고 질책받을 땐 자존심도 상했다. 하지만 결국 근성을 발휘해 전직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특종상을 거머쥐었다. 그의 눈과 귀는 예전보다 예리해지고 날카로워진 느낌이다. 버스를 타거나 길을 걸을 때도 온통 아이템 생각뿐이라고.
“아나운서로 일할 때보다 긴장감이 넘치죠. 뉴스24팀으로 옮긴 지금은 현장취재를 하지 않지만, 예전에는 뉴스가 방송되기 2~3분 전까지 취재한 걸 편집하곤 했어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죠. 그런데 ‘내가 왜 이 일을 한다고 했을까’ 싶다가도 뉴스가 나가는 걸 보면 짜릿해요. 피곤함도 금세 잊죠(웃음).”
“하지만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렇게 살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새벽 5시에 출근해 온종일 취재하다 뉴스를 진행하고 밤 11시에 퇴근하던 그때처럼 치열하게 살 순 없을 것 같다고. 가족도, 친구도 뒤로한 채 일에만 매달렸고 과로로 쓰러져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그의 부모는 “그냥 아나운서를 계속했으면 그 고생 안 할 텐데…” 하며 안쓰러워했다.
“전직했을 때 ‘너는 진작 옮겼어야 해’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지만 ‘얼마 못 버틸 거야’라고 했던 사람도 있어요. 그들에게 보란 듯이 버텼죠. 후회는 없어요. 제 생활신조가 ‘후회하지 말자’예요. 어떻게 결정하고 행동하든 상관없다는 뜻이 아니라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뜻이죠.”
김주하 앞에는 ‘여성 최초’ ‘단독’이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는다. 지난 2007년에는 처음으로 주말 ‘뉴스데스크’ 여성 단독앵커를 맡았고 현재는 ‘최연소 마감뉴스 앵커’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김주하가 주목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는 ‘언론인’보다 ‘예쁜 여자’로 인식되던 여성앵커의 이미지를 깨뜨린 사람 중 하나다. 테일러드 칼라 재킷을 입고 내추럴 메이크업과 숏컷에 가까운 헤어스타일을 한 것도 한몫했다. 낮고 중성적인 목소리도 신뢰감을 주는 데 도움이 됐다.
“‘김주하입니다’ 하고 전화를 받아도 남자인 줄 알고 ‘네?’ 하고 깜짝 놀라는 사람이 있어요. 어릴 때부터 굵은 목소리가 콤플렉스였어요. 아나운서 시험을 준비할 때 강연회에서 만난 현직 아나운서에게 ‘저처럼 목소리가 안 좋은 사람도 아나운서가 될 수 있습니까?’라고 몇 번이나 물었죠. 입사 후 얼마 동안은 예쁜 척하면서 목소리 톤을 높였는데 시간이 흐르자 본래 목소리가 나오더라고요.”
30년 넘게 목소리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그는 “완전히 극복하는 데는 30년이 더 걸릴 것 같다”면서도 “타고난 건 어쩔 수 없지 않느냐. 내 목소리가 믿음직스럽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있어 위안이 된다”고 덧붙였다.
김주하는 치마보다 바지를 즐겨 입는다. 이날도 어김없이 검은색 바지정장을 입고 나왔다.
“편하니까요. 어떤 의상이 좋고 나쁘다, 어떤 헤어스타일이 예쁘고 안 예쁘다 같은 생각은 안 해요. 그저 ‘나답지 않은 것’을 견디지 못할 뿐이죠. 입사 후 선배들이 외모에 신경 쓰지 않는 저를 보고 ‘여자 아나운서는 남자에게 인기가 많아야 성공한다’며 걱정하더라고요. 예쁘게 치장한다고 방송 내용이 달라지나요? 지난해 책(‘안녕하세요, 김주하입니다’) 표지 사진을 찍을 때도 그랬어요. 화장하고 옷 입고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했는데, 카메라 앵글에 비친 사람은 제가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야외촬영을 하기로 하고 취재하면서 짜증내고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을 자연스레 담았어요. 그게 진짜 김주하니까요.”
▼ Second keyword·믿·음
“힘들 때마다 나를 붙들어준 가족, 많은 시간 함께하지 못해 미안해요”
그런 모습 이면에는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이 숨어 있다. 그는 지난 2003년 한 여성잡지에 붉은색 부츠를 신고 짙은 스모키 메이크업에 선글라스를 끼고 나와 기존과 다른 매력을 선보였고, 2004년 아테네올림픽 방송 당시에는 그리스 여신 같은 드레스를 입고 뉴스를 진행해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빠듯한 스케줄 때문에 취미생활을 즐기지 못하지만 어릴 때부터 백과사전을 펼쳐놓고 그대로 따라 그릴 정도로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MBC 사내 음악동아리에서 반주를 했을 정도로 피아노 실력도 수준급이다.
“후배들은 저를 무서워해요. 밥도 잘 사주고 모르는 걸 물어보면 잘 가르쳐주는데…(웃음). ‘왜? 어떻게?’ 하고 꼬치꼬치 따져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들 때도 있지만 그건 기자의 본성이니까 어쩔 수 없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편이에요. 경찰기자 시절 만났던 형사들과 요즘도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술을 마셔요.”
다른 기자보다 제보전화도 많이 받는다. 그로 인해 특종도 얻었지만 10통의 제보전화 중 8통 이상은 장난전화라고. 그중에는 매일 새벽 2시에 전화를 걸어 신세한탄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하루에 10여 통 이상 이메일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늘 침착하게 그들의 말을 끝까지 듣고 질문에 성의껏 대답한다.
“어떨 땐 알고도 모르는 척, 안 믿으면서도 믿는 척하죠(웃음). 김주하니까 믿고 얘기한다는 사람들도 많아요. 얼굴이 많이 알려져 잠복취재를 할 때 어려움을 겪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 마음이 든든하죠. 몇몇 제보자들과는 아직도 연락을 하며 지내요. 엊그제도 한 분이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기에 다른 기자에게 연결해줬죠.”
뉴스에서 보이는 그의 단단한 이미지를 완전히 깨뜨리는 사람은 남편과 아이. 지난 2004년 세 살 연상의 펀드매니저 강필구씨와 결혼한 그는 세 살배기 아들을 두고 있다. 그는 ‘주말 뉴스데스크’를 진행하다 마감뉴스로 옮긴 것도 “가족과 함께 보낼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기자와 앵커로 살면서 희생한 부분으로 가족을 꼽으며 남편과 아이에게 미안해했다.
“적어도 주말만큼은 가족과 함께 보내려고 해요. 간혹 남편이 ‘하필이면 뉴스 하는 여자와 만났어’ 하고 푸념할 때가 있어요. 앵커란 어떤 일이 있어도 생방송으로 뉴스를 진행해야 하니까 주부가 하기엔 쉽지 않은 직업인 것 같아요.”
집안일은 남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는 그는 “바깥일에는 완벽해보일지 모르지만 가사일은 젬병이다. 잘하지 못하는 부분은 쉽게 포기한다”고 말했다. “잘하는 요리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요리는 진짜 못한다. 마트에서 사 먹는다”고 대답했다.
“떡라면을 끓이다가 태웠을 정도로 요리를 못해요. 대신 남편이 굉장히 잘하죠. 엄마가 ‘평생 굶어죽진 않겠다’고 말씀하실 정도예요. 결혼할 때 요리를 못하는데 괜찮냐, 결혼으로 인해 일에 지장을 받는 건 싫다는 두 가지 조건을 내세웠는데 남편이 흔쾌히 수락하더라고요. 애교는 없지만 남편이 설거지할 때 뒤에서 안아줘요(웃음).”
그는 아이를 강하게 키우는 편이다. 한 프로그램에서 “아이가 사고를 많이 칠 때다. 이미 이마에 구멍이 한 번 났다. 책상 앞에 앉은 나를 보고 뛰어오다 책상 모서리에 부딪혔다”며 대범한 모습을 보였다.
“그 상황이 재미있어서 웃어넘겼는데 이마에서 피가 많이 나더라고요. 의사에게 전화로 문의했더니 뼈만 안 보이면 된다고 해서 반창고를 붙여줬어요. 다행히 아기들은 잘 흉지지 않는대요. 흉터가 약간 남았지만 크면 잘 안 보일 것 같아요.”
하지만 그는 요즘 워킹맘으로서의 고민과 한계로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엄마들은 아이 앞에서 마음이 약해지잖아요. 저라고 왜 안 그러겠어요. 아이가 첫걸음을 떼거나 처음 말을 할 때 옆에 있어주지 못하는 게 안타깝죠. 곧 준서가 유치원에 입학하는데, 요즘은 주말마다 엄마들이 모여 아이들 생일 파티를 해준대요. 그 자리에 안 가면 아이가 왕따가 된다더라고요. 제가 그런 열성적인 엄마가 될 수 있을까요. 주위에 아예 아무것도 안 가르친다는 엄마부터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기본적인 것을 모두 가르친다는 엄마까지 있는데, 저를 어느 기준에 맞춰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 Third keyword·열·정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앵커의 꿈, 단 한번도 포기한 적 없어요”
그는 마음이 흔들릴 때면 신앙의 힘을 빌린다고 한다.
“일을 하다보면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제 노력을 인정해주지 않을 때 배신감은 견딜 수가 없죠. 그때마다 성경을 읽으며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을 받아들였어요. 저는 삶의 방향을 못 틀어요. 이제껏 ‘이게 안 되면 저 일을 할까?’ 같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죠. 오죽하면 사람들이 저를 경주마라고 부르겠어요(웃음).”
교사가 되면 좋겠다는 엄마의 바람을 뒤로한 채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앵커를 꿈꿨다.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잘 다니던 대학을 그만뒀고 다시 시험을 치러 아나운서가 많이 배출된다는 이화여대에 입학했다.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각 방송사에 전화해 학교 선배 아나운서들을 찾아다녔고, 그들에게 조언을 들었다. 그는 한 번에 MBC에 합격했다. 하지만 탄탄대로가 펼쳐지진 않았다.
“저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스타일이었어요.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고정 프로그램을 맡는 동기들과 달리 저는 한 프로그램의 작은 코너 진행만 맡았고 지방출장이 이어졌죠. 하지만 개의치 않았어요. 현장을 출발하기 전 도서관을 뒤져 책 한권 분량의 자료를 준비하고, 촬영장소를 물색하러 다니는 일이 행복했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사무실에 들어선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향후 10년까지 MBC를 먹여 살릴 인재들’이라는 사고에 자신의 이름만 빠져 있었기 때문. 한 사람이 “동기들은 잘나가는데 혼자 소외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을 때야 비로소 “인정받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영화퀴즈프로그램 MC를 맡았을 때는 프로그램 스태프가 노골적으로 싫은 기색을 드러냈다. 그는 서러웠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당당해질 수 있는 방법은 최선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프로그램에서 인정받은 그는 주위의 예상을 깨고 아침 정보 프로그램 ‘피자의 아침’ 단독 진행을 맡았고 지금까지 앵커로 일하고 있다.
“사람에게는 하고 싶은 일이 있고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잘하는 일이 있어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저는 정말 복 받은 사람이죠. 일을 잘하는지는 모르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는 뉴스 한 꼭지 한 꼭지 전할 때의 감정도 기억한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 잘 동화되는 편인데, 화면에 누군가 슬픈 일을 당해 눈물 흘리는 장면이 나오면 눈시울이 뜨거워져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고. 슬픈 뉴스가 나오면 일부러 화면을 보지 않거나 다음 뉴스를 읽는 등 딴청을 피운다고 한다.
얼마 전 한 신문이 선정한 ‘2030 희망리더’의 한 사람으로 뽑힌 그는 산업정책연구원이 선정한 개인브랜드 가치평가 앵커부문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영광스럽지만 부담도 돼요. 그런 자리에 제 이름이 들어가면 ‘저만 선정된 거 아니죠?’ 하면서 어떤 분들이 함께 선정됐는지 확인하죠(웃음).”
그는 손석희 교수의 진행솜씨와 이진숙 기자의 열정, 김동건 아나운서의 인간미 등을 닮고 싶다고 말한다. 얼마 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여성 앵커의 짧은 수명에 대해 “남들이 차려놓은 밥상에서 밥을 먹으면 수명이 짧다. 직접 뉴스 기획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던 그가 원하는 것은 단순한 뉴스 진행이 아니라 뉴스를 주도하는 일이다. 그는 “김주하가 하는 말이면 어떤 말도 믿을 수 있다는, 무조건적인 믿음을 대중에게 주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친 그는 1주일간 휴가를 떠날 계획이라고 했다.
“어떤 분이 ‘자신을 위해서는 무엇을 하나요?’ 하고 묻더라고요. ‘일하는데요…’ 했더니 ‘일 말고요’ 하고 되묻는데 대답을 할 수 없었어요. 그러고 보니 일 외에는 저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이 없더라고요.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은 오전 10시까지 자는 거고요, 그 다음에는 모처럼 가족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며 아내 노릇, 엄마 노릇을 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1주일 동안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궁금해 마음껏 쉬지 못할 것 같다”고 하자 “쉬더라도 뉴스 검색은 반드시 한다”며 웃었다.
“뉴스는 이제 제 삶의 일부가 됐어요. 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자꾸 뉴스거리가 보여요. 아이도 차를 타면 ‘음악 틀어줘’가 아니라 ‘뉴스 틀어줘’ 이래요. 채널이요?(웃음) 각 방송사 뉴스에 고정돼 있죠.”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