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최란(48)을 만난 것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한 미용실에서였다. 그는 요즘 바빠서 따로 시간을 낼 수 없으니 머리 손질을 하기 위해 미용실에 온 김에 만나자고 했다.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최란은 지난 9월 서울종합예술학교 부학장에 취임했다. 하지만 그 사실이 알려진 것은 두 달이 훨씬 지난 11월 중순께였다. 그동안 연기자의 길만 걸어온 줄 알았는데 그는 10년 넘게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꾸준히 후학을 양성해왔다고 한다.
“어깨가 무거워졌어요. 책임감도 느끼고 부담스럽기도 해요. 다행히 주변에서 많은 분이 도와주셔서 배운다는 마음가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치 흐트러짐 없이 일직선으로 자른 단발머리에 큼지막한 귀걸이를 하고 부츠를 신은 그의 모습은 TV에서 봐왔던 이미지와는 완전히 달랐다. 한마디 한마디 힘주어 말을 할 때마다 자신감 넘치는 커리어우먼의 분위기가 묻어났다.
서울종합예술학교는 연극·영화·뮤지컬·음악·무용·뷰티·패션 등을 가르치는 예술학교. 최란은 부학장에 취임한 사실을 뒤늦게 알린 이유에 대해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과는 또 달라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종합예술학교를 미국 줄리어드·파슨디자인학교, 영국 런던패션전문학교 등과 같은 세계 유수의 예술대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학교로 만들고 싶어요. 또 중국 칭화대, 일본 와세다대 등 명문 대학들과도 교류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생각이고요.”
그의 포부는 크고 야심차다. 그는 교육과 관련된 질문을 던지면 몸을 앞으로 숙여 질문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유심히 듣고 딱 부러지는 듯한 말투로 자신의 주장을 소신껏 말했다. 학교 측은 이번 인사에 대해 “(최란이) 10년 넘게 교수로 활동하면서 보여준 교육에 대한 열정과 노하우를 높이 샀으며 연예계에도 다양한 인맥을 갖고 있어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학생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친구 같은 교수
하지만 그는 이러한 평가에 대해 얼굴까지 붉히며 쑥스러워했다.
“제가 교수가 되겠다고 작정하고 공부를 한 것은 아니었어요. 어릴 때부터 잘하는 것이 공부밖에 없었거든요. 원래 꿈은 의사였는데 대학 1차 시험에서 떨어지자 2차 시험에서 덕성여대 영문과를 지원했어요. 당시 덕성여대 뒤편에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동양방송(TBC)이 있었는데 학교를 오가면서 담 너머로 탤런트들을 볼 때마다 ‘나도 연기를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담 하나가 제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은 거죠.”
최란은 79년 동양방송 공채 탤런트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하지만 1년 정도 지나서 자신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탤런트 시험에서 1등으로 합격했는데 그보다 낮은 성적으로 들어온 동기들이 인기를 얻고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왜 뜨지 못하는지’를 분석해보니 연기에 대한 재능도 많지 않은 것 같고, 연기를 배워본 적도 없으며, 키도 크지 않아서 외모나 신체적 조건이 배우답지 않다는 답을 얻었다. ‘배우로서 내 이름을 걸고 살아가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를 고민하다가 연기를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으로 대학 2학년 때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편입했다고 한다.
이후 최란은 개성있는 연기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인 지난 84년에는 당시 농구선수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이충희씨(49)와 결혼, 화제를 모았다.
“갑작스럽게 결혼을 하게 됐지만 공부에 대한 꿈은 접을 수가 없었어요. 결혼한 지 4년 만에 임신, 연기생활을 할 수 없게 된 틈을 타 대학원에 진학했죠. 석사과정을 마친 후 서강대학교에서 또 2년간 영상예술을 공부했어요. 그리고 그 후론 자연스럽게 대학 강단에 서게 됐죠. 이후 경북 경산 대경대, 충남 한서대 등에서 강의하고 학과장까지 역임하다 이번에 서울종합예술학교 부학장이 된 거예요.”
아이들을 키우면서 ‘연기’와 ‘공부’를 병행하기가 쉽지 않았을 터. 그는 연기자로 살아오면서 10년 넘게 대학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교육자로 활동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부지런한 성격을 꼽았다.
“저는 매사에 정확하고 철두철미해요. 시간 약속을 한번도 어긴 적이 없고, 자존심이 강해서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일은 며칠 밤을 꼬박 새워서라도 꼭 해내고 말죠.”
서울종합예술학교를 세계 유수의 예술대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학교로 키우고 싶다며 포부를 밝힌 최란.
배우 경험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도움이 된 건 말할 나위 없는 사실.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그치지 않고 한 명 한 명에게 꿈을 심어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배우는 재능도 중요하지만 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공연을 할 때면 아무리 바빠도 꼭 참석해 보고, 끝나면 열렬히 박수를 치며 ‘멋진 작품이다’ ‘훌륭한 연기였다’ 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학점도 잘 줬어요. 저는 F나 D학점은 줘본 적이 없어요. 재능은 없어도 노력하는 자세가 보이면 무조건 B학점을 주었죠.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A학점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 위해서였어요. 게다가 제가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이다 보니 학부모들의 마음도 헤아리게 되더라고요. 어느 부모나 그렇듯이 자식의 성적에 예민하잖아요. 요즘 경기도 어렵다고 하는데 F학점을 받으면 다음 학기에 재수강을 해야 되고 그 때문에 졸업이 늦어지면 사회에 진출하는 데도 지장이 생기잖아요.”
학생들과 MT를 가면 밤새도록 고민도 들어주고 연애상담도 해줬다. 그뿐만이 아니다. 밥이나 술도 자주 사주었다. 덕분에 최란은 학생들 사이에서 ‘잘 쏘는 교수님’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밤새 드라마 촬영을 하고 다음 날 아침 일찍 강의가 있는 날이면 힘들기도 했어요. 하지만 저는 학생들을 가르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통해 공부를 더 많이 할 수 있었어요. 강의를 준비하면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또 수업시간에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전날 공부한 지식을 복습하게 되니까 좋았죠.”
제자들 가운데는 오래전 졸업을 했는데도 지금까지 틈틈이 전화해 안부를 묻거나 찾아오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그는 제자들이 잊지 않고 찾아줄 때 교육자로서의 보람을 느낀다고.
그렇다면 자신의 자녀들은 어떻게 교육을 시켰을까. 쌍둥이 딸 현경·현정(20)과 아들 준기(18) 등 1남2녀를 두고 있는 최란은 지난 99년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의 한 서머스쿨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런데 두 달여간의 과정이 끝나갈 무렵 큰딸 현경양이 미국에서 계속 공부하기를 원했다고 한다. 그는 처음엔 반대했지만 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어서 두 딸을 모두 미국에 남겨두고 왔다고 한다.
“아이들이 원해서 미국 유학을 보냈지만 이를 계기로 미국과 한국 교육의 차이점을 알게 됐어요. 예를 들면 미국의 초등학교에서는 우리나라처럼 각자에게 숙제를 내주지 않고 그룹별로 내주더라고요. 누구 한 명 숙제를 안 해오면 같은 그룹에 속해 있는 모든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야단을 맞는 상황이 되니까 서로 협력을 하게 되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어릴 때부터 타인에 대한 배려와 포용력, 이해심을 배우는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잖아요. 사교육 열풍으로 학원을 많이 다니고 엄마들도 내 아이만 잘하면 된다는 식의 사고를 갖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커서도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도 하루빨리 교육정책이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간 쌍둥이 딸은 현재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 큰딸은 USC 대학에서 비즈니스를 전공하고 있고 작은 딸 현정양은 산타모니카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공부하고 있다고.
그는 두 딸이 미국 유학을 간 뒤에도 연기하랴, 강의하랴, 너무 바빠서 신경을 쓰기는커녕 여태껏 3~4번밖에 미국에 가보지 못했는데 그럼에도 반듯하게 잘 자라준 딸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고등학교 졸업식 때 갔더니 큰딸이 상을 여섯 개나 타더라고요. 1천 명이 넘는 졸업생이 보는 앞에서 우리 딸 이름이 불리고 연거푸 상 타는 모습을 보니 목이 메었어요. 엄마로서 해준 것도 없는데, 자주 와보지도 못하고, 고작해야 학비밖에 대준 것이 없는데, 이 멀고 먼 타지에서 동생 데리고 공부하며 얼마나 고생했을까를 생각하니 하염없이 눈물이 났어요.”
현재 고등학교 2학년인 막내아들 준기군은 한국에 있는데 아이스하키를 배우고 있다. 어릴 때부터 산만해서 미술·음악·바둑 등을 가르쳤지만 아이가 별 흥미를 못 느껴서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턴 야구를 시켰다고 한다. 운동에는 소질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준기군은 사춘기를 겪으면서 중학교 3학년 때 야구가 하기 싫어졌다고 했고, 이런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 지난해부터 아이스하키로 종목을 바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때 마침 준기군으로부터 휴대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아~들” 하며 갑자기 애교 섞인 말투로 상냥하게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고 전화를 끊을 때도 “아~들 사랑해”하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저는 아이들을 키울 때 성적보다는 인성적인 부분에 더 주안점을 뒀어요. 공부 좀 못하면 어때요. 심성이 반듯해야지. 공부 잘한다고 해서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도 사립학교를 선호하진 않았어요. 사립학교 프로그램이 좋다는 말도 듣긴 했지만, 저는 제일 좋은 건 아이들이 집 바로 옆에 있는 학교에 다니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대신 아이들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흥미 있어하는 과목은 적극 밀어줬죠.”
“집에서 존경받아야 밖에서도 존경받는다는 생각에 남편 ‘깍듯이 모시고’ 살아요”
그는 남편 이충희씨에 대해 “곰살궂고 자상한 성격은 아니지만 나와 아이들에게 항상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배우로서, 교육자로서, 사회활동을 왕성히 할 수 있었던 이유도 남편의 배려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남편이 저를 감동시키는 것은 일년에 딱 세 번이에요. 결혼기념일, 생일날, 밸런타인데이 때 꽃을 선물해주거든요. 제 인상이 강해서 남들은 남편을 쥐고 사는 줄 아는데 사실은 제가 남편을 모시고 살아요(웃음). 아내가 존중을 해줘야 남편이 밖에 나가서도 존중받는다고 생각하거든요.”
현재 미국 USC 대학과 산타모니카 대학을 다니고 있는 쌍둥이 딸 현경·현정양.
2년 전에는 남편에게 서재방도 만들어줬다고 한다. 그가 드라마 촬영을 끝내고 밤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남편이 곤히 잠들었다가도 깼기 때문이다. 또 침대 옆에 TV와 컴퓨터가 놓여 있어 수업이 있는 전날이면 새벽까지 불을 켜놓고 강의 준비를 했는데 그런 날에도 남편은 어김없이 잠을 설쳐 아침이면 토끼눈처럼 눈이 빨갛게 충혈돼 있었다고.
“서재방이 생긴 후로 남편과 따로따로 자는데 나쁜 것 같진 않아요. ‘부부는 싸워도 한 이불을 덮어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그것도 젊었을 때 하는 얘기지, 나이가 들면 아무래도 편한 게 좋죠(웃음). 남편도 나 때문에 더 이상 잠을 설치지 않으니까 좋고 나도 자는 남편 눈치 보지 않고 맘껏 일할 수 있으니까 마음이 편해요. 나이 든 부부한테는 각자 따로 방을 써보라고 적극 권하고 싶어요(웃음).”
그는 부부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라고 한다. 어느 부부나 그렇듯이 아무리 열렬히 사랑해서 결혼해도 3년 정도 지나면 짜릿한 느낌은 없어지기 때문에 사랑보다도 신뢰와 배려가 더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며 나름의 ‘부부학’론을 폈다.
이 부부는 조만간 ‘이충희·최란 장학금’을 만들어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체육계와 문화예술계 청소년 20명에게 전달할 계획이라고 한다. 매년 5월8일 어버이날이면 독거노인을 위해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고 있는 최란은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나눔의 삶을 살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저는 아직도 할 일이 많은 것 같아요. 부학장에 취임했으니 학교 일도 더욱 열심히 해야겠고 또 중견 탤런트로서 좋은 연기를 보이기 위해 노력도 많이 해야겠죠. 남편의 아내, 아이들의 엄마로서도 더욱더 최선을 다할 생각이에요. 나이가 들어도 일을 하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게 제 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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