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앞두고 서울 강남의 한 댄스학원에서 만난 전보람(22)은 한눈에 보기에도 아빠 전영록(54)과 엄마 이미영(47)을 닮아 있었다. 둥근 이마와 시원시원한 눈매가 엄마를 닮았다고 하자 그는 “부모님보다는 할아버지를 많이 닮았어요~”라며 미소 지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영화배우 고(故) 황해, 할머니는 가수 백설희(81). 부모 이혼 후 오랫동안 아빠와 지냈던 전보람은 지난 2004년부터 경기도 일산에서 엄마와 살고 있다. 앨범 타이틀곡 ‘그 후론’을 부를 때의 목소리는 어딘지 아버지 전영록을 연상케 했다. 사진촬영이 아직은 낯선지 주뼛거리던 그는 시간이 흐르면서 금세 다양한 포즈를 만들어냈다.
“‘부모 덕 본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시키면 뭐든지 열심히 해요(웃음). 끼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어요. 동생과 만화를 보다가 재미있는 캐릭터가 나오면 흉내를 내기도 했고요. 어느 날 우연히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마음먹은 게 아니라 부모님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그 꿈을 키워온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예고를 다니며 미대 입시를 준비하던 그가 갑작스레 연기로 전공을 바꾼 건 지난 2004년, 엄마 이미영과 미국 시애틀로 여행을 떠난 모습이 방송 전파를 타면서부터다. 이미영의 젊은 시절을 빼닮은 전보람에게 호감을 느낀 사람들이 인터넷 팬클럽을 만들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짜릿함과 열망을 느꼈다고 한다.
“미술을 전공하면서도 연극영화과에 다니는 친구들에게 자꾸 눈길이 갔어요. 용기가 나지 않아 참고 미루다가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결국 입시를 1년 남겨두고 부모님께 말씀드렸죠. 평소 조용한 성격인데다 오랫동안 미술이라는 한우물만 팠기 때문에 ‘연예인이 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많이 놀라셨어요.”
미술에서 연기로 진로 변경하며 부모와 마찰 빚어
전영록은 “다시 생각해보라”며 극구 반대했다고 한다. 부침 많은 연예계에서 딸이 상처 받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 반면 이미영은 “네 선택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도전하라”며 연기학원에 등록해줬다고 한다. 비록 다른 수험생보다 준비기간이 짧았지만 그런 정성과 노력 덕분인지 그는 명지전문대 연극영화학부에 합격했다.
“아마 부모님은 저보다 동생 우람이(21)에 대한 기대가 컸을 거예요. 동생은 성격이 사교적인데다가 그룹 보컬리스트로 활동할 만큼 끼가 많거든요. 한동안 ‘내게는 왜 저런 재능을 물려주지 않았을까’ 하고 의기소침한 적이 있어요. 아빠가 동생은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면서도 제게는 ‘평범하게 지내다 좋은 곳에 시집가면 좋겠다’고 말할 때는 특히 서운했고요.”
이후 엄마 이미영과 몇 차례 더 방송에 출연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존재를 알게 됐고 궁금해했다. 그중에는 “3세 연예인을 기대한다”는 긍정적인 시선도 있었지만 “조부모와 부모의 후광으로 연예인이 되려 한다”는 부정적인 반응도 있었다고 한다.
“부담스럽기도 하고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 고민했어요. ‘3세 연예인’이라는 짐을 짊어진 이상 내려놓진 못할 것 같은데 과연 잘 헤쳐갈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누구의 손녀, 누구의 딸이 아닌 전보람으로 불리기 위해 부모님과 다른 기획사와 계약하고 학교에서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부모님 몰래 오디션도 수차례 봤어요.”
그는 오디션을 보면서 한 번도 자신의 조부모나 부모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오디션에 탈락한 뒤 좌절하고 자책할 때마다 엄마가 눈치를 채고는 ‘아직도 멀었다. 부족한 부분을 채운 뒤 오디션을 보라’고 따끔하게 야단치셨어요. 그러던 어느 날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온 엄마가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라.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순간 가슴이 쩌릿해지면서 저 때문에 마음고생하실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스스로를 더 채찍질하겠다고 다짐했어요.”
몇몇 광고와 패션잡지 모델로 활동하던 그는 지난해 말 한 힙합가수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했고 올 초에는 메이크업아티스트 조성아의 화장품 브랜드 ‘루나’ 모델로 발탁됐다. 그러다 지난 4월에는 신인가수 발굴 프로젝트에 뽑혔다.
“연기자를 목표로 준비하고 있었는데 연습 삼아 참가한 신인가수 발굴 프로젝트에 덜컥 합격했어요. 정식으로 노래를 배운 적이 없어 발성이 엉망이고 기교도 부족했지만 뭔가 해냈다는 생각에 뿌듯했어요. 부모님도 크게 기뻐하셨죠. 그날 이후 학교를 휴학하고 본격적으로 보컬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앨범을 준비했어요.”
타이틀곡 ‘그 후론’은 80년대 활동하던 가수 이지연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것으로, 전영록이 작사·작곡했다. 그는 “소속사에서 ‘그 후론’을 들려줬을 때 어디선가 들어본 멜로디라고 생각했지만 아빠가 만든 곡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안 뒤 아빠에게 말씀드렸는데 흔쾌히 리메이크를 허락하고 코러스까지 직접 불러줬다”고 말했다.
“엄마는 친구같이 편안한 반면 아빠는 좀 어렵게 느껴져요. 엄격한 편은 아니시지만 아무래도 가장으로서의 위엄이 있으니까요. 이를테면 어릴 때 ‘아빠, 내가…’라고 말하면 곧바로 ‘제가’ 하고 고쳐주셨어요. 그런 아빠가 어느 날 녹음실에 직접 찾아와 ‘아빠는 큰딸이 하는 일이라면 뭐든 찬성이야’ 하고 제 어깨를 토닥이면서 ‘이 부분은 이렇게 부르고 저 부분은 저렇게 부르라’고 가르쳐주는데 얼마나 든든했는지 몰라요(웃음).”
“녹음실 찾아와 어깨 두드려준 아빠 격려에 큰 힘 얻었어요”
전영록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부모의 후광은 자식을 망치는 길이다. 나 역시 부모님 몰래 가수로 데뷔했고 그 후에도 되도록 부모 도움을 받지 않으려 노력했다. 보람이에게도 ‘너의 일에 간섭하지도, 돕지도 않겠다’고 미리 말해뒀다”고 밝혔다. 그 사실을 아는 전보람에게 아빠의 따뜻한 말 한마디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힘이 됐다고 한다.
“사실 그런 점 때문에 제 롤 모델은 부모님이에요. 특히 할머니·할아버지의 힘을 빌리지 않고 최고의 가수로 인정받은 아빠가 존경스러워요.”
공교롭게도 전영록이 최근 16년 만에 새 앨범을 발매하면서 두 사람은 함께 활동하게 됐다.
“예전에 비해 멜로디가 조금 어려워지고 아빠 목소리도 변한 것 같아 낯설게 느껴졌지만 오랜만에 아빠가 노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행복해요. 제가 가수로서 온전히 자리매김하기 전까지는 아빠와 한 무대에 서는 일은 없을 거예요. 마찬가지로 연기를 하더라도 엄마와 한 작품에 출연하는 일도 없을 거고요.”
동생 우람양 역시 현재 가수 데뷔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스물두 살 여대생으로서의 생활은 어떨까. 그는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이다. 친구들과 놀기보다는 방에서 음악을 듣고 영화를 감상하는 등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고 말했다.
“당분간 방송활동을 하기보다는 서울 홍대 등지에서 공연을 하며 무대 경험을 쌓을 생각이에요. 지금껏 살면서 제가 무엇을 잘하는지 알지 못했고, 어떤 일을 하더라도 끝까지 매달린 적이 없는데, 노래와 연기만큼은 아무리 힘들더라도 ‘이 길을 걷길 잘했구나’ 하고 후회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또 부모님께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되고 싶고요.”
아직 자신만의 사인이 없다며 자신의 음반 CD에 ‘전보람’이라는 이름을 반듯하게 쓴 그가 3세 연예인으로 펼칠 활약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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