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드라마 ‘나쁜 여자 착한 여자’를 통해 ‘착한 남자’의 표상으로 떠오른 전노민(42)이 또다시 부드러운 남자로 돌아왔다. SBS ‘조강지처클럽’ 후속 드라마 ‘가문의 영광’에서 법도를 중시하고, 어른들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는 종갓집 종손 역을 맡은 것. 전작 ‘최강칠우’에서 남성미 물씬 풍기는 자객으로 변신했던 터라 그의 ‘착한 남자’로의 귀환은 식상하기보다 반갑다.
‘가문의 영광’은 각자 부족한 점이 있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종가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세 남매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전노민이 연기하는 하수영은 스무 살에 명문가의 딸과 결혼하지만 그의 고지식함에 신물을 느낀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면서 인생의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최강칠우’를 끝내자마자 휴식기 없이 바로 새 작품을 시작한 그는 예전에 비해 살이 다소 빠져 있었다.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여름 내내 도포를 세 겹으로 껴입고 칼을 휘두른 탓에 몸무게가 5kg이나 빠졌다”고 말했다.
“사극을 하다가 현대물로 넘어오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어요(웃음). 가을이라 날씨도 선선해서 촬영하기에도 딱 좋고요. 충분히 쉬지 못한 게 아쉽지만 연기의 흐름이 끊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바로 새 작품을 시작하길 잘한 것 같아요.”
최근 쉬지 않고 꾸준히 연기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뒤늦게 연기자로 주목받은 만큼 부지런히 경력을 쌓고 싶다고 한다. 아내 김보연(51)도 “당신은 앞으로 보여줄 게 더 많은 사람이야” 하면서 그에게 힘을 불어넣어 준다고. 데뷔 전 외국계 항공사에서 근무하다 우연한 기회에 CF 모델로 전업한 그는 2년 정도 무명생활을 거친 뒤 98년 연기자로 데뷔했다. 김보연과는 같은 드라마에 출연하며 사랑이 싹터 2004년 결혼했다.
자존심 건드리지 않으면서 현명하게 격려해주는 아내 김보연
결혼 후 더욱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두 사람은 서로의 연기에 크게 간섭하지 않는다고 한다. 작품을 선정하기 전에는 함께 머리를 맞대고 어떤 캐릭터가 좋을지 고민하지만 촬영에 들어가면 연기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피한다는 것. 그는 “아내가 내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걸 잘 안다”며 웃었다.
“‘아내 덕 본다’는 말도 기분 나쁘지 않아요. 그게 사실이니까요. 아내는 30년 넘게 연기밖에 모르고 살아온 사람이니 당연히 저와 비교할 수 없죠. 하지만 처음 기회가 왔을 때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다음 기회도 없다고 생각해요. 누군가 밥을 떠서 입에 넣어줘도 씹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잖아요. 고맙게도 아내는 늘 ‘당신 몫, 당신이 찾은 거야’ 하고 격려해주는데 아내의 그런 말이 제게는 큰 힘이 돼요.”
평소 선배, 후배 선을 긋지 않고 동료들과 허물없이 지내려 애쓰는 그는 얼마 전 아끼는 후배를 잃는 아픔을 겪었다. ‘최강칠우’에 함께 출연하며 남다른 인연을 쌓은 이언이 지난 9월 초 오토바이 사고로 세상을 뜬 것. ‘최강칠우’ 종방연에서 함께 어울린 지 몇 시간 안 돼 사고소식을 접한 그는 순간 너무 놀라 할 말을 잃었다고 한다.
“지방에서 촬영하면서 열흘에 한 번 정도 서울에 올라오곤 했는데 그때마다 함께 어울려 술도 마시고 이런저런 얘기도 많이 나눴어요. 제가 직접 연기지도를 해주기도 했고요. 종방연 자리에서도 ‘선배님, 앞으로 대본 나오면 또 찾아뵐게요’ 했던 녀석인데, 이렇게 돼 너무 마음 아파요.”
그 사건 후 한동안 넋을 잃고 하루 종일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그에게 아내 김보연은 “어디라도 다녀오라”며 마음을 썼다고 한다. 새 드라마 촬영을 앞두고 있는 그가 하루빨리 시름을 털어버리길 바랐던 것. 지금도 고인을 생각하면 마음이 많이 무겁고 안타깝다는 그는 “어린 친구의 죽음으로 인해 다시 한번 인생의 소중함을 배웠다”고 말했다.
전노민이 말하는 행복한 결혼생활의 비법은 ‘상대방이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다.
결혼 후 부드러워진 남편, 날마다 더 행복하다고 말하는 아내
결혼 후 그는 성격이 많이 부드러워졌다고 한다. 예전에는 고지식하다는 말을 자주 들을 만큼 원칙을 따지는 편이었는데,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아내와 살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도 그냥 넘어가는 여유가 생겼다고. 그는 “좋은 사람과 함께 사니 마음도 넓어지는 것 같다”며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김보연 역시 “날마다 더 행복해진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한다.
“배우자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큼 기쁜 일이 어디 있겠어요. 작은 것에도 감동하고 즐거워하는 아내 덕분에 제가 더 큰 힘을 얻어요. 결혼해서 지금까지 크게 다툰 적이 없는데, 상대방이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죠. 평생을 함께 살기로 약속한 이상 서로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노민은 아내를 ‘만능 리모컨(?)’으로 여기는 여느 남편과 달리 아내에게 일절 잔심부름을 시키지 않는다고 한다. 목이 마르면 직접 주방에 가서 물을 마시고,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바로 일어나 가져다 쓴다는 것. 그러면서도 아내가 부탁하는 건 뭐든 들어주는 애처가 중의 애처가다.
“얼마 전 한 지인이 저녁식사를 초대해 아내와 함께 다녀왔는데, 집안 분위기가 저희와 반대여서 깜짝 놀랐어요. 부인이 남편을 왕처럼 떠받들고 살더라고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가 ‘내 주위에 당신 같은 남자가 흔치 않다’며 ‘미안하고, 고맙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들으니 괜히 기분이 좋아졌어요(웃음).”
두 사람에게는 딸이 셋 있다. 대학생인 큰딸과 고등학생인 둘째 딸은 김보연의 아이들로 미국 LA 김보연의 친정에서 자랐고, 열네 살인 막내딸은 미국 시카고에 있는 전노민의 누나가 키우고 있다. 아침마다 막내딸과 전화통화를 하는 전노민은 “어려서부터 옆에 있어주지 못하고 아빠 노릇도 제대로 못한 것 같아 미안하다”고 말했다.
김보연은 지난 여름 한 달 동안 세 딸이 있는 미국에 다녀왔다고 한다. 그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와이로 여행을 다녀왔다고. 큰딸은 현재 뉴욕 시라큐스대에서 영화연출을 공부 중인데, 처음에는 엄마아빠처럼 연기자가 되겠다고 고집을 피웠으나 김보연의 반대로 연기자의 꿈을 잠시 접고 연출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큰딸이 전화로 SOS를 쳤어요. 영상 편집에 필요한 컴퓨터가 있는데 엄마가 사주지 않는다는 거예요. 기존 컴퓨터로도 작업을 할 수 있지만 성능이 떨어져 다른 아이들과의 경쟁에서 밀린다면서요. 결국 제가 아내를 설득해 사주기로 했어요. 그랬더니 재차 ‘사실은 16㎜ 카메라도 필요해요~’ 하면서 아양을 떨더라고요(웃음).”
딸과 아내는 서로간에 갈등이 생기면 그에게 중재를 요청해온다고 한다. 그가 두 사람 사이를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묘책을 가지고 있다는 걸 잘 알기 때문. 그는 “엄마와 딸은 가장 친한 친구이자 영원한 앙숙인 것 같다”며 웃었다.
틀에 박힌 캐릭터에서 벗어나 악역 도전하고 싶어
아이들은 개방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덕분에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스스럼없이 잘 어울린다고 한다. 두 사람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어른스럽고 이해심 많은 아이들 덕분이라고. 그는 “세 아이 모두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고 어리지만 배울 점이 많다”고 자랑했다.
“예전에 큰딸이 한국에 잠깐 들어와 있을 때였는데, 마트에서 함께 장을 보다가 아이한테 혼쭐이 난 적이 있어요. 한 여자 분이 저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제가 그걸 못 본 척 외면했다는 거예요. 잔뜩 실망한 표정으로 제게 ‘왜 고맙다고 인사를 안 했냐’며 추궁하더군요. 그래서 ‘카트를 끄느라 인사하는 걸 못 봤다’고 하자 그래도 상대방은 기분이 나쁠 테니 지금이라도 가서 인사를 하라고 하는 거예요. 순간 아이한테 부끄러워서 혼났어요. 결국 그 여자 분에게 가서 사과를 한 뒤 다시 인사를 건넸죠(웃음).”
그는 운동을 좋아하지만 요즘에는 촬영하느라 바빠 시간을 거의 내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다 얼마 전 모처럼 시간을 내 동료 연예인들과 함께 야구를 했는데, 발등이 찢어지는 사고를 당해 응급실에 실려가 여덟 바늘을 꿰맸다고. 그에게 촬영 기간에는 과격한 운동을 하지 말라고 누누이 당부해온 아내는 그가 발을 절뚝거리며 들어오자 깜짝 놀랐다고 한다.
“운동하러 간 사람이 늦게까지 안 들어오니까 많이 기다렸나보더라고요. 문 여는 소리가 나자 아내가 ‘자기 왔어?’하고는 뛰어나오는데, ‘난 이제 죽었다’ 싶었죠(웃음). 다쳤다는 얘기를 듣고는 아내가 단단히 화가 나서 방으로 휙 들어갔어요. 따라가서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싹싹 빌었더니 눈을 흘기며 상처 부위는 괜찮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동안 ‘착한 남자’ 이미지를 구축해온 전노민은 앞으로 다양한 캐릭터에 도전하고 싶다고 한다. 특히 악역에 관심이 많다는 그는 “단순히 나쁜 놈이 아니라 소름끼치도록 징그럽고 무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좋은 아빠’ ‘착한 남자’ 등 틀에 박힌 역에서 벗어나 한 단계 변형된 인간상을 연기하고 싶다는 전노민. 그는 “집에서는 ‘착한 남자’, 촬영장에서는 ‘괴팍한 놈’으로 사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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