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원래 사람들 앞에 나서질 못하는 성격이라서요.”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선 후보(58)의 부인 박수애씨(53)를 서울 도곡동 자택에서 만난 날, 박씨는 “긴장돼 입이 마른다”며 물을 마시고 오더니 잠시 후 다시 “너무 떨린다”며 윗옷을 걸치고 돌아왔다.
이날 마침 한 일간지에는 문 후보가 “집사람은 주로 BMW를 탄다”고 말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BMW는 버스(Bus)와 지하철(Metro), 걷기(Walk)의 영문 첫 글자를 딴 조어. 실제로 박씨는 지난 2004년에 류머티즘을 앓기 전까지 자동차가 아예 없었다고 한다. 몸이 많이 아플 때 비상용으로 쓰려고 2005년에 구입한 차는 거의 타고 다니지 않아 여태까지 주행거리가 5000km 남짓이라고.
이 부부의 검소하고 소박한 라이프스타일은 문국현 후보가 어려서부터 절약하는 습관이 몸에 밴 것이 한몫했다. 그리고 이는 문 후보가 오랜 세월 열정을 기울여온 환경운동과 자연스럽게 연결됐다고.
“지영이 아빠(그는 문 후보를 이렇게 부른다)는 기부를 그렇게 많이 하면서도 정작 자신에게 쓰는 돈에는 인색한 사람이에요. 한번은 연단에 올라갔는데 바지 밑단이 해진 것을 회사 직원들이 보고는 “그 양복 좀 그만 입으시라”고 사정했을 정도죠.”
박씨는 이화여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경기도 파주여중에서 교사로 일하던 시절, 고등학교 동창의 소개로 문 후보를 만났다. 알고 보니 문 후보의 여동생이 박씨와 고등학교 동창이었다고 한다.
“시누이가 소아마비를 앓았던 터라 오빠인 지영이 아빠가 매일 학교에 데려와 여동생을 업고 계단을 오르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해요.”
문 후보는 박씨를 세 번째 만나던 날, 택시를 대절해 북악 스카이웨이 꼭대기 팔각정에 가서 청혼을 했고 두 사람은 78년 결혼식을 올렸다.
“참 반듯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는데 말할 때 항상 웃는 모습이 좋았어요.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 괜찮을 것 같다는 호감을 느꼈고 결혼해서 지금까지 그 이상의 장점을 많이 발견했어요.”
문 후보는 연애시절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부인을 ‘수애’라고 부른다. 주위 사람들이 ‘닭살부부’라고 더러 놀리기도 하는 대목이다. 문 후보의 부친 역시 며느리들을 부를 때는 항상 이름을 불렀다고 한다.
문 후보는 74년 유한킴벌리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95년 46세 나이에 사장에 오른 뒤 올해 대선 출마를 앞두고 사임할 때까지 12년간 회사 경영을 이끌었다. 2003년부터는 킴벌리 클라크의 북아시아 총괄사장도 겸임했다. 흔히 이야기되는 남편의 ‘고속 승진’에 대해 박씨는 “운도 따랐겠지만 남들보다 몇 배 노력을 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예비군 훈련통지가 나오면 훈련 끝내고 회사로 다시 들어가는 사람이었어요. 사장이 된 후에는 해외 출장을 자주 다녔는데 저녁에 도착해서도 회사로 곧장 가곤 해서 저는 ‘비행기가 무사히 도착한 건가’ 궁금해서 회사에 전화해 알아보곤 했답니다.”
“남편은 좋은 세상을 만드는 정치, 우리나라를 올바른 길로 이끌 정치를 할 사람이에요”
두 딸과 함께한 문국현·박수애 부부. 이 부부의 딸들은 비정규직으로 일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사무실에서 밤 12시 넘어서까지 일하고 나와 보니 건물 관리인이 전기를 다 꺼서 복도를 이리저리 더듬어 나오다 부딪치고 멍들어 집에 온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렇듯 회사에 온몸을 바쳐 일하는 남편이라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적었을 법한데 박씨는 “남편과 보낸 시간은 다른 부부들에 비해 10분의 1 정도이지만 남편은 함께 있는 시간에는 최선을 다해 가족을 챙기는 스타일이라 불만은 없다”고 말했다.
“남편은 기본적으로 자기는 없고 오직 남을 위하고 남을 배려하는 자세를 타고난 사람이에요. 회사에서 늦게까지 일하고 돌아와 피곤할 때도 그냥 쉬는 법이 없었어요. 밤 11시에 와서도 “장 봐야 해? 우리 마트 갈까?” 그러거나 아니면 산책 가자면서 앞장서서 쓰레기를 챙겨 내려가곤 하죠.”
결혼 후 지금껏 단 한 번도 아내에게 출장가방 싸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더러 같이 해외에 나갈 때는 아내의 가방까지 챙겨주는 남편이라고 한다. 출장 다녀와서는 곧바로 가방을 깨끗이 비워 옷은 옷장에 걸고 가방은 원래 자리에 갖다 놓는다고. 보통 남편들이 아내에게 시키는 ‘수발’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라고 한다.
“유한킴벌리에서 여학생들 여름 캠프학교를 개최해요. 거기에 저도 남편과 함께 몇 번 간 적이 있는데 남편이 그곳 화장실 청소를 하더라고요. 어디 가든 남이 싫어하는 일,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성격이고 그 습관이 집에서도 그대로예요.”
문 후보가 대선 출마를 선언했던 지난 8월 인터넷에는 그의 두 딸이 비정규직으로 근무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버지가 유명 기업 사장직에 있었는데 딸들 취직자리 알선을 안 해줬다니 보통사람들은 의외라고 놀라지만 이 부부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고 한다.
“아버지 부탁으로 실력도 없으면서 좋은 자리에 들어가는 게 아이들에게 좋은 일일까요? ‘빽’으로 들어왔다고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불행하지 않겠어요?”
80년·84년생인 두 딸이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거의 사교육을 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교사 출신인 박씨는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뚜렷했고 문 후보는 자녀교육에 있어 아내의 결정을 전적으로 신뢰했던 것. 두 딸은 지방대에 진학했다가 대학에 들어가서부터 열심히 공부하고 전 과목 A학점을 받더니 각각 국민대·숙명여대에 편입했다. 큰딸 지영씨는 졸업 후 유치원 교사로 일하다 인천공항에서 비정규직으로 잠시 근무했는데 현재 다른 직장을 찾고 있고, 둘째 딸 지원씨는 4학년 2학기를 다니면서 외국계 은행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현재 지영씨는 싸이월드에 가족사진을 올리는 등 홈피 관리를 하며 문 후보의 선거운동을 돕고 있다고 한다.
그의 부부는 결혼 후 30년 동안 9번에 걸쳐 전셋집과 자가 주택을 옮겨 다녔다고 한다. 지금 살고 있는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아파트는 재건축을 거쳐 50평형대로 커졌지만 94년 1억2천만원에 구입을 했다고.
눈에 띄는 인테리어 없이 단출한 그의 집 거실에는 유한킴벌리에서 “33년간 회사 발전에 기여한 공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전달한 감사장을 액자에 넣은 것이 거의 유일한 장식물이었다. 회사에 있는 동안 직원들로부터 존경받았고 사회에서 칭찬 들으며 좋은 이미지를 많이 쌓은 남편이 왜 대선 경쟁에 뛰어들어 새 고생길을 여는지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다는 박씨. 하지만 지금은 “남편은 좋은 세상을 만드는 정치, 우리나라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갈 정치를 할 틀림없는 사람”임을 확실히 믿기에 남은 여정을 문 후보 곁에서 뚜벅뚜벅 함께 걸어가겠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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