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성동 코엑스 몰 입구. 코엑스 몰 내 위치한 코엑스 아쿠아리움. 2만6천 평이나 되는 코엑스 몰 곳곳에는 이정표가 설치돼 있다.(왼쪽부터 차례로)
빽빽한 빌딩 숲에는 바람이 지나갈 틈이 없다.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는 모락모락 열기를 뿜어낸다. 한여름 도심은 제대로(!) 더워서 건물 밖으로 몇 발짝만 걸어도 숨이 가빠진다. 이럴 때 휴양지로 떠나면 더없이 좋겠지만, 여건상 떠나지 못하고 도시에 남은 사람들은 꿩대신 닭을 찾아 에어컨 바람이 ‘빵빵한’ 은행과 백화점을 돌며 피서를 한다. 그러나 은행 구석에 앉아 잡지를 보거나, 쇼핑을 핑계로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느낌. 더 많은 것을 충족할 수 있는 도심 속 피서지는 없을까. 혹 삼성역 근처 한국종합무역센터는 어떨지? 코엑스 말이다.
1코스 - 전시장에서 지하 쇼핑천국까지 탐방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는 늘 사람이 북적댄다. 평일에는 10만~20만 명이, 주말이면 30만~40만 명이 거쳐 가는 이곳은 서울에서도 특히 유동인구가 많아 사람 구경 하나는 확실히 할 수 있는 장소다. 코엑스는 4개의 대형 전시장이 있는 코엑스 본관과 국제회의가 열리는 신관, 벤처기업과 외국계 기업이 들어서 있는 아셈타워, 2개의 호텔과 백화점, 도심공항 등 총 12개 부분으로 나뉜다. 그러나 무엇보다 일반인에게 이곳은 ‘코엑스 몰’이라는 쇼핑공간으로 먼저 다가온다. 2만6천 평이나 되는 널찍한 공간에 곳곳에 표지판과 지도가 설치돼 있고 바닥마다 각기 다른 색상의 길잡이 선을 표시했을 만큼 미로처럼 복잡한 이곳에는 수백 개의 상점과 식당, 멀티플렉스 영화관, 아쿠아리움과 대형서점, 심지어는 김치박물관까지 들어서 있다. 체력만 된다면 하루 종일을 보내도 좋을 만큼 오감을 자극하는 많은 ‘꺼리’들이 포진돼 있다. 또 쇼핑 외에 코엑스 본관이나 아셈광장 등에 들러 진행 중인 전시회나 이벤트를 둘러보며 좀 더 유익한 나들이를 즐길 수도 있다. 일년 내내 코엑스 곳곳에서 국제도서전, 디자인 페어, 로봇 체험전 등 다양한 전시 및 행사가 열리는데 구체적인 일정은 홈페이지(www. coex.co.kr)를 참고하면 된다. 아침 일찍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뒤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수다를 떨며 쇼핑을 하거나 아쿠아리움 혹은 전시회를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다시 배가 고파지니, 저녁식사할 시간이다. 이곳의 하루는 유난히 짧다.
수많은 상점과 식당이 자리한 코엑스 몰 내부 모습.(좌)
봉은사 내 해수관음상. 사찰 곳곳에서 연등을 볼 수 있다. 법당에서 좌선을 하고 있는 사람들.(왼쪽부터 차례로)
2코스 - 마천루 숲 속 도심사찰에서의 휴식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를 들려주는 풍경.
그러나 사람이 많은 것을 싫어하는 이들에게 코엑스처럼 북적거리는 장소는 힘들 수 있다. 또 딱히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지 않더라도 반나절가량 수많은 인파와 부딪치고, 적정량 이상으로 오감이 자극되다 보면 평상시보다 배로 몰려드는 피로를 피할 길이 없다. 코엑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지친 이들에게, 혹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인파가 만들어내는 소음이 거슬리는 이들에게 코엑스 바로 옆(아셈타워 건너편)에 위치한 봉은사를 추천한다. 봉은사는 번잡한 도심에서 자연을 접하고 고요를 느낄 수 있는 고마운 공간이다. 비싼 강남 땅 한복판에 크게 자리하고 있는 이 사찰은 공간적으로 깊이가 있고, 나무도 많아서 마치 숲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준다. 사찰 밖으로 코엑스와 한전사옥을 비롯, 최첨단 고층 빌딩을 바라보며 듣는 박새와 까치 등의 새소리가 생경하다 싶으면서도 나쁘지 않다. 사찰 곳곳에는 붉은색과 하얀색의 연등이 가득 걸려 있어 인상적인데 저녁 8시 어둑해질 무렵 불까지 들어오면 더욱 운치 있다고. 이 밖에도 이곳에는 추사 김정희가 죽기 사흘 전 썼다는 판전(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해 만든 전각)의 현판이나 경기도 여주 장흥사에서 옮겨왔다는 대웅전의 동종, 조선시대 승려자격시험인 승과고시를 치렀다는 선불당 등 역사적인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므로 놓치지 말고 살펴보도록 하자. 이렇듯 사찰 안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걷다보면 복잡한 도심에서 느꼈던 피로, 더위가 주는 고단함도 조금 가라앉는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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