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젤위거와 김선아의 공통점은? 작품 속 통통하고 발랄한 노처녀 캐릭터로 사랑을 받았고 그로 인해 자신의 몸매가 끊임없이 세상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96년 영화 ‘코르셋’으로 데뷔한 이혜은(34)은 르네 젤위거와 김선아에 앞서 그러한 경험을 했다. 중앙대 연극영화과 재학시절 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코르셋’ 오디션에 합격했던 그는 통통하게 설정된 배역을 소화하기 위해 몸무게를 15kg이나 늘렸다. 이혜은은 그 영화로 청룡영화제 여우신인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그 후 오랫동안 후유증에 시달렸다고.
“제가 특이한 배역으로 데뷔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제 몸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걸 잘 알고 있었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한번 그렇게 이미지가 설정되니까 비슷한 배역 섭외만 계속 들어오더라고요. 그걸 벗어나려면 몸을 아주 날씬하게 만드는 수밖에 없었지만 체질적으로 그렇게 안 됐고…. 전 태어나서 한 번도 날씬한 적이 없었거든요. 그렇다고 성형외과에서 관리를 받기는 싫었고요.”
▼ Beauty · Health Secret
“단기간에 살을 빼고 싶을 땐 달리기, 심신이 건강해지려면 등산이 최고예요”
결국 그가 선택한 방법은 무리해서 살을 빼는 것이었다. 끼니를 거르며 운동에 매달렸다. 모래주머니를 차고 한강을 달리고 한 해에 마라톤 풀코스를 9번이나 완주했다. 한 번 산에 오르면 24시간 내내 걸었다. 설악산, 지리산… 대한민국에 안 가본 산이 없을 정도.
“몸무게를 45kg까지 줄였어요. ‘코르셋’ 촬영 전보다 오히려 날씬해졌죠. 그렇게 하려니 얼마나 몸을 혹사했겠어요. 2년 전 어느 날, 저는 특별히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는데 친정어머니가 얼굴에 황달이 온 것 같다며 병원에 가보라고 하시더군요.”
검사결과 그는 간수치가 1천을 넘는다는 진단을 받았다. 정상인의 간수치는 40 내외다. 의사는 운동 중독과 스트레스를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그제야 자신의 다이어트 방법이 잘못됐음을 깨닫게 됐다고.
“병원에 입원해 있던 한 달 사이 몸무게가 10kg이나 불었어요. 제 몸은 그 정도가 자연스러운데 지나친 욕심 때문에 쓸데없이 많은 시간을 힘들게 보낸 게 후회가 되더군요. 지금은 그때처럼 날씬하지는 않지만 어떤 일이든 새로 시작하는 데 두려움이 없고, 다른 사람 앞에서도 당당한 저 자신에 만족하며 긍정적으로 살고 있어요.”
‘코르셋’으로 데뷔했던 걸 후회하며 주변 사람들까지 원망했던 그는 뒤늦게 영화사 대표에게도 편지와 선물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고.
“내 얼굴도 귀엽고 괜찮은데, 평범한 여대생 역으로 연기를 시작했으면 낫지 않았을까 후회했지만 뒤늦게 제가 그 작품 덕분에 얻은 게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많은 배우 지망생 중에 데뷔작으로 이름을 알린 배우가 얼마나 되겠어요. 그리고 당시 제가 가진 역량에 비해 과분한 평가를 받은 점도 새삼 고맙게 생각이 되더라고요.”
살을 빼야 한다는 집착을 버린 그는 요즘에는 이전에 배웠던 운동을 몸 상태에 따라 적절히 번갈아 하며 건강을 관리한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 몸 상태가 좋으면 한강에 나가 반포대교에서 한남대교까지 왕복으로 5km 정도 조깅한 뒤 아침을 먹어요. 오전에 무리하면 오후엔 책을 읽는다든지 하면서 조용하게 시간을 보내고 날씨가 나빠 밖에 나갈 수 없을 땐 집 안에서 러닝머신이나 기구를 이용해 운동을 하죠. 하루 온전히 쉬는 날이 주어지고 날씨가 좋으면 등산을 하고요. 여러 가지 운동을 번갈아 하니까 몸의 균형을 맞출 수 있어 좋아요.”
각 운동의 장단점은 이론이 아닌 경험으로 터득했다고 한다.
“가장 짧은 시간에 몸을 바꾸고 싶을 땐 달리기가 좋아요. 특히 공복에 장거리를 뛰면 뱃살을 빼는 데 효과가 좋죠. 달리기를 전혀 하지 않던 사람은 5km 이상 달리고 나면 자신감도 생겨요. 다만 체력이 뒷받침돼야 해요. 피로가 누적돼 몸이 묵직하게 느껴질 땐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주는 게 좋은데 제 경우엔 3년 전부터 배운 태껸을 해요.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을 땐 산에 오르는 게 최고고요.”
등산을 처음 시작할 땐 언제 올라가나 싶어 까마득하게 느껴졌지만 요즘엔 산 능선을 보면 자신이 그곳을 뛰어다니는 게 머리 속으로 그려진다는 그는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으면 혼자 조용히 산에 오른다고.
“등산을 할 땐 다른 일은 다 잊고 재미있고 안전하게 산에 오를 생각만 해요. 주변 경치도 감상하고 계단이 어떻게 생겼나 발밑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그렇게 한발 한발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올라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죠. 정상에 서서 제가 했던 고민을 떠올리면 참 하찮게 느껴져요. 그리고 그 일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죠.”
▼ Life style
“10평짜리 아파트에서 시작한 신혼, 조금씩 규모 늘려가면서 더 큰 행복 느껴요”
그는 아내들에게 ‘슈퍼우먼’이 되기를 은연중에 강요하는 남편들의 심리를 꼬집은 MBC 새 드라마 ‘신현모양처’에서 수덕 역을 맡았다. 이름처럼 수더분한 수덕은 남편과 자식밖에 모르고 살지만 자신의 진가를 몰라주는 남편에게 눌려 의기소침해 있는 주부. 결혼 6년 차 주부인 그는 수덕이라는 인물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고.
“요즘 남편들은 일과 육아, 살림을 완벽하게 해내는 아내를 좋아한다는데 저는 그런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요. 사실 대한민국에 그런 주부가 얼마나 되겠어요. 조금씩 주변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저도 남편의 도움을 꽤 많이 받는 편이에요. 남편은 제가 없을 때 청소도 하고 세탁기도 돌리죠. 남편 스스로는 외조를 잘 한다고 자부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불만이 있어요. 저를 위해 따뜻한 밥 한 끼를 차려준 적도 없고….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어설프지만 뭐라도 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 사랑스럽긴 해요(웃음).”
대학 선후배로 만나 7년 연애 끝에 2002년 결혼한 남편과는 아직 신혼처럼 지내고 있다고 한다. 남편이 총각시절 살던 흑석동의 10평짜리 아파트에서 소박하게 신혼을 시작해 살림을 하나하나 마련하고 집도 넓히며 가정을 꾸려왔기에 지금 느끼는 행복은 더욱 크다고.
“혼수로 정말 침대하고 숟가락만 가지고 들어갔어요. 부모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저희 힘으로 하나씩 마련하는 게 더 의미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지난해 결혼기념일엔 저희가 살던 신혼집을 둘러보고 자주 갔던 그 근처 스파게티 집에서 데이트를 했어요(웃음).”
땀 흘리며 마련한 살림이라 그런지 2년 전 이사한 30평대 아파트는 그에게 궁전같이 느껴진다고 한다. 이사를 하면서 그는 오랫동안 꿈꿔왔던 대로 가장 큰 방은 서재로, 중간 방은 드레스룸으로, 작은 방은 침실로 꾸몄다.
“작은 집에 살 때는 단칸방에 침대·책상·식탁이 다 있어 몸만 돌리면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데도 남편은 남편대로 책상에서 책 읽고 저는 주방에서 일하거나 TV를 보다 보면 얼굴을 맞대는 시간보다 등을 돌리고 지내는 시간이 더 많더라고요. 그래서 이사를 하면서 가장 큰 방을 서재로 꾸미고 저녁시간엔 책상에 나란히 앉아 책을 읽거나 각자 자기 일을 해요. 그러다 자연스럽게 대화도 하고요.”
몸이 묵직하게 느껴질 땐 태껸 동작으로 몸을 풀어준다는 이혜은.
그는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는 TV를 제 시간에 보는 경우가 없다고 한다. 남편이 TV를 즐겨 보지 않기 때문인데, 꼭 필요한 프로그램은 예약 녹화를 해두었다가 혼자 있는 시간에 본다고.
“저 역시 TV를 보는 시간보다 책을 읽든, 정리를 하든 뭔가를 하는 걸 좋아해요. 그리고 그보다 좋은 건 남편과 대화를 하는 시간이고요. 저희 부부는 둘다 이야기하고 들어주는 걸 좋아하는데 컨디션이 좋을 땐 상관없지만 자기가 밖에서 받는 스트레스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려고 할 땐 충돌하게 돼요. 그럴 땐 제가 한 수 접고 남편 이야기를 들어주죠. 저는 안으로 삭일 수 있는 스타일인 반면 남편은 그걸 풀어야 하는 사람이란 걸 잘 알거든요.”
아이가 없는 덕분에 여느 부부보다 신혼이 길었던 그들은 지금은 2세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임신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저는 처음부터 아이를 빨리 낳기를 원했던 반면 남편은 ‘우리 둘이 재미있게 살자’는 주의였어요. 남편이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제 욕심만으로 덜컥 아이를 갖게 되면 오히려 좋지 않겠다는 생각에 남편이 마음을 바꿀 때까지 설득하고 기다렸죠. 지금은 저와 남편 모두 120% 아이를 맞을 준비가 돼 있어요(웃음).”
▼ Mind Control
“나를 만들고 주위와 소통하며 살다 보면 기회는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것 같아요”
올해로 데뷔 11년 차에 접어든 그는 일본의 한 대학교수와 일본에서 쓰일 한국어 교재를 공동 집필, 조만간 출간을 앞두고 있다. 드라마 ‘겨울연가’에 출연했던 그를 눈여겨본 교수와의 인연이 출판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렇게 조금씩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그는 “배우로, 아내로, 주부로 죽는 날까지 배우며 진화하고 싶다”고 말한다.
“연예인은 선택을 받아야 하는 입장인데 기회라는 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나를 만들고 주위와 소통하며 지내야 기회도 생기죠. 그런데 신기한 건 내가 떠벌리지 않아도 나의 변화는 주변 사람들이 먼저 알아 준다는 거예요. 이전엔 ‘이혜은’ 하면 강한 이미지를 먼저 떠올렸는데 일련의 시간을 보낸 뒤 이제는 저를 편안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로 알아주는 것 같더라고요.”
날씬하지는 않지만 하얀 피부에 동그란 두 눈이 매력적인 이혜은. 지금 모습 그대로 어떤 일이든 즐겁게 할 수 있다는 마음 자세에서 우러난 그의 당당함은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즐거움을 선사하는 ‘행복 바이러스’를 내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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