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은아~ 가은아~” 몇 번이나 불러도 행복한 이름이다. 결혼 6년 만에 인공수정으로 첫아이를 낳은 MBC 전 기상캐스터 김혜은(34)과 남편 김인수씨(40)에게 이보다 더 아름다운 단어는 없다. 얼마 전 첫돌을 맞은 가은이는 벌써부터 동화책을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은 건강한 아이다. 세상에 나오기 전 열 달 내내 엄마 아빠를 애타게 만들었던 아이는 세상에서 둘도 없이 귀한 존재.
“아이가 생기면 집안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요즘 저희가 그래요. 아이가 조금만 신기한 행동을 보여도 어쩔 줄 몰라하고, 말다툼을 하다가도 가은이가 미소를 한번 지어주면 금세 얼굴이 확 펴지거든요(웃음).”
오랜 기다림 끝에 아이를 얻은 소감에 대해 묻자 부부는 “기적이라 믿는다”고 입을 모았다. 자연임신이 되지 않아 시험관아기 시술을 시도한 지 다섯 번 만에 임신에 성공한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출산 전 아이에게 장애가 있을 수 있다는 의사의 소견과 달리 아이가 아무 이상 없이 건강하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치과의사인 남편 김씨는 당시를 회상하면 지금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고 말했다.
“진료 중 전화를 받았는데, 아내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초음파 사진으로 보니 태아의 팔다리가 짧아 ‘왜소증’일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순간 ‘이게 꿈인가’ 싶었어요.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길까. 어떻게 해야 하나’ 많이 혼란스러웠죠. 하지만 혼자서 애태우고 있을 아내를 생각해 오진일 수도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다 잘될 거라고 위로했죠.”
김혜은·김인수 부부는 “앞으로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주고 가정이 평온한 것 말고는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입을 모았다.
“임신 중 아이에게 장애 가능성 있다는 말 들었지만 귀한 생명을 포기할 순 없었어요”
아이에게 장애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도 아이를 낳겠다는 두 사람의 의지에는 변함이 없었다. 귀한 생명을 쉽게 포기해버릴 수는 없었던 것. 결국 아이가 태어나는 날까지 초조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낸 두 사람은 오랜 시간 걱정하던 것과 달리 건강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온 아이를 보고 ‘기적’이란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비록 몸무게가 2.5kg밖에 안되고 제왕절개해 낳았지만 아이의 팔다리는 모두 정상이었다.
“탯줄을 끊으러 수술실에 들어온 남편에게 가장 먼저 아이의 상태를 물어봤어요. 남편 역시 아이의 손과 발, 이목구비를 가장 먼저 살펴보더라고요. 의사선생님으로부터 ‘정상’이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아이에게 처음 젖을 물리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룩 흐르더라고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큰 감동이었죠.”
“저는 3~4일 동안은 몸이 붕 떠있는 기분이었어요. 저와 아내를 닮은 아이가 태어났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거든요. 생명의 신비와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죠. 누구나 ‘생명은 소중하다’고 말하지만 그것을 절실히 깨닫는 순간은 많지 않은데, 부모가 되니까 그제야 온몸으로 알겠더라고요. 저희를 부모로, 그리고 ‘진짜 어른’으로 만들어준 가은이가 고마워요.”
김혜은이 그동안 아이를 쉽게 갖지 못했던 건 체력적으로 너무 약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97년 MBC에 입사해 4년 동안 MBC ‘뉴스데스크’의 ‘날씨와 생활’ 코너를 진행하면서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던 것. 매일 새로운 아이템으로 날씨 정보를 전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더욱이 날씨는 예견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방송 당일 아이디어를 짜내야 했다. 그는 “뉴스가 시작되기 불과 몇 시간 전까지도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등에서 식은땀이 흐른 날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단풍을 테마로 잡고 진행을 한다 치면 북한산 정상까지 하이힐을 신고 올라가야 했고, 강원도에 폭설이 내리면 몇 시간 동안 허리까지 오는 눈 속에 파묻혀서 촬영을 해야 했어요. 수차례 NG가 나면 나중엔 몸이 꽁꽁 얼어붙을 정도였죠. 명절 연휴도 없이 그렇게 4년을 했으니 몸과 마음이 지칠 만도 했던 것 같아요.”
그는 시험관아기 시술을 시도하면서도 일을 그만두지 못했다. 치열한 방송세계에서 지금까지 쌓아온 자신의 경력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것. 시험관아기 시술을 받은 뒤에는 반드시 안정을 취해야 함에도 시술 다음 날 바로 촬영에 나가야 했던 그는 결국 한차례 유산을 경험했다. 임신 9주 만에 아이를 잃고 힘들어하는 그를 보면서 남편 역시 마음이 많이 아팠다고. 하지만 그가 평소 일 욕심이 많고 매사에 적극적인 성격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쉽게 일을 그만두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남편은 아내의 건강에 적신호가 들어오자 강력하게 일을 그만두기를 원했다.
열 달 내내 부모의 마음을 애타게 만든 가은이가 이제는 집안 가득 웃음 꽃을 피우고 있다.
“어느 날 아내가 소리가 잘 안 들리고 어지럽다고 하더라고요. 이비인후과 의사인 친구한테 알아봤더니 ‘돌발성 난청’으로 신체의 평형기관인 달팽이관에 문제가 생긴 거라고 하더군요. 시간이 흐르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소리를 듣고 그날 바로 아내를 병원에 감금(?)시켰어요. 드디어 올 게 왔구나 싶어 일주일 동안 회사도 못 나가게 했죠. 병원에서 퇴원하고 바로 사표를 내라고 했어요. 그게 2004년 겨울이에요.”
그 일이 있은 뒤 김혜은은 쇠약해진 몸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 몸에 좋다는 음식은 다 찾아먹고 매일 한의원에 다니며 침도 맞았다. 반신욕이 좋다는 말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반신욕을 하며 원 없이 휴식을 취했다. 결국 건강을 되찾은 그는 6개월 만에 ‘인공수정’에 성공했고 그토록 바라던 아이를 갖게 됐다. 하지만 부부는 안타깝게도 온전한 기쁨을 누리지 못했다.
“병원으로부터 ‘축하합니다’ 하는 전화가 걸려오길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인공수정에 성공했다는 연락을 받고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죠.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였어요. 저 같은 경우는 임신수치가 100 중에 15밖에 안 되기 때문에 자궁외 임신이 될 수도 있고, 어쩌면 호르몬의 이상으로 임신이 안된 것일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그때까지 시험관아기 시술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을 비밀로 하고 있었는데, 병원에서 그 얘기를 들은 후 바로 시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어요. 제가 아기를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고 부탁드렸죠.”
한 번의 유산 경험, 일 그만둔 후 건강회복해 시험관아기 시술에 성공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피그말리온 효과’처럼 태아는 엄마의 배 속에서 서서히 생명을 꽃피웠다. 두 번째 피검사 때 임신 수치가 처음에 비해 두 배가 증가해 30을 넘었고, 그 다음에는 80으로 올라가 점차 안정세를 보인 것. 드디어 임신 수치가 100을 넘겼을 때 부부는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김혜은은 임신 6개월에 접어들기까지 거실에 있는 소파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고 몸조심을 했다고 한다. 당시 여름이었는데 에어컨 바람도 쐬지 않고 배를 따뜻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불까지 덮고 있었다고. 하지만 워낙 자궁이 약해서인지 그는 한동안 하혈을 해 다시금 걱정에 휩싸이기도 했다. ‘또 유산이 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가장 컸다는 그는 시아버지의 권유로 태아를 안정시키는 한약을 먹었다. 다행히 사흘 만에 출혈이 멈췄고 배도 따뜻해지면서 컨디션이 좋아졌다고 한다.
“6개월 정도 지나니까 사람들이 알아볼 정도로 배가 불렀어요. 서서히 불러오는 배를 보면서 ‘내 배도 이렇게 부를 수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제가 스스로 대견스럽더라고요(웃음). 하지만 그 즈음 아이에게 장애가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걱정을 껴안고 살았죠. 그러고 보면 가은이는 임신 단계부터 낳을 때까지 열 달 내내 잠시도 마음을 놓지 못했어요. 입덧은 또 얼마나 심했게요. 식사를 하던 도중 화장실로 달려가는 그 시간을 참지 못하고 토하기 일쑤였죠.”
김혜은은 그렇게 어렵게 아이를 얻고도 출산 후 두 달 만에 다시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EBS ‘문화예술 36.5’ 진행을 맡게 된 것. 평소 EBS 프로그램의 팬이기도 했거니와 한 번 섭외를 거절하면 다음에 다시 연락이 오지 않을까 염려돼 다소 무리인 줄 알면서도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아내가 아이 낳고 두 달 만에 일을 하겠다고 해서 처음엔 어리둥절했어요. 남편으로서 강력하게 말려야 하는 건 아닌가 싶었죠. 하지만 평소 아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고 알아서 잘할 거라 믿었기 때문에 반대하지 않았어요.”
그는 지난해 가을 개편에 맞춰 ‘문화예술 36.5’를 그만두고 현재는 연합뉴스 영상사업팀에서 제작하는 ‘21세기를 여는 한국의 과학자’ 코너 진행을 맡고 있으며, 기독교 방송인 온누리TV에서 ‘굿타임’ 채널 진행을 맡아 봉사하고 있다. 또한 그는 조만간 연기자로도 변신할 계획이다. 현재 뮤지컬과 드라마 출연을 앞두고 있는데, 두 작품 모두 잠정적으로 출연이 정해진 상태라고.
“아무도 모르게 3년 전부터 연기학원을 다니면서 조금씩 준비해왔어요. 이번 드라마에서의 배역이 성악가에 주부라고 하는데 실제 제 상황과 비슷해서 기대가 많이 돼요. 오디션을 볼 때만 해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막상 출연이 결정되니까 벌써부터 설레요. 사실 예전 같으면 두려워서 못한다고 했을 텐데 아이를 낳고 나니까 저도 모르게 용기가 생기는 것 같아요. 더 이상 세상에 두려울 게 없다고나 할까요(웃음). 아줌마들이 용감해지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아요.”
그가 연기로 관심을 돌린 데는 또 다른 목적이 있다. 오랫동안 방송활동을 하다가 나이가 들어서는 ‘할머니 DJ’가 되는 게 꿈인 것. 그는 “우리나라 방송계에서 여자 아나운서가 마흔을 넘어서까지 환대를 받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며 “중년의 나이가 돼 라디오 DJ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연기자로 변신하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또한 그는 남편의 적극적인 외조가 있기에 먼 미래의 일도 계획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남편은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로 다소 보수적인 성향이 있지만, 그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는 언제나 두 팔을 들고 환영한다고. 남편은 “앞으로 아내가 바빠지면 아이 교육에도 더욱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며 김혜은의 의지에 힘을 실어줬다.
“신혼 초 ‘권력쟁탈전’ 심했지만, 아이 갖기 위해 애쓰는 동안 사랑이 더욱 단단해졌어요”
두 사람도 신혼 초에는 갈등이 많았다고 한다. 다툼의 원인은 언제나 사소한 것이었는데 수건을 똑바로 걸지 않아서, 방에 불을 끄지 않아서, 옷을 아무데나 벗어놓아서 등이었다고.
“결혼하고 한 달 동안 시집에서 살다가 분가를 했는데 그날부터 일주일 동안 정말 치열하게 싸웠어요. 소위 ‘권력쟁탈전’이었죠”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아이를 갖지 못해 애쓰는 과정에서 더욱 단단해졌다고 한다. 자칫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 오갈 수도 있는 시기였으나 두 사람은 오히려 서로에게 미안해하고 안쓰러워했다고.
“저보다 아내가 맘고생이 심했을 거예요. 제 남동생이 딸을 먼저 낳아 더욱 안쓰러운 마음이 많이 들었어요. 동생 내외는 저희 때문에 일부러 아이를 갖지 않다가 시간이 점점 흐르니까 더 이상 미룰 수 없어서 뒤늦게 아이를 가진 거였죠. 지금 생각해도 그 마음이 참 고마워요.”
두 사람은 앞으로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건강에 더욱 신경을 쓸 생각이다. 남편은 “가은이가 대학에 들어갈 때면 내 나이가 환갑이라 조금 걱정이 된다”며 웃었다. 김혜은·김인수 부부는 “앞으로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주고 가정이 평온한 것 말고는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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