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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솔직한 고백

2년 만에 연기자로 돌아온 탤런트 김영애 프라이버시 인터뷰

글·김명희 기자 / 사진·홍중식 기자 || ■ 헤어·이철 헤어커커(02-543-2326) ■ 메이크업·김청경 헤어페이스(02-3446-2700) ■ 장소협찬·김종영 미술관(02-3217-6484)

2006. 12. 22

드라마 ‘황진이’로 오랜만에 브라운관 앞에 선 중견 탤런트 김영애가 의외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연기 활동을 중단하고 사업에만 매달렸던 지난 2년 동안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 정신과 상담까지 받았다는 것. 남편과 같이 죽을 생각까지 했다는 그가 그간의 고통과 우울증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사연을 들려주었다.

2년 만에 연기자로 돌아온 탤런트 김영애 프라이버시 인터뷰

“전호기심이 많아요, 등산을 하다가도 모르는 길이 나오면 꼭 끝까지 가죠. 끝까지 가보고 그 길이 막다른 길이라고 해도 손해란 생각은 안 해요.” “문득 눈물이 날 때가 있어요. 내 것이든, 네 것이든 산다는 게 서글퍼서. 살아보니까 인생은 아주 행복한 것만도 아니고 아주 불행한 것만도 아니더군요. 그래서 더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지도 모르죠.”
툭툭 던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삶을 달관한 사람 같다. 탤런트 김영애(55) 이야기다. 그가 경영하는 황토 화장품 브랜드가 설립 5년 만에 매출 1천5백억원을 달성했고 2년 8개월 만에 컴백한 KBS 드라마 ‘황진이’가 같은 시간대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중 하나일 것 같은 그는 그러나 의외로 담담했다.
“연기를 접은 후 정신적으로 몹시 힘들었어요. 갱년기 우울증이라고 하기에는 상태가 심각했죠. 병원에 입원해야 할 만큼 힘들었으니까요.”

2년 만에 연기자로 돌아온 탤런트 김영애 프라이버시 인터뷰

2003년 결혼한 남편 박장용씨는 그에게 가장 힘이 되는 존재라고. (가운데)


연기생활 접은 후 생긴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몸무게 7~8kg 줄기도
2003년 시트콤 ‘달려라 울엄마’를 끝으로 방송활동을 중단한 그는 이후 사업에만 매달렸다. 그동안 사업은 승승장구해 최근 총 매출 1천5백억원을 달성했고 올해도 5백억원의 매출이 예상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휑한 찬바람이 불었다.
“지난 몇 년간 꽤 많은 돈을 벌었지만 마음 편하게 웃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제가 가장 행복한 시간은 연기를 할 때인데 사업하는 동안은 그걸 애써 외면해야 했거든요. 시간이 나서 홈쇼핑 방송을 보거나 신문을 몇시간씩 뒤적이면서도 드라마는 일부러 안 봤어요. 딸린 식구들이 많으니 도망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사업에 집중해야 한다’고 저 자신을 몰고 갔는데 그게 한계에 달하니 막힌 하수도가 역류하듯 제 내부의 뭔가가 터져버린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평소 결벽증 증세가 있는데다 남달리 예민한 편인 그는 심한 불면증과 거식증으로 인해 몸무게가 7~8kg이나 줄었다고 한다.
“전에도 우울증으로 고생한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정신과 치료를 받지 않았어요, 사생활이 노출되는 게 싫었거든요. ‘연기자 김영애가 정신병원에 다닌다’고 하면 다들 얼마나 이상하게 생각하겠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병원에 다니면서 상담을 받고 약도 처방 받았죠. 잠을 못 자다보니 자꾸 술에 의지하게 되고 술 마신 만큼만 자고…. 그러다보니 술 양이 조금씩 늘었거든요.”
거식증으로 체력이 떨어지고 불면증으로 신경이 날카로워진 그는 사소한 일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남편 박장용씨(51)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까지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됐다고 한다.
“어느 날 드라마 ‘사랑과 야망’을 보는데 마음을 잡지 못하고 술에 의존해 하루하루를 보내는 미자를 보며 ‘저 여자 미친 거 아냐’라고 말을 하려다 갑자기 입을 다물었어요.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 미자보다 더 심한 짓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집안일을 도와주는 아줌마가 하루는 ‘회장님이 그렇게 아끼고 사랑해주는데 사모님이 왜 마음을 잡지 못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제가 연기하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던 남편이 견디다 못해 직접 ‘황진이’ 대본을 들고 왔어요”
그가 연기생활을 접은 데는 ‘김영애 남편’이라 불리는 걸 무척 싫어하던 남편의 반대도 한몫했다. 그는 한 번의 결혼생활 실패를 경험하고 지난 2003년 재혼했는데 남편은 그저 그가 좋은 아내로, 또 사업 파트너로 자신의 곁에 있어주길 바랐다고.
“등산을 가는데 모자를 안 쓰고 나왔다고 남편과 대판 싸운 적도 있어요. ‘사람들이 당신을 알아봐주는 게 좋아서 모자를 안 쓰고 나오냐’는 거예요. 어이가 없었죠. 전 모자를 쓰거나 선글라스를 끼면 답답해서 못 견디거든요.”

2년 만에 연기자로 돌아온 탤런트 김영애 프라이버시 인터뷰

김영애는 ‘황진이’에서 혼을 실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연기가 천직임을 깨달았고 선택받은 것에 감사하며 살겠다”고 말했다.


그토록 아내가 평범한 여자이기를 바라던 남편도 그가 시름시름 앓자 마음을 바꾸었다고 한다. ‘황진이’ 대본을 들고 온 것도 남편이었다고.
“제가 남편에게 하도 심하게 히스테리를 부리니까 남편이 ‘이럴 바에야 같이 죽자’고 하더군요. 둘이서 한참 울었어요. 그리고 다음 날 남편이 ‘황진이’ 대본을 가져왔죠. 드라마 제작사에서 일하는 남편 친구 분이 대본을 건네주며 ‘제수씨는 연기를 해야 나을 병’이라고 하더래요.”
김영애는 “팔자 도망은 못 간다는데 나는 아무래도 평생 연기를 할 팔자인 것 같다”며 웃는다. 연기를 재개하기로 결심한 후 스스로의 힘으로 우울증을 극복해야겠다는 의지도 생겼다.
“남편이 대본을 가져오고 나서 병원에서 처방받았던 수면제 봉투를 꺼내 약은 변기통에 버리고 봉투는 찢어서 쓰레기통에 버렸어요. ‘내 의지로 다스려야지 약에 기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제야 정신이 든 거죠.”
연기를 다시 시작한 이후로는 매사가 즐거워졌다고 한다. 남편은 자주 촬영장에 나와 그를 응원하고 격려해준다고.
“얼마 전 오랜만에 사무실에 나가 밀린 서류를 결재하고 회의를 하는데 아이디어가 반짝반짝 떠오르더라고요. 아침을 못 먹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데도 행복했어요. 제가 연기하는 걸 반대하던 남편도 요즘은 간식거리를 사 들고 촬영장에 자주 나와요. 정경순씨가 그런 저희 부부를 보고 ‘닭살’이래요(웃음). 남편이 곁에 있으면 왠지 힘이 나요. 그래서 촬영장에 ‘오지 말라’고 해놓고서도 기다리게 되더라고요.”
‘황진이’에서 그가 맡은 백무는 황진이의 스승으로, 기생에게 사랑이 얼마나 덧없는가를 잘 알기에 정을 주지 않는 냉정한 인물이다. 연기가 고팠던 덕분일까. 그는 김영애가 백무이고, 백무가 김영애인 것처럼 몸 동작과 표정 하나하나에 혼을 실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사극을 많이 했지만 주로 중전이나 대비역이었지, 기생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기생이 왕비나 대비처럼 보이면 어떡하나 걱정이 됐죠. 그래서 촬영을 하기 전 많은 남자를 거치며 살아온 이 여자의 삶을 어떻게 제 얼굴에, 몸짓에, 웃음에, 걸음걸이에 담을 수 있을까 항상 생각해요.”
서릿발같은 백무의 면모는 차가워 보이는 그의 첫인상과도 닮았다. 그의 모습이 백무에 녹아든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백무는 워낙 고단수라 연출가도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을 털어놓을 정도인데 저는 그렇게 단수가 높은 편은 아니에요(웃음). 다만 휘어지지 않고 부러지는 면은 비슷하죠. 그런데 여러 인생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배우는 어쩔 수 없이 다중인격이 되는 것 같아요(웃음).”
무거운 가체를 머리에 이고 며칠 밤을 새워가며 촬영하는 일이 쉽지 않을 터. 하지만 그는 그마저도 즐기는 듯했다.
“사흘 밤을 새우며 촬영을 했더니 그 다음에는 입이 돌아가지 않더라고요. 아침에 가체를 이고 촬영을 시작하면 저녁에는 무거워서 머리를 움직일 수 없어요. 오죽하면 목 디스크가 생겼겠어요(웃음). 드라마 끝나고 치료하면 낫겠죠 뭐.”

군복무 중인 아들에겐 늘 엄한 엄마였던 게 미안해
오는 12월 말 ‘황진이’가 끝나면 그는 다시 자신을 기다리는 회사로 돌아가야 한다. “‘‘황진이’ 잘 보고 있어요’라는 사람을 만나면 왠지 쑥스럽지만 ‘황토팩 잘 쓰고 있어요’라는 사람을 만나면 반가워서 손을 덥석 잡게 된다”고 말할 만큼 사업에 대한 열정도 크다.
“연기생활하면서 받은 출연료로 직원들 월급 주면서 회사를 키웠어요. 애정이 없을 수 없죠. 특히 힘든 시기를 함께 견뎌준 직원들에 대한 고마움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그는 시간이 나면 직원들과 영화나 공연을 보러 다니기도 하고 사무실에 떡볶이, 김밥을 시켜 분식파티를 열기도 한다. 12월 초에는 선배 연기자 사미자가 출연하는 연극 ‘늙은 부부 이야기’를 단체 관람할 예정이다. 그리고 12월 말에는 일을 핑계로 ‘합법적인 휴가’를 갈 수 있게 됐다고 어린아이처럼 좋아한다.
“세계 화장품박람회에 저희 제품이 초청받아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에 가게 됐어요. 여행을 좋아하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 그동안 계속 미뤘는데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요.”
그는 얼마 전 SBS 아침 프로그램 ‘김승현 정은아의 좋은 아침’에 출연, 재산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돈을 많이 벌어 행복하지만 자신을 위해 쓰는 것보다 다른 사람과 나눌 때 더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제가 이혼할 때 빈 몸으로 나오다시피 했어요. 사업 시작하기 2년 전까지만 해도 세금을 못내 국세청으로부터 엄청나게 시달리기도 했죠. 그래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게 어떤 건지 누구보다 잘 알아요. 솔직히 지금은 돈이 많아 좋아요. 하지만 나눌 수 있다는 건 더 기쁜 일이죠. 비싼 옷을 사려다가도 ‘이 돈을 모아서 좋은 일에 써야지’하고 생각하면 마음을 접게 돼요.”
마음이 부자인 그는 겉으로 자신을 꾸미거나 사치를 하는 데는 인색한 편이다. 그 때문에 후배 연기자 이보희로부터 따끔한(?) 충고를 듣기도 했다고.
“후배 결혼식장에서 보희를 만났는데 대뜸 ‘언니, 어쩌면 그럴 수 있어’라며 눈을 흘기더라고요. 제가 세 번의 결혼식에 똑같은 옷을 입고 왔다면서. 전 몰랐어요. 솔직히 말하면 게으른 거죠. 반성했어요.”
프랑스 요리전문학교 르꼬르동블루를 휴학하고 한국에 들어와 군복무 중인 아들은 제대 후 제 손으로 학비를 벌겠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그는 그런 아들이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늘 엄하기만 했던 게 미안하다고.
“친정아버지가 엄해서 그게 싫었는데 어느 날 보니 제가 아들한테 똑같이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아들은 저를 좀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요. 아들은 아직 모르는 일이지만 아들이 상근예비역 판정을 받았을 때 몰래 현역으로 입대할 방법이 없는지 알아보기까지 했어요(웃음). 바쁘게 사느라 신경을 많이 써주지는 못했지만 ‘김영애 아들’이니까 쓸모 있는 사람이 될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그동안의 고통을 통해 자신의 집을 감싸고 있는 북한산 자락처럼 크고 넉넉한 마음을 가지게 된 김영애. 그는 “연기가 천직임을 깨달았고 선택받은 것에 감사하며 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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