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기억 속에 각인된 현빈(24)의 이미지는 동화 속 왕자님과 닮았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과 영화 ‘백만장자의 첫사랑’ 등에서 재벌 2세를 연기한 그는 해사한 외모와 함께 늘 또박또박한 말투, 약간 턱을 치켜올려 다소 거만해보이는 자태(?)까지 갖춘 현대판 왕자님이었다.
그랬던 그가 덥수룩한 머리에 턱수염을 기르고 나타났다. 살이 많이 빠졌고, 낯빛은 어두워보인다. 현빈은 11월 13일 시작한 KBS 미니시리즈 ‘눈의 여왕’에서 수학천재이지만 그 사실을 숨긴 채 3류 복싱체육관의 스파링 파트너로 살아가는 한태웅 역을 맡았다.
“앞서 출연했던 두 작품에서 모두 재벌이었고, 어찌하다보니 지금까지 계속 깔끔하고 반듯한 역만 맡았어요. 이번에는 그런 캐릭터를 피해야겠다고 생각했죠. 한태웅은 수학천재인데 천재이기 때문에 많은 걸 잃어요. 자신에 대한 열등감으로 친구가 자살하자 죄의식 때문에 모든 걸 버리고 작은 체육관에서 스파링 파트너로 살아가는 인물이에요. 덕분에 수염도 처음 길러보고 살도 6kg 가량 뺐어요.”
지난해 드라마와 영화를 끝낸 뒤 잠시 휴식기간을 가지며 여행을 주로 다녔다는 그는 ‘눈의 여왕’ 출연이 결정된 후, 촬영 전부터 복싱을 배우면서 몸만들기를 했다고 한다.
“원래 드라마 촬영을 시작하면 살이 빠지는 체질이라 일부러 좀 찌운 채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역할상 살을 좀 빼고 근육을 만들어야 할 것 같아서 촬영에 들어가기 전 복싱을 배웠어요. 저는 다이어트에 복싱을 적극 추천하고 싶어요. 하루에 네다섯 시간씩 한 달가량 했는데 6kg 정도 빠졌어요. 거기에 단백질 위주 식단으로만 먹어서 근육을 만들었죠. 그런데 촬영에 들어간 후부터는 잠을 못 잘 정도로 일정이 빡빡해서 운동할 여유도 없고, 식단을 챙겨 먹을 여건도 안 되다보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권투실력도 급격히 하강하고 있고요(웃음). 대신 촬영 중 권투장 장면이 있으면 거기서라도 틈틈이 하려고 노력중이에요.”
자신이 연기하게 된 한태웅을 ‘다중이’(다중인격자)라고 표현한 그는 이전과 다른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어려우면서도 재밌다”고 한다.
“이전 작품들은 시놉시스나 대본을 보면 ‘얘는 어떤 아이’라는 게 대충 떠올라서 연기하는 게 지금보다는 쉬웠어요. 그런데 이번 캐릭터는 처음부터 전혀 답이 안 나왔고, 지금까지도 어려운 숙제예요. 특히 이 친구(한태웅)는 감정의 변화가 심한데다 과거 고등학교 신을 찍다가 몇 년을 거슬러서 현재의 모습을 연기해야 하는데 그 기간 동안 어떻게 내면이 변화했는지 잘 모르니까요. 그래서 굉장히 어렵다는 생각도 들지만 또 그런 이유 때문에 이 작품이 더 하고 싶었고, 실제로 연기하면서도 재미있어요.”
“실제 연상의 연인요? 사귄 적 있죠. 일부러 연상을 선호하진 않지만 나이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눈의 여왕’은 ‘상두야 학교가자’ ‘미안하다 사랑한다’ 등의 작품을 만들었던 이형민 PD의 신작이다. 전작이 인기를 끌었다는 점에서 이형민 PD와 공통점을 지닌 현빈에게 새로운 작품을 시작하며 시청률에 대한 부담은 없는지 물었다.
“같은 시간대에 ‘주몽’이 방영하는 탓에 시청률에 대한 부담이 없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당연히 없다면 거짓말이죠(웃음). 그런데 저는 ‘주몽’보다도 제 전작 ‘내 이름은 김삼순’ 때의 높은 시청률 때문에 오래전부터 걱정을 했어요. 집 평수를 10평에서 20평으로, 다시 30평으로 천천히 늘려가는 행복이 있을 텐데 어느 날 갑자기 1백 평짜리 집에 들어가게 됐으니까요. 혹 다시 20~30평으로 돌아오면, 그것도 참 감사한 일인데도 서운할 것도 같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신경 쓰지 않아요.”
공교롭게도 현빈은 출연한 모든 드라마에서 연상의 여배우를 상대로 연기했다. ‘아일랜드’의 이나영, ‘…김삼순’의 김선아는 물론 이번 ‘눈의 여왕’에서 성유리 역시 한 살 연상이라고 한다.
“상대역이 연상이면 연기하기가 편해요. 하지만 이나영 선배나 김선아 선배랑 성유리씨를 비교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성유리씨가 한 살 많은 건 사실이지만 본인이 누나라고 불리는 건 안 좋아하더라고요(웃음). 서로 맡은 배역의 이름을 부르고, 드라마상 저보다 어린 역으로 나오다보니 말을 트고 지내요. 실제로 연상의 연인요? 사귄 적 있죠. 하지만 일부러 연상을 선호하는 건 아니고요. 나이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거 같아요. 저희 어머니만 불편해하시지 않으면 괜찮아요(웃음).”
급격한 연기 변신보다는 “조금씩 자신 안에 있는 다른 모습을 꺼내서 변화하고 싶다”는 현빈은 요즘 일본 언론을 비롯 해외의 관심도 함께 받고 있다. 혹시 해외 진출 계획은 없는지 묻자 “국내에서 먼저 연기로 인정받는 게 중요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직은 연기력이 너무 부족한 것 같아요. 적어도 해외에 진출하려면 제 연기에 대한 어느 정도의 만족이 있어야 하는데, 여전히 너무 부족해요. 제가 연기한 모습을 모니터링하면 1백퍼센트 후회할 정도로요. 제 모습인데도 제가 불편하고 부담스러울 정도면 보시는 분들은 오죽하시겠어요. 어느 정도 제 연기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 되면 그때 해외로 활동영역을 넓혀도 될 것 같아요. 천천히 준비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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