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말 종영한 드라마 ‘위대한 유산’에서 코믹한 연기를 보여준 탤런트 이미숙(46). 많아야 1년에 한 편 정도 드라마에 출연하는 그가 이번에도 작품을 끝내자마자 ‘바람’처럼 훌쩍 사라졌다. 그가 연기를 하지 않을 때는 미국 LA에 머물며 유학 중인 아이들을 뒷바라지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좀 더 자세한 근황을 취재하기 위해 그의 남편인 성형외과 전문의 홍성호씨가 운영하는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 들어서자 고급 호텔 레스토랑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겨났다. 정갈하면서도 세련된 도회지의 느낌을 간직한 영화배우 이미숙의 이미지와 닮았다. 홍성호씨는 “찾아온 사람들이 종종 ‘병원이 병원 같지 않아서 좋다’는 인사말을 건넬 때마다 우리 집 인테리어보다 더 신경 써서 병원을 꾸민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성형외과라는 데가 몸이 아파서 오는 곳이 아니잖아요. 외모에 자신이 없거나 예뻐지고 싶어서 찾는 곳이기 때문에 우선 병원 냄새가 전혀 나지 않도록 꾸몄어요. 아내와 자녀에게 줄 선물을 고를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정성과 사랑을 쏟아부었죠. 그림과 화분, 작은 소품까지 굉장히 심혈을 기울여서 골랐어요.”
환자들이 이미숙의 안부를 물으면 홍씨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한다. 지난 88년 이미숙과 결혼, 아들 필원(19)과 딸 유진(15) 남매를 둔 그는 톱스타의 남편으로 18년을 살았지만 그런 인사를 들을 때마다 여전히 쑥스럽다고.
11월부터 방송되는 SBS 드라마 ‘연인’의 촬영 장소이기도 한 홍씨의 병원은 그에게 남다른 ‘공간’이다. 그는 지난 2002년 호황을 누리던 병원 문을 닫고 홀연히 떠났었다.
“잠시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싶었어요. 수십 년간 한길을 바삐 걸어와서 그런지 시골 개울가에 놓인 징검다리를 서서히 걷는 것 같은 여유를 맛보고 싶었거든요.”
홍씨의 ‘휴식처’는 유학 중인 자녀들 곁이었다. 그는 “막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그동안 충실하지 못했던 아빠 노릇에 최선을 다했다. 소박하면서도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네 살 터울인 남매와 함께. 아이들은 현재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다.
“아이들과 뒹굴면서 친구처럼 지내고 주말이면 온 가족이 함께 여행을 다니기도 했어요. 아내는 저희와 함께 지내다가 영화나 드라마 촬영이 있을 때만 한국에 들렀고요. 아내는 제가 병원 일에서 잠시 손을 놓는 걸 굉장히 좋아했어요. ‘힘들게 일했으니 쉴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누리라’고 하더군요. 살면서 그때처럼 편하고 즐거운 시간이 없었던 것 같아요.”
이들 부부가 6년 전 아이들을 유학 보낸 이유는 “마치 논바닥에 심어진 벼처럼 획일적으로 자라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식을 습득하는 데 치중하기보다 자신의 재능과 능력이 무엇인지 파악해서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싶었어요. 언어문제로 고생이 심해 유학 가서 처음 6개월 동안은 ‘다시 돌아오고 싶다’고 했는데 어느 날부터 ‘제법 들린다’고 하더니 이제는 원어민 수준으로 영어를 구사해요. 한편으로는 대견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개인주의 성향으로 흐르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하죠.”
아내와 함께 지내는 시간은 1년에 두 달 정도, 그로 인해 서로에 대해 더욱 애틋한 마음
미국에서 1년간 휴식을 취한 홍씨는 2004년 귀국, 새로 병원을 개원했다. 그 사이 영화 ‘…ing’와 드라마 ‘사랑공감’ ‘위대한 유산’ 등에 출연하느라 몇 차례 귀국했던 이미숙은 현재 미국에 체류 중이며 홍씨는 ‘기러기 아빠’ 신세라고.
“작품 촬영 기간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일년 중 아내와 함께 사는 기간은 두어 달에 지나지 않아요.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는 걸 제외하면 부부생활은 여느 부부와 다름없죠. 아내는 일할 때만 연예인일 뿐이지 보통사람과 다를 게 하나도 없어요. 저는 성격이 느긋한 반면 아내는 좀 급한 편이죠. 집에서도 아내가 아무데나 옷을 벗어놓으면 제가 그걸 집어다가 세탁실에 갖다놓아요.”
그는 “요즘에는 아내가 미국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6년여 동안 남매를 살갑게 돌봐주던 어머니가 대장암 판정을 받아 한국에서 치료 중이기 때문”이라는 것.
“그동안은 어머니가 항상 아이들을 돌봐주셨는데 이제는 아내가 아이들 곁에 있어야 할 것 같아요. 한창 공부도 해야 하고 민감한 때라 저희들끼리만 둘 수가 없을 것 같아서요. 어머니는 지난 여름 아이들과 함께 잠시 귀국했는데 그때 빈혈이 있는 것 같다고 해서 종합검진을 받았어요. 대장암 3기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건강할 때 여행도 보내드리고 행복하게 해드렸어야 하는데 아이들을 돌보느라 그렇게 해드리지 못했어요. 그게 못내 안타깝죠.”
맏며느리인 이미숙 역시 친정엄마처럼 믿고 의지하던 시어머니의 갑자스런 병으로 걱정이 많다고 한다.
“아내도 몸은 미국에 있지만 마음은 이곳에 있을 겁니다. 어머니 병실을 자주 지키지 못해 미안해하고 있어요. 집사람은 어머니를 친엄마처럼 편하게 생각했고, 그래서 저희 집에선 고부 갈등이라는 게 전혀 없었거든요.”
인터뷰 중에도 그는 몇 번씩이나 어머니를 간병하고 있는 동생 부부에게 전화를 걸어 어머니가 ‘식사는 제때 하셨는지’ ‘열은 좀 내렸는지’ ‘심기는 어떤지’를 꼼꼼하게 챙겼다.
“환자를 보면서도 마음은 늘 어머니 곁에 가 있어요. 퇴근시간도 더디게 다가오는 것 같고…. 손자들 때문에 낯선 땅에서 고생한 어머니가 병원 침대에 누워 계신 모습을 보면 목이 메이고 눈가가 저도 모르게 젖어들어요. 동생 부부(치과의사 홍지호·탤런트 이윤성)가 어머니를 자주 찾아뵙고 있어 그나마 마음이 놓여요. 어머니도 동생이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며 좋아하시고요.”
어머니의 투병으로 인해 마음이 약해진 탓인지 그는 “앞으로는 좀 더 많은 시간을 아내와 함께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저희가 그동안 늘 붙어 지내는 잉꼬부부는 아니었어요. 그래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없었고, 서로에 대해 더 애틋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죠. 지금은 아이들에게 보호자가 필요하니 힘들겠지만 아이들이 독립한 후에는 아내와 함께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좀 더 길어졌으면 하는 게 소박한 제 바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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