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13일 2006 독일월드컵 토고전에서 안정환(30·뒤스부르크)이 짜릿한 역전골을 터뜨린 순간, 프랑크푸르트 경기장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던 한 여인이 있었다. 바로 안정환의 부인 이혜원씨(27)다. 이천수의 프리킥으로 한국이 1대 1 동점을 만든 후반 27분. 안정환이 시원한 오른발 중거리 슛으로 2대 1 역전을 이끌자 그는 눈물을 터뜨렸다. 그동안 남편의 마음고생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안정환은 이번 월드컵 전까지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해 여름 일본 요코하마에서 프랑스 FC메스로 옮긴 그는 큰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또다시 지난 1월 독일 뒤스부르크로 이적한 것. 하지만 팀 적응은 쉽지 않았고 당초 국가대표 선발이 유력했던 이동국이 부상을 당한 후 ‘대안’으로 거론되면서 자존심을 다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 월드컵 출전 사상 원정경기 첫승을 이끌며 그는 ‘킬러’로서의 진가를 다시 한 번 발휘했다.
안정환의 부활 뒤에는 그의 든든한 후원자인 부인 이혜원씨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이씨는 토고전의 감동을 자신의 미니홈피(www.cyworld.com/hyewonjunghwan)에 남겨 축구팬들의 눈길을 끌었다. ‘기쁘다! 남편의 전화에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꿈은 아니지?라고 물어봤을 정도였으니깐’으로 시작하는 이 글에는 승리의 환희와 힘겨웠던 그간의 과정이 절절하게 담겨 있다.
“골을 넣고 기쁨에 젖어있을 때 수많은 생각들이 필름처럼 지나갔다. 눈물은 두 뺨을 흐르고 있었고, 2002년 월드컵 이후, 이적료 문제로 일본땅을 거쳐 몰디브전 부상! 재활… 정말 다시 생각만 해도 힘들다. 수술실에 들어가는 남편의 손을 잡고 한 말들… 수술 후 겨우 침대 하나 들어갈 만한 작은 공간에서 쪼그리고 바닥에서 잤던 때… 아침저녁으로 식사를 만들어서 나르던 1달여간… 무서웠다. 다시는, 다시는… 안될까봐, 많은 눈물도 흘렸었다. 우린 걱정했다. 다시 유럽으로 갈 수 있을까… 기회가 왔을 때 우린 두 손을 잡고 다짐했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일 거야, 잘될 거야…라고 서로를 위로했다.”
남편의 극적인 역전골 보며 그간의 힘겨웠던 시간들 머리에 스쳐가
뿐만 아니라, 이씨는 글에서 프랑스 FC메스로 이적한 남편이 인종차별의 벽에 부딪혔고, 사기 등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이혜원씨는 미니홈피에 올린 글에서 남편에 대한 사랑 표현도 잊지 않았다. “너무나 신중하고 착하고 믿음직한 남편! 이제 당신의 능력을 믿어요. 연애할 때 ‘나만 믿고 시집와!’라고 말한 무뚝뚝한 남편… 나 오빠만 믿고 있으니까 팀에 꼭 필요한 안정환 선수, 만인의 아들, 리원이 아빠가 되어주세요”라고 쓰며 남편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이혜원씨 어머니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딸은 월드컵이 끝날 때까지는 조용히 남편을 응원하고 싶어한다”며 “고통을 겪는 과정 속에서도 서로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격려하는 딸과 사위 부부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월드컵을 앞두고 합숙생활이 시작된 뒤 남편과 전화로만 연락을 주고받던 이혜원씨는 토고전이 끝난 다음 날인 6월14일(독일 현지시간) 드디어 남편을 만날 수 있었다. 선수들의 가족이 저녁식사에 초대받아 대표팀이 묵고 있는 쾰른 교외 베르기쉬 글라드바흐의 벤스베르크 호텔 정원에서 바비큐 파티를 벌인 것. 딸 리원이(2)와 함께 남편을 만난 이씨는 오랜만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독일에서 안정환의 통역을 맡고 있는 최종화씨는 그날의 에피소드를 전해줬다.
“최근 말을 한창 배우기 시작한 리원이가 안정환 선수를 보며 ‘아빠, 파이팅!’ 하고 말했어요. 아버지를 유달리 잘 따르는 리원이가 안 선수와 헤어질 때 무척 아쉬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혜원씨는 안 선수에게 ‘중요한 시점에 골을 넣어준 당신이 자랑스럽다’며 부상을 조심하라고 각별히 당부하더군요.”
99년 미스코리아 출신인 이혜원씨는 지난 2001년 22세의 어린 나이에 안정환과 결혼식을 올렸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이미지와 달리 그는 주부 역할을 똑소리나게 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결혼생활 5년째인 이씨는 김치부터 밑반찬에 이르기까지 남편과 딸이 먹는 음식은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직접 만든다고 한다. 입맛이 까다로운 안정환을 위해 낮에는 파스타나 스파게티를 준비하고, 저녁에는 주로 찌개와 나물 등 한식을 준비한다고.
체력소모가 많은 운동선수인 남편의 건강관리를 위해 그는 보양식 요리를 만드는 데도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그는 지난해 10월 ‘여성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에 있을 때부터 장어를 고아 먹였는데 프랑스 장어는 일본 장어보다 힘이 더 센 것 같다. 냄비에 넣고 끓이다가 뚜껑을 열어 보았더니 장어가 갑자기 머리를 내밀고 ‘확’ 튀어올라 깜짝 놀란 적이 있다”고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또한 “프랑스 사람들은 사골을 먹지 않기 때문에 내다버린다. 그래서 ‘소 잡는 날’에 맞춰 정육점에 가면 사골을 공짜로 얻을 수 있다”며 알뜰한 주부의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탈리아 페루자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이씨는 남편을 따라 일본 요코하마, 프랑스 메스를 거쳐 독일 뒤스부르크까지 옮겨 왔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외국 생활이 외로울 법도 한데, 그는 남편과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딸 리원이를 보며 심심할 틈이 없었다고 한다. 언제나 고통과 기쁨을 함께하고 헌신적으로 내조한 부인 이혜원씨에게 안정환은 월드컵 합숙에 들어가기 전 다음과 같은 편지를 남겼다고 한다.
“일찍 결혼해서 네 것을 많이 포기하고 잃어버리게 해서 미안해. 하지만 포기하는 건 일러. 우린 아직 젊잖아, 그치? 사랑해… 나도 노력하고 너도 노력하고 우리 지금까지 결혼생활 잘해왔잖아. 앞으로도 잘할 수 있어. 서로 노력하자. (중략) 발전하고 노력할게, 사랑한다~ 그리고 미안해. 잘해보자, 파이팅!”
이혜원씨는 안정환이 2006 독일월드컵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둘째 계획을 월드컵 이후로 미룬 바 있다. 이 아름다운 커플의 사랑스러운 둘째를 곧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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