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영은 철저한 식이요법과 몸에 맞는 약을 찾은 덕분에 병세가 많이 호전됐다고 한다.
MBC 라디오국 한켠에는 20년 이상 라디오를 진행한 MC들의 입 모양을 본떠 만든 ‘골든 마우스’가 걸려있다. 일종의 명예의 전당인 셈인데, 내년 1월이면 ‘강석 김혜영의 싱글벙글쇼’ 진행자 김혜영(44)이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골든 마우스에 대열에 합류한다.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하는 세월 동안 한결같이 밝은 모습을 보여왔던, 더군다나 요리책을 낼 만큼 야무진 살림꾼으로 알려진 그가 그동안 사구체신우염이라는 난치병으로 투병해온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지난 5월 중순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그는 “지금은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호전된 상태지만 이 병이 완치라는 게 없기 때문에 늘 조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사구체신우염 진단을 처음 받은 건 97년. 전에 비해 극심한 피로를 느꼈지만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우연히 병원을 찾았다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됐다.
“집에 일하는 아줌마가 아파서 응급실에서 밤을 새우며 병간호를 하고 다음 날 화장실에 갔는데 소변색이 콜라 빛이었어요. 무척 놀랐지만 ‘이러다 말겠지’ 하고 그냥 넘겼는데 며칠 동안 증상이 계속돼 병원을 찾았죠. 진찰을 마친 의사가 병명을 알려주며 더 이상 좋아질 가능성도, 특별한 약도 없다고 하는데 믿어지지 않았어요.”
신장질환의 일종인 사구체신우염은 혈액 내 불순물을 걸러 밖으로 배출하는 사구체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소변에 피와 단백질이 섞여 나오는 증상으로 완치가 어려우며 증세가 악화될 경우 혈액 투석이나 신장이식을 받아야 한다. 당시 두 살, 여덟 살 어린 두 아이를 두고 있던 그는 마음이 참담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 아팠다고.
“눈물이 나서 아이들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었어요. 아이들이 어리니까 더 막막하더라고요. 식구들 다 자는 밤에 혼자 몰래 베란다에 숨어서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처음 병명 알았을 때는 커가는 아이들의 모습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남몰래 많이 울어
병마와 싸우며 하루가 다르게 지쳐가던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의 헌신적인 사랑과 건강을 염려해준 동료들 덕분이었다고 한다.
“남편은 제가 다른 일에는 일절 신경을 안 쓰게끔 도와줬어요. 아이들 공부도 봐주고 밥 먹이는 것도 챙겨주고.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라 결혼 초엔 좀 힘들기도 했는데, 그런 일이 생기니까 비로소 남편의 진가를 알겠더라고요.”
평소 그와 친자매처럼 지내던 가수 현숙은 잘 고친다는 병원을 수소문해 ‘혜영이를 살려달라’며 함께 울어줬고, 건강한 자신의 신장을 떼어주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그는 그런 현숙을 “내가 평생 은혜를 갚아야 할 사람”이라고 말했다.
“부모님이 오래 투병생활을 하셔서 서울 한 대학병원은 경비부터 원장까지 모르는 사람이 없는 현숙 언니가 하루는 제 손을 잡고 그 병원 원장실로 찾아가서는 ‘제발 혜영이 좀 살려달라’고 울면서 애원했어요. 신장 분야의 권위자였던 원장님은 처음엔 좀 당황하시더니 ‘무슨 일이 있어도 마지막에는 내가 있다는 걸 믿고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을 해줬는데 그게 제게 큰 힘이 됐어요. 조금이라도 희망적인 말을 해준 의사는 그분이 처음이었거든요.”
10년 가까이 사구체신우염을 앓으면서도 늘 밝은 모습을 보여온 김혜영.
그에게 또 하나 힘이 된 것은 자식 같은 라디오 방송 ‘…싱글벙글쇼’였다고 한다. 그는 병원에서 검사받을 때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마이크를 놓지 않았다. 웃으며 사연을 읽고 노래가 나갈 땐 자리에 푹 쓰러졌지만 절대 방송을 포기하지 않았다. 매일매일 방송을 듣던 청취자들조차 그가 아프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라디오국 간부들과 스태프들은 제가 아픈 걸 알고 걱정하긴 했지만 방송을 그만두라고는 하지 않았어요. 그랬더라면 아마 더 좌절했을 거예요. 방송을 그만두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밥 먹고 누워있는 일밖엔 없는데 그건 제게 사형선고나 다름없거든요.”
그는 2001년 암 판정을 받았던 오미희에게도 라디오 방송을 계속할 것을 권했다고 한다.
“그때 미희 언니가 항암치료를 받아서 손톱이 새까맸어요. 그러니 몸은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런 언니한테도 방송을 계속하라고, 그래야 살 수 있다고 했어요. 완치된 뒤에 언니도 일을 계속하길 정말 잘했다고 하더군요.”
“아이들에게 공부보다 건강을 최우선으로 챙기라고 말해요”
그는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고 혈압이 낮은 편이라 다행히도 사구체신우염을 치료하기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철저한 식이요법과 몸에 맞는 약을 찾은 덕분에 병세가 많이 호전된 상태라고. 하지만 감기만 걸려도 악화될 수 있기에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고 한다.
“고기를 많이 먹으면 안 되고 증상의 정도에 따라 물을 잘 조절해서 마셔야 해요. 제 경우는 물을 많이 마셔야 하는 편이라 결명자차, 상황버섯 달인 물, 생수 등을 늘 준비해놓고 번갈아가면서 마시고 있어요. 그리고 감기에 걸리면 악화될 수 있기 때문에 한여름에도 긴팔 옷을 입고 다녀요. 또 무리한 운동은 못하고 가벼운 산책이나 등산으로 건강을 관리하죠.”
힘겹게 건강을 되찾은 그는 병마의 터널을 빠져나온 후 세상이 달라 보인다고 한다. 아등바등 욕심내며 사는 게 얼마나 덧없는지를 절감했기에 매사 주어진 일에 감사하며 즐겁게 살려고 노력한다고. 또 고등학교 2학년, 초등학교 4학년인 두 딸에게도 성적 걱정은 말고 재미있게 공부할 것을 권한다.
“건강을 잃으면 돈 많고 공부 잘하는 게 다 무슨 소용이에요? 저는 아이들한테 절대 공부하란 말을 안 해요. ‘연예인 김혜영은 어떻게 아이들 공부를 시키나’ 궁금해하던 동네 주부들이 실상을 알고 나면 ‘제발 아이들 공부에 신경 좀 쓰라’고 충고할 정도거든요(웃음). 초등학교 4학년 딸이 60점, 70점을 받아와도 잘했다고 칭찬해주지만 대신 넘어져서 몸에 상처라도 나면 크게 야단치죠. 몸이 최우선이니 항상 조심하라고요. 또 제가 아프면서 사람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경험한 만큼 아이들에게도 늘 사람을 잘 사귀라고 말해요.”
공부는 못해도 상관없으니 친구를 잘 사귀라고 말하는 그에게 아이들은 학교에서 일어났던 일이며, 남자친구 얘기까지 스스럼없이 털어놓는다고 한다. 그가 아픈데도 불구하고 또래 중년 주부들보다 젊어 보이는 것도 자녀 교육문제로 속앓이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아이들이 하루 중 일어났던 일을 다 말해주니까 별로 걱정할 게 없어요. 남편도 자기 일 잘 알아서 해주고…. 제가 아팠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라는 분들이 많은데 늘 웃으면서 살기 때문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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