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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간 최강의 배드민턴 파트너에서 부부의 연 맺은 김동문·라경민

글·최호열 기자 / 사진ㆍ김성남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06. 01. 04

세계 최강의 배드민턴 혼합복식 파트너였던 김동문·라경민 선수가 부부의 연을 맺어 화제다. 8년 동안 호흡을 맞추며 사랑도 함께 싹틔운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를 들어보았다.

8년간 최강의 배드민턴 파트너에서 부부의 연 맺은 김동문·라경민

지난 12월7일 만난 김동문(31·삼성전기 코치)의 얼굴엔 함박웃음이 가득했다. 그 옆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라경민(30·대교 코치)의 얼굴에도 수줍은 미소가 그칠 줄 몰랐다. 2004년까지 8년 동안 세계 최강의 배드민턴 혼합복식 파트너로 호흡을 맞췄던 두 사람이 부부의 연을 맺은 것.
김동문은 지난 11월27일 양가 부모와 소속팀에 결혼 계획을 알린 후 자신의 홈페이지에 “좋은 소식으로 글을 올리게 됐다. 시작도 하기 전에 웃음이 먼저 나온다”며 “10년 넘게 국가대표 생활을 동고동락해온 바로 그 사람, 코트에서 항상 나의 빈 곳을 지켜주던 믿음직하고 사랑스런 바로 그녀와 결혼을 한다”고 털어놓았다.
두 사람의 관계는 사실 악연(?)으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10년 전인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 라경민은 당시 ‘셔틀콕의 황제’로 불리던 박주봉(현 일본대표 감독)과, 김동문은 길영아(삼성전기 코치)와 짝을 이뤄 혼합복식에 출전해 결승전에서 맞붙었다.
우리나라 국민들로서는 누가 이겨도 관계없기 때문에 게임이 싱거울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보는 이들의 손에 땀이 밸 정도로 대접전을 벌였다. 더구나 박주봉-라경민 조가 손쉽게 이길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김동문-길영아 조가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뜻밖의 승리에 감격하는 김동문과 패배가 확정된 직후 코트에서 눈물을 펑펑 쏟는 라경민의 대조적인 모습은 지금도 국민들의 뇌리에 또렷이 박혀 있을 정도.
그러나 이듬해 박주봉과 길영아가 은퇴하면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혼합복식 파트너가 됐고, 이때부터 8년 간 역대 최강으로 군림했다. 특히 2004년엔 세계 혼합복식 사상 전무후무한 14개 대회 연속 우승과 국제대회 70연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하지만 올림픽과는 지독하게도 인연이 닿지 않았다. 금메달을 확신했던 2000년 시드니올림픽과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두번 다 8강에서 탈락했다.

연애하느라 운동 게을리한다는 말 듣고 싶지 않아 교제 사실 철저히 감춰
이렇듯 오랫동안 운동을 함께하며 호흡을 맞춰온데다 영광과 좌절을 함께 맛보았던 탓인지 “언제부터 사랑을 느끼게 됐냐”고 묻자 “그게 참 애매하다”며 웃었다. 혼합복식의 특성상 서로의 눈빛만 봐도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사이가 되다 보니 물 스미듯 서로에 대한 마음이 깊어졌다는 것.
“특히 슬럼프에 빠졌을 때 서로를 위로하고 다독여주면서 애정이 생긴 것 같아요.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가까워졌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 다 서로를 ‘언젠가는 당연히 결혼해야 할 상대’라고 생각했어요.”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한 것은 2003년.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김동문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 때까지 선수생활을 계속할 것인지 등을 고민하면서 라경민에게 많이 의지했고, 그러면서 정이 차츰 사랑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결혼 발표를 하기 전까지 동료와 코칭스태프는 물론 가족에게까지도 철저하게 숨기며 만났다고 한다. 김동문의 남자복식 파트너이자 초등학교 때부터 함께 운동을 해온 23년지기 친구 하태권(삼성전기 코치)조차 “그저 좋은 선후배 관계인 줄 알았다”고 말할 정도.
누구보다 놀란 사람은 김중수 대표팀 감독이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을 앞두고 두 사람이 진짜 연인 관계가 되면 조직력이 더 좋아질까 싶어 둘만의 시간을 만들어주는 등 은근히 밀어주기까지 했던 김 감독은 겉으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자 “남녀관계는 인력으로 안되는 것 같다”며 포기했었다고 한다.
“대표팀 혼합복식 파트너가 된 뒤 늘 붙어 다녔기 때문에 아무도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더라고요.”

8년간 최강의 배드민턴 파트너에서 부부의 연 맺은 김동문·라경민

“당당하게 밝히고 만나지 왜 그렇게 몰래 사귀었냐”고 묻자 두 사람은 “만에 하나 우리가 시합에 나가 결과가 좋지 않으면 ‘교제를 하느라 운동을 게을리 해서 그렇다’는 말이 나올텐데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실제로 운동할 땐 서로 연인이란 생각보다 그냥 운동 파트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동문이 프러포즈를 한 것은 지난 2004년 아테네올림픽 때였다고 한다. 그는 이미 떠나기 전부터 혼합복식에서 금메달을 따면 바로 프러포즈할 계획을 갖고 있었는데, 8강에서 탈락해 멋지게 프러포즈할 기회를 잃고 말았다고.
“아쉬운 대로 남녀 복식에서 각자 금메달을 따면 프러포즈를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경민이가 동메달에 그친 거예요. 경민이가 너무 큰 충격을 받아 말을 할 수 없었어요. 정말 힘들었어요.”
다행히 배드민턴 경기 일정이 다 끝난 후 간단한 회식이 있었다. 이때 선수촌 광장 벤치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기회를 갖게 된 김동문은 “금메달을 따면 멋지게 프러포즈를 하고 싶었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라경민은 그 말을 듣고도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고.
“그때는 패배의 충격 탓에 다른 것은 전혀 생각할 여유가 없었어요. 귀국을 해서야 그 말이 프러포즈였다는 걸 알았죠(웃음).”
올림픽 후 라경민은 서울에서 선수활동을 하고, 김동문은 원광대에서 박사과정을 밟느라 전북 익산에 내려가 있어 자주 만나지 못하고 전화통화를 하며 사랑을 키웠다고 한다. 그런 두 사람이 결혼날짜까지 먼저 잡고 부모에게 통보를 하는 등 결혼을 서두른 이유는 무엇일까.
“당초 제 계획은 대학원 박사 논문을 통과하면 2006년 1월에 캐나다로 유학을 떠났다 6, 7월쯤 귀국해 결혼식을 올릴 생각이었어요. 캐나다 유학이 갑작스럽게 결정되는 바람에 마음에 여유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며칠 전에 경민이가 술을 먹고 문자를 보냈어요. ‘(결혼)하고 가든지 (관계를) 끝내고 가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 하고 최후통첩을 한 거죠(웃음). 그래서 서둘러 날짜를 잡고 부모님에게 알린 거예요.”
라경민의 집에선 두 사람의 전격적인 결혼발표로 한바탕 소동이 일기도 했다. 라경민의 언니와 어머니는 부랴부랴 혼수를 알아보고 예비신랑 측 부모와 상견례 날짜를 잡느라 부산을 떨어야 했던 것.
운동 파트너와 평생을 함께 살 배우자는 다르다. 이에 대해 김동문은 “부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해 잘 알고 배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우린 서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뭘 바라고 있고 뭘 생각하는지 잘 알고 누구보다 잘 통한다. 앞으로도 나를 가장 많이 이해해줄 수 있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며 라경민에 대한 강한 믿음을 내비쳤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 배드민턴을 통해 좋은 모습을 보였던 것처럼 결혼해서도 잘 살아 후배들에게도 모범이 되는 커플이 되겠다”고 입을 모았다. 성탄절인 12월25일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은 인도네시아 빈탄으로 7박8일 동안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김동문은 캐나다로 유학을 떠나고, 라경민은 소속팀에서 트레이너 겸 선수로 활동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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