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말 전북의 소도시 정읍에 주한 외국대사 부인들과 탤런트들이 대거 한자리에 모이는 보기 드문 일이 벌어졌다. 탤런트 김영애(55)가 남편 박장용씨(51)와 함께 경영하고 있는 황토 전문회사 참토원의 공장 증설 준공식이 열린 것. 2001년 남의 공장을 빌려 사업을 시작한 지 4년 만에 다섯동의 현대적 공장을 갖게 되었으니 말 그대로 급성장을 한 셈이다.
외형뿐 아니라 매출 역시 2002년 25억원을 시작으로 2003년 2백50억원, 2004년 3백20억원으로 수직상승을 하고 있다. 올해 매출 목표는 4백50억원.
공장 준공식이 있은 며칠 뒤 서울 사무실에서 김영애 박장용 부부를 만났다. 두 사람의 얼굴엔 ‘이제 어느 정도 이루었다’는 성취감이 가득했다.
“비로소 황토 원료가 제품이 되기까지 모든 공정을 우리 공장 안에서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저희가 원하는 품질의 제품을 제대로 만들 수 있게 된 거죠. 처음부터 자본금이 넉넉해 이렇게 시작했으면 좋았겠지만 돈을 벌어가며 부족한 것을 하나씩 채워가는 기분도 각별하네요. 이제 또다시 시작하는 기분이에요.”
김영애에 따르면 지금까지 모든 수익을 공장에 재투자했는데, 대략 1백5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자랑 같지만 처음엔 세금을 정읍세무서에서 관리했는데 지금은 전북세무서에서, 그것도 아직 주식시장에 상장도 안 했는데 증권거래법에 따라 회계감사를 받아요. 그 정도로 매출 규모가 커진 거죠. 현재 생각으론 내년 말쯤 코스닥에 상장하게 될 거 같아요.”
결혼식은 못 올려도 사진관에서 결혼사진은 찍고 싶어
잘 알려져 있듯이 김영애는 자신이 황토의 효능을 체험한 후 황토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래서 사업을 시작하며 어려움도 많았지만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한다.
“어려움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죠. 공장 지을 돈이 없어 건물을 임대했는데 계약을 하자마자 주인이 부도를 내고 세상을 뜨는 바람에 공장에 수도와 전기가 끊겼어요. 그땐 정말 막막했어요.”
어렵게 제품을 만들어놓고도 판매망이 없어 고전하기도 했다고 한다. LG홈쇼핑(현 GS홈쇼핑)에 들어가기까지 6개월 넘게 기다려야 했기 때문. 그렇다고 제품을 창고에 쌓아놓고 있을 수 없어 직접 방송국에 가져가 선후배 연기자들에게 팔기도 하고, 동네 아파트를 돌아다니며 판매를 했다고 한다. 박씨 역시 룸살롱 같은 유흥업소를 돌며 판촉활동을 했다고.
“뒤늦게 공장을 지어 본격적으로 생산을 시작했는데 계절이 비수기인 여름이었어요. 매출이 계속 떨어지니까 홈쇼핑에서 세일을 하자고 하는데, 남편은 ‘세일은 먼저 제품을 산 사람들에 대한 배신’이라며 절대 안 된다고 하는 거예요. 결국 홈쇼핑에서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며 판매를 중단해버렸죠. 그런데도 남편은 고집을 꺾지 않고 ‘우리가 길에서 팔든지, 아니면 둘이 죽을 때까지 쓰고 살자’고 하더군요(웃음).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그땐 정말 암담했어요.”
이런 어려움을 딛고 그의 황토 제품은 이제 해외에 수출할 정도가 되었다. 일본 중국 미국 호주 등에 직수출하고 있는 것.
황토가 인연이 되어 부부의 연을 맺은 김영애·박장용 부부.
“지금까지 부부가 여행 한번 제대로 간 적이 없어요. 남편 건강도 많이 상했고요. 이제 한숨 돌리면서 몸과 마음을 추스르려고요.”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이 비밀리에 결혼했다는 보도가 지난 2003년 5월에 있었으니 벌써 결혼 후 만 2년이 되는 셈이다.
“이제 와서 밝히는 거지만, 당시 결혼식을 올렸다는 건 사실이 아니에요. 아직까지 결혼식을 못했어요.”
당시 두 사람은 결혼을 약속한 상태였다고 한다. 하지만 나이 먹은 이혼녀 탤런트가 동업자와 사귄다는 게 자칫 스캔들로 비쳐져 회사 이미지가 실추될 것을 우려해 두 사람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밝히기 위해 몇몇 기자들을 불러 사진을 찍었는데, 마침 전날 친구들과 집들이를 하며 찍은 사진과 합쳐져 마치 결혼식 피로연을 한 것처럼 보도가 되었다는 것.
“조촐하게라도 결혼식을 하고 싶었는데, 기사가 그렇게 나가버리니까 결혼식을 한다고 하기가 뭣하더라고요. 사람들은 다 제가 결혼식을 한 것으로 알잖아요. 그래서 5월 중에 사진관에 가서 웨딩드레스 입고 사진 찍는 것으로 대신하려고 해요.”
잘 알려진 김영애와 달리 남편 박장용씨는 일반인들에게 낯선 인물이어서 당시 많은 소문이 떠돌기도 했다.
“제가 원래 몸이 안 좋은데 98년엔 수차례 병원에 실려 갈 정도였어요. 그때 지인의 소개로 기 치료사를 소개받았는데 바로 남편이에요. 그 후 몸이 안 좋으면 종종 남편을 찾아가 치료를 받았어요. 그러다 99년에 제가 아는 비구니 스님이 지은 황토움막에서 며칠 생활할 기회가 있었는데, 정말 몸이 좋아지더라고요. 저도 황토 집을 짓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남편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조언을 많이 해주었어요. 그러다 의기투합해 황토사업까지 하게 된 거죠.”
박씨는 결혼 전부터 김영애가 몸이 안 좋으면 모든 일을 중단하고 병 간호에 매달리는 등 극진한 정성으로 김영애를 감동시켰다. 결혼 후에도 이런 애정은 변함이 없다고 한다.
“지금도 제가 몸이 아프면 남편은 만사를 제쳐두고 제 옆에서 떠나질 않아요. 또 남편은 사고방식이 조선시대 사람처럼 고리타분한데도 ‘사랑한다’는 표현을 잘 해요. 잠 잘 때도 돌아누워 ‘사랑해’ 그래요. 물론 너무 완고해서 제 속이 터질 때도 있지만 제가 남편의 사랑을 받고 보호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영애는 항상 남편에 대해 고마움을 느낀다고 한다.
“전에는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 수면제를 많이 복용해 약물 중독에 빠지기도 했고, 알코올 중독도 앓았어요. 어쩌면 지금도 그런 유혹에 빠질 수 있었을 텐데 남편 덕분에 이겨 냈어요. 요즘은 제가 너무 건강해져서 남편이 버거워할 정도죠(웃음). 남편이 어느 정도로 절 배려하냐면 부부침대 양 옆에 사각 사이드 테이블이 있는데, 자다가 제가 모서리에 부딪힐지 모른다며 수시로 저를 침대 안쪽으로 끌어당겨줘요.”
박씨에게 김영애의 어떤 면이 그렇게 좋으냐고 하자 뜻밖의 대답을 내놓았다.
“어려서 소원이 걷지 못하는 사람하고 결혼하는 것이었어요. 전 많이 배우지는 못한 대신 기운이 세거든요. 제가 가진 힘을 누구에겐가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아내가 아프니까 제가 도와줄 수 있어 행복해요. 아내처럼 훌륭한 사람이 저를 아껴주고 사랑해주니 감사하죠. 그러니 최선을 다해 사랑할 수밖에요.”
이렇게 서로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며 사는 두 사람이지만 부부싸움도 자주 한다고 한다.
“저도 나름대로 세상을 아는데 남편은 늘 제가 어린아이인 줄 알아요. 그래서 부딪치죠. 다행히 남편은 뒤끝이 없어요. 싸웠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아무렇지 않게 ‘밥 먹었어?’ 하고 물어요. 화해의 제스처죠. 처음엔 그게 이해가 안되었는데 이젠 이해를 하고 살아요.”
김영애에게 남편이 집안일도 잘 거들어주는 편이냐고 묻자 “물심부름까지 시킨다”며 눈을 곱게 치뜬다. 밖에서는 박씨가 김영애를 여왕처럼 떠받들지만 안에서는 반대로 박씨가 왕처럼 행동한다는 것. 그러자 박씨가 “다 이유가 있어서”라며 항변했다.
“집안일을 안 한다기보다는, 집에서도 사업에 몰두해야 하니까 그런 거죠. 그리고 제가 물이나 재떨이 심부름을 시키는 것도 다 이유가 있어요. 건강을 체크하는 것이죠. 움직이는 동작을 보면 몸 상태를 알 수 있거든요.”
그 말을 듣던 김영애가 “아유, 궁색한 변명은…. 집에서 너무 안 움직여요. 배 나온 것 보이시죠?” 하며 웃는다.
프랑스에 유학 중인 김영애의 아들이 곧 군에 입대한다. 결혼 사실이 알려진 후 누구보다도 아들이 기뻐했다고 하는데, 새 아버지와의 정은 얼마나 쌓았을까 궁금했다.
“아들은 결혼 전부터 아내가 치료를 받을 때 따라오곤 해서 알고 있었어요. 일주일 동안 제 밑에서 수련을 하기도 한걸요. 결혼 후 프랑스에 가서 함께 만나기도 했고요. 애써서 가까워지려고 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정을 쌓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김영애는 아들 생각만 하면 마음이 아리다고 한다.
“아이가 사춘기 때부터 마음고생을 많이 했어요. 중학교 입학하자마자 부모가 덜그럭거리기 시작했으니까 6년을 힘들게 보냈죠. 그래서 또래보다 속이 어른스러워요. 제가 늘 병원에 실려다니고, 술에 찌들어 있는 모습을 봐왔기 때문인지 재혼하겠다고 했을 때 ‘엄마가 편안하고 건강할 수 있다면 내 생각하지 말고 결정하라’고 하더군요. 저의 변화를 보고 아이가 정말 놀라워해요. 아프고 지쳐 있던 엄마가 아니니까요.”
황토사업으로 번 돈 사회환원 할 터
두 사람은 자신들의 배당금을 모두 회사에 투자하면서도 나눔에 인색하지 않다. 우선 올해 안에 황토타운을 착공해 이르면 내년에 완성할 계획이다.
“1백여 채 규모의 황토타운을 준비하고 있어요. 구조는 펜션처럼 만들어 사용하기 편하게 하면서 황토로 만들어 황토의 효능을 제대로 체험하게 할 생각이에요. 그동안 우리 제품을 꾸준히 쓴 고객들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 고객 가족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할 거예요.”
물론 고객을 대상으로 한 조건부 사회환원만 하는 것은 아니다. 김영애는 몇 년 전부터 모교인 부산여상에 해마다 2천만원씩 장학금을 기부하고 있다. 또 정읍에 공장을 지은 후 인근 중·고등학교에도 해마다 5천만원씩 총 10억원의 학교발전기금을 내기로 약정했다.
“34년 동안 연기자로 살면서 과분하게 받기만 했어요. 받은 걸 돌려주어야지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그동안 사는 데 바빠서 엄두를 못 냈어요. 이제 기회가 온 것 같아요. 제가 여상을 나와 배움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있어 장학사업을 먼저 시작했는데, 처음 시작이 어렵지 일단 하고 나니까 다음부터는 쉽더라고요.”
외국 대사 부인에게 직접 황토팩을 해주는 김영애. 그는 황토사업으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김영애뿐 아니라 박씨도 자신의 월급을 쪼개 결식아동 지원에 보태고 있다고 한다. 박씨는 가난하게 자라서인지 공부 보다 먹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돈을 벌면 당연히 어떻게 하면 사회에 우리가 받은 만큼 돌려줄까를 생각해야죠. 저는 단순히 음지에 돌려주는 것에 그치고 싶지 않아요. 이 사회가 더 잘 돌아가는 데 기름이 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거예요.”
박씨는 구체적으로 명예퇴직자 등 육체적·정신적으로 많이 지쳐 있는 사람들이 쉬고 재기하도록 도울 수 있는 수련원 같은 시설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반면 김영애는 실버타운을 생각하고 있다고.
김영애는 지난해 종영된 시트콤 ‘달려라 울엄마’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지만 아직도 많은 시청자들은 그의 연기 복귀를 바라고 있다. 언제쯤 방송에서 다시 볼 수 있느냐고 묻자 박씨가 단번에 말을 자른다.
“아내의 건강을 위해 더 이상 연기하는 걸 원하지 않아요. 솔직히 제가 이 사업을 시작한 것도 아내가 연기를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어요. 아내가 제 뜻을 받아들여줘서 고마워요.”
그는 김영애가 연기를 그만두는 문제로 2년 동안 실랑이를 하고 부부싸움도 많이 했다고 한다. “아내가 연기하는 게 왜 싫으냐”고 묻자 김영애가 웃으며 말을 받는다.
“남편은 혼자 있는 걸 싫어해요. 눈을 뜰 때 옆에 제가 있어야 한대요. 연기를 하면 새벽에 촬영을 나갈 때도 있고, 밤을 새우기도 하잖아요. 그렇게 떨어져 있는 걸 너무 싫어해요. 아직 남편을 설득하지 못하고 있어요.”
박씨는 “이젠 둘이 손잡고 맛있는 것 먹으러 다니고 싶어요. 여행도 하고 싶고요. 아내의 건강을 위해, 우리 부부의 시간을 갖기 위해 연기를 안 하면 좋겠어요. 요즘 제가 제일 미워하는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아내에게 드라마 하자고 전화하는 PD들이에요(웃음)” 하며 아내의 방송 복귀에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김영애 역시 남편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연기에 복귀할 생각은 없다고 한다. 그의 모습을 방송에서 보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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