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픽션이다.”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가 논란을 피하기 위해 즐겨 쓰는 안전장치다. 영화 ‘그때 그사람들’도 시작과 함께 이 메시지가 뜬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메시지로 시작하는 영화가 더 논픽션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그때 그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전대미문의 그날 밤 사건, 실제 ‘그때 그 사람들’의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1979년 10월26일 저녁 7시40분, 서울 종로구 궁정동 50번지에서 수발의 총성이 울렸다. 그리고 이 총성으로 12명의 운명이 갈렸다. 6명은 현장에서 즉사하고, 6명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동안 10·26은 방아쇠를 당긴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하 중정부장)과 충복으로부터 심장을 관통당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영화 ‘그때 그사람들’은 역사의 조연, 엑스트라로 그쳤던 김재규의 부하들에게 카메라를 가져다 댄다.
카메라는 “각하도 (제거 대상에) 포함되냐”며 주저했지만 결국 김재규 중정부장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중정 의전과장인 주과장(한석규)과 김 부장을 그림자처럼 따르는 수행비서 민대령(김응수)의 움직임을 좇는다. 두 사람과 함께 해병대 선배인 주과장의 지시에 무조건 복종한 궁정동 안가 경비원 권영조(이재구)와 비번이라 집에서 쉬고 있던 중 호출 전화를 받고 출근해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또 다른 경비원 장원태(김상호), “운짱(운전기사)에게 왜 총을 들게 하느냐”며 투덜대지만 국군서울지구병원에서 대통령의 시신을 지키는 역할을 맡게 되는 중정 운전기사 원상욱(김성욱) 등 영문도 모른 채 ‘거사’에 휘말린 이들에 대해서도 카메라는 응시를 멈추지 않는다.
“야수와 같은 심정으로 유신을 쐈다”<br>김부장(백윤식)의 모델이 된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
주과장은 78년 중정 의전과장으로 임명된 박선호씨, 민대령은 같은 해 중정의 수행비서가 된 육군 대령 박흥주씨를 모델로 하고 있고, 권영조와 장원태는 궁정동 경비원 이기주씨와 김태원씨, ‘운짱’ 원상욱은 중정 운전사 유성옥씨와 흡사하다.
하지만 영화는 2% 부족해 보인다. 어쩌면 현실 그 자체가 더 극적이어서 그런지 모른다. 영화가 담지 못한 ‘그때 그 사람들’의 운명을 가른 하룻밤을 재판기록을 통해 재구성해 보았다.
# 오후 5시30분 광화문‘10·26의 여인들’ 데리고 궁정동 안가로 출발
박흥주 대령(39)은 광화문 에스콰이아 매장에 들러 구두를 샀다. 중정 김재규 부장(54)의 수행비서인 그는 왼발의 무좀이 심한 편이다. 박 대령은 새 구두를 신고, 헌 구두를 경호차 트렁크에 넣은 다음 궁정동으로 갔다.
궁정동 안가는 중정이 관리하는 ‘관제 룸살롱’이다. 이곳을 관리하는 중정 의전 과장 박선호씨(45)는 김 부장과 사제지간이다. 김 부장이 군복을 잠시 벗고 대륜중학교 체육교사로 있을 때 사제의 연을 맺었다. 1978년 개인 사업을 하던 박씨를 중정 의전과장에 앉힌 이도 김 부장이었다.
박 과장은 이날 오후 4시25분, 해병대 동기인 정인형 청와대 경호처장으로부터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 김계원 비서실장, 김재규 중정부장이 참여하는 큰 행사가 열린다”는 전화를 받았다. 곧바로 프라자호텔로 차를 몰아 영화에서 배우 조은지가 맡은 ‘쿨한 여자’ 신재순씨(당시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3년)를 태우고, 가수 김윤아가 연기한 심수봉을 데리러 내자호텔로 향했다. 박 과장은 각하의 밤을 책임지는 채홍사다. 영화에는 주과장이 차지철 경호실장한테 걷어 차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로도 박 과장은 차 실장과 물과 기름의 관계였다. 차 실장은 박 과장이 데려온 여인들의 ‘미모’를 트집 잡기 일쑤였다.
궁정동 안가에서 현장 검증을 하고 있는 김재규(왼쪽)와 박흥주.
# 오후 6시5분 궁정동 정문“할아버지(대통령)가 도착했다”는 연락 받아
‘할아버지’가 도착했다. 궁정동 안가 경비원들은 대통령을 가리켜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차지철 경호실장과 정인형 경호처장, 안재송 경호부처장, 김용태· 김용섭· 박상범 청와대 경호원 등이 함께 왔다. 경비원 대기실에서는 이기주(31), 유성옥(36), 김태원씨(32)가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때 무전으로 “할아버지가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유성옥씨는 박선호 과장이 타는 승용차 운전기사다. 새로 배치된 운전기사와 함께 궁정동에서 차량을 정비하던 유씨는 오후 3시에 큰 행사를 준비하라는 통보를 받고, 당시 6만원을 받아들고 동대문시장에 가서 장을 보았다. 장을 보면서도 그는 흥이 났다. 20여 일 뒤면 신랑이 되기 때문이다. 네 살과 두 살짜리 두 아들을 낳고도 돈이 없어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던 유씨는 곧 서울신문사 강당에서 아내에게 면사포를 씌워줄 수 있게 됐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레었다. 청첩장도 이미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김태원씨는 전날 야간 근무를 했기 때문에 본래 비번이었다. 오전에 처가에 가서 점심을 먹고 집에 돌아왔다. 영화에서는 집에서 자다가 호출 전화를 받는데, 실제로는 은행에 가는 길에 김씨가 먼저 궁정동에 전화를 걸었다. 궁정동 경비원은 비번일 때도 오후 4시에서 5시 사이에 전화를 해야 한다. 각하가 ‘회포를 푸는 날’이 일정치 않기 때문이다. 전화를 하자 큰 행사가 잡혔다며 서둘러 출근하라고 했다. 오후 5시, 그는 은행에 가다 말고 택시를 타고 궁정동으로 향했다. 그것이 마지막 출근길이 될 줄은 몰랐다.
“다시 똑같은 상황에 처해도 그 길을 갈 수밖에 없다”<br> 주과장(한석규)의 모델이 된 박선호, 당시 중정 의전과장
이기주씨의 일상도 평범했다. 궁정동 중정 경비원 30여명 가운데 그는 유일한 해병대 출신이다. 이씨는 오전 6시에 집에서 나와 비서실을 정리하고 박 과장 방을 따로 청소했다. 오후에는 오랜만에 이발을 했다.
# 저녁 7시40분 궁정동 만찬장김재규 자신의 부하들에게 무장 지시한 후 돌아가며 노래하는 가운데 권총 발사
하지만 평범한 일상은 저녁 7시 김재규 부장이 만찬장을 빠져나오면서 깨졌다. 김 부장은 자신이 미리 불러놓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과 김정섭 중정 2차장보가 저녁을 하는 별관으로 향했다. 김 부장은 “각하와 약속이 겹쳤다. 먼저 식사하라”고 한 뒤 2층 집무실로 올라가 권총을 양복 바지에 넣었다. 김 부장의 바지는 라이터 주머니가 유난히 크다. 김부장은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라이터 주머니를 일부러 크게 만들고, 그곳에 권총을 넣고 다녔다. 별관을 나선 김 부장은 영화에서처럼 박 과장과 박흥주 대령을 불렀다.
“나라가 잘못되면 자네들이나 나나 죽는 거야. 오늘 저녁에 해치우겠다.”
김 부장의 다짐이었다. 박 과장이 흠칫하며 “각하까지 포함됩니까?”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박 과장은 청와대 경호원 숫자를 불려 말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에게 닥친 운명을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김 부장은 “똑똑한 놈 세 놈만 골라서 지원하라”고 지시하며 박흥주 대령을 향해 주먹을 쥐고 “민주주의를 위하여”라고 힘주어 말했다. 영화 장면 그대로다.
박선호 당시 중정 의전과장을 모델로 한 주과장 역의 한석규.
박 과장은 심복인 해병대 후배 이기주씨와 운전기사 유성옥씨에게 무장을 하라고 지시했다. 이씨는 기관총을, 유씨는 권총을 차고 박 과장을 따랐다. 박 과장은 이씨의 총이 너무 크다면서 권총으로 바꾸라고 지시했다. 영화에서는 ‘운짱’(운전기사)인 유성옥씨가 도망가려고 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사실은 이기주씨가 도망칠 생각을 했다. 그는 총을 바꾸러 가면서 겁이 나서 도망칠까 고민했다고 재판과정에서 밝혔다.
이기주·유성옥씨는 박흥주 대령과 함께 청와대 경호원들이 있는 주방을 맡았다. 영화에서는 주방에 가까이 있는 담장 밑에 숨어 있지만 실제로는 승용차를 타고 주방 옆에서 대기했다. 박 과장은 청와대 경호처장 정인형씨와 경호부처장 안재송씨가 있는 대기실을 맡았다. 정인형 경호처장이 해병대 동기로 친구 사이였기 때문이다.
영화에서처럼 이날 술은 주로 박 대통령과 김계원 비서실장이 마셨다. 불과 40여 분 만에 시바스 리갈 한 병 반을 마셨다. 간이 좋지 않은 김 부장은 이날 딱 한 잔만 마셨다. 영화에서 심수봉 역을 맡은 김윤아는 일본 엔카를 부르지만, 재판기록에 따르면 심수봉은 자신의 히트곡인 ‘그때 그 사람’을 불렀다. 앙코르를 받자 ‘눈물 젖은 두만강’을 불렀고, 다음 순서로 차지철 경호실장을 지목했다. 차 실장은 ‘도라지’와 ‘나그네 설움’을 불렀다. 차 실장 다음은 신재순씨가 노래 부를 차례였다. 그는 심수봉에게 ‘사랑해 당신을’ 반주를 부탁했다. 심수봉이 기타로 반주를 시작하고 신재순씨가 막 노래를 부르려는 순간, 김 부장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노래 도중에 총성이 났다는 기록도 있다). 이때가 7시40분이었다.
대기실에 있던 박 과장은 총성이 울리자 먼저 총을 뽑았다. 그는 안재송 경호부처장에게 총을 겨누고, 친구인 정인형 경호처장에게는 “같이 살자”고 소리쳤다. 운명을 가르는 15초. 그 사이 승용차에 타고 있던 박흥주 대령과 이기주·유성옥씨가 주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콩 볶듯 총성이 이어졌다. 계속되는 총성에 국가대표 사격선수 출신인 안재송씨가 총을 뽑았다. 박 과장은 방아쇠를 당겼다. 친구 정인형씨도 총을 뽑으려 하자, 뒷걸음치다 문턱에 걸린 박 과장이 쏜 총에 정인형씨마저 쓰러졌다.
# 저녁 8시5분 육본 벙커박 대통령 확인 사살한 김재규, 영문 모르는 정승화 총장 차에 태우고 허겁지겁 무작정 출발
“부장의 인격을 믿고 행동에 옮겼다”<br>민대령(김응수)의 모델이 된 박흥주, 당시 중정부장 수행비서
영화 후반부가 그렇듯, 아무것도 모른 채 거사에 가담한 조역들은 김 부장의 지시가 없자 우왕좌왕했다. 거사를 주도한 김 부장 자신도 갈피를 못 잡았다. 먼저 차 실장을 쏘고, 이어 박 대통령을 쏜 김 부장은 다시 한번 박 대통령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으나 불발되자 총을 찾아 허겁지겁 밖으로 뛰어나갔다. 박 과장의 권총을 들고 다시 안으로 들어온 김 부장은 박 대통령을 확인 사살했다. 그러고는 와이셔츠 차림에 맨발로 정승화 총장과 김정섭 차장보를 불러 자신의 차에 타게 했다. 앞좌석에는 박흥주 대령이 탔다. 궁정동을 빠져나온 차는 삼일고가도로를 탔다. 김 부장은 영화에서처럼 정승화 총장과 김정섭 차장보에게 박 대통령의 정확한 사인은 밝히지 않은 채, 자신의 안방인 중정 남산분청으로 향했다. 그러나 정승화 총장이 육군본부 지하 벙커로 가자고 하자, 김 부장은 “부(중앙정보부)? 육본?” 하며 망설였다. 박흥주 대령이 육군본부로 가자고 하자 차가 방향을 틀었다. 스스로 민주혁명이라 일컬었던 김재규의 거사가 실패로 유턴한 순간이었다.
“과장님께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지 ‘왜’ 같은 건 생각 안 한다”<br>권영조(이재구)의 모델이 된 이기주, 당시 궁정동 안가 경비원
저녁 8시5분, 차가 육군본부에 도착했다. 그런데 육군본부 보초병이 정승화 총장을 알아보지 못하고 막무가내로 제지했다. 그동안 총장의 얼굴이 아닌 총장 전용차를 보고서 문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정지, 누구냐?”
“나 총장이다.”
영화에서처럼 실제로 이런 코미디 같은 대화가 오고갔다. 맨발로 육군본부에 도착한 김 부장에게 박 대령은 그날 오후에 산 새 구두를 벗어주고, 자신은 운전병의 신발을 뺏어 신었다.
한편, 궁정동에 남아 있던 박 과장은 김 부장으로부터 아무런 지시도 받지 못했다. 김 부장을 찾았지만 김 부장을 태운 차량이 이미 떠난 뒤였다. 박 대통령 시신도 사라지고 없었다. 김계원 비서실장이 유성옥씨와 경비원 서영준씨를 채근해 국군서울지구병원으로 시신을 옮긴 것이다.
박 과장은 뒷수습을 했다. 경비실에 있던 김태원씨를 데리고 시해 현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현장에 있던 이기주씨에게 “깨끗이 정리됐어?” 하고 물었다. 이씨는 이를 확인 사살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 김태원씨에게 지시했다. 김씨는 안재송씨에게 1발, 정인형씨에게 2발, 차지철 실장에게 2발을 쏘았다. 주방에서 총을 맞고 쓰러져 있던 박상범 청와대 경호원은 운 좋게도 김씨의 확인 사살을 피했다. 그는 지난 김영삼 정권 때 경호실장을 지냈다.
# 10월27일 0시40분 국방부보안사 요원들에게 전격 체포된 김재규에 이어 부하들도 중정에서 잇따라 체포돼
육군본부 벙커에서 박흥주 대령은 중앙정보부 경호조에 무전을 쳤다. 그리고 만일에 대비해 경호조를 육군본부로 오게 했다.
“일 내용을 잘 모르고 지휘관으로부터 지시받은 것을 이행했을 뿐이다”<br> 원상욱(김성욱)의 모델이 된 유성옥, 당시 중정 운전기사
그러나 0시40분, 정승화 총장의 지시로 김 부장은 보안사에 전격 체포되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보안사 서빙고동에 끌려간 김 부장은 고문을 당했다. 그는 항소이유서에 ‘새벽에 연행되자마자 수사관들이 닥치는 대로 구타했고, 심지어 전화선을 손가락에 감고 전기 고문까지 했다’고 밝혔다.
국방부에 남아 있던 박 대령도 무장해제를 당했다. 자신의 운명을 직감한 박 대령은 부장의 차를 타고 국방부를 빠져나와 새벽에 중정 남산분청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육군본부로 들어오라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메시지였다. 박 대령은 응하지 않고, 새벽 4시30분에 행당동 달동네에 있는 집으로 가 아내를 만났다. 그러나 아내의 얼굴만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문동 중정 본청으로 차를 몰았다. 10월27일 오후 3시, 그는 중정 1차장보실에서 차를 마시다 보안사 요원에게 체포되었다.
“상관이 시키면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 중정의 전통이다”<br>장원태(김상호)의 모델이 된 김태원, 당시 궁정동 안가 경비원
박 과장도 마지막 순간 가족을 찾았다. 이날 저녁 8시20분쯤 궁정동을 나와 대방동 집에 들러 여섯 살짜리 늦둥이 아들을 태우고 방배동에 있는 처가에 다녀왔다. 그리고 다시 궁정동으로 돌아왔다. 그때서야 신재순씨와 심수봉이 떠올랐다. 박 과장은 영화에서처럼 두 사람에게 약값을 하라며 봉투를 건네 돌려보냈다. 봉투에는 각각 20만원짜리 수표가 들어 있었다. 새벽이 오자 박 과장은 초조해졌다. 통행금지 시간인 3시30분 광화문을 질주해 중정 남산분청으로 향했다가 새벽 6시에 다시 처가로 갔다. 그리고 아내와 장모에게 사실을 털어놓고, 자살하겠다고 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아내가 만류했다. 그는 제 발로 남산분청을 찾아가 보안사 요원들에게 연행되었다. 궁정동에 남아 있던 중정 경비원 이기주·김태원씨는 경비원 대기실에 있다가 정오에 연행되었다.
국군서울지구병원에서 박정희 대통령 시신을 지키고 있던 유성옥·서영준씨의 철통보안으로 대통령 주치의 김병준 원장마저 처음에는 시신이 박정희 대통령인지 짐작조차 못했다. 아랫배에 난 반점을 보고서야 알았다. 두 사람은 김병준 원장을 도와 대통령의 피 묻은 옷을 벗겨내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혔다. 최규하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이 박정희 대통령의 알몸 시신을 둘러싸고 서서 묵념하는 영화 속 장면은 감독의 상상일 뿐이다. 국무위원들이 다녀간 뒤 유성옥·서영준씨는 바로 보안사 요원들에게 붙잡혔다.
영문도 모른 채 오로지 윗사람의 지시를 따라야만 했던 10·26사건의 조역들, 그들의 운명을 갈랐던 긴 하루는 이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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