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증을앓고 있는 20대 청년과 그 어머니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말아톤’이 지난 2월13일 개봉 3주 만에 관객 3백만 명을 돌파해 화제다. 지능이 다섯 살에서 멈춰버린 한 청년이 어머니의 헌신적인 뒷바라지에 힘입어 마라톤을 하며 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을 담은 ‘말아톤’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면서 국회의원들이 단체로 영화를 관람하기도 했다.
‘얼짱’ 국회의원으로 통하는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42)은 이 영화를 두 번이나 봤다. 지난 1월27일 박근혜 대표 등 한나라당 지도부와 함께 봤고, 2월2일에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국회 내 연구모임 ‘장애아이 We Can’ 소속 국회의원들과 또 한 번 본 것. 그는 “영화 전문가가 아닌 만큼 영화에 대한 구체적인 평을 할 수는 없으나 장애인 가족에게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세세하게 잘 다룬 영화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도 ‘말아톤’ 광고에서 엄마 김미숙이 “초원이 다리는?” 하고 물으면 조승우가 “백만불짜리 다리” 하고 외치는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겉은 멀쩡한 청년이 어린아이 같은 말과 행동을 하는 모습에서 사람들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 그러나 나 의원은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들이 박장대소할 때도 웃을 수 없었다고 한다. 주인공의 말투와 행동이 아픈 현실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나 의원은 서울대 법학과 동기인 김재호씨와 결혼, 1남1녀를 두었는데 큰딸 유나(12)가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다.
“관객들이 많이 웃는 장면에서도 웃음이 안 나오더라고요. 예컨대 엄마가 ‘사진을 찍을 때는 웃는 거야, 웃어봐’ 하는데 아이가 못 웃어요. 그러니까 거울을 가져다 놓고 아이의 입을 양손으로 잡아당기며 웃는 모습을 가르치죠. 그러고 나서 사람들이 ‘웃어봐’ 하면 아이가 (사진 찍을 때 억지로 미소를 짓는 것처럼 어색하게) 웃어요. 관객들은 그 모습을 보고 웃지만 저는 아주 사소한 것도 일일이 가르쳐야 했던 기억이 나서 웃음이 안 나오더라고요.”
딸만 넷인 ‘딸 부잣집’ 장녀인 나 의원은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 서울대 법대에 진학하고, 박사과정을 거쳐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사로 임용되는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남편 김재호씨 역시 현직 판사. 물 흐르듯 어려움 없이 살아온 그에게 시련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그는 유나가 태어나던 순간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아이를 낳는 순간 간호사와 의사의 호흡이 일순간 멈춰지는 것 같다고 느꼈어요. 다운증후군은 생김새의 특징이 있기 때문에 의사와 간호사는 아이를 보는 순간 정상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 거죠. 그렇지만 피검사와 염색체 검사를 해봐야 하니까 말을 안 했어요. 간호사가 ‘딸이에요’ 하면서 보여 주는데 아이가 못생겼더라고요. 원래 갓 태어난 아이는 못생겼다고 하던데 그런가 보다 했죠. 그러고 나서 하루 정도 있는데 남편 얼굴이 밝지 않더라고요. 왜 그러냐고 물어보는데도 대답을 안 해요. 친구가 그 병원 의사여서 꼬치꼬치 물어보니까 이틀인가 있다가 말을 해주더군요.”
출산 이틀만에 아기의 장애 사실 알아
그전까지 다운증후군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그는 의사로부터 “장애 정도가 워낙 다양하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아이가 우유를 못 빨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충격이 컸을 남편이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고 힘을 얻었다고.
토요일 오후 딸 유나, 아들 현조와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는 나경원 의원.
“서로 이야기 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지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같은 결론을 내렸어요. 열심히 키우자고.”
그는 유나를 낳은 뒤 일을 그만둘까도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보다 3년 먼저 장애아를 낳은 친구가 “아이에게만 매달리면 엄마와 아이 둘 다 스트레스가 심해진다”면서 일을 포기하지 말라고 조언했다고. 그는 영화에서처럼 장애를 가진 자식에게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아붓는 대신 좋은 선생님, 좋은 교육 프로그램을 찾아 아이를 맡겼다고 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대개 장애아를 키우는 엄마는 헌신적으로 아이를 뒷바라지하는 반면 아빠는 가정이 싫다며 외면하는 걸로 그려지는데 그의 남편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틈나는 대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면서 아이를 챙기는 일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판사일 때는 그나마 나았어요. 저 혼자서 자료 보고 판결문 쓰고, 일주일에 한번 정도 재판하기 때문에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밤새 판결문을 쓸지언정 일찍 귀가해서 아이를 돌볼 수 있었죠. 그런데 정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하는 일이 많아서 시간관리하기가 참 힘들어요. 다행히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엄마가 안 챙겨줘도 스스로 제 할 일을 잘해서 참 고마워요. 그래도 퇴근하고 오면 가장 먼저 아이들 알림장을 살펴보게 돼요.”
부모 입장에선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 하지만 장애를 가진 아이에게 마음이 더 가는 것은 당연지사. 나 의원 역시 딸 유나와 아들 현조(8)를 똑같이 대하려고 하지만 그게 잘 안 된다고 한다. 그래서 동생이면서도 양보를 해야 할 때가 많은 현조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유나는 자기가 누나라고 현조를 잘 챙겨줘요. 현조는 지난해까지는 잘 모르다가 요즘에 와서야 누나가 다른 사람들과 좀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같아요. 가끔은 ‘누나는 장애를 가졌다고 공부 안 하고, TV를 봐도 가만히 놔두느냐, 왜 나만 숙제하라고 하냐’면서 투정을 해요. 전 현조한테 비교적 솔직하게 얘기하는 편이에요. ‘누나에게 이런 문제가 있기 때문에 네가 이해를 해줘야 한다’고요. 사실 유나에게는 책을 통해 지식을 전달하기 어렵기 때문에 TV라도 꾸준히 보는 것이 도움이 되거든요.”
장애아라는 이유로 사립학교 입학 거부당했을 때 ‘힘없는 엄마’라는 무기력감에 시달려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이 된 유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신문을 펴서 오늘은 어떤 스포츠 중계를 하는지 살필 정도로 스포츠를 좋아한다고 한다. 특히 축구를 좋아해서 축구 중계가 있는 날이면 외식을 하러 나가자고 해도 싫다고 한다고. 기자 앞에서 축구선수들의 이름을 줄줄 외우고, ‘인사이드 킥’ ‘아웃사이드 킥’ ‘크로스’ 등 축구 용어를 술술 넣어가며 경기 장면을 설명하는 유나의 모습에서 축구에 대한 열의가 느껴졌다. 유나는 축구 중계를 보는 것뿐만 아니라 직접 공을 차는 것도 좋아해 몇 년 전부터 축구교실에서 남자 아이들과 축구를 했는데 지난해 가을 축구를 하다 다리를 다친 뒤로 몇 개월째 쉬고 있다고 한다.
나 의원은 유나를 키우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으로 유치원 재롱잔치 때를 꼽았다. 늘 유나가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던 그는 여러 아이들 속에서 제 몫을 다하고 있는 유나를 발견하고 눈물이 날 만큼 가슴이 뭉클했다고 한다.
축구를 좋아하는 유나가 동생 현조와 함께 축구 선수들의 사인이 담긴 공을 자랑하고 있다.
유나는 긴 팔다리와 늘씬한 몸매가 엄마를 쏙 빼닮았다. 성격이 밝아 붙임성이 좋고, 말도 또박또박 잘한다. 나 의원 역시 유나가 또래 아이들보다 공부를 조금 못할 뿐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사회는 장애인에게 그렇게 관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유나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큰 좌절을 맛봤다고.
나 의원은 유나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자 서울의 한 사립초등학교에 원서를 받으러 갔다. 학교를 둘러본 뒤 교감에게 조심스럽게 유나의 장애를 말했는데 “장애아는 못 받는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는 다시 “수업을 받을 능력이 충분하다”며 교장에게 사정을 했지만 돌아온 건 면박뿐이었다고 한다. 그는 법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생각도 했지만 그렇게 해서 입학을 시킨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고, 아이를 이용해 이름을 알린다는 오해를 사 유나가 상처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접었다고. 그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 판사가 됐지만 장애인을 대하는 사회의 편견과 차별 앞에서는 장애아를 둔 힘없는 엄마일 뿐임을 뼈저리게 절감했다고 한다.
나 의원은 그때 처음으로 정치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고. 그전까지만 해도 그는 신문을 볼 때 1면을 본 뒤 정치면은 건너뛸 정도로 정치에 무관심하고 “법조인으로서 정치인 알기를 우습게 알았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런데 장애인, 특히 장애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절대적으로 미비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법조문을 해석하고 시비를 가리는 일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정치권과의 인연은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 측으로부터 도와 달라는 연락을 받으면서 시작됐다.
“유나의 학교 문제로 정치의 중요성을 느끼긴 했지만 직접 정치에 뛰어들 결심을 하기는 쉽지 않았어요. 판사로 일하면서 나름대로 보람을 느끼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법조계에서 대쪽같은 원칙주의자로 존경받아온 대선배님이 판사 일도 보람되지만 이쪽도 보람되는 일이 많다고 하시니까 마음이 흔들리더라고요. 사명의식을 갖고 일하면 의미 있는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애아 문제 개인이 아닌 사회 전체가 해결하도록 만들고 싶어
92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부산지방법원, 인천지방법원을 거쳐 2002년 2월부터 서울행정법원 판사로 재직하던 그는 결국 그해 9월 중순 사표를 냈다. 그런데 막상 사표를 내고 보니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 아닌가’ 싶어 잠을 제대로 못 이루고, 살이 5kg이나 빠졌다고 한다. 이회창 후보의 정책특보(법률자문역)로 활동하며 생각만큼 큰 보람을 느끼지 못한 이유도 컸다고.
“이회창 후보를 수행하면서 상황판단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했지만 이미 정책적인 것들은 다 준비가 되어 있어서 정치에 막 뛰어든 제가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대선이 끝나고 나서 내 길이 아닌가 보다 싶어서 다시 법조인으로 돌아갔죠.”
짧은 정치인 생활을 정리하고 2003년 2월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그는 예전처럼 정치에 무관심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그해 여름 한나라당에서 그를 당 운영위원으로 선임하고, 지난해 1월엔 17대 총선 공천심사위원으로 선정해 막중한 권한을 맡겼다. 그는 둘 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결정된 뒤에 통보를 받은 터라 큰 의욕이 없었지만 자의반 타의반으로 계속해서 정치계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서 국회의원과 국회의원이 아닌 정치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대통령 탄핵 사태를 지켜보며 국회의원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남매와 함께 공차기를 하고 있는 나 의원. 그는 유나가 자신감을 갖고 몰두할 수 있는 취미와 직업을 찾아주는 것이 큰 과제라고 말한다.
“탄핵 이후 나라가 두 동강으로 나눠지는 것을 보고, ‘아,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정치가 화합하는 쪽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편 가르기로 인한 극한 대치가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우려되더라고요. 그때 꼭 국회의원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죠.”
마침내 지난해 4월 총선에서 국회의원 배지를 단 그가 국회에 들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장애인특위 설치를 주장한 것이다. 보건복지위에서 장애인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보건·복지 문제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지난해 7월 국회의원들의 연구모임인 ‘장애아이, We Can’을 만든 그는 “다행히 지난 연말 (장애인특위 설치에 대한) 여야 합의를 이끌어 냈다”고 말했다.
“인식의 개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만들었어요. 장애인이나 장애아에 대해서 많이 알고 이해하면 모든 정책을 입안할 때 자연스럽게 배려하게 되지 않을까 해서요. 모임에서 공청회를 열어 장애인 조기교육이나 조기치료의 문제, 학령기 장애아의 체육활동 등을 다루기도 했어요.”
부모만큼 아이의 상태를 잘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 의원은 또 특수교육에 부모가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신참 국회의원으로 의욕을 갖고 정신없이 보낸 지난 1년을 돌아보면 그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소홀했던 것이 가장 마음에 걸린다고 한다.
“정치인이 된 후에는 귀가시간이 늦어져서 평일에 집에서 저녁을 먹는 날이 거의 없어요. 남편과의 관계도 같은 법조인일 때와는 사뭇 달라졌죠. 옛날에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알기 때문에 참 편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쪽 분야에 대해 남편이 전혀 모르니까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데 대화시간은 오히려 줄어들고…. 아이들에게도 항상 미안하죠. 지난 연말, 12월24일이었던 것 같아요. 저희는 요즘도 네 식구가 한방에서 자거든요. 누워서 유나한테 ‘유나야, 너 엄마한테 바라는 것 한 가지만 이야기해’ 그랬더니 ‘엄마 아주 가끔 일찍 와’ 하더라고요(웃음).”
일하는 엄마를 이해하며 밝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유나를 보면 나 의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고맙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그는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는 유나가 간혹 밖에서 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받았다며 시무룩해할 때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가끔은 차라리 딸과 자신이 바뀌었으면 하고 기도한다고.
장애아를 둔 부모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아이보다 하루만 늦게 죽는 게 소원’이라고. 딸의 미래를 생각하면 나 의원도 한숨이 절로 나온다고 한다. 그는 당장 내년에 유나를 어떤 중학교에 보낼 것인가를 걱정하고 있다. 요즘은 대안학교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대부분 지방에 있고,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초원이 엄마가 초원이에게 ‘엄마는 너보다 하루라도 늦게 죽는 게 소원이야’ 하고 말하는데 저 역시 제가 없을 때 누가 유나를 돌볼 것인가, 유나가 과연 독립적으로 살 수 있을까가 가장 큰 고민이죠.”
나 의원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악용해 손가락질당하는 의원들도 적지 않지만 앞으로 기본과 원칙에 충실하며 자신과 같은 고민을 더 이상 한 개인이나 가정이 짊어지고 갈 게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해결해줄 수 있도록 하는 데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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