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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화제의 주인공

KBS ‘퀴즈 대한민국’ 왕중왕전에서 우승한 주부 김혜경

“‘주부도 할 수 있다’ 자신감 갖고 도전, 세상일에 꾸준히 관심 갖는 게 중요해요”

■ 기획·구미화 기자 ■ 글·백경선‘자유기고가’ ■ 사진·홍상표‘프리랜서’

2005. 02. 11

지난해 8월 KBS ‘퀴즈 대한민국’에서 우승해 당시 최고 상금인 5천1백68만원을 받아 화제를 모은 주부 김혜경씨. 그가 지난 연말 왕중왕전에서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왕중왕’이 돼 또 한번 화제가 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주부인 그가 퀴즈 영웅으로 등극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KBS ‘퀴즈 대한민국’ 왕중왕전에서 우승한 주부 김혜경

대한민국 ‘아줌마의 힘’은 놀라웠다. 지난 12월26일 역대 퀴즈 영웅 6명이 대결을 벌인 KBS ‘퀴즈 대한민국’ 연말 특집 왕중왕전에서 ‘아줌마 왕중왕’이 탄생한 것. 주인공은 대구에서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주부 김혜경씨(38). 그는 지난해 8월 ‘퀴즈 영웅’으로 등극하며 5천1백68만원이라는 당시 최고 금액의 상금을 받아 이미 한 차례 세간의 관심을 모은 바 있다.
‘퀴즈 대한민국’은 1라운드와 2라운드를 거쳐 두 명의 3라운드 진출자를 선발한 뒤 번갈아가며 5문제를 풀어 최종 우승자를 가린다. 우승자에게만 혼자 마지막 4라운드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데 4문제 중 3문제를 맞히면 1라운드에서 3라운드까지 출연자들이 문제를 맞혀 적립해놓은 모든 상금을 차지할 수 있는 ‘퀴즈 영웅’의 영예를 안게 된다. 매주 3라운드 우승자는 배출되지만 그들이 ‘퀴즈 영웅’으로 등극하기란 쉽지 않다.
먼저 퀴즈 왕중왕이 된 걸 축하한다고 말을 건네자 그는 “실력이 뛰어난 분들이 많아서 기대하지 않았는데 운이 좋았다”며 쑥스러워했다. 그러면서 최후의 승자만이 도전할 수 있는 ‘파이널 도전’을 성공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고 했다. ‘파이널 도전’에 성공하려면 4문제 중 3문제를 맞춰야 하는데 그는 2문제를 맞히는 데 그쳐 상금 획득에 실패했다. 그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다른 참가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한다.
“성공했더라면 왕중왕전 참가자들이 적립한 4천7백50만원 상금 전액을 이공계 장학금으로 줄 수 있었는데 실패해서 마음이 무거워요. 다른 분이 왕중왕이 됐더라면 저보다 더 잘 하셨을 텐데…. 공부 안 한 게 티가 나서 뭐라고 말도 못하겠어요.”
김씨는 자영업을 하는 남편 이성건씨(42)와의 사이에 두 아들 준명(14)과 준하(12)를 둔 결혼 15년차 된 평범한 주부다. 그가 경험한 사회 생활은 경북대 지리학과 졸업 후 결혼 전까지 학습지 교사를 1년 정도 한 게 전부. 그런 그가 명문대 재학생과 졸업생, 외교통상부 직원 등과 실력을 겨뤄 당당히 왕중왕이 됐으니 ‘아줌마’의 저력을 보여줬다고 할 만하다.
“아줌마 하면 그저 억척을 떨고 극성스럽기만 한 걸로 여겨지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알고 보면 우리 주부들 중에 자질이 뛰어난 사람들이 정말 많거든요.”
그는 퀴즈 영웅이 되고, 왕중왕이 된 뒤 주위에서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져 요즘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고 한다.
“그전엔 화장을 잘 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그냥 다니지 못할 정도예요. 생전 안 하던 헤어 롤도 말고 나왔는걸요(웃음). 오늘도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옆 자리에 앉은 아주머니가 절 알아보시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퀴즈왕이 되냐고, 비법 좀 가르쳐달라고 자꾸 묻는 바람에 내내 그 얘기하면서 왔어요.”
매일 신문 두 가지 보고, 매주 신문에 실린 서평 참고해 독서한 것이 주효
그는 퀴즈왕이 되는 비결이 따로 있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평소 꾸준히 세상일에 관심을 갖고 시야를 넓히는 게 중요하다고. 그는 신문을 비롯해 주부 잡지, 아이 교과서 등 일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자신의 선생님이라고 말한다. 특히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신문을 꼼꼼히 읽어온 것이 상식을 넓히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KBS ‘퀴즈 대한민국’ 왕중왕전에서 우승한 주부 김혜경

지난 연말 ‘퀴즈 대한민국’ 출연 당시 모습. 그는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우승해 화제가 됐다.


“결혼 후 아이 둘을 낳고 기르느라 신문 열심히 본 것 말고는 따로 공부한 게 없어요. 매일 신문 두가지를 읽고, 신문에 나오지 않은 자잘한 이야기는 인터넷을 검색해서 봤어요. 그리고 토요일자 신문에 나는 서평을 챙겨 읽고, 마음에 드는 책은 꼭 사서 읽어보는 정도였죠.”
그는 몇 해 전, SBS 주부 대상 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해 2승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허황된 욕심과 급한 성격 때문에 바라던 5승까지 못했다”는 그는 그 뒤로 퀴즈왕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고. 그러던 지난해 4월 잠자고 있던 그의 퀴즈에 대한 욕망이 다시금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큰아이와 같은 나이인 초등학교 6학년짜리 남자아이가 ‘퀴즈 대한민국’에 출연해 3라운드까지 진출하는 걸 보니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출연 신청을 하고 예심을 통과했는데 예심 통과 사흘 만에 방송에 출연하라는 전화가 왔어요. 공부할 새가 없었으니 당연히 떨어졌죠(웃음).”
오랜만에 도전한 퀴즈대회에서 제대로 실력 발휘를 못하고 쓴맛을 본 그는 3개월여 만에 또 한번의 기회를 얻었다. 7월에 방송국에서 ‘패자부활전’을 한다고 연락이 온 것.
“보름 동안 열심히 공부한 뒤, 욕심을 버리고 도전했어요. 욕심을 내면 오히려 결과가 안 좋은 것 같더라고요. 퀴즈 자체를 즐기면서 했더니 퀴즈 영웅이 되었죠.”
그는 이번 왕중왕전에도 파티에 초대받은 기분으로 참가했다고 한다. 같은 프로에 세 번째 출연하다보니 스태프들도 편하게 느껴졌고, 그런 편안한 마음으로 방송을 했기 때문에 실력 발휘를 잘 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그는 방송국이 너무 편하게 느껴진 나머지 대기하고 있던 중 탤런트 소지섭을 우연히 보고 따라가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녹화 장면을 지켜보기도 했다고 한다.
상금의 절반은 남편에게 주고, 나머지는 자신과 가족 친구들을 위해 써
지난해 여름 퀴즈 영웅이 되어 받은 상금 5천여 만원을 어떻게 썼냐고 물으니 그가 “지금껏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상금의 절반은 이공계 장학금으로 내고, 나머지에서 세금을 떼고 나니 통장에 들어온 돈은 2천만원 정도였어요. 갑자기 큰돈이 생기니까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통장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절반을 뚝 떼서 남편 통장에 넣었어요. 전업주부인 제가 언제 또 그렇게 남편에게 많은 용돈을 줄 수 있을까 싶어서요. 돈을 넣은 뒤 남편에게 전화해 통장을 확인해보라고 했더니 남편이 대뜸 ‘왜? 돈 달라고?’ 하더라고요(웃음).”
나중에 통장을 확인한 남편은 “돈벼락을 맞았다”며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김씨는 지금껏 남편에게 그 돈을 어떻게 썼는지 묻지 않았다고.
“나머지 돈으로 큰아들 준명이에게 휴대전화를 사주고, 둘째 준하에겐 MP3를 사줬어요.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께 용돈을 드리고, 막내 동생 카드 빚도 갚아주고요. 친지나 친구들에게 식사 대접도 했어요. 그러고도 돈이 남아서 생활비에 보탰죠. 아줌마답지 않아요?”
“자신을 위해서는 무엇을 했냐”고 묻자 그는 “친구들과 나이트클럽에 두 번 갔다”고 대답한다. 결혼 후 처음 나이트클럽에 가서 신나게 놀았다고. 그리고 평소 읽고 싶었던 책 몇 권을 샀다는 그는 가족과 친지, 친구들에게 마음껏 베풀 수 있어서 마냥 행복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사실 퀴즈 영웅은 순전히 저 혼자 노력해서 얻은 결과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시어머니는 절에 다니며 불공을 드리고, 친정어머니는 밤마다 촛불을 켜놓고 기도를 드렸다는 걸 뒤늦게 알았어요. 그분들의 정성이 아니었으면 아마도 제가 그 자리까지 못 올라갔을 거예요.”

KBS ‘퀴즈 대한민국’ 왕중왕전에서 우승한 주부 김혜경

둘째 아들 준하와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한 김혜경씨. 그는 평소 아이들의 교과서도 꼼꼼히 읽으며 상식을 쌓는다고 한다.


퀴즈 영웅 때와는 달리 이번 왕중왕전에서는 우승 상금 대신 4인이 6박7일간 동남아시아를 여행할 수 있는 여행권이 부상으로 주어졌다. 덕분에 그는 남편, 아이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왕중왕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집에 뭔가 변화가 있지 않았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내이자 엄마, 주부인 자신의 위치는 조금도 달라진 게 없다고. 다만, 남편과 아이들이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퀴즈 왕중왕이 된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흐뭇해했다.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친구들이 ‘부인 똑똑해서 좋겠다’고 얘기한다고. 아이들도 친구들이 엄마에 대해 물어본다고 하는데 그런 소리 들으면 뿌듯하죠.”
남편 이성건씨는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로 무뚝뚝한 편이라고 한다. 그가 우승을 했을 때도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가 전부였다고. 하지만 그는 무뚝뚝하긴 해도 가족을 끔찍이 생각하고, 아내가 하는 일을 묵묵히 지켜봐주는 남편 덕분에 이런 좋은 일이 생겼다며 고마워했다.
그는 “더 이상은 이런 큰 프로그램에서 우승할 수 없을 것 같다”면서도 앞으로 주부 대상 퀴즈 프로그램이 생기면 다시 도전해볼 생각이라고 한다.
“퀴즈 왕중왕, 어쩌면 그리 대단한 게 아닐 수 있는데, 제가 아줌마라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 같아요. 그것도 아줌마에 대한 편견이 아닐까요? 아무튼 우리나라 전업주부들이 집에만 있으면서 의기소침해 있는 게 사실이에요. 이번 기회에 그분들께 제가 힘이 됐길 바랍니다. 다른 주부들도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좋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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