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이하얀(32)이 이혼의 아픔을 딛고 새 출발을 시작했다. 94년 SBS 공채 4기 탤런트로 연기활동을 시작한 그는 96년 영화 ‘어른들은 청어를 굽는다’에 허준호(40)와 함께 출연하면서 연인 사이로 발전해 이듬해 9월 결혼식을 올렸다. 그 후 연예가의 잉꼬부부로 불렸던 두 사람은 결혼 6년 만인 지난해 10월15일 이혼했다.
그 후 허준호는 파경의 아픔을 딛고 묵묵히 연기활동을 계속했지만 이하얀의 소식은 알 길이 없었다. 그런데 이혼 1년 만인 최근 그가 강남구 청담동에 음식점을 창업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문을 연 것은 생고기 전문점 대나무숲. 그는 전부터 같은 이름으로 영업을 하던 음식점을 지난 9월1일부터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이혼 후 몸무게가 7~8kg 빠지고, 갑상선 이상까지 생겨 고생을 하고 있다는데 표정만은 무척 밝아보였다. 아침 8시에 딸 민이(7)를 유치원에 보낸 후 출근해 늦은 밤까지 일한다는 그는 “집에 들어가면 쓰러져 자기 바쁘다”며 근황을 들려주었다.
“저 자신만 생각했다면 이걸 할 용기도 안 났고, 감당도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민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했어요. 빨리 돈 벌어서 아파트라도 사고 싶어요. 가게를 하면서 즐거움을 느껴요. 비록 주인과 손님으로 만나는 것이지만 사람들과 잠깐씩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세상을 참 모르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는 “이혼을 통해 운명대로 사는 게 순리라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또한 “누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제대로 보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저는 최선을 다한 것 같은데…, 뭐가 부족했던 건지 모르겠어요. 아이 낳고, 살림하고…. 그런데 세상은 내가 잘한다고 다 잘되는 건 아닌 모양이에요. 예를 들어 절벽을 올라가는데 끌어주는 손이 내 손을 놓아버리면 어쩔 수가 없잖아요.”
좀더 자세한 이혼 사유를 듣고 싶다고 하자 그는 “옛날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제 이기심만 생각하면 있는 것 없는 것 다 끄집어낼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러고 싶은 생각도 없고, 더욱이 딸에게 그런 상황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아요. 돌이켜보면 제가 억울할 것도 없어요. 자기가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 만물의 이치라는 한 스님의 말이 가슴에 와 닿더군요. 제가 그 사람을 사랑해서 그 사람을 위해 희생과 양보를 선택했던 거잖아요. 누굴 원망할 필요도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 말이 꼭 ‘나는 잘 했는데 이혼을 요구 당했다’는 것처럼 들린다고 하자 “여자와 남자의 차이가 뭔지 알아요? 남자가 여자의 손을 꼭 잡고 있어야 결혼을 하는 거고, 남자가 손을 빼야 이혼이 되는 거예요”라고 한다.
“저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를 사랑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사랑하지 않아요. 처음 결혼생활을 시작할 때 다들 저더러 미쳤다고 했어요. 이제 막 이름이 나기 시작했는데 왜 결혼을 하냐는 거였죠. 전 개의치 않았어요. 그가 왕자님처럼 느껴져서가 아니라 ‘이런 사람은 잘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결혼을 했거든요. 그래서 저 혼자 챙겨주고, 혼자 즐거워하고, 혼자 행복해 했던 것 같아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를 사랑했지만 이제는 사랑하지 않아
그는 지난해 10월15일 이혼을 확정짓고 같은 달 21일 딸과 함께 집을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친정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친정어머니는 힘들게 고생하며 사신 분이에요. 그런 어머니를 힘들게 해드리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방을 얻어 나왔죠.”
이하얀은 딸 민이와 그림으로 대화를 많이 나눈다고 한다.
하지만 이혼의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이삿짐이라고 해야 작은 트럭 하나 분량이었을 뿐인데도 이사한 지 한 달이 다 되도록 짐을 풀지 않았다고 한다. 보다 못해 아는 언니가 대신 정리를 해주었다고.
“제가 살림을 할 때는 정리의 여왕이었어요. 집의 화분에 물 주는 일부터 시작해 제 손을 거치지 않고 자리에 놓여 있는 게 없었는데…. 정말 아무 의욕이 없었어요.”
당시 집안에 틀어박혀 지금이 낮 12시인지 밤 12시인지도 모를 정도로 넋 나간 사람처럼 살았다는 그는 그때 심정이 인생의 빛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헤매는 것 같았다고 한다.
“전 참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어요. 세상이 한없이 원망스러웠죠. 그때 제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준 게 민이였어요.”
아무 의욕이 없어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 있다가도 때가 되면 아이의 밥은 챙겨주는 게 세상 엄마들의 모습이다. 아이는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에게 밥을 먹이다보면 자신도 죽지 않을 만큼 음식을 목에 넘길 수 있었다고.
“물에 빠졌을 때 사람들은 살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하잖아요. 당시 저는 그냥 가라앉고 싶었어요. 그런데 민이가 제 손을 잡고 있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서 제가 지푸라기를 놓으면 안 되잖아요. 아이를 위해서라도 꼭 쥐고 있어야지…. 그래서 민이에게 한없이 미안하고 한없이 고마워요.”
지난해 12월 중순, 그는 무작정 아이와 함께 하와이로 떠났다. 해마다 한 번씩 짬을 내서 온 가족이 가곤 해 허준호와의 추억이 가득한 그곳을 모든 걸 버리기 위해 찾았다. 그곳에서 그는 무량사 주지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의 안정을 얻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의 위로의 말은 하나도 귀에 안 들어왔었는데 ‘인생의 고통은 결국 자기 욕심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스님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어요. 그리고 고통을 생각하고 있으면 굉장히 길게 느껴지지만 바쁘게 살면 ‘찰나’처럼 잠깐인 게 인생이라고 하시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나더군요.”
이하얀은 이혼 후 두 달 동안 딸 민이와 함께 하와이에 가서 마음을 추슬렀다고 한다.
그는 당시 얼마나 힘들었는지 표현하기를 꺼렸다. 하지만 “스님 말씀이 풀 한 포기도 스스로 자살을 안 한대요. 자살이 가장 큰 순리의 역행이라고 하더군요” “하늘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고통만 준대요. 단지 자신의 잘못된 판단과 실수 때문에 자살을 하고 살인을 하는 거죠” 하는 말에서 당시 그가 느낀 고통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2월 말에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여전히 들지 않았다고 한다. 주로 아이와 함께 여행을 다녔다고. 아버지가 계신 제주도에도 가고, 이름 모를 곳에 가서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섞여 며칠씩 머물다 오기도 했다는 것.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잘한 것 같아요. 앞으로 그런 기회는 다시 없을 테니까요. 아름답고 좋은 것을 많이 봤어요. 특히 민이에게 많은 자연공부가 되었죠. 잠자리 눈이 몇 개고 날개가 어떤 무늬로 되어 있는지도 알아요. 벌레이름도 다 알고. 그런데 민이가 요즘 벌레에 흠뻑 빠져서 큰일이에요. 집에서 무당벌레를 키우는가 하면 모기까지 잡아서 키워요(웃음).”
그가 새 삶을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은 지난 6월 초. 삶에 대한 의욕 없이 우울증에 빠져 있던 어느 날, 아이에게 밥을 먹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 활기차게 유치원 가고, 미술학원 가고…. 어린 아이도 이렇게 최선을 다해 사는데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했던 나는 지금 이게 무슨 추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에게 너무 부끄러웠죠. 그래서 화장도 하고, 밥도 먹고, 사람들도 만나기 시작했어요.”
이를 통해 그는 절망과 희망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물론 그 차이를 뛰어넘기가 힘들기는 했지만 말이다.
현재 민이에 대한 양육권은 그가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아이 아빠가 아이를 보고 싶어하고 아이도 아빠를 보고 싶어하면 아이에게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언제든 만나게 할 생각이라고 한다. 천륜은 억지로 끊을 수 없기 때문. 더 나아가 민이가 아빠랑 살기를 원한다면 언제든 보내줄 생각이라고 한다. 하지만 허준호와 민이는 지난 4월 이후 만나지 못했다고.
“아이 문제는 저 혼자 잘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더 시간이 지나 두 사람이 이성적으로 아이만 생각하는 때가 오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이가 힘들어 해서 제가 먼저 두 사람을 만나게 할 생각은 없어요. 지금도 민이가 가끔 이불을 뒤집어쓰고 잘 울어요. 처음엔 그 이유를 잘 몰랐는데 이젠 알 것 같아요. 아이가 아빠 때문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거든요.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죠.”
무슨 일이었냐고 물었지만 그는 “지금은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민이는 얼굴이 아빠 허준호를 꼭 빼닮았다. 성격도 70%는 아빠를 닮은 것 같다고 한다. 그래서 생각을 잘 표현하지 않는다고. 대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 이하얀과는 그림으로 대화를 많이 한다고 한다.
“아이가 표현을 잘 안 하니까 적응을 잘 하는구나 싶었는데 가끔 가다가 울곤 하더라고요. 자기도 쌓이는 게 있었나봐요. 그럴 때면 저도 같이 붙잡고 울어요. 그러다 잠이 들고…. 다음날 아침이면 또 어떻게 힘을 내서 살아요.”
그가 민이가 그린 그림들을 자랑 삼아 보여주었다. 아이가 그림을 무척 좋아한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다. 실제 민이의 스케치북에 그려진 그림은 제법이었다. 무엇보다 기자의 눈에 띈 것은 하와이에 있을 때 그린 그림에 비해 요즘 그린 그림이 훨씬 색이 화려하고 밝아졌다는 것. 이젠 마음의 상처도 많이 씻긴 것 같다.
“이젠 누구를 위해 희생하는 삶이 아닌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고 싶어”
“민이도 바빠요. 학원 다녀야지, 그림 그려야지, 인라인스케이트도 배워야지, 요즘은 또 태권도까지 배우겠다고 하네요.”
민이는 용돈을 주면 쓰지 않고 모아두었다가 “나는 친구들하고 가짜 돈으로 놀이하면 돼. 엄마는 진짜 돈이 필요하니까 엄마 가져” 하며 도로 엄마에게 준다고 한다.
“아무래도 아이에게 미안한 게 많죠. 특히 유치원 체육대회 때 다른 아이들은 양쪽에 엄마 아빠 손잡고 있는데, 민이는 그렇지 못해 미안한 마음에 가슴앓이를 많이 했어요. 그리고 깨달은 것이 반쪽이라도 열심히 우리 딸에게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거예요.”
그는 아직 젊다. 새로운 가정을 꾸릴 생각은 없냐고 하자 그럴 생각도 없고,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고 했다.
“흔히 늙으면 외롭다, 늙으면 짝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사실 제가 필요해야 찾는 거잖아요. 전 그런 생각이 전혀 없어요. 더 솔직히 말을 하면 다가오는 남자가 있어도 그 남자를 믿지 못하고, 제가 피할 것 같아요.”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이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다. 음식점 영업뿐 아니라 방송 출연도 기회가 되면 열심히 하겠다는 것.
그는 이제 자신의 인생은 새로운 시작이라고 했다. 그 말 속에서 긴 방황을 마치고 돌아온 성숙함과 자신감이 느껴졌다.
“이젠 내 색깔로 가고 싶어요. 누구를 위한 인생이 아닌 저를 위한 인생을 살고 싶다는 거죠.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그 책임을 내가 지는 게 가장 아름다운 인생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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