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얀 피부에 보기좋게 살오른 모습이 밉지않은 고 손창호씨의 딸 손화령(23). 웃는 모습은 그렇다쳐도 느릿한 말투까지 꼭 아버지를 닮은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하자 그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한마디 보탠다.
“제가 거울을 보면서 놀랄 때도 있어요. 아빠랑 정말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엄마는 식성이나 행동, 표정까지 너무 닮아서 깜짝깜짝 놀라신대요. 그래서 생전에 아빠가 저한테 더 각별하셨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는 지난 3월 정식 연기자로 데뷔했다. KBS 어린이 드라마 ‘울라불라 블루짱’에서 애견미용사 조경순 역할을 맡은 것. 아버지의 후광을 입은 것은 아닌가 하는 곱지않은 시선도 있지만 오디션을 치러 당당하게 얻어낸 배역이라고 한다.
2세 연기자들의 공통된 딜레마는 부모의 후광으로부터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일 터. 언론이 연기경력이 전무한 그를 주목하는 것도 배우겸 감독으로 활동했던 아버지 손창호씨 때문이라는 것을 그 역시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고군분투, 우여곡절 끝에 연기자가 된 그다. 게다가 연기자가 되겠다는 그를 반대하는 어머니 송주현씨를 설득하는 일은 오디션 통과하는 일보다 백 배쯤 어려운 일이었다고 한다.
“엄마가 반대를 많이 하셨어요. 아버지를 보면서 자식만큼은 절대 연기자를 시키지 않겠다고 다짐하셨던 것 같아요. 아버지는 가정보다 일을 더 챙기시는 분이셨거든요. 한때는 엄마가 권하는 대로 미용사 자격증을 따기도 했어요. 그런데 연기가 아닌 다른 일은 하나도 즐겁지가 않더라고요. 결국 엄마한테 연기를 하고 싶다고 말씀 드리고 말았죠.”
어머니 송씨의 반응이야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었다. 그러나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연기자로 진로를 결정하고 얼굴 빛이 밝아진 딸을 보며 송씨는 “아무리 뜯어말려도 몸 속에 흐르는 피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라며 딸을 지원하는 쪽으로 마음을 돌리고 말았다.
그의 연기스승은 가수 장나라의 아버지이자 배우인 주호성씨다. 손화령은 주씨가 교수로 재직중이던 전남과학대 방송영상학과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연기수업을 받았다. 그에게 연기 스승을 찾아준 사람은 다름아닌 어머니 송씨였다.
“선생님(주호성)께서는 아버지의 선배이시기도 하세요. 제 또래의 딸이 있어서 그런지 저를 딸처럼 아껴주셨어요. 선생님 덕분에 연기에 대한 기초를 잘 닦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그렇게 행복한 줄 몰랐어요. 연기를 하고 있으면 가슴 한켠이 벅차오르는 것이 느껴지거든요.”
KBS ‘울라불라 블루짱’의 출연 배우들은 동물병원 원장을 맡은 윤철형, 안정훈 등 선배 연기자들이 대부분. 극중 그의 짝사랑 상대는 개그맨 고명환이 맡았다. 요즘 그에게는 한가지 고민이 생겼다. 역할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체중이 5kg쯤 불은 것이다. 드라마에서 맡은 조경순이란 역할이 ‘먹을 것을 좋아하는 귀여운 푼수’라지만 여자 연기자에게 체중은 예민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지금이 딱 좋다”는 연출자 말에 안심은 하지만 뚱뚱하게 나온 모습이 속상하다며 금세 샐쭉해진다.
“감독님의 살빼지 말라는 말씀에 마음 탁 놓고 있었는데 화면을 보니까 너무 퉁퉁하게 나오더라고요. 지금부터라도 조절해야 할 것 같아요. 첫 촬영 때는 긴장을 많이 해서 어떻게 대사를 했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예요. 지금은 같이 출연하는 선배님들이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촬영장 가는 일이 즐거워요.”
그와 작고한 부친은 유별난 부녀지간이었다. 손씨의 딸 사랑에 관한 일화 한토막을 소개하자면, 부친은 라면과 같은 인스턴트 음식은 몸에 좋지 않다며 그에게 절대로 먹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그를 데리고 다니기를 좋아했다. 어릴 적부터 공개방송 현장이나 방송국에 아버지를 따라 드나들었으니 그에게 방송국이 낯설 리 없었고 배우라는 직업을 선망하게 된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아빠랑 방송국이나 공개방송이 열리는 놀이동산 같은 데 따라가는 게 좋았어요. 그곳에 가면 동료 연기자분들이 귀엽다며 용돈을 주셨던 기억이 나요. 아빠는 가족들하고 여행을 참 많이 다니셨는데 여름에는 바닷가에 가고 눈이 오면 설악산으로 떠나곤 했었어요. 평소에 너무 바쁘셔서 한꺼번에 잘해주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현재 그는 엄마와 고3 수험생인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부터 집안 생계는 어머니 송씨의 몫이었다. 생활이 어려워 단칸방에서 온 가족이 산 적도 있지만 그는 누구한테도 내색해 본적이 없다고 한다.
“학창시절 친한 친구들도 제가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았다는 사실을 전혀 모를 정도로 집안 얘기를 잘 안했어요. 뒤늦게 제 사정을 안 친구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서운해할 정도였으니까요. 엄마가 일을 나가셔야 했기 때문에 집안일은 물론이고 아침마다 동생 도시락도 제가 싸 주곤 했어요.”
이제 막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으니 의욕도 열정도 넘치는 게 당연하다. 가능하다면 모든 배역에 도전해보고 싶다며 의기충천해 있는 손화령은 연기를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영화나 연극무대도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한다. 시간날 때마다 극장이나 공연장을 찾는다는 그는 어떻게 하면 맡은 역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중이라고.
“당연히 아빠같은 연기자가 되고 싶죠. 하지만 감히 어떻게 아빠와 저를 비교할 수 있겠어요. 아빠는 항상 책을 보시는 분이셨는데 그 학구열부터 제가 못 따라가는 걸요. 바람이라면 저를 그냥 손화령으로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름을 생각하면 유쾌해지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러려면 누구를 모델로 삼기보다 스스로 모델이 될 수 있는 배우가 되어야겠죠.”
먼 훗날 연기자로서 안정되면 의미있는 일도 많이 하고 싶다는 손화령. 그는 외모뿐 아니라 살아 생전 남몰래 고아원을 꾸준히 후원하고 어려운 동료를 형제처럼 챙겼다는 손창호씨의 마음까지도 꼭 닮았다.凍
배우겸 감독이었던 손창호씨의 딸인 손화령은 오디션을 거쳐 당당히 연기자로 데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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