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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이 남자의 변신

영화 ‘범죄의 재구성’에서 떠버리 사기꾼으로 열연한 영화배우 박신양

■ 글·구미화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2004. 05. 04

진지하기로 소문난 배우 박신양이 시시껄렁한 말장난을 즐기는 떠버리 사기꾼으로 변신했다. 4월 중순 개봉한 영화 ‘범죄의 재구성’에서 한국은행을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이는 5인조 사기꾼 중 한 명으로 분한 것. 결혼 초부터 기러기 아빠로 지내며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일과 가족이라는 두 둥지를 오가고 있는 그를 만났다.

영화 ‘범죄의 재구성’에서 떠버리 사기꾼으로 열연한 영화배우 박신양

기분 좋은 얼굴이었다. 지난 3월말 영화 ‘범죄의 재구성’ 시사회장에서 만난 박신양(36)은 열심히 끝내놓은 숙제를 자랑스럽게 책상 위에 올려놓고 선생님의 칭찬을 기다리는 학생마냥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사기꾼 역할은 처음이에요.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한국사람들이 질퍽한 감정을 좋아하기 때문인지 대부분 영화의 주인공이 갑자기 죽는다거나 극단적인 파국으로 치닫는 경향이 있어 불만이었는데 이번 영화는 통쾌하고 후련하게 끝나서 정말 좋았어요. 너무 훌륭해서 촬영이 20∼30% 진행됐을 때 ‘대체 언제까지 좋을 건데?’ 하고 자문했을 정도예요. 좋다고 얘기해버리면 부정탈까봐 말을 감췄지만 사실 마지막 나레이션을 녹음하는 날까지 이렇게 재미있고 훌륭한 촬영은 드물다고 생각했어요.”
백윤식 이문식 염정아 등이 함께 한 영화 ‘범죄의 재구성’은 전문 사기꾼들을 규합해 한국은행에서 50억원을 빼내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박신양은 천재적인 두뇌회전으로 사기극을 계획하고 주도하는 ‘창혁’을 맡았다. 그는 패거리들과 어울려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고, 상황이 곤란해지면 ‘오 쉬잇(Oh shit!)’을 연발하는 천박한 사기꾼 창혁을 연기하는 동시에 다소 무뚝뚝하고 내성적인 창혁의 형, 창호를 연기했다. 1인2역, 혼자서 형제를 연기한 것. 창혁과 외모가 다른 창호를 연기하기 위해 그는 매번 촬영 때마다 분장에만 6시간 이상 할애해야 했다.
“만약 오후 9시에 촬영이 있으면 전 3시부터 분장을 시작했어요. 처음엔 얼굴에 라텍스를 붙이니까 표정 연기가 전혀 안되더라고요. 매번 최선을 다해 분장을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라 결과가 늘 만족스러운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점차 분장이 익숙해지더라고요.”
분장에 드는 시간을 버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라텍스를 얼굴에 덕지덕지 붙인 채로 촬영에 임하는 건 더욱 힘든 일이었다. 분장한 채로 촬영한 지 10시간이 넘어가면 점점 숨이 막혀오고 호흡이 곤란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의 분장이 작품의 키를 쥐고 있는 설정이라 맨 얼굴로 할 수 있는 캐릭터에 비해 매우 재미있고 보람있는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1인2역 위해 6시간 동안 라텍스 붙이고 촬영, 6월엔 브라운관 복귀 예정
박신양은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자신이 맡은 역할에 맞는 모델을 찾고, 영화 속 분위기에 몸을 충분히 단련시키며 만전의 준비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전작인 ‘4인용 식탁’을 찍기 위해 수차례 지하철을 타고, 영화 촬영기간 내내 악몽의 기억을 되새김질했던 그다. 그가 이번 영화, 특히 방방 뜨는 사기꾼과 고지식한 책방 주인 역할을 동시에 소화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는지 궁금했다.
“제가 맡은 역할에 꼭 맞는 모델을 찾기가 쉽지 않았어요. 더욱이 능수능란한 사기꾼인 창혁의 모델이 될 만한 사람을 찾는 건 불가능했죠. 전 사기를 당해본 경험이 없거든요. 반면 형인 창호는 책방 주인이면서 캐릭터가 좀 독특한데 결국 찾아냈죠. 홍익대 부근의 헌책방을 돌아다니다 한 사람을 발견했거든요. 그 사람과 친해지고, 그 사람의 말투를 녹음하면서 창호의 캐릭터를 만들 수 있었어요.”
창호의 어눌한 말투와 느릿느릿한 행동, 소매와 바짓단이 짧은 의상은 모두 홍대 앞 서점주인의 모습을 그대로 옮긴 것이라고 한다.

영화 ‘범죄의 재구성’에서 떠버리 사기꾼으로 열연한 영화배우 박신양

딱 맞는 모델을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이번 영화에 등장하는 창혁의 대사 중 40% 가량을 애드리브에 의존했을 정도로 창혁이란 인물은 박신양 스스로 창조해낸 부분이 크다. 그는 모델을 찾는데 실패한 대신 퍼즐을 맞추듯 여러 사람에게서 창혁의 캐릭터에 어울릴 만한 요소들을 찾아 끼워맞췄다. 창혁의 분주하고 떠들썩한 성격은 매니저의 친구 중 한 사람을 옮겨온 것이고, 안하무인격으로 상대를 무안하게 만드는 냉소적인 면모는 고교시절 친구의 말투를 재현했다고 한다. 알게 모르게 박신양 자신의 기질이 배어나온 부분도 있다. 어린시절 그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장난꾸러기였다고 한다. 동네 장독이라는 장독엔 모조리 모래와 나뭇가지를 쏟아부어 고추장이며 된장을 못 쓰게 만들었는가 하면 짚단에 불을 질러놓고는 범인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된 어른들 앞에서 버젓이 시치미를 뗐던 것. 영화 속 창혁의 능청스러움은 어쩌면 그의 동심이 되살아난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인터뷰 내내 함께 자리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