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한국뮤지컬대상에서 ‘더 플레이’로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유준상(35)이 터프가이 김영호(37)와 콤비를 이뤄 다시 뮤지컬 무대에 오른다. 4월1일부터 연강홀에서 상연되는 뮤지컬 ‘투맨’의 주인공을 맡은 것. 뮤지컬 ‘투맨’은 지난 97년 공연되었던 연극 ‘욕망의 이름이라는 마차’를 뮤지컬로 재구성한 작품으로 고아원에서 같이 자란 형제가 신도시에 포장마차를 열고 장사를 시작하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담았다. 김영호는 동생을 끔찍이 아끼는 듬직한 형으로, 유준상은 돈에 눈이 먼 철부지 동생으로 출연한다.
“영호형은 제게 정말 친형 같은 존재예요. 형이 마음도 아주 깊은 정말 진한 ‘의리파’거든요. 사실 처음 안 건 ‘여우와 솜사탕’ 할 때였어요. 그 드라마 찍을 때 제가 영호 형을 때리는 장면이 있었는데 너무 무섭게 생겨서 감히 때릴 엄두가 안나더라고요. 그래도 연기니까 어떡해요. 눈 딱 감고 힘껏 때렸죠. 너무 세게 때리는 바람에 NG가 났는데 영호형이 잠깐 이리와 보라면서 구석으로 절 끌고 가더라고요. 저 인상을 보세요. 제가 얼마나 긴장을 하고 따라갔겠나. 그랬는데 형이 ‘나 이제껏 한번도 맞아본 적이 없는데 맞아보니까 정말 아프다. 좀 살살 때려라’ 그러더라고요(웃음). 그러면서 친해진 거죠.”
사실 두 사람이 친하다는 것은 조금 의외다.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 유준상이 서글서글한 인상에 누구에게나 쉽게 농담을 건네는 성격이라면 김영호는 평소 거의 아무 말도 안하는데다 인상부터가 험악(?)해보인다. 스스로도 “‘야인시대’ 출연진 수백명 중 촬영장에서 누구 하나 말을 거는 사람이 없었다”고 할 정도다.
“준상이한테 맞은 덕분에 제가 CF도 몇 개 했잖아요. 당시 제가 찍은 CF가 다 맞는 컨셉트였어요(웃음). 사실 준상이하고 있으면 참 편하고 좋아요. 제가 생긴게 험악해서 그런지, 남들이 저한테 말을 잘 안걸어요. 근데 준상이는 저한테 별 잔소리를 다 해요. 담배를 끊으라는 둥, 술 마시고 다니지 말라는 둥…. 준상이한테 잔소리 듣기 싫어서 얼마전에 진짜 담배를 끊었어요. 제가 아주 꼼짝을 못한다니까요.”
유준상한테 잔소리 듣기 싫어 담배 끊은 김영호
두 사람이 얼마나 절친한 사이인지를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 극단 활동 중 만난 동료 배우와 지난 95년 결혼한 김영호는 최근 셋째를 낳았다. 아이를 낳으면 이름을 ‘산’이나 ‘하늘’로 하려고 했는데, 유준상이 “강아! 강하게 자라거라”라고 쓴 화분을 병실로 보낸 것. 결국 그는 셋째 이름을 ‘강’으로 바꿨다.
출산의 기쁨을 맛본 것은 유준상도 마찬가지. 지난해 3·1절날 결혼했던 그는 첫 아이를 크리스마스 이브에 낳아 ‘독특한 기념일 행진’을 이어갔다. 혹 아이 때문에 밤잠을 설쳐 공연 연습이 힘들지 않으냐고 묻자 유준상은 “전혀 힘든 것 없다”고 말했다. 한편 김영호는 의외의 육아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너무 힘들어요. 딸이 셋인데 이제 초등학교 2학년 된 큰 딸을 영어학원에 보냈거든요. 그런데 무슨 시험을 하루에 두 번도 치고 세번도 치고 그러나봐요. 한번 백점 맞을 때마다 1천원씩 주기로 했는데, 그 돈이 만만하지가 않더라고요. 너무 백점을 자주 맞아와요. 게다가 어디 캐나다 특집인가, 무슨 TV 프로그램을 봤었나봐요. 그걸 보더니 자기도 캐나다로 조기유학 보내달라고 졸라대더라고요. 공부에 왜 이렇게 관심이 많은지….”
유준상이 “더 들을 필요없다”며 말을 끊었지만 김영호의 육아 하소연은 계속 됐다.
“아이 울음소리 때문에 힘든 적은 없어요. 제가 아이 울음소리에 잠깰까봐 집사람이 집 밖으로 업고 나가서 재우고 오고 그래요. 우리 집사람이 정말 천사같아요. 저희 집사람 말로는 저도 참 좋은 남편이라고 하더라고요. 집에서 욕먹을 짓도 잘 안하고. 밖에서도…, 욕먹을 짓을 안해요. 그리고 일단 내가 힘이 좋고(웃음).”
MBC 드라마 ‘여우와 솜사탕’에 함께 출연하며 친해진 두 사람은 그 이후 친형제처럼 가깝게 지내왔다고 한다. 김영호는 턱밑에 붙인 반창고를 가리기 위해 시종일관 턱을 잡고 포즈를 취했다. 얼마전 잇몸 수술한 상처가 아직 다 낫지 않았다고.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유준상은 “형수님이 천사인 건 확실하다. 그런데 형이 좋은 남편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토를 달았다. 그럼 홍은희의 내조는 어떨까? 유준상은 “잘해줘요. 같은 연기자이기 때문에 대본 연습할 때 상대역도 해주고, 많은 도움이 되죠”라며 자신도 큰 내조를 받고 있음을 강조했다.
“참, 제가 대본 때문에 영호형한테 감탄한 게 하나 있어요. 대본을 엄청 빨리 외워요. 연습한 지 꽤 됐는데 계속 대본을 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대본 빨리 외우라고 잔소리 좀 했죠. 그랬더니 그 다음 날엔가 대본을 다 외워왔어요. 저희는 사실 마지막 부분까지는 다 못외우고 있었는데, 마지막까지 다 외웠더라고요.”
“비결이 뭐냐”고 묻자 김영호는 웃지도 않고 “머리가 좋아요” 하고 대답했다. 이에 유준상은 “인터뷰는 이제 저만 하겠습니다. 형에겐 말 시키지 말아주세요” 하고 응수했다. 유준상의 그런 반응이 재밌는지 무뚝뚝한 김영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화제를 돌려 이번엔 두 사람의 여가 생활에 대해 물었다.
“집에서 책읽고 음악듣고 하면서 지내요. 피아노도 치고…. 참 운동삼아 권투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 덕분에 제가 체중을 10kg 정도 뺐거든요. 몸도 가볍고 좋더라고요. 그리고 시간나면 제 홈페이지 가서 일기도 남기고…. 요즘은 바빠서 홈피 관리도 잘 못했네요.”
김영호는 유준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저도 인터넷 할 줄 알아요” 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폭소를 터트리며) 제가 이래서 형이 좋아요. 이렇게 엉뚱하게 유머러스한 데가 있다니까요. 형하고 같이 작업해서 정말 즐겁고 좋아요. 춤도 그렇고 듀엣으로 노래 부를 때도 화음이 잘 맞아요. 형이 춤이 안될 것 같죠? 물론 잘 안돼요. 근데 안될 것 같은데 되는 걸 보는 게 또 재밌거든요(웃음). 그리고 노래? 뮤지컬은 지르는 발성이 돼야 하는데 역시 안돼요. 그래서 음악도 록 스타일로 바꿔야 했어요. 하지만 저하고의 호흡은 기가 막혀요.”
침묵을 지킬 듯싶던 김영호는 다시 무뚝뚝한 표정으로 “나 잘해요” 하고 맞받아쳤다. 사실 이 말은 빈 소리가 아니다. 김영호는 지난 90년 ‘강변가요제’에 ‘눈먼 사랑’이라는 노래로 본선까지 올랐던 가수 출신. 이런 인연으로 한 극단의 무대 음악을 담당하다 자연스럽게 연기에 빠져든 인물이다.
유준상이 김영호 추천한 인연으로 얼떨결에 함께 출연하게 돼
“사실 둘이 이 뮤지컬을 같이 하게 된 것은 처음부터 계획된 건 아니고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거예요. 제가 ‘투맨’ 제작자하고 친한데, 형 역할을 할만한 사람이 없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영호형한테 전화해서 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죠. 좋다고 해서 추천했는데, 영호형은 당연히 저하고 같이 한다고 생각했나봐요. 근데 전 이 팀하고 다음 작품을 제작하게 돼있어서 이걸 하면 안됐거든요. 근데 영호형이 제가 안하면 안한다고 해서 같이 하게 된 거죠. 이번에 같이 하시는 분들이 너무 좋아요. 배우는 모두 4명밖에 안나오는데 저하고 형 그리고 김선정, 허윤정씨가 나와요. 더블 캐스팅이라 다른 배우 네 분이 또 계신데 다들 환상의 호흡입니다.”
이 뮤지컬에 바치는 두 사람의 열정은 뜨겁기 그지없다. 평소 잇몸이 좋지 않았던 김영호는 결국 얼마전 잇몸수술을 받았는데, 수술한 데가 아물 때까지 아무 것도 먹지 못하는 상황에서 연습을 강행했다고. 그런가하면 유준상은 무릎을 대고 턴을 하는 장면을 연습하다 부상을 당했는데 그럼에도 몸을 사리지 않고 과감하게 턴을 하고 있다고 한다.
같은 작품에 출연한 인연으로 남다른 우정을 쌓아가고 있는 유준상과 김영호. 두 남자가 보여준 환상의 호흡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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