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유난히 따스했던 지난 3월16일, 경기도 일산의 전망좋은 카페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MBC 새 주말드라마 ‘장미의 전쟁’으로 2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한 최진실(36).
‘장미의 전쟁’은 사랑해서 결혼한 두 남녀가 예기치 않은 갈등을 빚다가 상처를 안고 헤어지지만 뒤늦게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재결합한다는 내용으로, 그와 최수종이 남녀 주인공을 맡았다. 당초 스크린으로 복귀할 예정이던 그가 이 드라마를 선택한 이유는 뭘까.
“설 연휴 전에 이창순 감독님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가족드라마인데 최수종씨가 상대역이다. 같이 하자’고 하셔서 바로 좋다고 했어요. 감독님이나 수종오빠는 평소 제가 좋아하고 존경해왔던 분들이고, 제가 편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이끌어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거든요. 무엇보다 출연진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윤여정 선생님은 꼭 한번 같이 작품을 해보고 싶었던 분이고, 조갑경씨나 강남길 선배도 너무 반가운 분들이고요. 밝고 재미있는 분들이 많아서 좋아요.”
두 아이의 엄마 되고보니 연기할 때 감정 풍부해져
그와 최수종은 이번 드라마로 ‘질투’ 이후 12년 만에 다시 호흡을 맞춰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92년 방영된 ‘질투’는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던 트렌디 드라마로, 극중에서 두 사람의 사랑은 해피엔딩으로 끝이 났다. 이 점에 착안해 남녀 주인공의 회상신에서 ‘질투’의 장면을 보여줄 계획인 이창순 PD는 ‘장미의 전쟁’의 예고편에서도 ‘질투’의 주제가를 사용했다.
“저도 그 노래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예전에 ‘질투’가 방영될 때도 그 노래 전주만 들으면 설레곤 했는데 이번에도 가슴이 뭉클하더라고요. 사실 저는 최수종 최진실 하면 다들 ‘질투’를 떠올릴 테니까 감독님이 일부러 피해가실 줄 알았는데 그렇게 정면 돌파하실 줄은 몰랐어요(웃음).”
극중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사랑 하나만 믿고 결혼했지만 무능한 남편을 답답해하며 숱한 갈등을 빚다 이혼의 위기를 맞는 산부인과 의사 오미연. 지난 2년여간의 공백기 동안 남편 조성민과의 불화로 힘겨운 시간을 보낸 그와는 스스로 인정하듯 닮은 점이 많은 캐릭터다. 그 때문에 이창순 PD는 캐스팅 단계에서 그가 부담을 갖지 않을까 염려하기도 했지만 그는 오히려 단호하게 “문제 많은 부부생활을 표현할 수 없다면 행복한 부부의 삶도 연기할 수 없을 것”이라며 연기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주었다.
“미혼일 때 이런 역할을 맡았으면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극중 배역이 저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연기하기가 편해요. 또 옆에 수종오빠가 있어서 큰 힘이 돼요. 서로 격려해주고 농담도 주고받으면서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거든요. 물론 제 연기를 보면서 사생활을 결부지어 생각하는 시청자도 있을 터라 어떤 평가가 나올지 두렵기도 하지만 마음을 비우고 최선을 다할 거예요. 부부간에 피터지게 싸워야 하는 장면이 있으면 싸울 것이고, 죽도록 행복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면 그렇게 할 거예요.”
그는 지난 3월2일부터 촬영을 시작해 지금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강행군을 하고 있다. 이날도 1, 2회에 방송될 분량을 촬영하기 위해 새벽 5시에 집에서 나왔다고 한다. 화려한 그린 컬러의 프린트 셔츠에 청바지 차림의 그는 그래서인지 전보다 많이 야윈 모습이었다.
그는 촬영을 하면서 그동안 잊고 지냈던 ‘최진실’이라는 이름을 들으며 행복감에 젖는다고 한다.
“그간 마음고생도 많이 했고 촬영 때문에 잠을 못자서 살이 많이 빠졌어요. 그래도 저는 연기할 수 있는 지금이 너무 행복하고 좋아요. 아이들과 함께 했던 시간도 좋았지만 그때는 늘상 환희 엄마, 수민이 엄마로 불려서 최진실이라는 이름을 잊고 있었어요. 그런데 모처럼 ‘최진실씨’ 하는 소리를 들으니까 내가 연기자 최진실이었지 하고 깨닫게 되더라고요. 또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나니 연기할 때의 감정도 풍부해지고, 그간 보지 못했던 스태프와 보조출연자의 고생도 알게 되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47kg이던 몸무게가 둘째 딸 수민이를 임신하면서 64~65kg까지 늘었던 그는 현재 48kg이라고 한다. 지난해 3월 출산 직후 양수와 아이의 몸무게를 합친 4kg이 줄고, 나머지는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감량한 것.
“병원에서 6개월내로 빼지 못하면 평생 간다고 하더라고요. 그 얘기를 듣고 좀 독하게 뺐어요. 그런데 저뿐 아니라 연예인들은 아이 낳고 나서도 살을 잘 빼는 것 같아요. 김희애씨도 날씬하고, 황신혜 언니는 ‘몸짱’까지 되고, 다들 관리를 정말 잘해요. 그게 독하게 마음먹지 않으면 못해요. 체중이 계속 줄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멈추는데 그 고비를 잘 넘기지 못하면 금방 다시 살이 찌거든요. 그런 상태가 보통 일주일 정도 유지되는데 그때 인내심을 갖고 관리를 하면 다시 살이 빠져요. 그런 과정을 반복하다보면 원래 몸무게로 돌아갈 수가 있죠.”
출산후 그는 러닝머신같은 기구를 이용한 운동을 좋아하지 않아 집 근처의 잠원동 한강둔치로 나가 한남대교에서 반포대교까지 환희를 데리고 산책하듯 걸었다고 한다. 왕복하는 데 보통 한시간에서 한시간반 정도 걸리는데 날씨가 궂은 날만 빼고 꾸준히 한 덕분에 체중을 감량할 수 있었다고.
한시간 이상 걷고 코르셋 착용해 출산 전 몸매 회복
“살을 빼는 데는 달리기나 걷기 같은 유산소 운동이 좋아요. 대신 50분 이상 해야 지방이 빠지는 효과를 볼 수 있고, 꾸준히 해야 해요. 거기에 식이요법은 필수예요. 보통 임신부들은 태아를 생각해서 많이 먹는데 너무 과하게 먹어서 문제예요. 출산 후에 식사조절도 잘해야 하지만 임신중일 때도 식사조절이 필요해요. 체중이 많이 불면 임신중독증이나 당뇨 같은 병이 생길 수 있고, 또 출산후에도 살을 빼기가 힘들거든요. 그래서 저는 임신 중에도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지 않았고, 아이를 낳고 나서는 모유를 먹여야 하니까 미역국을 많이 먹었어요. 대신 밥은 전에 먹던 양의 반으로 줄였어요.”
체중 감량에 성공하기까지 그가 가장 효과를 본 것은 코르셋의 착용이었다. 산모들을 위해 따로 나오는 코르셋을 6개월 이상 입고다닌 것. 처음에는 피가 안 통해서 손발이 부을 정도로 입고 있기가 힘들었는데 어느날부터는 편한 느낌이 들었다고.
“코르셋이 꽉 조이니까 못 견디겠다고 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것은 자기 체형에 맞지 않는 사이즈를 입었기 때문이에요. 처음부터 너무 무리하지 말고 자기 체형에 맞는 사이즈로 시작해서 살이 빠지는 단계별로 줄여나가야 해요. 저는 처음에 가장 작은 사이즈로 달라고 했더니 안 주더라고요. ‘후회하실 텐데요. 바꾸러 오지 마세요’ 하면서요. 코르셋을 입으면 그 부위만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다 같이 빠져서 좋아요.”
‘질투’ 이후 12년 만에 상대역으로 호흡을 맞추고 있는 최수종이 곁에서 편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도와줘 큰 힘이 된다는 최진실.
그는 요즘 들어 반신욕도 하고, 비타민도 챙겨 먹으며 건강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첫 촬영이 있던 지난 3월2일 극중 설정상 얇은 옷을 입고 찍어야 했는데 폭설로 인해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 감기에 걸렸기 때문이다.
“제가 원래 겁이 많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커서 건강을 많이 챙겨요. 요즘 들어서 더욱 제 몸을 아끼는 건 아이들 때문이에요. 제가 감기에 걸리니까 아이들한테 금방 전염돼서 저보다 아이들이 더 고생을 하더라고요. 일 때문에 신경도 많이 못 써주는데 저 때문에 그렇게 돼서 얼마나 속상했는지 몰라요.”
그는 지난 2년여 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아이들에게서 큰 힘을 얻었다고 한다. 그의 오른쪽 손가락에 항상 끼워져 있는 세 개의 백금반지에는 언제 어디서든 아이들과 함께 하고픈 그의 마음이 담겨있다. 아이들과 자신의 이름을 딴 h(환희), j(진실), m(수민)이라는 영문 이니셜을 반지에 하나씩 새겨 가락지처럼 겹쳐 끼고 다니는 것.
그렇다고 그가 아이들을 유난스럽게 키우는 극성 엄마는 아니다. 지난 3월1일 첫돌을 맞은 딸 수민이는 함께 사는 이모가 돌봐주고, 네살배기 아들 환희는 또래 아이들처럼 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두 아이 모두 순하고 엄마를 잘 따라서 육아로 인해 힘든 점은 거의 없다고 한다. 오히려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절로 기운이 날 만큼 엄마를 즐겁게 해주는 효자, 효녀라고 자랑한다.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크는 것 같아요. 환희는 말문이 트여서 대화가 돼요. 그리고 자기 표현을 다 해요. 하루는 ‘엄마 사랑해’ 하더니 다음날에는 ‘엄마 너무너무 사랑해’라고 하고, 또 그 다음날에는 ‘엄마 세상에서 너무너무 사랑해’ 라고 해 저를 감동시키더라고요. 또 수민이는 이제 걸음마를 하려고 해요. 그것을 지켜보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딸 키우는 재미가 확실히 다르더군요. 애교가 많거든요(웃음).”
이른 아침부터 촬영이 있는 날에는 전날 아이들과 많이 놀아주거나 환희가 잠들 때까지 동화책을 읽어준다는 최진실. 지금껏 그와 꼭 붙어 있던 아이들이지만 다행히 두 아이 모두 그가 집을 나설 때 칭얼거리며 매달리지 않는다고 한다. 수민이는 오히려 ‘엄마, 빠이 빠이’ 하고 손을 흔들어 보이며 인사를 건네고, 환희도 오빠다운 의젓함을 보인다고. 대신 환희는 그가 대본 연습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한다.
“환희는 대본 때문에 엄마와 노는 시간을 뺏긴다고 생각하는지, 제가 대본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보지 말라며 뺏어가요. 그럴 때 제가 ‘엄마는 지금 연기 연습을 하는 거야’ 하고 설명해주면 제가 대본 읽을 때 따라해요. 제가 박수철, 하고 극중의 남편의 이름을 부르면 환희도 제 목소리를 흉내내며 박수철, 해요(웃음).”
외모가 아빠 조성민의 판박이인 환희는 연기자인 그의 재능을 물려받은 듯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고, 카메라 앞에서의 표정이 풍부하다고. 하지만 그는 환희를 연기자로 키우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한다. 환희가 기필코 원한다면 별 수 없지만 그와 남동생 최진영은 물론 남편 조성민까지 알려진 사람들이라 아이들만큼은 조용히 살기를 바란다고.
그는 이른 아침부터 촬영이 있는 날에는 전날 아이들과 많이 놀아주거나 환희가 잠들 때까지 동화책을 읽어준다고.
“배우란 참 좋은 직업이지만 좋지 않은 일을 겪을 때는 남보다 몇십배 더 힘들어요. 저는 힘든 시기에 외국 여행을 많이 다녔어요. 저와 같은 일을 겪은 사람도 많은데 연예인이라서 그런지 제가 감당해야 하는 아픔이 더 크게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도망치다시피 아이들을 데리고 외국에 나갔는데 뜻밖에도 교민들이 용기를 북돋워주시더라고요. 제 손을 꼭 잡고 빨리 연기자 최진실의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씀하시는데 가슴이 미어지더군요. 사람들이 다 나를 싫어하는 것 같아서 일부러 피해 왔는데 이분들한테 용기를 얻어 다시 돌아가는구나, 나를 좋게 기억해서 용기를 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제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를 새삼 느꼈어요.”
지난 88년 MBC 사극 ‘조선왕조 5백년’으로 연기에 입문한 후 10년 넘게 정상의 자리를 꾸준히 지켜온 최진실. 그 비결에 대해 그는 주변사람들의 따뜻한 관심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
숙명의 라이벌 채시라와 이제 친구 되고 싶어
“드라마든, 영화든 종합예술이라 저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본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모든 게 다 잘 맞아야 해요. 저는 일단 작품 운이 좋았고, 인복도 많았어요. 좀전에도 이진석 감독님을 잠깐 뵈었는데, 14년전쯤 ‘두권의 일기’라는 작품으로 저와 감독님 모두 주목을 받았어요. 이후에 감독님과 ‘우리들의 천국’ ‘별은 내 가슴에’ 같은 좋은 작품도 했고요. 힘든 일을 겪을 때도 감독님께서 많이 도와주셨고, 저를 잊지 않고 찾아주신 덕분에 제 이름이 빛날 수 있었어요.”
그는 이번에 오랜 라이벌 관계였던 채시라와 숙명의 연기 대결을 펼치게 됐다. ‘장미의 전쟁’과 같은 날, 첫 방송된 KBS 새주말드라마 ‘애정의 조건’의 여주인공이 바로 채시라인 것. 두 사람은 68년생 동갑내기에 결혼도 같은 해인 2000년에 하고, 10년 이상 정상의 자리를 지켜온 톱스타라는 공통점 때문에 라이벌 아닌 라이벌이 됐다.
“주변에서 그렇게 몰고가니까 예전에는 라이벌 의식을 가졌지만 이제는 저나 시라나 경쟁관계로 생각하지 않아요. 그 친구 같은 좋은 라이벌이 있어서 최진실이라는 이름도 있었고, 앞으로도 그 친구가 잘돼 그 옆에 항상 제 이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쉬운 점은 그동안 서로 경쟁의식을 갖다보니 마음을 터놓을 만큼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는 거예요. 96년 MBC 주말극 ‘아파트’라는 드라마에 함께 출연한 적이 있지만 그때도 가까워지지 못했어요. 그런데 지금 만나면 연기뿐 아니라 인생과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도 편하게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둘다 엄마가 됐으니까요.”
촬영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신앙심과 아이들에 대한 애정만은 나날이 깊어진다는 최진실은, 날씨가 풀리면 아이들을 데리고 동물원으로 봄 나들이를 다녀올 계획이라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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