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무대에만 매달려 달려온 지 40년. 그는 박정자의 연극이라면 언제 어디라도 두 팔 걷어붙이고 달려가는 열혈 팬을 2백30여명이나 둔 행복한 배우가 되어 있다. 세상에 잘 알려진 ‘꽃봉지회’ 회원은 지금의 그를 누구보다 든든하게 받쳐주는 대들보와도 같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는 강한 카리스마로 관객들을 움쭉달싹 못하게 장악하는 그가 무대 밖으로만 나오면 ‘셈도 잘 못하는’ 어리숙한 여자의 모습으로 변한다는 걸 세상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의 키는 생각보다 작고, 피부는 아기같이 환하고 매끄러우며, 목소리는 나긋나긋하면서도 낮아서, 집중해야 잘 들릴 정도다.
환갑을 맞아 두권의 책을 선보이는 그를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93년의 에세이집 <사람아, 그건 운명이야>와 달리 그가 직접 쓴 책은 아니다. <얘들아, 무대에 서면 신이 난단다>는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아동문학가 최자영씨가 쓴 배우 박정자 이야기이고, <연극배우 박정자>는 연극평론가 김미도씨(서울산업대 교수)가 쓴 평전이다. 두권 모두 ‘배우 인생 40년 인생 60년’인 그에게 바치는 헌정사다. 나아가 그는 또 하나의 ‘반란’을 일으킨다. 10월 22일부터 나흘간 강남의 카페 살롱 드 플로라에서 여는 <소 왓 So What?>이란 이름의 작은 무대. 연극 <억척어멈>이나 <11월의 왈츠>에서 보여준 ‘화끈한 노래 솜씨’를 선보이는 아주 특별한 ‘작은 음악회’다. 그 무대를 준비하고 있는 박정자는 특유의 나직한 목소리로 환갑을 맞은 소회와 연극이야기, 그리고 배우 아닌 ‘인간 박정자’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수다떨듯이 털어 놓았다.

연극인생 40년 내가 예순된 걸 기사화하는 건 그래도 괜찮아. 하지만 ‘연기인생 40년’이라는 타이틀은 정말 촌스러운 거 같아. 하긴 내가 연극을 시작한 게 62년, 이화여대 2학년 문리대 연극반 시절이니까 따지고 보면 올해로 꼭 40년은 40년이 되지. 그때 <페드라>에서 열여섯 마디 대사를 하던 하녀 역할이 내 연극인생의 시작이었다고. 그런데 40년이 뭐 대수겠어. 죽는 날까지 난 무대에 설 것이고 연극배우 박정자로 살 것인데.
<연극배우 박정자> <얘들아 무대에 서면 신이 난단다> 책 두권에 대하여 내가 직접 쓴 건 아니지만, 직접 쓰는 것만큼 겁이 나. 왜냐면 내 이름을 걸고 나오는 책이니까. 한 권은 심지어 제목이 그냥 <연극배우 박정자>야. 글을 안 썼을 뿐이지 그 책을 만들기 위해 인터뷰하고 자료 모은 거 정리하고 건네주고… 참 바빴어. 책 만들 때도 사진은 이거 넣자, 레이아웃은 이렇게 하는 게 어때? 이렇게 까다롭게 굴어도 출판사나 저자인 연극배우 김미도씨가 너무너무 잘해줬어. 평전이라고 하지만 딱딱하지는 않아. 내가 딱딱한 거 싫다고 그랬어. 연극평론가 구희서, 연출가 한태숙, 배우 윤석화가 본 배우 박정자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
<얘들아, 무대에 서면 신이 난단다>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책인데, 연극인으로 살아온 내 소박한 이야기를 전하는 책이야. 이 책 사이사이에 내 딸 연수(애니메이션 전공)가 내 캐릭터를 그려넣었어.
책 만들며 기억나는 일김미도씨가 내 책을 기획하던 단계에 아기를 가졌어. 지금 만삭이야. 말하자면 이중의 산고를 겪은 거지. 그걸 담아낸 머리말이 참 예뻐. ‘내 아이가 (박정자와) 같은 말띠인데 박정자의 열정을 이어받았으면 좋겠다’고 썼거든. 너무 고마워.
<소 왓 So what?>은 어떤 무대 아유, 뮤직 콘서트는 무슨… 난 그냥 노래하는 거야. 난 콘서트라는 말 안써. 날이 갈수록 군더더기가 싫어지니까. 정말 말을 줄이며 살고 싶어. 이 자리를 마련한 건 이 가을을 그냥 넘기기가 섭섭해서야. 내가 노래하길 즐기고, 내 노래 듣기 좋아하는 사람도 조금은 있으니까 그런 자리를 만든 거지. 제목이 왜 <소 왓 So what?>이냐고? 박정자가 노래하는 데 누가 뭐랄 거야? 뭐 어때? 소 왓?(웃음) 그런 뜻이야. 난 그렇게 심플하게 살고 싶거든. 레퍼토리는 <샌프란시스코의 추억>이나 <섀도 오브 유어 스마일> 같은 영어로 부르는 재즈넘버부터 가요에 이르기까지 총 15곡을 준비했지.
음, 무대의상은 늘 그렇듯 디자이너 친구 지춘희 걸 입고.
내가 작은 공간을 좋아하는 까닭 왜 하필 작은 공간에서 노래하냐고? 난 60명이면 꽉 차는 게 좋아. 큰 건 질색이야. 관객들의 눈동자 하나하나 마주치면서 노래 부를 수 있는 게 행복해. 사실 내가 살롱 드 플로라에서 노래하는 건 ‘공연장’ 하면 가지고 있는 거대한 이미지가 있잖아. 그걸 깨고 싶어서야. 일종의 살롱문화를 리드해가고 싶은 욕심 같은 거지. 청담동 뒷골목, 이런 조그만 살롱에서 노래가 울려퍼지는 거 아름답지 않아? 난 세종문화회관에서 노래하는 것처럼 무모한 일이 없다고 생각해. 거긴 나는 나, 너는 너거든. 아무리 훌륭한 가수라도 관객을 끌어들이는 게 얼마나 벅차겠어. 그래서 나, 박정자는 이 작은 곳에서 노래해.

최초의 소극장<페아트르>앞에서 젊은날의 박정자. 옆은 배우 구문회.
여자로서의 사치 난 평소 화장을 안해. 로션이나 영양크림 바르고 립스틱 하나면 끝이야. 그러니 비싼 화장품도 없고 보석도 없어. 가져본 일도 없고 가질 생각도 없어, 그러고 보니 나를 꾸미기 위해서 아무것도 안해. 여자로서의 사치라면…, 난 좋은 가방하고 구두를 좋아해. 옷은 싼 옷도 괜찮지만, 구두하고 핸드백만큼은 좋은 걸 들고 싶어. 구두는 한 서른 켤레 되나? 그렇다고 꼭 명품을 산다는 건 아니야. 그런 집착은 없어. 연극배우로서 난 늘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했기 때문에 그럴 돈도 없고.
여가 시간, 그리고 낭만에 대하여 작년에 결성된 ‘낭만파클럽’은 한국적인 정에 입각한 멋과 낭만을 누리자는 모임이야. 나도 회원인데, 얼마전엔 ‘여가문화학회’라는 게 또 발족했어. 다 연결되는 거지. 결국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해. 그에 관한 정보가 있는 사람, 부지런한 사람만 그걸 누리는 거지.
얼마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약속이 있어서 그 근처 <가을>이라는 데를 갔어. 어머, 거기는 세상에~ 손님들이 막 기타 치고 노래하고 하는데 60, 70년대가 그대로 있는 거야. 난 맨 처음에는 회사원들이 거길 빌려서 단체 회식을 하는 줄만 알았어. 그런데 보니까 처음 보는 사람끼리 같이 노래하고 하는 게 그렇게 좋은 거야. 중간에 누가 색소폰을 부는데, 그만 눈물이 팡팡 나잖아.
그렇지만, 난 사실…. 여가가 두려워. 빈 시간을 겁내. 늘 연습 아니면 공연을 하는 게 습관이 되어 있어서 그런가 봐. 말하자면 중독돼 있는 거지. 거기서 조금 놓여 나면 어쩔 줄 몰라 하는 거야. 마치 둥지를 잃은 새처럼.
매력적인 남자 나, 그 남자 좋아해. 제레미 아이언스. 영화 <데미지>를 보고 나서 너무너무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됐어. 그 남자가 아주 나쁜 짓을 저질렀어도 난 괜찮아. 영화에서 아들의 연인을 사랑하는 바람에 아들이 죽었잖아. 그래도 그 남자가 좋아. 그건 못 말리는 거야. 난 그런 사랑이 온다 해도 안 두려워. 내가 살만큼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결코 안 두려워. 살다 보면 누구나 사랑의 경험을 갖잖아. 난 사랑을 할 때마다 여기서 딱 끝나도 좋아, 하는 마음이 될 때가 많아. 예를 들어 아주 비싼 구두를 신고 나간 날 너무너무 기분이 좋았다면, 그날 저녁 구두굽이 부러져도 아무렇지도 않은 마음. 그게 내겐 사랑이야. 그런데 이런 매력적인 남자가 한국 남자 중에는 없어. 결코 없어.

피부와 몸매관리 피부는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거야. 세수할 땐 샤워 타월에 아무 비누나 묻혀 얼굴을 북북 닦아. 얼굴에 아무것도 안 남도록. 그러고 푹 자면 얼굴에 트러블 하나 없어. 아무리 분장용 화장을 덕지덕지 해도 괜찮아. 복이지. 몸매관리? 난 아무것도 안해. 운동도 안하고, 헬스도 안하고 골프도 물론 안해. 그래도 몸이 이 정도 되는 건 축복이라고 생각해. 난 말이야. 정말 골프 치는 사람 미워해. 그거 한번 나가는데 30만원이 든대. 사람들이 골프 치는 것만큼 연극 공연장에 몰려온다면 난 정말로 행복하겠어. 친구들 중에도 하는 사람들 많은데, 나는 친구들이 골프 얘기만 꺼내면 그래. “니들 다 부르주아야!” 왜 다들 육체적 건강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지? 그런데, 이 얘기하는 바람에 나 싫어하는 사람 많아지는 거 아니야?
요즘 나의 관심사 환경에 대해 많이 생각해. 다른 건 잘 모르니까 일단 쓰레기 분리만큼은 정말 열심히 해. 얼마전에 환경운동단체인 <녹색연합>의 ‘환경소송센터 명예대사’가 됐는데, 내가 그랬어. 환경에 관한 문제라면 얼마든지 나를 써달라고.
그래서 난 머리도 매일 매일 안 감아. 이틀에 한번 감고, 외출 안하는 경우는 사흘에 한번도 감아. 샴푸나 물도 아껴야 하니까. 에어컨이나 히터도 웬만하면 안 틀어. 내가 그래선지 우리딸도 화장 지우는 티슈를 한장 통째로 안 쓰고 반으로 잘라 써. 난 이런 작은 노력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앞으로의 계획 내년 1월 중순 윤석화의 <정미소>에서 예전에 김혜자씨가 했던 <19 그리고 80>을 할 거야. 박정자가 팔순의 할머니가 되는 거지. 장두이씨가 연출을 맡았고, 내가 제작도 겸하고, 아직 상대역은 찾지 못했어. 그래도 <19 그리고 80> 생각만 하면 좋은 의미에서 긴장이 되고, 기쁘고 그래. 정말 잘해야지.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선물하고 싶어. 흥을 주고 감동을 주고 싶어.
행복한가 아니, 안 그래. 초조하기도 하고 뭔진 모르겠어. 어쩌면 연습도 공연도 안하기 때문인지도 몰라. 이래서, 내 팔자는 구속당해야만 행복한가봐. 늘 자유를 얘기하면서도 이게 딜레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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