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원작 영화 ‘치즈인더트랩’의 주인공 오연서를 만났다.
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그녀가 들려준 리얼 라이프 이야기.
배우 오연서(31)의 필모그래피에서 그가 맡았던 캐릭터들의 ‘공통점’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2012)’에선 얄미운 시누이였고, ‘왔다! 장보리(2014)’에선 억척스럽고 긍정적인 캐릭터였다. 언젠가는 철없는 부잣집 막내딸이었다가 또 언젠가는 보이시한 매력의 의사였으며, 또 어딘가에선 국가대표 아이스하키 선수이기도 했다. 굳이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어느 것 하나도 그에게 맞지 않는 옷이 없었다는 거랄까. 어떤 캐릭터를 만나도 자신만의 색으로 표현해낼 줄 아는, 오연서는 영리한 배우다.
그는 최근 개봉한 영화 ‘치즈인더트랩’(이하 ‘치인트’)에서 여대생 ‘홍설’ 역을 맡았다. 영화 ‘치인트’는 2010년부터 연재를 시작한 순끼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대학 캠퍼스를 배경으로 한 로맨스물이다. 원작은 몇 해 전 tvN에서 드라마로도 제작돼 국내를 비롯한 아시아 전역에 ‘치인트 신드롬’을 불러있으켰을 정도로 콘텐츠 파워가 높다. 이 작품의 영화화가 결정됐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원작 팬들은 여자 주인공 ‘홍설’ 역 1순위로 이구동성 오연서를 꼽았다. 작가가 그린 원작의 캐릭터와 완벽한 싱크로율을 지녔다는 것이 이유였다.
여배우에게 있어 로맨스물의 여자 주인공은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작업일 터. 부럽게도 그는 지난해 드라마 ‘엽기적인 그녀’에서는 주원과, 드라마 ‘화유기’에선 이승기와 호흡을 맞췄고 이번엔 영화 ‘치인트’를 통해 박해진을 만났다.
“인생의 마지막 캠퍼스물이라는 생각으로 도전했다”며 수줍게 웃었지만, 누가 뭐래도 오연서의 봄은 지금이다.
원작의 ‘홍설’과 정말 비슷하게 나오더라고요(웃음).
더 닮아 보이려고 ‘홍설’의 스타일 연구를 많이 했어요. 실제 제 나이보다 어린 캐릭터라 어려 보여야 하는 게 최고의 숙제였죠(웃음). 감독님께선 ‘화려하지 않은 세련된 느낌’을 원하셨는데 그게 은근히 어렵더라고요. 요즘 대학생들이 즐겨 찾는 SPA 브랜드 옷을 많이 입었어요. 특히 가방에 신경 썼는데 최대한 ‘대학생스러워’ 보이려고 파일과 에코 백을 챙기기도 했죠.
극 중 홍설은 굉장히 생각이 많고 감수성이 예민한 대학생으로 그려져요. 연기할 때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나요.
홍설이는 입체적인 성격의 인물이 아니에요. 극에서 감정 변화도 그리 크게 그려지지 않고요. 그래서 더 어렵긴 했지만, 홍설의 마음속에 이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표현하려고 했어요. 특히 유정(박해진)과 불편한 사이로 시작해서 사랑에 빠지기까지의 과정을 그려내고 싶었죠. 또 인호(박기웅)를 대할 때, 은택(김현진)이를 대할 때 약간씩 다른 말투와 행동들도 미세하게 표현해보려고 했어요. 하지만 영화 상영 시간의 제약 때문에 그런 부분들이 편집이 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평소 성격은 어때요. 홍설이처럼 고민이 많은 편인가요.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홍설이처럼 망설이는 법이 없어요. 오히려 명확하게 말하는 편이죠. 하지만 제 자신에 대한 고민은 정말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행복의 기준’ 같은 것들요. 어떤 게 진짜 행복한 삶인지, 무슨 일을 할 때 내가 행복한지에 대한 생각을 요즘 많이 해요.
그래서 ‘행복의 기준’에 대한 답은 찾았나요.
아직요. 어떤 날은 현실에 만족하고 살자, 싶다가도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하고 바싹 고삐를 조이는 순간도 있어요. 다른 분들은 어디서 행복을 찾을까 궁금해서 실은 여러 배우들의 인터뷰 기사도 많이 읽어보는 편이에요. 다들 행복을 찾고 계신다는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그걸 찾기 어렵다고 똑같이 푸념하면서요(웃음).
누군가는 여행할 때 제일 행복하대요. 쉴 때 뭘 하나요.
여행을 가도 좀 힘들어하는 편이고, 스포츠도 하고 싶긴 한데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 것 같아요. 실은 제가 되게 정적인 사람이거든요. 오히려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해요. 책을 읽거나, 만화책도 보고 미국 드라마도 보면서 시간을 보내죠. 제 표현대로 하자면, 저만의 방식으로 다른 세계에 다녀오는 거예요. 그 시간만큼은 아무런 잡념에 빠지지 않을 수 있으니까(웃음).
영화나 드라마 중에 로맨스물도 자주 보나요. 사실 로맨스 장르의 특징은 보는 사람의 손발을 오그라들게 하는 게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만(웃음).
하하. 맞아요. 로맨스물을 보는 건 정말 좋아해요. 저도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엄청 몰입해서 보거든요. 그런데 정작 제가 촬영을 하게 되면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웃음). 막상 저더러 그런 장면을 연기하라고 하면… 저도 오그라들어요. 귀여운 표정 지어놓고 “으아아악” 하면서 머리를 쥐어뜯기도 하고요(웃음). 다른 배우의 연기를 보는 것과 실제로 제가 하는 건 정말 다른 차원의 문제예요.
이번 영화를 촬영하면서 가슴이 설렜던 장면이 있나요.
유정이 홍설에게 “너 오늘 예쁘다”라고 말하는 장면요. 그때가 박해진 씨와의 첫 촬영이었는데 왠지 민망하더라고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어딘가 모르게 간질간질해요. 영화를 보시면 알겠지만 장면 장면이 되게 예뻐요.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하고 연극을 보는 장면들을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옛사랑이 떠오르기도 하면서 풋풋하고 설레는 기분이 든다고나 할까요.
상대 배우 박해진 씨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박해진 씨는 되게 자상하고 젠틀한 분이에요. 아직까지 제게 “연서 씨”라고 부르니까요. 저뿐 아니라 모든 배우들을 배려해주셔서 유정과 완벽하게 똑같다고 할 순 없지만, ‘멋진 선배’ ‘멋진 오빠’와 잘 어울리는 분이라고 생각해요.
극 중 ‘유정 선배’는 완벽하지만 베일에 싸인 인물로 그려져요. 실제로도 이런 스타일의 남자를 좋아하는 편인가요.
아뇨. 오히려 빈틈이 있는 사람이 좋아요. 완벽해 보이고 빈틈을 찾기 힘든 사람은 대하기 어렵잖아요. 저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잘 들키는 스타일인데, 상대가 그런 사람이라면 저 역시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를 것 같아요.
로맨스물의 여자 주인공을 연달아 세 번이나 맡았어요. 내로라하는 남자 주인공들과 세 번이나 연인으로 호흡을 맞춘 소감은(웃음).
감사한 일이죠. 차기작으로 고민할 때 친구들의 조언을 듣기도 하는데, 친구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상대 배우가 누구야?”더라고요(웃음). 그런데 배우로서 작품으로 대중을 만날 때 관심을 두는 건 얼마나 사랑스럽게 보일까, 하는 부분이에요. 남자 말고 여자에게요. 특히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선 ‘여자가 봤을 때 정말로 사랑스러운 여자 주인공이 정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에너지’죠. 그런 점에서 카메론 디아즈의 건강한 매력을 닮고 싶기도 하고요.
이번에 대학 새내기를 연기하면서 그 시절 생각도 많이 났을 것 같아요. 20대 시절과 비교했을 때 지금의 오연서가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뭔가요.
그래도 좀 여유가 생기지 않았을까요. 어릴 땐 여유가 없었어요. 일찍이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고(오연서는 지난 2002년 걸 그룹 Luv로 데뷔했다), 예술고등학교를 나온 데다 대학에서도 연극영화학을 전공했거든요. 누군가는 “그래도 넌 아예 무명은 아니었잖아” 하고 말해요. 하지만 저는 데뷔가 빨랐던 것뿐이지, 제 20대 시절도 다른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미래에 대한 고민, 불안감으로 가득 차 있던 시기였죠. 20대를 잘 견뎌왔고, 운 좋게도 이렇게 30대가 된 후에 캠퍼스물을 찍게 됐네요(웃음).
혼란스러운 20대를 어떻게 이겨냈나요.
결국 ‘견디기’더라고요. 배우는 결국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리는 직업이잖아요. 누군가의 눈에 오연서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적합한 배우로 보일 수 있지만, 또 누군가의 눈엔 그렇게 비치지 않을 수 있어요. 이건 객관식 시험처럼 정답이 정해진 문제가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다양한 제 모습을 관객이나 시청자분들께 보여드리려고 더 노력하는 거고요. 이걸 끊임없이 반복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건 ‘견디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배 배우들의 인터뷰 기사를 봐도 다들 하시는 말씀이에요. 중요한 건 ‘인내’라고.
앞으로 맡아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요.
신기하게도 지금껏 악역을 맡아본 적이 없더라고요. 그런데 악역을 해본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묘한 카타르시스가 있대요. 평소에 풀지 못하던 걸 연기로 풀 수 있으니까요. 사람들은 누구나 ‘좋은 사람 콤플렉스’를 갖고 있잖아요. 가만 생각해보면 예전에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윤여정 선생님이 저를 “미친 망아지”라고 부르신 대사가 재밌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매번 참고 눈물 쏟는 캐릭터보다는 사이다처럼 ‘톡’ 쏘는 캐릭터도 재밌잖아요. 뭔가 한 가지 캐릭터에 매여 있고 싶지 않아요. 깍쟁이 같은 이미지로만 남고 싶지 않고, 마냥 예쁘기만 한 캐릭터로 기억되고 싶지도 않고요. 시도하지 않으면 어떤 게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모습인지 알 수 없잖아요. 어떨 땐 발랄한 모습으로, 또 어떨 땐 한없이 고민이 많은 캐릭터로 연기할 수 있다는 게 배우라는 직업의 장점이기도 하고요.
배우 오연서에게 ‘연기’란 어떤 의미인가요.
짝사랑요. 한 발짝 정도 떨어져 있으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는데 너무 가까이 다가서면 부담스럽고 어려운 존재 같아요. 대본을 보면 재밌어서 하루빨리 현장에 가고 싶은데, 막상 나가면 힘들고 어려운 부분들이 꼭 생겨요. 좋지 못한 컨디션 때문에 촬영을 피하고 싶을 때도 있고 그래요. 연기는 정말 어려워요. 잘 지내보고 싶은데, 다가가면 자꾸만 도망가는 짝사랑 같은 존재랄까(웃음). 그래도 용기 내서 꼭 붙잡고 싶은 존재죠.
designer 김영화
사진제공 리틀빅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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