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옥자〉를 접한 건 지난 6월 12일. 서울 대한극장에서 열린 언론 시사회에서였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으로 공개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영화이니만큼, 시사회장 안은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120분 남짓 되는 영화를 보고난 후 옆자리에 앉은 기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기자는 미자가 옥자를 구출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해 지하상가를 뛰어다니는 신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하고, 어떤 기자는 옥자를 처음 만난 제이크 질렌할이 푼수처럼 팔랑거리는 모습이 꼭 국내 방송인을 떠오르게 한다며 웃었다. ‘4대 보험’ ‘비정규직’ 등의 이슈를 깨알처럼 넣은 봉 감독의 디테일을 칭찬하는 기자도 있었다. 영화 〈옥자〉는 그렇게 볼거리와 이야깃거리가 풍성한 영화다.
주관적인 리뷰를 덧붙이자면, 미자가 서울로 떠나기 위해 서랍장을 뒤져 저금통을 깨부수고 금돼지를 챙겨 나가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당시 배우 변희봉(75)은 손녀를 말리다 결국 바닥에 주저앉아 아이처럼 울부짖는 장면을 연기했는데, 그의 현실감 있는 연기에 ‘봉준호 감독이 변희봉 선생님과 작품을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군’ 하고 감탄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잘 알려진 것처럼 배우 변희봉은 봉준호 감독의 ‘남자 뮤즈’로 통한다. 봉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인 영화 〈플란다스의 개〉(2000)
를 시작으로 〈살인의 추억〉(2003),〈괴물〉(2008) 그리고 이번 작품 〈옥자〉까지 총 네 편의 영화를 함께했다.
재미있는 것은 네 작품 모두 변희봉이 연기한 인물의 이름이 ‘희봉’이었다는 것. 봉준호 감독은 캐릭터의 이름을 그렇게 정한 이유에 대해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변희봉 선생님을 생각하며 써서 그렇다”며 에둘러 그를 칭찬했다.
1966년 MBC 공채 2기 성우로 데뷔한 그는 지난 5월,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옥자〉의 배우 자격으로 프랑스 칸에 다녀왔다. 이로써 그는 ‘칸에 다녀온 최고령 배우’라는 타이틀도 달았다. 그에게 축하 인사를 전하며 인터뷰를 요청하니, “그런 자리는 불편하다”며 고사하기를 수차례. 어렵사리 그를 스튜디오로 모실 수 있었다. 그는 스튜디오에 문 앞에 서서 “내가 원래 안하려고 했는데”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뷰에 응하게 된 이유를 한참 동안 설명했다. 그가 말한 이유는 “감사한 사람들에게 이렇게라도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였다. 인터뷰는 데뷔 50여년 만에 영화인의 로망인 칸에 다녀온 심경을 묻는 것으로 시작했다.
▼축하드려요. 칸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셨나요.
설렘과 긴장의 연속이었죠. 칸은 7박 8일 일정으로 다녀왔어요.
그중 영화 〈옥자〉와 관련된 공식행사는 10번 정도였어요. 어떤 날은 자정이 넘은 시간까지 행사를 하기도 해서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했어요. 늙은이니 별 수 있나요. 그래도 행사가 없을 땐 바닷가를 거닐면서 산보도 좀 하고 시내 구경도 다니면서 칸에 온 기분을 좀 냈어요.
▼칸 영화제에 가게 됐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마음이 어떠셨어요.
유명을 달리한 친구의 발인식이 있던 날이었어요. 장례식장에서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서로 안부를 주고받고 있었는데 그때 제가 칸에 가게 됐다는 소식을 듣게 된 거예요. 봉준호 감독이 “선생님, 정말 반가운 소식을 전해드리려고요. 칸에서 〈옥자〉의 출연진을 초대하고 싶다고 연락을 받았어요. 레드카펫을 밟으실 선생님 모습을 떠올리니 웃음이 나네요” 하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더라고요. 처음엔 다른 사람에게 보낼 메시지를 제게 실수로 보낸 건 줄 알았어요. 제가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친구들이 “무슨 일 있느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칸에 가게 됐대. 오래 살다보니 별 일도 다 있구먼” 하고 말했었죠.
▼칸에서 힘들진 않으셨어요.
넷플릭스 덕에 분에 넘치는 환대를 받았습니다. 영화제에서 입을 의상은 물론이고, 헤어·메이크업, 숙소, 행사장까지 가는 교통편까지도 넷플릭스가 전부 준비해줬어요. 노배우가 불편할까 싶어 전담 통역사도 붙여줬고요.
▼해외 유명 배우와 감독들도 많이 만나셨겠어요.
홍콩의 유명 배우이자 감독인 홍금보를 만났어요. 홍금보가 출연한 홍콩 영화를 정말 재밌게 봤었거든요. 반가운 마음에 함께 인증샷도 찍었죠. 미국 배우 더스틴 호프만을 만났을 때 인사를 건넸더니 영화 〈괴물〉에도 출연했던 그 배우 아니냐며 반가워하더라고요. 한국 영화가 세계적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죠.
▼칸에서 가장 놀란 점은 뭐예요.
봉준호 감독의 위상이 정말 어마어마하더라고요. 외국 유명 배우들이 “봉 감독과 함께 작업해보고 싶다”고 입을 모아 말하더군요. 칸에서 공식 일정 이외에 따로 봉 감독을 만난 건 길에서 우연히 딱 한 번 마주친 게 전부예요. 워낙 인기스타인 탓에 얼굴 보기도 힘들었죠. 건물 외벽에 영화 관련 포스터가 쭉 붙어 있는 걸 보고 있었는데 지나는 길에 저를 봤는지 “선생님, 뭐하고 계세요?” 하고는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네요. 못 챙겨드려서 죄송해요” 라고 말하더라고요. 어디 그뿐인가요. 박찬욱 감독을 비롯해 배우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봉 감독이 그 옆을 지나쳐서 부리나케 어디론가 뛰어가더라는 거예요. 인터뷰가 길어지는 바람에 외국 배우들과 잡아 놨던 미팅 약속에 늦었다고 했대요. 지난번에 들은 바로는 봉 감독이 영화 〈옥자〉 관련 인터뷰를 1백 번도 넘게 했다더라고요. 국내 프로모션 일정이 끝나면 감독은 또 미국으로 건너가서 일정을 소화해야 해요. 몸무게가 거의 15kg이 빠졌대요.
▼영화 〈옥자〉를 처음 봤을 땐 어떠셨어요.
칸에 가기 전에 세 번이나 봤는데, 볼 때마다 느낌이 새롭더라고요. 후반부에 미자가 옥자를 가까스로 구출해서 데리고 나오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감시망을 피해 옥자가 새끼 돼지를 얼른 자기 입에 넣는 장면도 인상적이었고요. 거기 있는 돼지들을 전부 구출하는 결말을 생각하기 쉽지만, 결말은 그렇게 되지 않잖아요. 봉 감독이니 생각해낼 수 있었던 결말이겠죠.
▼선생님이 등장하는 장면 중에선 어떤 부분이 떠오르세요.
제이크 질렌할이 옥자를 데리고 떠날 수 있도록 제가 미자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잖아요. 산소 앞에서 손녀에게 금돼지를 내밀며 옥자를 보내게 됐다는 말을 어렵사리 꺼내는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너도 이제 분도 바르고 읍내에도 나가서 남자 친구 만들어야지” 하면서 이 핑계, 저 핑계를 대잖아요. 아마 ‘희봉’은 손녀 미자가 대들면서 말을 듣지 않을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을 거예요. 손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사랑하는 사람이니까요. 손녀를 측은하게 바라보는 할아비의 마음을 표현하려고 애를 썼어요.
▼〈옥자〉에 함께 출연한 외국 배우들과도 많이 친해지셨나요.
얼마 전 집으로 소포가 하나 왔더라고요. 열어보니 틸다 스윈튼이 선물이라며 보낸 백팩이에요. 자기가 모델로 있는 브랜드의 가방에 제 이름을 새겨서 선물한 거더라고요. 나는 다른 배우들에게 어떻게 고마움을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서울 인사동에서 탈 모양의 기념품을 하나씩 사서 돌렸어요. 틸다 거는 특별히 큰 걸로 샀습니다(웃음).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배우에게 중요한 자질은 뭔가요.
도덕성과 성실한 노력요. 이 두 가지는 하루아침에 얻어질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삶을 통해 느끼고 그것이 몸에 배어 있는 게 진짜죠. 제가 말하는 도덕성은 예의범절이 아니에요. 도덕성과 성실함이 몸에 밴 사람은 결코 선배 앞에서 주눅이 들거나 쩔쩔매지 않아요. 오히려 당당하죠. 그게 진짜 좋은 배우라고 생각해요.
▼봉준호 감독과 네 작품을 함께 했어요. 곁에서 본 봉 감독은 어떤 사람인가요.
배우를 즐겁게 만드는 감독이죠. 세상의 모든 직업이 그렇듯, 일이 즐거워야 결과물도 잘 나와요.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 훌륭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봐요.
▼감독의 어떤 점이 배우를 즐겁게 하던가요.
가령 봉준호 감독은 평소에 미소를 절대 잃지 않아요. 속내는 모르겠는데, 같은 장면을 계속 다시 한 번 찍자고 할 때가 있어요. 많을 땐 한 장면을 40번까지 찍을 정도였으니까요. 물론 제가 이렇게 말했더니 “선생님, 〈옥자〉는 안 그랬잖아요” 하고 껄껄 웃습디다. 아무튼 “한 번만 더 찍을까요” 하고 묻는데 미소가 하도 온화해서 화도 못 내요. 그렇다고 배우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도 않아요. 그냥 마음대로 하게 두는 타입이죠. 마음대로 하라고 하니, 배우 입장에선 별생각이 다 들어요. 이렇게 해볼까, 아님 이렇게 해볼까 하면서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거죠. 과정은 힘들지만 답을 찾았을 때의 행복감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죠.
▼봉 감독과의 첫 작품 〈플란다스의 개〉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되셨어요.
사실 그땐 배우 활동을 접을 생각이었어요. 수많은 단역을 거치면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는 형편이었는데, 외환위기가 터지고 나니 많지도 않은 출연료마저도 못 받을 판이라 도저히 살길이 안보이더라고요. 조연 배우의 쓸쓸함을 누구에게 터놓고 말하기도 어려운 시절이었죠. 배역이라도 좋으면 모를까. 제게 주어지는 역할도 죄다 나쁜 놈, 사기꾼 같은 악역뿐이었어요. 왜 내 배우 인생은 이렇게 팍팍할까, 하면서 신세 한탄만 하고 지냈죠. 그러던 차에 봉준호 감독에게 연락이 온 거예요.
▼봉 감독의 작품에서 선생님의 캐릭터는 모두 이름이 ‘희봉’이더라고요.
그러게요. 저를 생각하면서 써서 그렇다더라고요. 〈옥자〉의 경우 스태프들이 거의 외국인이었거든요. 한 번은 촬영장에 “Where is 희봉” 하면서 제 이름을 계속 불러대는 거예요. 그래서 날 찾았냐며 가봤더니, 저를 찾은 게 아니라 등장인물 ‘희봉’의 테스트 촬영에 임할 스태프를 찾는 거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제 원래 이름은 희봉이 아니에요. 변인철이지. 일하다 보니 김인철, 백인철, 박인철 등 이름이 인철인 연예인이 정말 많은 거예요. 지금 시대엔 웃을 일인데, 예전엔 세금이 잘못 청구되는 경우도 많았거든요. 돈도 못 버는데 세금이 왜 이렇게 많이 나왔나 싶어서 상황을 따져봤더니 다른 사람과 헷갈려서 잘못 부과가 됐더라고요. 그래서 바꿨어요.
▼이번 영화 〈옥자〉를 두고 넷플릭스와 극장 측의 대립이 영화계에서 이슈가 됐어요. 영화계의 큰 어른으로서 이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사실 〈옥자〉를 만나기 전까지 넷플릭스가 뭐하는 곳인지도 몰랐어요(웃음). 봉 감독이 “넷플릭스에서 만드는 영화예요” 하고 이야기는 했던 것 같은데 저는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영화가 어디에 걸리든 그건 배우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캐릭터를 연구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할 뿐이죠. 굳이 이야기를 한다면 봉준호 감독 말이 맞아요. 넷플릭스는 넷플릭스대로, 극장은 극장대로 자기들이 정한 규칙이 있는 거니까요. 환경이 달라졌고, 영화 〈옥자〉는 그 선봉장에 선 거죠.
▼데뷔 50년이 넘었어요. 선생님이 나이 들었음을 느낄 땐 언제예요.
저는 젊을 때부터 부지런한 생활을 했어요. 전남 장성 시골 출신이라 매일 새벽 다섯 시 반만 되면 저절로 눈이 떠졌죠. 지금도 새벽에 일어나는 건 제법 잘하는데 잠을 잘 못 자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주일에 세 번은 꼭 산행을 했는데, 요즘은 다리가 살짝 아프더라고요. 아직은 잘 다닐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의사는 이제 산행은 한 번만 하고 운동을 하려거든 평지에서 걸으라고 권하더라고요. 그래서 한동안 산행을 끊고 집 근처를 걸었는데 요즘은 그마저도 거리가 짧아졌어요.
▼새로운 도전을 한다면 어떤 걸 하고 싶으세요.
이젠 늦었겠지만 영화감독을 한 번 해보고 싶어요. 배우라면 누구나 그 마음을 알 거예요.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지 배우의 예술이 아니라는 걸 느껴요. 감독은 배우를 바꿔줄 수 있지만, 배우는 감독이 정해놓은 틀 안에서 연기를 하는 사람이잖아요. 스스로는 폭을 넓히기가 어렵죠. 외국의 경우, 배우로 시작해 나중에 감독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참 부럽더라고요.
▼변희봉이 그리고 싶은 이야기는 어떤 내용인가요.
노인들은 주로 TV 앞에만 있어요. 그분들이 혼자 TV 리모컨만 돌리는 게 아니라 기분 전환하러 극장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그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작품들이 많이 나와야겠죠. 노배우가 만든 나이듦에 관한 이야기. 멋지지 않나요.
사진 조영철 기자 디자인 김영화 의상협찬 몬테비아1930 스타일리스트 장유진
120분 남짓 되는 영화를 보고난 후 옆자리에 앉은 기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기자는 미자가 옥자를 구출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해 지하상가를 뛰어다니는 신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하고, 어떤 기자는 옥자를 처음 만난 제이크 질렌할이 푼수처럼 팔랑거리는 모습이 꼭 국내 방송인을 떠오르게 한다며 웃었다. ‘4대 보험’ ‘비정규직’ 등의 이슈를 깨알처럼 넣은 봉 감독의 디테일을 칭찬하는 기자도 있었다. 영화 〈옥자〉는 그렇게 볼거리와 이야깃거리가 풍성한 영화다.
주관적인 리뷰를 덧붙이자면, 미자가 서울로 떠나기 위해 서랍장을 뒤져 저금통을 깨부수고 금돼지를 챙겨 나가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당시 배우 변희봉(75)은 손녀를 말리다 결국 바닥에 주저앉아 아이처럼 울부짖는 장면을 연기했는데, 그의 현실감 있는 연기에 ‘봉준호 감독이 변희봉 선생님과 작품을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군’ 하고 감탄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잘 알려진 것처럼 배우 변희봉은 봉준호 감독의 ‘남자 뮤즈’로 통한다. 봉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인 영화 〈플란다스의 개〉(2000)
를 시작으로 〈살인의 추억〉(2003),〈괴물〉(2008) 그리고 이번 작품 〈옥자〉까지 총 네 편의 영화를 함께했다.
재미있는 것은 네 작품 모두 변희봉이 연기한 인물의 이름이 ‘희봉’이었다는 것. 봉준호 감독은 캐릭터의 이름을 그렇게 정한 이유에 대해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변희봉 선생님을 생각하며 써서 그렇다”며 에둘러 그를 칭찬했다.
1966년 MBC 공채 2기 성우로 데뷔한 그는 지난 5월,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옥자〉의 배우 자격으로 프랑스 칸에 다녀왔다. 이로써 그는 ‘칸에 다녀온 최고령 배우’라는 타이틀도 달았다. 그에게 축하 인사를 전하며 인터뷰를 요청하니, “그런 자리는 불편하다”며 고사하기를 수차례. 어렵사리 그를 스튜디오로 모실 수 있었다. 그는 스튜디오에 문 앞에 서서 “내가 원래 안하려고 했는데”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뷰에 응하게 된 이유를 한참 동안 설명했다. 그가 말한 이유는 “감사한 사람들에게 이렇게라도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였다. 인터뷰는 데뷔 50여년 만에 영화인의 로망인 칸에 다녀온 심경을 묻는 것으로 시작했다.
▼축하드려요. 칸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셨나요.
설렘과 긴장의 연속이었죠. 칸은 7박 8일 일정으로 다녀왔어요.
그중 영화 〈옥자〉와 관련된 공식행사는 10번 정도였어요. 어떤 날은 자정이 넘은 시간까지 행사를 하기도 해서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했어요. 늙은이니 별 수 있나요. 그래도 행사가 없을 땐 바닷가를 거닐면서 산보도 좀 하고 시내 구경도 다니면서 칸에 온 기분을 좀 냈어요.
▼칸 영화제에 가게 됐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마음이 어떠셨어요.
유명을 달리한 친구의 발인식이 있던 날이었어요. 장례식장에서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서로 안부를 주고받고 있었는데 그때 제가 칸에 가게 됐다는 소식을 듣게 된 거예요. 봉준호 감독이 “선생님, 정말 반가운 소식을 전해드리려고요. 칸에서 〈옥자〉의 출연진을 초대하고 싶다고 연락을 받았어요. 레드카펫을 밟으실 선생님 모습을 떠올리니 웃음이 나네요” 하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더라고요. 처음엔 다른 사람에게 보낼 메시지를 제게 실수로 보낸 건 줄 알았어요. 제가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친구들이 “무슨 일 있느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칸에 가게 됐대. 오래 살다보니 별 일도 다 있구먼” 하고 말했었죠.
▼칸에서 힘들진 않으셨어요.
넷플릭스 덕에 분에 넘치는 환대를 받았습니다. 영화제에서 입을 의상은 물론이고, 헤어·메이크업, 숙소, 행사장까지 가는 교통편까지도 넷플릭스가 전부 준비해줬어요. 노배우가 불편할까 싶어 전담 통역사도 붙여줬고요.
▼해외 유명 배우와 감독들도 많이 만나셨겠어요.
홍콩의 유명 배우이자 감독인 홍금보를 만났어요. 홍금보가 출연한 홍콩 영화를 정말 재밌게 봤었거든요. 반가운 마음에 함께 인증샷도 찍었죠. 미국 배우 더스틴 호프만을 만났을 때 인사를 건넸더니 영화 〈괴물〉에도 출연했던 그 배우 아니냐며 반가워하더라고요. 한국 영화가 세계적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죠.
▼칸에서 가장 놀란 점은 뭐예요.
봉준호 감독의 위상이 정말 어마어마하더라고요. 외국 유명 배우들이 “봉 감독과 함께 작업해보고 싶다”고 입을 모아 말하더군요. 칸에서 공식 일정 이외에 따로 봉 감독을 만난 건 길에서 우연히 딱 한 번 마주친 게 전부예요. 워낙 인기스타인 탓에 얼굴 보기도 힘들었죠. 건물 외벽에 영화 관련 포스터가 쭉 붙어 있는 걸 보고 있었는데 지나는 길에 저를 봤는지 “선생님, 뭐하고 계세요?” 하고는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네요. 못 챙겨드려서 죄송해요” 라고 말하더라고요. 어디 그뿐인가요. 박찬욱 감독을 비롯해 배우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봉 감독이 그 옆을 지나쳐서 부리나케 어디론가 뛰어가더라는 거예요. 인터뷰가 길어지는 바람에 외국 배우들과 잡아 놨던 미팅 약속에 늦었다고 했대요. 지난번에 들은 바로는 봉 감독이 영화 〈옥자〉 관련 인터뷰를 1백 번도 넘게 했다더라고요. 국내 프로모션 일정이 끝나면 감독은 또 미국으로 건너가서 일정을 소화해야 해요. 몸무게가 거의 15kg이 빠졌대요.
▼영화 〈옥자〉를 처음 봤을 땐 어떠셨어요.
칸에 가기 전에 세 번이나 봤는데, 볼 때마다 느낌이 새롭더라고요. 후반부에 미자가 옥자를 가까스로 구출해서 데리고 나오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감시망을 피해 옥자가 새끼 돼지를 얼른 자기 입에 넣는 장면도 인상적이었고요. 거기 있는 돼지들을 전부 구출하는 결말을 생각하기 쉽지만, 결말은 그렇게 되지 않잖아요. 봉 감독이니 생각해낼 수 있었던 결말이겠죠.
▼선생님이 등장하는 장면 중에선 어떤 부분이 떠오르세요.
제이크 질렌할이 옥자를 데리고 떠날 수 있도록 제가 미자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잖아요. 산소 앞에서 손녀에게 금돼지를 내밀며 옥자를 보내게 됐다는 말을 어렵사리 꺼내는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너도 이제 분도 바르고 읍내에도 나가서 남자 친구 만들어야지” 하면서 이 핑계, 저 핑계를 대잖아요. 아마 ‘희봉’은 손녀 미자가 대들면서 말을 듣지 않을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을 거예요. 손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사랑하는 사람이니까요. 손녀를 측은하게 바라보는 할아비의 마음을 표현하려고 애를 썼어요.
▼〈옥자〉에 함께 출연한 외국 배우들과도 많이 친해지셨나요.
얼마 전 집으로 소포가 하나 왔더라고요. 열어보니 틸다 스윈튼이 선물이라며 보낸 백팩이에요. 자기가 모델로 있는 브랜드의 가방에 제 이름을 새겨서 선물한 거더라고요. 나는 다른 배우들에게 어떻게 고마움을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서울 인사동에서 탈 모양의 기념품을 하나씩 사서 돌렸어요. 틸다 거는 특별히 큰 걸로 샀습니다(웃음).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배우에게 중요한 자질은 뭔가요.
도덕성과 성실한 노력요. 이 두 가지는 하루아침에 얻어질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삶을 통해 느끼고 그것이 몸에 배어 있는 게 진짜죠. 제가 말하는 도덕성은 예의범절이 아니에요. 도덕성과 성실함이 몸에 밴 사람은 결코 선배 앞에서 주눅이 들거나 쩔쩔매지 않아요. 오히려 당당하죠. 그게 진짜 좋은 배우라고 생각해요.
▼봉준호 감독과 네 작품을 함께 했어요. 곁에서 본 봉 감독은 어떤 사람인가요.
배우를 즐겁게 만드는 감독이죠. 세상의 모든 직업이 그렇듯, 일이 즐거워야 결과물도 잘 나와요.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 훌륭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봐요.
▼감독의 어떤 점이 배우를 즐겁게 하던가요.
가령 봉준호 감독은 평소에 미소를 절대 잃지 않아요. 속내는 모르겠는데, 같은 장면을 계속 다시 한 번 찍자고 할 때가 있어요. 많을 땐 한 장면을 40번까지 찍을 정도였으니까요. 물론 제가 이렇게 말했더니 “선생님, 〈옥자〉는 안 그랬잖아요” 하고 껄껄 웃습디다. 아무튼 “한 번만 더 찍을까요” 하고 묻는데 미소가 하도 온화해서 화도 못 내요. 그렇다고 배우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도 않아요. 그냥 마음대로 하게 두는 타입이죠. 마음대로 하라고 하니, 배우 입장에선 별생각이 다 들어요. 이렇게 해볼까, 아님 이렇게 해볼까 하면서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거죠. 과정은 힘들지만 답을 찾았을 때의 행복감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죠.
▼봉 감독과의 첫 작품 〈플란다스의 개〉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되셨어요.
사실 그땐 배우 활동을 접을 생각이었어요. 수많은 단역을 거치면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는 형편이었는데, 외환위기가 터지고 나니 많지도 않은 출연료마저도 못 받을 판이라 도저히 살길이 안보이더라고요. 조연 배우의 쓸쓸함을 누구에게 터놓고 말하기도 어려운 시절이었죠. 배역이라도 좋으면 모를까. 제게 주어지는 역할도 죄다 나쁜 놈, 사기꾼 같은 악역뿐이었어요. 왜 내 배우 인생은 이렇게 팍팍할까, 하면서 신세 한탄만 하고 지냈죠. 그러던 차에 봉준호 감독에게 연락이 온 거예요.
▼봉 감독의 작품에서 선생님의 캐릭터는 모두 이름이 ‘희봉’이더라고요.
그러게요. 저를 생각하면서 써서 그렇다더라고요. 〈옥자〉의 경우 스태프들이 거의 외국인이었거든요. 한 번은 촬영장에 “Where is 희봉” 하면서 제 이름을 계속 불러대는 거예요. 그래서 날 찾았냐며 가봤더니, 저를 찾은 게 아니라 등장인물 ‘희봉’의 테스트 촬영에 임할 스태프를 찾는 거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제 원래 이름은 희봉이 아니에요. 변인철이지. 일하다 보니 김인철, 백인철, 박인철 등 이름이 인철인 연예인이 정말 많은 거예요. 지금 시대엔 웃을 일인데, 예전엔 세금이 잘못 청구되는 경우도 많았거든요. 돈도 못 버는데 세금이 왜 이렇게 많이 나왔나 싶어서 상황을 따져봤더니 다른 사람과 헷갈려서 잘못 부과가 됐더라고요. 그래서 바꿨어요.
▼이번 영화 〈옥자〉를 두고 넷플릭스와 극장 측의 대립이 영화계에서 이슈가 됐어요. 영화계의 큰 어른으로서 이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사실 〈옥자〉를 만나기 전까지 넷플릭스가 뭐하는 곳인지도 몰랐어요(웃음). 봉 감독이 “넷플릭스에서 만드는 영화예요” 하고 이야기는 했던 것 같은데 저는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영화가 어디에 걸리든 그건 배우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캐릭터를 연구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할 뿐이죠. 굳이 이야기를 한다면 봉준호 감독 말이 맞아요. 넷플릭스는 넷플릭스대로, 극장은 극장대로 자기들이 정한 규칙이 있는 거니까요. 환경이 달라졌고, 영화 〈옥자〉는 그 선봉장에 선 거죠.
▼데뷔 50년이 넘었어요. 선생님이 나이 들었음을 느낄 땐 언제예요.
저는 젊을 때부터 부지런한 생활을 했어요. 전남 장성 시골 출신이라 매일 새벽 다섯 시 반만 되면 저절로 눈이 떠졌죠. 지금도 새벽에 일어나는 건 제법 잘하는데 잠을 잘 못 자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주일에 세 번은 꼭 산행을 했는데, 요즘은 다리가 살짝 아프더라고요. 아직은 잘 다닐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의사는 이제 산행은 한 번만 하고 운동을 하려거든 평지에서 걸으라고 권하더라고요. 그래서 한동안 산행을 끊고 집 근처를 걸었는데 요즘은 그마저도 거리가 짧아졌어요.
▼새로운 도전을 한다면 어떤 걸 하고 싶으세요.
이젠 늦었겠지만 영화감독을 한 번 해보고 싶어요. 배우라면 누구나 그 마음을 알 거예요.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지 배우의 예술이 아니라는 걸 느껴요. 감독은 배우를 바꿔줄 수 있지만, 배우는 감독이 정해놓은 틀 안에서 연기를 하는 사람이잖아요. 스스로는 폭을 넓히기가 어렵죠. 외국의 경우, 배우로 시작해 나중에 감독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참 부럽더라고요.
▼변희봉이 그리고 싶은 이야기는 어떤 내용인가요.
노인들은 주로 TV 앞에만 있어요. 그분들이 혼자 TV 리모컨만 돌리는 게 아니라 기분 전환하러 극장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그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작품들이 많이 나와야겠죠. 노배우가 만든 나이듦에 관한 이야기. 멋지지 않나요.
사진 조영철 기자 디자인 김영화 의상협찬 몬테비아1930 스타일리스트 장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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