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EOPLE

#interview

여성들에게, 남경필의 진심

editor 김명희 기자

2016. 09. 27

야당과의 연정, 모병제 제안 등 정치적 실험과 이슈를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담론을 이끌어내고 있는 남경필 경기도지사. 정치인으로서의 고민과 비전부터 개인사까지, 그와 나눈 거대하고도 소소한 이야기들.

남경필(51) 경기도지사를 만난 곳은 수원시 팔달산 산책로와 맞닿아 있는 굿모닝하우스다. 1967년부터 22명의 도지사가 거쳐 간 이곳은 지난 4월부터 경기도민들을 위한 문화 공간으로 거듭났다. 소박하지만 기품이 느껴지는 본관 건물은 게스트 하우스와 경기도 역사관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단정하게 가꿔진 잔디 마당에선 수시로 음악회, 플리마켓 같은 이벤트가 열린다. 주말엔 결혼식장으로도 대여하는데 연말까지 예약이 꽉 찼다고 한다. 오래되고 낡아 보수가 필요하지만 예산을 들여 고치기엔 부담스러웠던 이 공간을 리모델링해 도민들 품으로 돌려주자는 아이디어를 낸 이가 바로 남경필 도지사다.

정치인들에겐 ‘지금 이대로도 괜찮을까? 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라는 고민과 상상력이 끊임없이 필요하다.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공관을 도민들을 위해 내놓은 것은 어쩌면 작은 시작에 불과하다. 여당 출신 도지사와 야당이 추천한 부지사가 협치를 통해 도정을 운영하는 경기도식 연정, 징병제의 대안으로 제시한 모병제 그리고 행정 수도 이전 등에서도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흔적이 읽힌다. 남경필 도지사는 1998년 아버지 남평우 전 국회의원이 세상을 떠나고 당시 보궐선거(수원 팔달)에 출마, 33세의 젊은 나이에 국회의원에 당선돼 5선 의원에 경기도지사까지 거침 없이 달려왔다. 젠틀하고 세련된 이미지에 합리적 보수라는 정치 노선은 ‘아재’ 정치인들과 그를 차별화시키는 지점이 되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2014년 잇달아 불거진 이혼, 장남의 군대 내 폭행 사건은 인생의 첫 시련이자, 정치적으로 큰 타격이었다. 그의 모병제 주장은 국면 전환을 위한 무모한 모험일까, ‘신의 한 수’일까.      

▼ 모병제가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제안 배경이 궁금합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저출산, 양극화, 일자리 부족 등 수많은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살 수 있을까요? 저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대적인 구조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고 대한민국 리빌딩이라는 큰 주제 안에 연정과 협치, 수도 이전, 모병제 등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2025년부터 심각한 인구 절벽이 예상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 같은 병력을 유지하려면 징병률을 높여야 해요. 신체적, 정신적으로 뛰어난 사람을 선발해 건강한 군을 유지하려면 징병률 60% 정도가 적당한데 현재 우리 군의 징병률은 80%가 넘습니다. 그러면서 부적응자, 관심 사병도 점점 증가하고 있죠. 저희가 조사한 바로는 2022년에 이 줄어든 인구에도 불구하고 지금과 같은 병력을 유지하려면 징병률을 95%까지 올려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군대 내) 폭력과 인권 유린 문제가 더 심각해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남경필 도지사가 제안하는 모병제의 내용은, 모든 국민이 병역 의무를 지되 8주가량의 기본 군사훈련을 받은 뒤 군 복무 여부를 개인이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다. 입대를 택한 사람은 월급 2백만원 정도를 받는 9급 공무원 대우를 해주고 원하면 장기 복무로 전환할 수 있으며, 입대를 하지 않는 사람은 대체 복무나 세금 또는 봉사활동 등 다른 방식으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도록 한다. 최근 〈머니투데이 the300〉이 미디어리서치와 함께 실시한 여론조사( 표본 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p)에 따르면 모병제 도입 찬성 의견(51.1%)이 반대 의견(43.9%)을 다소 앞섰다. 반대한 응답자는 경제적으로 가난한 젊은 층만 군에 입대할 가능성, 전투력 및 안보의식 약화,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들었다
 



▼ 금수저들에게 합법적으로 군대 면제 권한을 준다는 시각이 있어요. 사회 정의에 반한다는 거죠.

제가 거꾸로 여쭤볼게요. 있는 집 아이들은 병역을 면제받거나 꽃보직으로 가고, 없는 집 아이들이 더 고생하는 곳으로 가는 지금의 구조는 정의로운가요? 모병제를 하면 물론 정말 있는 집 아이들은 군대에 안 갈 수도 있어요. 그런데 없는 집 아이들도 안 갈 수 있는 자유가 생기는 겁니다. 그리고 청년들이 군대에 가면 성공한다는 비전을 가질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뒷받침해주면 입대를 기피하는 경향에도 변화가 생길 거라고 봅니다. 예를 들면 군 복무를 마치면 경찰이나 소방대원 등 공무원으로 취업할 수 있는 길을 터준다거나 대학 장학금을 준다든가, 학비를 깎아준다든가, 직업 교육을 시켜준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복무 기간 동안 월급을 꼬박 모으면 5천만원 정도의 종잣돈을 만들 수 있어요. 그럼 그 돈으로 창업을 할 수도 있고, 여러 명이 스타트업을 시작할 수도 있죠. 사병들에게 월 2백만원씩 월급을 줄 경우 한 해 3조9천억원의 예산이 추가로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63만 병력을 유지하는 비용을 절감하면 충당 가능한 금액입니다.  


▼ 2014년 장남이 군대 내 폭행 문제로 물의를 빚은 적이 있습니다. 그 일 때문에라도 군대 관련 이슈를 제기하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었을 것 같은데요.

아들 문제를 접하고 국민들께 굉장히 송구스러웠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버지로서 잘 가르치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큽니다. 또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정치인으로서 속죄할 수 있는 길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도 군대 내에는 약 5천 명의 관심 병사가 있는데 징병률이 높아지면 더 많은 문제가 생길 겁니다. 모병제의 가장 큰 변화 중의 하나가 군 인권의 획기적인 개선입니다. 저는 이걸 통해서 군에서 다시는 우리 아이 같은 청년, 또 피해를 입는 청년들이 나오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 장남은 반성을 하고 있는지, 본인도 많이 괴로웠을 것 같은데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 일로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많이 후회하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프리카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며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갖고 있고요. 피해자들에게 미안함이 가장 컸고 아버지인 저한테도 미안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저와 아들이 서로를 원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그 일을 겪으면서 서로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난해에는 아들이 있는 아프리카에 가서 일주일동안 배낭을 짊어지고 150km를 함께 걸으며 인간 대 인간, 남자 대 남자로 아주 밑바닥에 있는 속마음까지 꺼내 보이며 깊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 비슷한 시기에 이혼이라는 어려움도 겪었는데.

갑자기 결정한 건 아니고 몇 년 동안 고민한 일입니다. 전처는 자유로운 사람이고, 정치인의 아내로 사는 걸 굉장히 힘들어했습니다. 사실 저희 부부가 어려움에 빠지기 시작한 게 2008년 무렵부터예요. 당시 정권으로부터 사찰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 대상이 제가 아니라 아내였어요. 사업을 하고 있으니까 혹시라도 뭐가 없나 먼지를 턴 거죠. 그 과정에서 전처가 굉장한 고통을 받았습니다. 스트레스 정도가 아니라 우울증이 생겨서 몸무게가 30kg대까지 빠졌는데 회복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도 이혼은 반대했는데 ‘25년간은 부모님의 이름으로 살았고 결혼 후 25년은 정치인 남경필의 아내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아이들도 다 키워 입대시켰으니 이제 내 이름으로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그 사람의 심정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이혼을 하는 과정에서 법륜 스님이 쓰신 <인생수업>이라는 책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거기에 ‘부부간에 인연을 다할 때는 함께 살아준 것에 대해 서로 감사하고 절을 하고 떠나라’는 대목이 있는데, 저희가 정말 그렇게 헤어졌어요. 지금은 아이들과 함께 넷이서 단톡방을 만들어 수다도 떨고, 둘이 가끔 만나 밥도 먹고 하면서 친구처럼 지내요. 이제 그 사람도 많이 안정을 찾았고 편안해졌다고 합니다.   

▼ ‘대권잠룡 남경필 재혼할까’라는 기사도 있더라고요. 재혼 계획이 있으신지요.

좋은 사람 만나면 할 생각입니다. 저는 결혼 생활에 대한 좋은 추억이 많아요. 가족을 만들고 싶고, 또 정치라는 게 압박을 많이 받는 일이라, 그런 걸 함께할 수 있는 동반자가 필요하기도 하고요.

▼ 그러면 지금 만나는 사람은 있으신가요.

아직 그렇게까지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 경기도지사 임기가 절반이 지났습니다. 지난 2년간 도정에 스스로 점수를 매긴다면요.

도민들께서 몇 점을 주시느냐가 중요하죠. 낙제점은 면한 것 같고, 일자리 창출 분야에선 괜찮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 2년간 우리나라에 일자리가 70만 개 정도 새로 생겼는데, 그중 30만 개가 경기도에서 창출됐습니다. 야당과의 연정을 통해 정치 안정을 이룬 점에도 자부심을 느낍니다. 경제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건 좌파도 우파도 아닌 불확실성입니다. 여야가 싸우느라 정책이 갈피를 못 잡으면 기업도 투자를 결정할 수 없죠. 경기도에선 여야 대립으로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을 일이 없으니까 기업들도 안심하고 투자하고 있습니다.



▼ 연정은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시도된 적이 없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 모델인데 여기에 담긴 철학이 궁금합니다.

여야가 대립하는 가장 큰 원인은 승자 독식에 있어요. 권력을 잡은 쪽은 모든 자리를 싹쓸이하고 패자에게는 한 자리를 내주는 데도 인색한 게 우리의 정치 현실입니다. 패자는 억울해서 더 죽기 살기로 싸우게 되고요. 연정의 바탕은 권력을 나누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을 내놓기 시작하면 상대와 소통하고 협력하는 게 가능해집니다.

▼ 2기 연정에서는 실질적인 정책연합이 돋보이는 것 같습니다.

아무도 안 해봤기 때문에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한 일이에요. 처음 이걸 한다고 했을 때 말이 되냐는 반대에 부딪혔던 게 가장 힘들었고, 법과 제도가 미비하고 중앙 정치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도 어려운 점입니다만, 이런 부분들은 얼마 전 연정 2기를 시작하면서 여야가 합의서를 쓰고 학교 급식 증액 지원, 청년 구직 지원금 마련 등 2백88가지 항목에 대해 촘촘하게 실행 계획서를 짜는 방식으로 보완해나가고 있습니다.

▼ 현재 여권의 유력한 대권 주자로 꼽히고 있습니다.

대권 도전에 대한 결정은 내년쯤으로 미루고 과연 제가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지 조금 더 살펴보려고 합니다. 다만 지금처럼 아젠다는 계속 던질 생각입니다. 내년 대선은 과거처럼 서로 약점을 잡아 공격하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꿔갈까를 치열하게 토론하는 자리가 돼야 합니다. 이미 모병제, 연정, 수도 이전 등은 정치권의 이슈가 되고 있고요.

▼ 금수저 정치인이란 이미지가 대권 도전의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요.

대한민국 금수저의 문제는, 그 금수저로 자기와 자기 가족들만 떠 먹는다는 겁니다. 그 큰 금수저로 다른 사람들을 떠 먹이면 어떨까요? 대표적인 사람이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에요. 그는 금수저로 태어났지만 금수저에게 가장 힘든 정책을 폈고, 그것을 기반으로 중산층과 서민층에 큰 혜택을 주었죠.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교수는 〈미래를 말하다〉라는 책에서 루스벨트 시대에 대해 ‘중산층이 늘고 정치적 갈등이 적은, 가장 이상적인 압축 성장을 했던 시대’라 표현했습니다. 누구든 부모로부터 받은 혜택을 남들과 나누고자 한다면 사회에 큰 공헌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박해윤 기자
디자인 김영화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