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한국 최초의 F1 선수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심석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김민재(10) 군이 지난 10월 1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아시아 퍼시픽 모터스포츠 챔피언십’의 카트 스프린트 레이스 커뎃 클래스(만 8세부터 12세 부문)에 출전해 한국인 최초 최연소 아시아 태평양 챔피언 타이틀과 금메달을 획득했다.
천장이 없고 차체도 낮은 1인용 카트는 경주용 자동차 레이싱의 입문 과정으로 불린다. 대다수 F1 드라이버들이 카트로 시작했다. 김민재 군은 카레이서로 활동해온 아버지 김성현(49) 씨를 따라 서킷에 구경 갔다가 2년여 전 레이싱 카트에 입문했다.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경기에 출전해온 김성현 씨는 한국 포뮬러 대표 팀인 이레인모터스포트의 쿼드로 이레인레이싱팀 소속이다. 2019년 ‘슈퍼레이스’ 내구레이스(같은 코스에서 2시간 동안 엔진 내구성, 운전 기술, 체력 등으로 겨루는 경기)에서 정원형 선수와 조를 이뤄 우승한 바 있다. IT 회사를 운영 중인 김성현 씨는 바쁜 일정과 습관성 어깨 탈골로 올해는 경기를 뛰지 않았다.
인터뷰는 경기도 용인 외곽에 위치한 이레인모터스포트에서 이뤄졌다. 김성현 씨는 “경주용 자동차는 엔진 소리가 커서 레이싱팀 사무실은 거의 다 도심 외곽에 있다”고 했다. 1층 정비소에는 김성현 씨가 타던 차도 있었다. 곳곳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구경하던 장난꾸러기는 레이싱 이야기를 시작하자 비로소 자리에 앉았다. 예상했던 골인 지점으로 들어오지 않는 대답이 대부분이었지만, 레이싱 관련 대답만큼은 정주행이었다.
금메달 소식을 듣고 학교 친구들이 뭐라고 하던가요.
민재 | 귀국해서 학교에 갔더니 친구들이 축하한다며 “와!” 소리를 질렀어요. 조금 진정한 후 “진짜 아시아 챔피언이야?” “손가락은 왜 그래?”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뭐, 열심히 후회 없이 잘하고 왔다고 했어요.
멋있네요. 이번 대회 전 다친 손가락은 다 나았나요.
민재 | 지금은 다 나았어요. 태국에서 경기할 땐데 후행 차량이 저를 추월하려다가 제 카트에 올라타 핸들을 잡고 있던 손과 허벅지를 밟고 지나갔어요. 부상 때문에 이번 경기 도중 정말 손가락을 불로 지지는 느낌이었어요. 카트가 달리면 핸들에 계속 진동이 오거든요. 조금만 더 잘하면 포디엄(시상대)이라 정신력 하나로 버텼어요.
아들이 부상 입은 손으로 경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겠어요.
김성현 | 사실 저는 경기장에 가도 아이가 경기하는 모습을 직접 보진 않아요. 간이 작아서요. 대신 휴대폰으로 랩타임과 각 코너별 속도 등을 모니터링하며 어떤 부분에 문제가 있는지 체크해요. 저는 경기가 다 끝난 후 중계 영상을 보고, 실시간은 엄마가 다 챙겨 봅니다. 이렇게 아이가 부상을 입은 후에는 아무래도 경기장에 가는 걸 힘들어하죠.
다행히 결과가 좋았잖아요.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민재 | 하늘을 날아다니는 기분이었어요. 운도 좋았거든요. 1위로 달리던 선수가 실수했을 때 2위로 달리던 선수와 제가 나란히 들어와 원래는 2위였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1위 선수가 엔진을 불법으로 개조해서 출력을 높인 거라 페널티를 받았고 결국 제가 1위가 됐어요.
어린이 경기라고 해서 얕볼 게 아니네요.
민재 | 그럼요. 처음에는 제가 하나도 모르니까 헬멧에 무전기를 달아 코치를 받았어요. 지금은 무전기 없이 미케닉(mechanic·정비 등을 맡는 레이스팀의 구성원)의 수신호를 보면서 타요. 평소 어떤 부분을 개선하면 더 빠른 랩타임이 나올 수 있을지 연습을 통해 고치고 또 고쳐요.
현재 국내에는 총 10여 개의 카트 팀이 있다. 김민재 군이 소속된 기마레이싱(KIMA Racing)은 충북 증평 블랙스톤 벨포레 내에 있는 벨포레 인터내셔널 모토아레나 서킷의 메인 팀이다. 벨포레 인터내셔널 모토아레나는 국내 첫 국제 공인 카트장. 취미로 즐기는 사람부터 선수까지 예약제로 카트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 물론 김민재 군은 팀 메인 드라이버로서 주말마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는다. 보통 훈련이나 경기는 15분 내외로 진행된다.
보통 일과가 어떻게 되나요.
민재 | 카트 타는 날을 제외하곤 학교에 가요. 아침에 일어나 등교했다가 돌아와 숙제가 있으면 하고 없으면 게임하고 놀다 자요. 주말에는 서킷에 가서 연습하기 때문에 친구들이랑 게임할 시간이 없어요.
김성현 | 카트 주행 시간은 일주일에 10시간 정도예요. 다만 대기 시간까지 치면 하루 종일 걸려요. 그런데도 연습 날이면 민재가 1등으로 일어나 빨리 가자고 엄마 아빠를 깨워요.
학원은 다니나요.
민재 | 영어학원만 다녀요. 유명한 레이서가 되려면 영어는 필수니까 부모님께 보내달라고 했어요. 다만 요즘은 대회 일정이 몰려서 쉬고 있어요.
일정이 복잡하긴 하더라고요. 저랑 처음 통화했을 때는 포르투갈에서 태국으로 이동 중이었고, 한국에 들어온 지 일주일 만에 아부다비로 떠난다면서요. 힘들진 않나요.
민재 | 전혀 힘들지 않아요. 그동안은 동남아 쪽 경기에 많이 출전했었는데 오히려 이제는 유럽에 많이 가보고 싶어요. F1 드라이버가 되려면 유럽에서 실력을 더 키우는 게 중요하거든요.
이런 전문적인 내용은 아빠를 통해 알게 된 건가요.
민재 | 아빠한테 듣기도 하는데 영상을 많이 찾아봐요. 그런데 아빠 경기는 본 적이 없어요. 저는 아빠가 타는 박스카(개조 양산차)보다 포뮬러와 카트를 좋아해요. 하하.
김성현 | 민재는 슈트 입은 저의 모습을 연습 상대가 되어주느라 제가 갑자기 카트에 타게 됐을 때 처음 봤을 거예요. 저는 취미 수준이에요. 처음 시작할 당시 제가 온라인 게임 ‘배틀그라운드’의 ‘쿼드로’란 팀을 운영하고 있어서 현재 팀과 연결이 됐어요. 지금은 민재가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레이싱에 대한 욕구가 충족됩니다.
이래저래 예상 밖인데요. 그럼 민재 군은 어떻게 카트를 시작하게 됐나요.
민재 | 경기장에서 포뮬러 타는 어떤 형을 봤는데 정말 멋있었어요. 저도 타보고 싶어서 부모님께 말씀드렸어요.
김성현 | 솔직히 처음에는 재미로 잠깐 하고 말 줄 알았어요. 원래 프라모델 조립을 좋아했거든요. 그리고 우리 팀 유경사 감독님이 민재의 재능을 알아보고 레이싱 카트를 시켜보라 권유했어요. 보호 장비를 착용하니까 레저용 카트보단 안전하다고 생각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죠.
지금은 전혀 가벼운 마음이 아닌데 어쩌죠.
민재 | 제가 지난해 갑자기 실력이 늘면서 열심히 하면 우승도 할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프라모델 대회에 작품을 출품하고 본격적으로 카트에 집중했죠. 작년 초 처음으로 1등을 했어요.
김성현 | 중간에 ‘어, 이게 아닌데’ 생각이 들 때는 이미 포디엄에 서는 실력이 됐어요. 지금은 아이가 한다고 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 도와주려 해요.
그래도 아이가 부상을 입으면 그만두게 하겠다는 생각이 들 듯한데, 말려본 적 있나요.
김성현 | 경기가 치열해지면 버팅이 많이 일어나요. 민재도 사고가 여러 번 났죠. 잠깐 기절한 적도 있어요. 그럴 때마다 관두게 하고 싶단 마음이 드는 건 어느 부모나 똑같을 거예요. 하지만 어떤 스포츠든 사고와 부상은 있을 수 있잖아요. 무엇보다 아이가 꿈을 가지고 열심히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열정을 보면 또 말릴 수가 없어요. 부모의 선택으로 아이를 후회하게 만들면 안 되잖아요. 현재의 꿈이니까 나중엔 바뀔 수도 있고요.
남편에 이어 아이까지 레이싱을 하도록 허락한 아내분이 대단하네요.
김성현 | 아내는 제가 못 보는 것들을 계속 민재 옆을 지키면서 세심하게 챙겨요. 저는 운전과 소통을 해주는 정도고 전체적인 매니지먼트는 아내가 다 해요.
멀찍이서 남편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김성현 씨 아내는 “남편이 부모님의 반대로 젊을 때 레이싱을 하지 못해서 후회가 남을까 봐 더 늦기 전에 도전해보라 했다”며 “오히려 중학생 딸에게 신경을 많이 못 써 그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도대체 이렇게까지 푹 빠지게 만든 카트의 매력이 무엇인가요.
민재 | 속도에서 오는 쾌감이 있어요. 연습하면서 랩타임에서 최고 기록을 세울 때나 최고 기록에 근접할 때도 기분이 좋아요.
카트를 타느라 친구들과는 좀 다른 생활을 하고 있잖아요. 친구들이 부러울 때도 있나요.
민재 | 없어요. 아, 저까지 포함해서 4명이 늘 게임을 같이 하는데요. 친구들이 게임에서 좋은 아이템을 저보다 빨리 뽑았을 때나 저보다 잘할 때 부러워요.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레이싱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을까요.
김성현 | 그때가 되면 본인이 결정해야겠죠. 저는 그만두고 싶으면 언제든지 그만두라고 얘기하는데 민재는 이 말을 제일 싫어해요(웃음).
민재 | 꿈은 크고 높을수록 좋은 거잖아요. 저는 공부도 카트도 다 잘하고 싶어요. 영어나 수학, 과학은 어느 정도 하는데 한자 공부는 좀 그래요.
김성현 | 민재가 워낙 열심히 하니까 주변 분들이 최대한 편의를 봐주고 많이 도와줘요. 운이 좋은 거죠.
경제적 부담도 만만치 않을 듯해요. 어느 정도 드나요.
김성현 | 일단 카트 엔진과 섀시, 보호 장비 등을 합하면 처음에 대략 1300만 원 정도 들어요. 섀시는 타다 보면 변형이 오기도 하고 사고로 틀어지면 교환해줘야 하는 소모품이에요. 엔진도 주기적으로 손봐줘야 하고요. 여기에 경기장 주행비, 정비사 비용, 카트 보관비 등까지 합하면 민재가 주행 연습을 많이 하는 편이라 한 달 평균 350만 원 정도 들어요.
해외 경기에 나가면 더 들겠네요.
김성현 | 아직 민재가 어려서 엄마 아빠가 함께 가니까 항공료부터 숙소, 식대 등이 무조건 곱하기 3이에요. 현지에서 고용한 미케닉 비용도 들고요. 다행히 민재가 해외 경기를 하러 스페인에 오면 언제든 자기 집에 머물라고 해주는 분도 생겼어요. 일본계 친구인데, 아시아인이 유럽 경기에 출전하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는 걸 잘 아니까 배려해주는 거예요.
해외 경기에는 지금까지 몇 번 정도 나갔나요.
민재 | 결승 횟수로 하면 14회 정도인데 일본 비중이 제일 크고 말레이시아, 유럽 순이에요.
민재 군, 아빠에게 많이 고마워해야겠어요. 이런 이야기 나눠본 적 있나요.
민재 | 고마워요. 고마운데 제가 열심히 하는 게 효도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웃음). 그리고 저는 엄마를 더 좋아해요. 아빠는 잘 안 놀아줘요.
김성현 | 저는 그냥 민재가 한 번씩 안아주면 만족해요. 민재가 경기하고 나오면서 저를 탁 안아줄 때 멋있어요. 또 제가 민재를 보며 배우는 게 많아요. 레이싱을 할 때도 그렇고, 평소 할 땐 하고 놀 땐 놀고 집중을 잘해요. 제 아들이지만 매력이 있습니다.
민재 군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민재 | 일단 F1 드라이버가 돼 더 스릴 있는 경기를 해보고 싶어요. 제 롤 모델은 막스 베르스타펜 선수예요. 그 선수를 좋아하는 이유는 첫째로 인성이 훌륭하고 팬 서비스가 좋아요. 둘째는 레이싱 실력이 아주 뛰어나요. 저도 그런 멋진 챔피언이 되는 게 목표예요.
김성현 | 레이싱 결과는 끝나봐야 알아요. 그저 노력하는 거죠. 그래서 내년에는 이탈리아로 일종의 유학을 갑니다. 이탈리아 비렐아트팀 공식 드라이버로 내년 이탈리아 시즌을 다 뛰고 올 계획이에요. 이왕 시작한 거 끝까지 달려보려고요.
김민재 군이 좋아하는 네덜란드 출신의 오라클 레드불 레이싱 소속 F1 드라이버 막스 베르스타펜 선수는 올해 25세이다. 카트로 시작해 9세 때 벨기에 주니어 카트 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했고, 17세인 2015년 F1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로 데뷔했다. 이번 시즌에는 16승을 기록하며 단일 시즌 역대 최다 우승 기록을 경신했다. 막스 베르스타펜 선수의 아버지도 전직 F1 레이싱 드라이버다. 그야말로 맞춤형 롤 모델인 셈.
하지만 레이싱은 드라이버의 기량뿐만 아니라 날씨, 차량 상태, 사고 등 변수가 많다. 이제 막 출발점을 지난 이 장기 레이스는 과연 어떻게 끝이 날까. 이왕이면 이 인터뷰가 자료 화면으로 쓰이는 날이 오면 좋겠다.
#카트 #레이싱 #김민재 #여성동아
천장이 없고 차체도 낮은 1인용 카트는 경주용 자동차 레이싱의 입문 과정으로 불린다. 대다수 F1 드라이버들이 카트로 시작했다. 김민재 군은 카레이서로 활동해온 아버지 김성현(49) 씨를 따라 서킷에 구경 갔다가 2년여 전 레이싱 카트에 입문했다.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경기에 출전해온 김성현 씨는 한국 포뮬러 대표 팀인 이레인모터스포트의 쿼드로 이레인레이싱팀 소속이다. 2019년 ‘슈퍼레이스’ 내구레이스(같은 코스에서 2시간 동안 엔진 내구성, 운전 기술, 체력 등으로 겨루는 경기)에서 정원형 선수와 조를 이뤄 우승한 바 있다. IT 회사를 운영 중인 김성현 씨는 바쁜 일정과 습관성 어깨 탈골로 올해는 경기를 뛰지 않았다.
레이싱은 해도 아들 경기는 직접 못 보는 아빠
인터뷰는 경기도 용인 외곽에 위치한 이레인모터스포트에서 이뤄졌다. 김성현 씨는 “경주용 자동차는 엔진 소리가 커서 레이싱팀 사무실은 거의 다 도심 외곽에 있다”고 했다. 1층 정비소에는 김성현 씨가 타던 차도 있었다. 곳곳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구경하던 장난꾸러기는 레이싱 이야기를 시작하자 비로소 자리에 앉았다. 예상했던 골인 지점으로 들어오지 않는 대답이 대부분이었지만, 레이싱 관련 대답만큼은 정주행이었다.
지난해까지 김성현 씨가 탔던 경주용차 앞에서 포즈를 취한 부자.
민재 | 귀국해서 학교에 갔더니 친구들이 축하한다며 “와!” 소리를 질렀어요. 조금 진정한 후 “진짜 아시아 챔피언이야?” “손가락은 왜 그래?”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뭐, 열심히 후회 없이 잘하고 왔다고 했어요.
멋있네요. 이번 대회 전 다친 손가락은 다 나았나요.
민재 | 지금은 다 나았어요. 태국에서 경기할 땐데 후행 차량이 저를 추월하려다가 제 카트에 올라타 핸들을 잡고 있던 손과 허벅지를 밟고 지나갔어요. 부상 때문에 이번 경기 도중 정말 손가락을 불로 지지는 느낌이었어요. 카트가 달리면 핸들에 계속 진동이 오거든요. 조금만 더 잘하면 포디엄(시상대)이라 정신력 하나로 버텼어요.
아들이 부상 입은 손으로 경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겠어요.
김성현 | 사실 저는 경기장에 가도 아이가 경기하는 모습을 직접 보진 않아요. 간이 작아서요. 대신 휴대폰으로 랩타임과 각 코너별 속도 등을 모니터링하며 어떤 부분에 문제가 있는지 체크해요. 저는 경기가 다 끝난 후 중계 영상을 보고, 실시간은 엄마가 다 챙겨 봅니다. 이렇게 아이가 부상을 입은 후에는 아무래도 경기장에 가는 걸 힘들어하죠.
다행히 결과가 좋았잖아요.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민재 | 하늘을 날아다니는 기분이었어요. 운도 좋았거든요. 1위로 달리던 선수가 실수했을 때 2위로 달리던 선수와 제가 나란히 들어와 원래는 2위였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1위 선수가 엔진을 불법으로 개조해서 출력을 높인 거라 페널티를 받았고 결국 제가 1위가 됐어요.
어린이 경기라고 해서 얕볼 게 아니네요.
민재 | 그럼요. 처음에는 제가 하나도 모르니까 헬멧에 무전기를 달아 코치를 받았어요. 지금은 무전기 없이 미케닉(mechanic·정비 등을 맡는 레이스팀의 구성원)의 수신호를 보면서 타요. 평소 어떤 부분을 개선하면 더 빠른 랩타임이 나올 수 있을지 연습을 통해 고치고 또 고쳐요.
현재 국내에는 총 10여 개의 카트 팀이 있다. 김민재 군이 소속된 기마레이싱(KIMA Racing)은 충북 증평 블랙스톤 벨포레 내에 있는 벨포레 인터내셔널 모토아레나 서킷의 메인 팀이다. 벨포레 인터내셔널 모토아레나는 국내 첫 국제 공인 카트장. 취미로 즐기는 사람부터 선수까지 예약제로 카트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 물론 김민재 군은 팀 메인 드라이버로서 주말마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는다. 보통 훈련이나 경기는 15분 내외로 진행된다.
보통 일과가 어떻게 되나요.
민재 | 카트 타는 날을 제외하곤 학교에 가요. 아침에 일어나 등교했다가 돌아와 숙제가 있으면 하고 없으면 게임하고 놀다 자요. 주말에는 서킷에 가서 연습하기 때문에 친구들이랑 게임할 시간이 없어요.
김성현 | 카트 주행 시간은 일주일에 10시간 정도예요. 다만 대기 시간까지 치면 하루 종일 걸려요. 그런데도 연습 날이면 민재가 1등으로 일어나 빨리 가자고 엄마 아빠를 깨워요.
학원은 다니나요.
민재 | 영어학원만 다녀요. 유명한 레이서가 되려면 영어는 필수니까 부모님께 보내달라고 했어요. 다만 요즘은 대회 일정이 몰려서 쉬고 있어요.
일정이 복잡하긴 하더라고요. 저랑 처음 통화했을 때는 포르투갈에서 태국으로 이동 중이었고, 한국에 들어온 지 일주일 만에 아부다비로 떠난다면서요. 힘들진 않나요.
민재 | 전혀 힘들지 않아요. 그동안은 동남아 쪽 경기에 많이 출전했었는데 오히려 이제는 유럽에 많이 가보고 싶어요. F1 드라이버가 되려면 유럽에서 실력을 더 키우는 게 중요하거든요.
이런 전문적인 내용은 아빠를 통해 알게 된 건가요.
민재 | 아빠한테 듣기도 하는데 영상을 많이 찾아봐요. 그런데 아빠 경기는 본 적이 없어요. 저는 아빠가 타는 박스카(개조 양산차)보다 포뮬러와 카트를 좋아해요. 하하.
김성현 | 민재는 슈트 입은 저의 모습을 연습 상대가 되어주느라 제가 갑자기 카트에 타게 됐을 때 처음 봤을 거예요. 저는 취미 수준이에요. 처음 시작할 당시 제가 온라인 게임 ‘배틀그라운드’의 ‘쿼드로’란 팀을 운영하고 있어서 현재 팀과 연결이 됐어요. 지금은 민재가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레이싱에 대한 욕구가 충족됩니다.
이래저래 예상 밖인데요. 그럼 민재 군은 어떻게 카트를 시작하게 됐나요.
민재 | 경기장에서 포뮬러 타는 어떤 형을 봤는데 정말 멋있었어요. 저도 타보고 싶어서 부모님께 말씀드렸어요.
김성현 | 솔직히 처음에는 재미로 잠깐 하고 말 줄 알았어요. 원래 프라모델 조립을 좋아했거든요. 그리고 우리 팀 유경사 감독님이 민재의 재능을 알아보고 레이싱 카트를 시켜보라 권유했어요. 보호 장비를 착용하니까 레저용 카트보단 안전하다고 생각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죠.
열심히 하면 그게 효도라는 당찬 아들
김민재 군은 이번 경기 일주일 전 손가락 부상을 입었으나 이틀 동안 4번에 걸쳐 진행된 예선에서 최종 3위로 결승 진출, 결국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민재 | 제가 지난해 갑자기 실력이 늘면서 열심히 하면 우승도 할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프라모델 대회에 작품을 출품하고 본격적으로 카트에 집중했죠. 작년 초 처음으로 1등을 했어요.
김성현 | 중간에 ‘어, 이게 아닌데’ 생각이 들 때는 이미 포디엄에 서는 실력이 됐어요. 지금은 아이가 한다고 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 도와주려 해요.
그래도 아이가 부상을 입으면 그만두게 하겠다는 생각이 들 듯한데, 말려본 적 있나요.
김성현 | 경기가 치열해지면 버팅이 많이 일어나요. 민재도 사고가 여러 번 났죠. 잠깐 기절한 적도 있어요. 그럴 때마다 관두게 하고 싶단 마음이 드는 건 어느 부모나 똑같을 거예요. 하지만 어떤 스포츠든 사고와 부상은 있을 수 있잖아요. 무엇보다 아이가 꿈을 가지고 열심히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열정을 보면 또 말릴 수가 없어요. 부모의 선택으로 아이를 후회하게 만들면 안 되잖아요. 현재의 꿈이니까 나중엔 바뀔 수도 있고요.
남편에 이어 아이까지 레이싱을 하도록 허락한 아내분이 대단하네요.
김성현 | 아내는 제가 못 보는 것들을 계속 민재 옆을 지키면서 세심하게 챙겨요. 저는 운전과 소통을 해주는 정도고 전체적인 매니지먼트는 아내가 다 해요.
멀찍이서 남편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김성현 씨 아내는 “남편이 부모님의 반대로 젊을 때 레이싱을 하지 못해서 후회가 남을까 봐 더 늦기 전에 도전해보라 했다”며 “오히려 중학생 딸에게 신경을 많이 못 써 그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도대체 이렇게까지 푹 빠지게 만든 카트의 매력이 무엇인가요.
민재 | 속도에서 오는 쾌감이 있어요. 연습하면서 랩타임에서 최고 기록을 세울 때나 최고 기록에 근접할 때도 기분이 좋아요.
카트를 타느라 친구들과는 좀 다른 생활을 하고 있잖아요. 친구들이 부러울 때도 있나요.
민재 | 없어요. 아, 저까지 포함해서 4명이 늘 게임을 같이 하는데요. 친구들이 게임에서 좋은 아이템을 저보다 빨리 뽑았을 때나 저보다 잘할 때 부러워요.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레이싱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을까요.
김성현 | 그때가 되면 본인이 결정해야겠죠. 저는 그만두고 싶으면 언제든지 그만두라고 얘기하는데 민재는 이 말을 제일 싫어해요(웃음).
민재 | 꿈은 크고 높을수록 좋은 거잖아요. 저는 공부도 카트도 다 잘하고 싶어요. 영어나 수학, 과학은 어느 정도 하는데 한자 공부는 좀 그래요.
내년 레이싱 강국 이탈리아 팀 공식 드라이버로 활동
회사에서 일하랴, 민재 군 뒷바라지하랴 바쁘지 않나요.김성현 | 민재가 워낙 열심히 하니까 주변 분들이 최대한 편의를 봐주고 많이 도와줘요. 운이 좋은 거죠.
경제적 부담도 만만치 않을 듯해요. 어느 정도 드나요.
김성현 | 일단 카트 엔진과 섀시, 보호 장비 등을 합하면 처음에 대략 1300만 원 정도 들어요. 섀시는 타다 보면 변형이 오기도 하고 사고로 틀어지면 교환해줘야 하는 소모품이에요. 엔진도 주기적으로 손봐줘야 하고요. 여기에 경기장 주행비, 정비사 비용, 카트 보관비 등까지 합하면 민재가 주행 연습을 많이 하는 편이라 한 달 평균 350만 원 정도 들어요.
해외 경기에 나가면 더 들겠네요.
김성현 | 아직 민재가 어려서 엄마 아빠가 함께 가니까 항공료부터 숙소, 식대 등이 무조건 곱하기 3이에요. 현지에서 고용한 미케닉 비용도 들고요. 다행히 민재가 해외 경기를 하러 스페인에 오면 언제든 자기 집에 머물라고 해주는 분도 생겼어요. 일본계 친구인데, 아시아인이 유럽 경기에 출전하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는 걸 잘 아니까 배려해주는 거예요.
해외 경기에는 지금까지 몇 번 정도 나갔나요.
민재 | 결승 횟수로 하면 14회 정도인데 일본 비중이 제일 크고 말레이시아, 유럽 순이에요.
민재 군, 아빠에게 많이 고마워해야겠어요. 이런 이야기 나눠본 적 있나요.
민재 | 고마워요. 고마운데 제가 열심히 하는 게 효도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웃음). 그리고 저는 엄마를 더 좋아해요. 아빠는 잘 안 놀아줘요.
김성현 | 저는 그냥 민재가 한 번씩 안아주면 만족해요. 민재가 경기하고 나오면서 저를 탁 안아줄 때 멋있어요. 또 제가 민재를 보며 배우는 게 많아요. 레이싱을 할 때도 그렇고, 평소 할 땐 하고 놀 땐 놀고 집중을 잘해요. 제 아들이지만 매력이 있습니다.
민재 군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민재 | 일단 F1 드라이버가 돼 더 스릴 있는 경기를 해보고 싶어요. 제 롤 모델은 막스 베르스타펜 선수예요. 그 선수를 좋아하는 이유는 첫째로 인성이 훌륭하고 팬 서비스가 좋아요. 둘째는 레이싱 실력이 아주 뛰어나요. 저도 그런 멋진 챔피언이 되는 게 목표예요.
김성현 | 레이싱 결과는 끝나봐야 알아요. 그저 노력하는 거죠. 그래서 내년에는 이탈리아로 일종의 유학을 갑니다. 이탈리아 비렐아트팀 공식 드라이버로 내년 이탈리아 시즌을 다 뛰고 올 계획이에요. 이왕 시작한 거 끝까지 달려보려고요.
김민재 군이 좋아하는 네덜란드 출신의 오라클 레드불 레이싱 소속 F1 드라이버 막스 베르스타펜 선수는 올해 25세이다. 카트로 시작해 9세 때 벨기에 주니어 카트 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했고, 17세인 2015년 F1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로 데뷔했다. 이번 시즌에는 16승을 기록하며 단일 시즌 역대 최다 우승 기록을 경신했다. 막스 베르스타펜 선수의 아버지도 전직 F1 레이싱 드라이버다. 그야말로 맞춤형 롤 모델인 셈.
하지만 레이싱은 드라이버의 기량뿐만 아니라 날씨, 차량 상태, 사고 등 변수가 많다. 이제 막 출발점을 지난 이 장기 레이스는 과연 어떻게 끝이 날까. 이왕이면 이 인터뷰가 자료 화면으로 쓰이는 날이 오면 좋겠다.
#카트 #레이싱 #김민재 #여성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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