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이맘때쯤 데뷔한 지 6일 된 방탄소년단(BTS)과 인터뷰를 진행했었다. 첫 화보랬다. 잔뜩 각 잡힌 자세로 “올해 목표는 신인상 수상이다. 신인상을 수상한다는 것은 한 해 쏟아지는 아이돌 중 살아남았다는 증거가 아니겠느냐”고 야무진 목표를 전했던 귀여운 상남자들은 지금 전 세계로부터 데뷔 10주년 축하 인사를 받고 있다. 6월 내내 보라색으로 물든 서울에 ‘성지 순례’ 오는 해외 아미 소식을 접하며 ‘이게 김구 선생이 염원하던 문화 강국일까’ 생각했다.
세계로 뻗어나간 K-팝의 파급력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지표는 단연 콘서트다. 최근 인기 아이돌들의 해외 투어 규모를 보면 아레나(1만~2만 명)나 돔(3만~5만 명)급이 꽤 눈에 띈다. 5만 명 이상이 관람하는 스타디움 투어도 있다. BTS의 경우 미국 LA 로즈 볼 스타디움,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 등 10개 도시에서 20회 공연을 한 ‘러브 유어셀프: 스피크 유어셀프’ 투어로 ‘2019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올해의 콘서트 투어’에 선정되기도 했다.
BTS의 2013년 데뷔 쇼케이스부터 앞서 언급한 2019년 월드 투어까지 다양한 최초 기록에 함께한 김상욱(45) PD는 “온라인 공연은 오프라인 공연을 대체할 수 없다. K-팝 콘서트를 직접 찾는 사람이 더 늘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상욱 PD만 해도 지난해 에이티즈 아레나급 월드 투어를 진행했고 올 3월에는 샤이니 온유의 한일 솔로 콘서트, 4월에는 현재 월드 투어 중인 갓세븐 멤버 잭슨과 미국 최대 음악 축제인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 무대를 꾸몄다. 7월에는 트와이스 유닛 미사모(미나, 사나, 모모) 일본 데뷔 쇼케이스가 아레나급으로 잡혀 있다.
아이돌 콘서트는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탈덕’하지 않는 이상 한 번만 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김상욱 PD에게 ‘올콘’ 하게 만드는 매력과 공연 연출에 대한 궁금증을 물었다. 올해부터 국제예술대학교에 강의를 나가느라 더 바빠진 김 PD는 서두를 법도 한데 모든 질문에 ‘예를 들면’과 ‘왜냐하면’을 사용하며 꼭꼭 씹어 답했다. 설명하고 설득하는 게 일인 공연 연출가의 습관일 것이다. 그가 공연계에 몸담은 지 올해로 21년째다.
페스티벌과 콘서트가 지난해보다 많이 열리고 있어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나요.
지금만 놓고 보면 오히려 예전보다 호황이죠. 엄격했던 공연 방역 수칙이 거의 한 번에 확 풀리다시피 하다 보니 취소하거나 미뤄뒀던 K-팝 공연들이 대거 열리고 있어요.
각종 오프라인 공연이 취소되던 시기는 어떻게 보냈나요.
정말 힘들었어요. 원래 직원이 9명이었는데 3명까지 줄었다가 지금 7명이 됐어요. 특히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 몰라 무작정 버티던 2020년은 정말 상황이 안 좋았어요. 2015년에도 BTS 팬 미팅을 준비하다 메르스 때문에 취소한 적이 있었는데 두어 달 만에 일상으로 돌아갔거든요. 그냥 버티다가 2021년부터는 저뿐만 아니라 다들 회사 규모를 줄이고 온라인 공연을 열기 시작했죠. 데이식스와 FT아일랜드, 에이티즈 등 온라인 팬 미팅과 랜선 콘서트를 15~20개 정도 했던 것 같아요.
솔직히 온라인 공연도 PLAN A니까 기회가 온 거지 아예 일 끊긴 곳이 많았을 듯해요.
그럴 수 있죠. 그런데… (말을 멈춘 김 PD는 생각을 고른 끝에 입을 뗐다) 제가 팬데믹 때 ‘케이팝 시대를 항해하는 콘서트 연출기’란 책을 내면서 제일 많이 들었던 질문이 “온라인 공연이 성공하겠느냐” “온라인 공연의 장단점이 무엇이냐”였어요. 그 질문은 “야구를 집에서 보면 편한데 왜 야구장에 가느냐”랑 똑같아요.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이 말한 ‘아우라’라는 개념이 있어요(‘아우라’는 ‘전통적 예술 작품’, 즉 유일무이한 진품이 지닌 힘을 의미한다). 아우라, 현장감은 대체할 수 없어요. ‘모나리자’ 그림을 보러 루브르박물관에 가잖아요.
서로 교감하는 오프라인 공연을 따라잡을 수 없죠. 상황이 좋아져서 다행이긴 한데 다시 바쁜 나날이에요. 공연 연출가가 하는 일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요.
각자 농도는 다르겠지만 한 사람이 제작 파트와 연출 파트를 겸하는 거예요. 텅 빈 공연장에 들어가서 연출안과 무대 플랜에 따라 세트를 채워 넣고 아티스트를 통해 그 연출이 원하는 바를 관객들에게 전달한 후 다시 공연장을 원래대로 비우는 것까지가 공연 연출가의 몫입니다.
공연 하나당 어느 정도 제작 기간을 잡나요.
작은 공연은 보통 2~3개월, 아레나 투어는 한 5~6개월 정도예요. 스타디움 투어는 8~9개월 정도로 더 오래 잡죠. 스타디움을 채우려면 그 아티스트가 유명하고 팬이 많은 정도로는 힘들고 ‘현상’이 되어야 해요. 예를 들어 K-팝 가수가 뉴스에 나오면 그건 현상이에요. 관심 있는 일반인들도 한번 가볼까 하죠. 그러려면 더 오랫동안 홍보하고 티켓 예매 창도 계속 열어놔야 하는데, 관객 수를 확정 지으려면 공연안부터 빨리 내놓을 수밖에 없어요.
PLAN A에서는 인재를 뽑을 때 어떤 점을 보나요.
해외 투어가 늘면서 기본적으로 영어를 어느 정도 해야 해요. 1순위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좋아야죠. 내가 만든 연출안을 다른 사람한테 설명해서 설득하는 일이니까요. 또 아티스트와 스태프를 끌고 가는 리더십도 있어야겠고, 감성적인 동시에 계산적이어야 해요.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가 전 세계인의 마음을 홀릴 수 있었던 이유는 화려한 CG와 그 밑에 촘촘하게 깔린 캐릭터 서사 덕분이에요. 공연도 감수성 있게 그리려면 논리적인 빌드업이 있어야 해요. BTS와 에이티즈가 우리랑 잘 맞았던 것은 이 팀들이 탄탄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지금 함께하는 잭슨도 뮤직비디오들을 보면 일관된 얘기를 하고 있어요.
공연의 빌드업은 나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BTS 콘서트를 3부작 시리즈로 하겠다고 했을 때라든지 전 세계 최초로 콘서트에 AR 적용을 하겠다고 아이디어를 냈을 때 기획사에서 흔쾌히 허락하던가요.
3부작 콘서트 같은 경우는 당시 BTS가 내놓은 앨범이 ‘학교’ 3부작이었어요. 앨범이 3부작이니까 공연도 3부작으로 만들면 재밌지 않겠느냐, 순서대로 가면 재미가 없으니 한 번 꼬아서 2→1→3 순서로 가자고 제안했는데 수락하더라고요. 돌이켜보면 굉장히 무모한 제안이었어요. 그걸 받아들인 회사도 무모하고(웃음). 방시혁 PD님이 세계관이나 도전에 대한 이해가 굉장히 깊은 분이에요.
무모한 도전이라 할 만한 게 2014년 시작해 2017년 마무리하기까지 중간중간 일본 한정 투어, ‘화양연화 on stage’ 시리즈, 팬 미팅 등을 해야 했으니까요(웃음). 지금까지 600회가량 해온 공연 중 마음속 1위는 무엇인가요.
최근에는 지금 하는 잭슨 공연이 정말 멋있고요. 또 2019년 5월 4일 LA에서 시작한 BTS ‘러브 유어셀프: 스피크 유어셀프’ 투어가 기억에 남아요. K-팝 최초로 스타디움으로만 이루어진 투어였는데 생각해보세요. 한국인끼리 일해도 힘든데, 일하는 방식이 다른 외국 스태프와 하려니 정말 힘들었어요. 공연장은 크고 체크할 부분은 많아 즐기지 못했죠. 몇 회를 거듭하면서 편안해지니까 그제야 진짜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까지 2AM, BTS, 소녀시대 태연, 슈퍼주니어 규현, 데이식스, 에이티즈 등 실력 좋기로 유명한 아이돌과 유독 작업이 많았는데 진짜 잘한다고 생각한 실력 1위는 누구인가요.
음… 이제 아이돌들의 실력이 상향 평준화되어 다 잘해요. 그중에는 못하는 친구 고르는 게 더 힘들어요. 직업 윤리상이랄까 연출자로서 누구 콕 집어 말하기가 그렇네요. 하하.
그럼 질문을 바꿀게요. 무대 잘하는 가수 말고 일 참 잘한다 느낀 가수는요.
옛날에 박진영 씨 공연에 프로듀서로 참여한 적이 있는데 본인이 곡을 쓰고 춤도 만들고 노래도 하니까 사실상 그 공연의 연출자는 박진영 씨였어요. 반면 지금의 아이돌들은 공연 하나에 시간을 쏟아부을 수 없는 게 현실이잖아요. 연출팀이 곡 세트리스트를 1차로 짜면 아티스트나 매니지먼트에서 홍보 방향과 팬을 고려해 손보는 정도가 평균적이에요.
특히 팬들은 ‘올콘’ 하는 경우가 많아 공연의 디테일을 다 알고, 이걸 또 SNS로 전 세계에 퍼뜨리죠. ‘팬잘알’로 유명한데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 있나요.
공연 후기를 열심히 보죠. 참고도 하고요. 2013년 JYJ 김준수 공연에서 제가 그 공연만을 위한 세계관을 만들었는데, 솔직히 팬들이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제 의도를 캐치해서 ‘무대 세트 봤어? 이거랑 VCR이랑 연결된 거다’ 같은 격조 있는 분석을 했더라고요. 제가 킬링 포인트로 심어놓은 부분을 알아봐주면 좋죠. 그런 게 연출의 맛이에요.
맛있는 것만 먹으면 좋겠지만 실수도 하잖아요. 가장 아찔한 실수는 언제인가요.
BTS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 때요. 지민이 투명 비닐로 만든 버블 안에 들어가서 노래 부르는 장면이 있어요. 카메라가 버블을 잡고 있다가 지민이 손으로 터뜨리는 시늉을 하면 버블이 탁 터지면서 클로즈업 들어가는 연출인데 터지지 않고 찌그러드는 거예요. 급하게 카메라가 ‘풀샷’으로 빠졌는데 그날따라 스트리밍 중계도 해서 시청자 14만 명과 현장의 6만 명이 실수를 지켜봤어요. 현장에는 초대한 기자들도 있었고요. 그날 제 수명이 한 달은 단축됐을 거예요. 당황하지 않고 노래를 잘 마무리해준 지민에게 고마울 따름이에요.
기본적으로 아웃풋이 계속되는 직업이라 창작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클 듯해요.
요새는 워낙 레퍼런스가 많으니까 자잘한 아이디어를 찾기는 좀 쉬워진 편이에요. 메인 아이디어를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하죠. 예를 들면 ‘킹덤: 레전더리 워’ 경연 방송에서 에이티즈에게 1위를 안긴 ‘원더랜드’ 무대 같은 거예요. ‘우리는 해적이고 해적선을 타고 다니며 적을 물리친다’는 메인 아이디어에 맞춰 뱃머리 모양 세트도 만들고 크라켄에 총 쏘는 신도 넣고요.
그럼 메인 아이디어는 어디서 영감을 찾나요.
대중없어요. 습관적으로 보는 잡다한 콘텐츠들 사이에서 뭔가가 나와요. 내가 평소 여행에 관심이 있어야 여행 가는 콘셉트로 팬 미팅이나 공연할 때 여행 용어나 프로세스들을 갖다 쓸 수 있지 않겠어요? 그래서 어린이들한테 추천하는 책이 ‘채사장의 지대넓얕’이에요.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큰 원리들, 기본적인 인문학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해외 투어를 연출할 때는 좀 더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있나요.
사실 처음 한국에서 한 오리지널 공연을 반복하는 거라 해외 투어라 해서 연출적으로 더 신경쓸 부분은 별로 없어요. 뮤지컬 ‘캣츠’가 한국에 왔다고 한국 노래를 올리진 않잖아요. 관객들이 원하지도 않고요. 가끔 팬 서비스를 할 순 있어도 공연을 현지화할 건 없다고 봅니다.
공연장 규모에 있어서는 고민이 될 것 같은데요. 무대가 멀면 가수가 면봉처럼 보이잖아요.
규모가 클수록 중계 스크린도 아티스트 얼굴이 잘 보일 수 있도록 커야 하고, 돌출 무대도 관객한테 가까이 간다는 유의미한 움직임이 될 수 있도록 길이를 정해야 해요. 2016년 BTS 팬 미팅 장소가 2만 명가량을 수용하는 고척돔으로 잡혔는데, 고척돔이 개관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라 레퍼런스가 없는 거예요. 답사 가서 텅 빈 야구 경기장의 우익수 자리랑 기둥 등을 기준으로 어림잡아본 중계 스크린 사이즈가 16×9m였어요. 당시로선 K-팝 단독 콘서트 사상 최대 크기였을 거예요. 사람들이 말렸는데 제가 우겼어요. 왜냐하면 다음 해 2월에 같은 곳에서 콘서트가 또 있었거든요. 팬 미팅 때 실물은 멀어도 스크린으로 보는 데 문제가 없다는 걸 보여주지 않으면 콘서트 표를 다 팔지 못할 거라고 밀어붙였죠. 실제로 후기가 굉장히 좋았어요. 지금은 더 큰 스크린도 많이 보여요.
아무래도 대형 투어가 많아졌으니까요. K-팝이 세계로 더 뻗어나갈 수 있을까요.
그럼요. 가수 역량이 뛰어나고 시스템이 안정적이잖아요. 리스크라 할 만한 게 있다면 요즘 엑소 ‘첸백시(첸, 백현, 시우민)’처럼 기획사와 아티스트 간의 계약 문제인데, 대부분 팬은 그룹이 쪼개지는 걸 싫어해요. 그러면 팬덤도 와해되니까요. 엑소가 12년 차니까 비슷한 세대에서 이런 고비를 겪는 그룹이 더 나올 거예요. 다만 이런 문제들이 반복되면 해결책이 나오겠죠.
K-팝의 미래가 밝다면 콘서트 연출가의 전망도 밝겠네요. 문제는 업무량이 많고 신체적으로도 고된 일이라 오랫동안 현역으로 일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제가 20여 년 전 처음 시작할 때는 지금 제 나이대 연출자가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저보다 나이 많은 연출자분들이 계세요. 연출자의 수명이 길어지고 있다는 의미죠. 1만 석, 2만 석, 스타디움급 공연이 늘고 있고 이런 공연을 만들려면 10년 차 이상의 경험 많은 사람이 필요해요. 앞으로 시장은 계속 성장할 테니 자연스럽게 현장에서 오래 일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언제까지 일하고 싶나요.
저야 빨리 그만두고 싶죠. 모든 직장인의 꿈 아닌가요? 하하하. 하고 싶은 공연이 있긴 한데 저는 지금 업계 후배들이나 강의 나가고 있는 학교 학생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예전에는 저임금에다가 월화수목금금금 일했다면, 이제는 임금도 좋고 어느 정도 ‘워라벨’을 만족시켜줘야 더 똑똑하고 일 잘하는 친구들을 끌어올 수 있다고 봅니다. 좋은 인재가 좋은 공연을 만들면 업계 파이가 더 커지고 그러면 또 좋은 인재들이 들어오겠죠. 지금 인터뷰를 하는 이유도 사람들이 ‘이런 세계도 있구나’ 하고 더 많이 알아줬으면 해서예요.
초등학생 딸들이 이런 아빠를 자랑스러워할 것 같아요. 일단 아이돌을 많이 만나잖아요.
딱 그 전 단계 같아요. 윤이와 연이가 지금 유튜브로 ‘(여자)아이들’을 탐독 중인데 계속 욕 나오는 가사를 따라 불러서 그건 따라 부르지 말라고 했어요.
종종 육아에 소홀해 아내에게 혼나지만 딸들의 ‘최애’를 아는 거로 보아 확실히 ‘워라밸’이 있는 삶이 되어가는 모양이다. 플랜B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는 의미를 담아 PLAN A를 세운 지 올해로 13년, PLAN A의 쇼는 계속된다.
#김상욱 #K팝 #BTS #여성동아
사진 홍태식
사진제공 김상욱 PD
사진출처 BTS 페이스북, 부바(@boobagraphy) 인스타그램
세계로 뻗어나간 K-팝의 파급력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지표는 단연 콘서트다. 최근 인기 아이돌들의 해외 투어 규모를 보면 아레나(1만~2만 명)나 돔(3만~5만 명)급이 꽤 눈에 띈다. 5만 명 이상이 관람하는 스타디움 투어도 있다. BTS의 경우 미국 LA 로즈 볼 스타디움,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 등 10개 도시에서 20회 공연을 한 ‘러브 유어셀프: 스피크 유어셀프’ 투어로 ‘2019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올해의 콘서트 투어’에 선정되기도 했다.
BTS의 2013년 데뷔 쇼케이스부터 앞서 언급한 2019년 월드 투어까지 다양한 최초 기록에 함께한 김상욱(45) PD는 “온라인 공연은 오프라인 공연을 대체할 수 없다. K-팝 콘서트를 직접 찾는 사람이 더 늘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상욱 PD만 해도 지난해 에이티즈 아레나급 월드 투어를 진행했고 올 3월에는 샤이니 온유의 한일 솔로 콘서트, 4월에는 현재 월드 투어 중인 갓세븐 멤버 잭슨과 미국 최대 음악 축제인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 무대를 꾸몄다. 7월에는 트와이스 유닛 미사모(미나, 사나, 모모) 일본 데뷔 쇼케이스가 아레나급으로 잡혀 있다.
아이돌 콘서트는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탈덕’하지 않는 이상 한 번만 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김상욱 PD에게 ‘올콘’ 하게 만드는 매력과 공연 연출에 대한 궁금증을 물었다. 올해부터 국제예술대학교에 강의를 나가느라 더 바빠진 김 PD는 서두를 법도 한데 모든 질문에 ‘예를 들면’과 ‘왜냐하면’을 사용하며 꼭꼭 씹어 답했다. 설명하고 설득하는 게 일인 공연 연출가의 습관일 것이다. 그가 공연계에 몸담은 지 올해로 21년째다.
‘Dionysus’ 곡에 맞춰 높이 8m, 길이 12m의 표범 2마리와 대형 신전 기둥 세트에서 압도적인 분위기로 시작한 2019년 ‘SY’ 투어. 정국은 3D 와이어를 타고 날며 노래를 불렀다.
지금만 놓고 보면 오히려 예전보다 호황이죠. 엄격했던 공연 방역 수칙이 거의 한 번에 확 풀리다시피 하다 보니 취소하거나 미뤄뒀던 K-팝 공연들이 대거 열리고 있어요.
각종 오프라인 공연이 취소되던 시기는 어떻게 보냈나요.
정말 힘들었어요. 원래 직원이 9명이었는데 3명까지 줄었다가 지금 7명이 됐어요. 특히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 몰라 무작정 버티던 2020년은 정말 상황이 안 좋았어요. 2015년에도 BTS 팬 미팅을 준비하다 메르스 때문에 취소한 적이 있었는데 두어 달 만에 일상으로 돌아갔거든요. 그냥 버티다가 2021년부터는 저뿐만 아니라 다들 회사 규모를 줄이고 온라인 공연을 열기 시작했죠. 데이식스와 FT아일랜드, 에이티즈 등 온라인 팬 미팅과 랜선 콘서트를 15~20개 정도 했던 것 같아요.
솔직히 온라인 공연도 PLAN A니까 기회가 온 거지 아예 일 끊긴 곳이 많았을 듯해요.
그럴 수 있죠. 그런데… (말을 멈춘 김 PD는 생각을 고른 끝에 입을 뗐다) 제가 팬데믹 때 ‘케이팝 시대를 항해하는 콘서트 연출기’란 책을 내면서 제일 많이 들었던 질문이 “온라인 공연이 성공하겠느냐” “온라인 공연의 장단점이 무엇이냐”였어요. 그 질문은 “야구를 집에서 보면 편한데 왜 야구장에 가느냐”랑 똑같아요.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이 말한 ‘아우라’라는 개념이 있어요(‘아우라’는 ‘전통적 예술 작품’, 즉 유일무이한 진품이 지닌 힘을 의미한다). 아우라, 현장감은 대체할 수 없어요. ‘모나리자’ 그림을 보러 루브르박물관에 가잖아요.
‘어벤져스’처럼 화려함 뒤 서사 갖춰야 좋은 공연
지난해 에이티즈 일본 콘서트 때 FOH(Front Of House)에서 각자 맡은 일을 하고 있는 파트별 감독들. 사진은 포토그래퍼 부바 인스타그램.
각자 농도는 다르겠지만 한 사람이 제작 파트와 연출 파트를 겸하는 거예요. 텅 빈 공연장에 들어가서 연출안과 무대 플랜에 따라 세트를 채워 넣고 아티스트를 통해 그 연출이 원하는 바를 관객들에게 전달한 후 다시 공연장을 원래대로 비우는 것까지가 공연 연출가의 몫입니다.
공연 하나당 어느 정도 제작 기간을 잡나요.
작은 공연은 보통 2~3개월, 아레나 투어는 한 5~6개월 정도예요. 스타디움 투어는 8~9개월 정도로 더 오래 잡죠. 스타디움을 채우려면 그 아티스트가 유명하고 팬이 많은 정도로는 힘들고 ‘현상’이 되어야 해요. 예를 들어 K-팝 가수가 뉴스에 나오면 그건 현상이에요. 관심 있는 일반인들도 한번 가볼까 하죠. 그러려면 더 오랫동안 홍보하고 티켓 예매 창도 계속 열어놔야 하는데, 관객 수를 확정 지으려면 공연안부터 빨리 내놓을 수밖에 없어요.
PLAN A에서는 인재를 뽑을 때 어떤 점을 보나요.
해외 투어가 늘면서 기본적으로 영어를 어느 정도 해야 해요. 1순위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좋아야죠. 내가 만든 연출안을 다른 사람한테 설명해서 설득하는 일이니까요. 또 아티스트와 스태프를 끌고 가는 리더십도 있어야겠고, 감성적인 동시에 계산적이어야 해요.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가 전 세계인의 마음을 홀릴 수 있었던 이유는 화려한 CG와 그 밑에 촘촘하게 깔린 캐릭터 서사 덕분이에요. 공연도 감수성 있게 그리려면 논리적인 빌드업이 있어야 해요. BTS와 에이티즈가 우리랑 잘 맞았던 것은 이 팀들이 탄탄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지금 함께하는 잭슨도 뮤직비디오들을 보면 일관된 얘기를 하고 있어요.
공연의 빌드업은 나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BTS 콘서트를 3부작 시리즈로 하겠다고 했을 때라든지 전 세계 최초로 콘서트에 AR 적용을 하겠다고 아이디어를 냈을 때 기획사에서 흔쾌히 허락하던가요.
3부작 콘서트 같은 경우는 당시 BTS가 내놓은 앨범이 ‘학교’ 3부작이었어요. 앨범이 3부작이니까 공연도 3부작으로 만들면 재밌지 않겠느냐, 순서대로 가면 재미가 없으니 한 번 꼬아서 2→1→3 순서로 가자고 제안했는데 수락하더라고요. 돌이켜보면 굉장히 무모한 제안이었어요. 그걸 받아들인 회사도 무모하고(웃음). 방시혁 PD님이 세계관이나 도전에 대한 이해가 굉장히 깊은 분이에요.
무모한 도전이라 할 만한 게 2014년 시작해 2017년 마무리하기까지 중간중간 일본 한정 투어, ‘화양연화 on stage’ 시리즈, 팬 미팅 등을 해야 했으니까요(웃음). 지금까지 600회가량 해온 공연 중 마음속 1위는 무엇인가요.
최근에는 지금 하는 잭슨 공연이 정말 멋있고요. 또 2019년 5월 4일 LA에서 시작한 BTS ‘러브 유어셀프: 스피크 유어셀프’ 투어가 기억에 남아요. K-팝 최초로 스타디움으로만 이루어진 투어였는데 생각해보세요. 한국인끼리 일해도 힘든데, 일하는 방식이 다른 외국 스태프와 하려니 정말 힘들었어요. 공연장은 크고 체크할 부분은 많아 즐기지 못했죠. 몇 회를 거듭하면서 편안해지니까 그제야 진짜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까지 2AM, BTS, 소녀시대 태연, 슈퍼주니어 규현, 데이식스, 에이티즈 등 실력 좋기로 유명한 아이돌과 유독 작업이 많았는데 진짜 잘한다고 생각한 실력 1위는 누구인가요.
음… 이제 아이돌들의 실력이 상향 평준화되어 다 잘해요. 그중에는 못하는 친구 고르는 게 더 힘들어요. 직업 윤리상이랄까 연출자로서 누구 콕 집어 말하기가 그렇네요. 하하.
그럼 질문을 바꿀게요. 무대 잘하는 가수 말고 일 참 잘한다 느낀 가수는요.
옛날에 박진영 씨 공연에 프로듀서로 참여한 적이 있는데 본인이 곡을 쓰고 춤도 만들고 노래도 하니까 사실상 그 공연의 연출자는 박진영 씨였어요. 반면 지금의 아이돌들은 공연 하나에 시간을 쏟아부을 수 없는 게 현실이잖아요. 연출팀이 곡 세트리스트를 1차로 짜면 아티스트나 매니지먼트에서 홍보 방향과 팬을 고려해 손보는 정도가 평균적이에요.
특히 팬들은 ‘올콘’ 하는 경우가 많아 공연의 디테일을 다 알고, 이걸 또 SNS로 전 세계에 퍼뜨리죠. ‘팬잘알’로 유명한데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 있나요.
공연 후기를 열심히 보죠. 참고도 하고요. 2013년 JYJ 김준수 공연에서 제가 그 공연만을 위한 세계관을 만들었는데, 솔직히 팬들이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제 의도를 캐치해서 ‘무대 세트 봤어? 이거랑 VCR이랑 연결된 거다’ 같은 격조 있는 분석을 했더라고요. 제가 킬링 포인트로 심어놓은 부분을 알아봐주면 좋죠. 그런 게 연출의 맛이에요.
맛있는 것만 먹으면 좋겠지만 실수도 하잖아요. 가장 아찔한 실수는 언제인가요.
BTS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 때요. 지민이 투명 비닐로 만든 버블 안에 들어가서 노래 부르는 장면이 있어요. 카메라가 버블을 잡고 있다가 지민이 손으로 터뜨리는 시늉을 하면 버블이 탁 터지면서 클로즈업 들어가는 연출인데 터지지 않고 찌그러드는 거예요. 급하게 카메라가 ‘풀샷’으로 빠졌는데 그날따라 스트리밍 중계도 해서 시청자 14만 명과 현장의 6만 명이 실수를 지켜봤어요. 현장에는 초대한 기자들도 있었고요. 그날 제 수명이 한 달은 단축됐을 거예요. 당황하지 않고 노래를 잘 마무리해준 지민에게 고마울 따름이에요.
기본적으로 아웃풋이 계속되는 직업이라 창작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클 듯해요.
요새는 워낙 레퍼런스가 많으니까 자잘한 아이디어를 찾기는 좀 쉬워진 편이에요. 메인 아이디어를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하죠. 예를 들면 ‘킹덤: 레전더리 워’ 경연 방송에서 에이티즈에게 1위를 안긴 ‘원더랜드’ 무대 같은 거예요. ‘우리는 해적이고 해적선을 타고 다니며 적을 물리친다’는 메인 아이디어에 맞춰 뱃머리 모양 세트도 만들고 크라켄에 총 쏘는 신도 넣고요.
그럼 메인 아이디어는 어디서 영감을 찾나요.
대중없어요. 습관적으로 보는 잡다한 콘텐츠들 사이에서 뭔가가 나와요. 내가 평소 여행에 관심이 있어야 여행 가는 콘셉트로 팬 미팅이나 공연할 때 여행 용어나 프로세스들을 갖다 쓸 수 있지 않겠어요? 그래서 어린이들한테 추천하는 책이 ‘채사장의 지대넓얕’이에요.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큰 원리들, 기본적인 인문학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오리지널 공연 그대로, 어떻게 해야 더 잘 보일까 고민
김 PD가 총연출을 맡은 잭슨의 솔로 첫 월드 투어. 지난해 11월 시작해 올 하반기에는 마카오, 싱가포르, 중국 등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사실 처음 한국에서 한 오리지널 공연을 반복하는 거라 해외 투어라 해서 연출적으로 더 신경쓸 부분은 별로 없어요. 뮤지컬 ‘캣츠’가 한국에 왔다고 한국 노래를 올리진 않잖아요. 관객들이 원하지도 않고요. 가끔 팬 서비스를 할 순 있어도 공연을 현지화할 건 없다고 봅니다.
공연장 규모에 있어서는 고민이 될 것 같은데요. 무대가 멀면 가수가 면봉처럼 보이잖아요.
규모가 클수록 중계 스크린도 아티스트 얼굴이 잘 보일 수 있도록 커야 하고, 돌출 무대도 관객한테 가까이 간다는 유의미한 움직임이 될 수 있도록 길이를 정해야 해요. 2016년 BTS 팬 미팅 장소가 2만 명가량을 수용하는 고척돔으로 잡혔는데, 고척돔이 개관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라 레퍼런스가 없는 거예요. 답사 가서 텅 빈 야구 경기장의 우익수 자리랑 기둥 등을 기준으로 어림잡아본 중계 스크린 사이즈가 16×9m였어요. 당시로선 K-팝 단독 콘서트 사상 최대 크기였을 거예요. 사람들이 말렸는데 제가 우겼어요. 왜냐하면 다음 해 2월에 같은 곳에서 콘서트가 또 있었거든요. 팬 미팅 때 실물은 멀어도 스크린으로 보는 데 문제가 없다는 걸 보여주지 않으면 콘서트 표를 다 팔지 못할 거라고 밀어붙였죠. 실제로 후기가 굉장히 좋았어요. 지금은 더 큰 스크린도 많이 보여요.
아무래도 대형 투어가 많아졌으니까요. K-팝이 세계로 더 뻗어나갈 수 있을까요.
그럼요. 가수 역량이 뛰어나고 시스템이 안정적이잖아요. 리스크라 할 만한 게 있다면 요즘 엑소 ‘첸백시(첸, 백현, 시우민)’처럼 기획사와 아티스트 간의 계약 문제인데, 대부분 팬은 그룹이 쪼개지는 걸 싫어해요. 그러면 팬덤도 와해되니까요. 엑소가 12년 차니까 비슷한 세대에서 이런 고비를 겪는 그룹이 더 나올 거예요. 다만 이런 문제들이 반복되면 해결책이 나오겠죠.
K-팝의 미래가 밝다면 콘서트 연출가의 전망도 밝겠네요. 문제는 업무량이 많고 신체적으로도 고된 일이라 오랫동안 현역으로 일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제가 20여 년 전 처음 시작할 때는 지금 제 나이대 연출자가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저보다 나이 많은 연출자분들이 계세요. 연출자의 수명이 길어지고 있다는 의미죠. 1만 석, 2만 석, 스타디움급 공연이 늘고 있고 이런 공연을 만들려면 10년 차 이상의 경험 많은 사람이 필요해요. 앞으로 시장은 계속 성장할 테니 자연스럽게 현장에서 오래 일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언제까지 일하고 싶나요.
저야 빨리 그만두고 싶죠. 모든 직장인의 꿈 아닌가요? 하하하. 하고 싶은 공연이 있긴 한데 저는 지금 업계 후배들이나 강의 나가고 있는 학교 학생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예전에는 저임금에다가 월화수목금금금 일했다면, 이제는 임금도 좋고 어느 정도 ‘워라벨’을 만족시켜줘야 더 똑똑하고 일 잘하는 친구들을 끌어올 수 있다고 봅니다. 좋은 인재가 좋은 공연을 만들면 업계 파이가 더 커지고 그러면 또 좋은 인재들이 들어오겠죠. 지금 인터뷰를 하는 이유도 사람들이 ‘이런 세계도 있구나’ 하고 더 많이 알아줬으면 해서예요.
초등학생 딸들이 이런 아빠를 자랑스러워할 것 같아요. 일단 아이돌을 많이 만나잖아요.
딱 그 전 단계 같아요. 윤이와 연이가 지금 유튜브로 ‘(여자)아이들’을 탐독 중인데 계속 욕 나오는 가사를 따라 불러서 그건 따라 부르지 말라고 했어요.
종종 육아에 소홀해 아내에게 혼나지만 딸들의 ‘최애’를 아는 거로 보아 확실히 ‘워라밸’이 있는 삶이 되어가는 모양이다. 플랜B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는 의미를 담아 PLAN A를 세운 지 올해로 13년, PLAN A의 쇼는 계속된다.
#김상욱 #K팝 #BTS #여성동아
사진 홍태식
사진제공 김상욱 PD
사진출처 BTS 페이스북, 부바(@boobagraphy)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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