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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현실 육아 멘토’ 조선미 교수의 직언 “친구 같은 부모는 없다”

문영훈 기자

2023. 05. 29

왜 내 아이는 “하지 마” “그만해”라는 말을 허투루 들을까. 오늘도 육퇴(육아 퇴근)가 길어지는 부모를 위해 30년간 문제적 아이와 그 부모를 봐온 조선미 아주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만났다.

“매일같이 아이와 실랑이하느라 지친 부모들에게”

조선미 아주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책 ‘조선미의 현실 육아 상담소’ 서문에 붙인 제목이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시달리다 퇴근하면 사랑하지만 고집 센 내 아이가 반기는 집으로 다시 출근해야 하는 것이 대다수 부모의 현실이다. 국내 최고의 자녀 교육 임상심리 전문가로 불리는 조 교수의 조언은 “권위 있는 부모가 되라”는 것이다.

조 교수는 1994년부터 30년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심리 평가와 부모 교육 등을 진행해왔다. SBS Plu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리턴즈’ 등 방송 출연을 비롯해 자녀 교육을 위한 강연과 저술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그는 많은 부모가 지향하는 ‘친구 같은 부모’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분명히 한다. 5월 10일 아주대병원에서 만난 그는 “병원에서 받는 질문의 30%는 친구 같은 부모를 지향해 발생한 문제와 관련돼 있다”며 “아이를 친구처럼 대하면 아이가 부모를 친구처럼 막 대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가 강조하는 훈육법을 물었다.





친구 같은 부모는 왜 가능하지 않나요.

아이가 집에만 오면 부모에게 짜증을 실컷 내고 왜 달래주지 않느냐고 요구하는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친구는 자신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잖아요. 아이를 친구처럼 대하면 아이는 엄마의 지시에 따를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평생 아이에게 지시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면 친구처럼 대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부모는 아이가 싫어하는 걸 시켜야 하죠.

아이의 행동을 교정하고자 할 때 설득하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보통 아이가 지시에 안 따른다는 걸 많이 고민합니다. 저는 사회심리학에서 힌트를 얻었어요. 설득하는 사람과 설득을 당하는 사람이 있다고 할 때 갑의 위치에 있는 건 설득을 당하는 사람입니다. 결정하는 쪽이니까요. 아이를 설득하려고 노력하면 아이를 갑으로 올려주는 거예요. 부모가 스스로의 권위를 놓게 되는 거죠. 학교 가기 싫다는 아이에게 매일 30분씩 학교 가야하는 이유를 설명해줘야 한다는 어머니를 만난 적 있어요. 그럴 때 “학교는 가야 하는 거야”라는 간명한 지시가 훈육에서 필요하다는 거죠.

그럼 “왜?”라고 물어보지 않나요.

물어보면 두 번 정도만 설명하면 됩니다. 이를 닦기 싫어하는 아이에게는 “이가 상해서 병원에 갈 수도 있어”라고 두 번만 말해주면 돼요. 그 이상 물어보는 건 하기 싫어서 시간을 지연시키려는 것에 불과합니다. 매일 이를 왜 닦는지 궁금할 리는 없잖아요. 또 10세 이전에는 인과 추론 형태의 질문은 잘 하지 않는 편입니다.

10세 이후엔 아이가 반문하게 될 텐데요.

그때가 되면 아이가 꼭 해야 하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을 스스로 판단합니다. 또 선생님과 또래의 역할이 커지거든요. 다른 아이들은 다 하는데 나만 싫다고 말하기 어렵죠. 사회적인 존재가 돼가는 겁니다.

그럼 그때부턴 부모가 가이드라인만 정해주면 되나요.

10세 이후엔 무데뽀로 고집부리는 일은 줄어듭니다. 물론 하기 싫은 건 하기 싫어합니다. 대개 스마트폰 이용 문제로 주로 부딪히죠.

“학원은 초과근무와 같다”

조선미 아주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SBS Plu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리턴즈’에서 육아 멘토로 활약했다.

조선미 아주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SBS Plu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리턴즈’에서 육아 멘토로 활약했다.

스마트폰 사용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제안하는 가이드라인이 있긴 하지만, 저는 중요한 건 스마트폰 사용 시간보다 자기 할 일을 안 하고 스마트폰을 보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아이가 제 할 일을 하고, 스마트폰으로 봐서는 안 될 콘텐츠를 접하는 게 아니라면 융통성 있게 규율해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어머니들은 아이가 스마트폰을 하고 있으면 저 시간에 공부를 해야지, 생각하시죠(웃음).

공부 습관을 만들어주고 싶다면 어떡해야 할까요.

공부는 집중하는 능력인데, 뇌의 발달단계로 볼 때 집중 시간에는 한계가 있어요. 초등학교 저학년이면 20분, 고학년이면 40분, 청소년이 되더라도 1시간에서 1시간 30분을 넘어가기가 어렵죠. 어렸을 때부터 일정 시간 앉아서 공부하는 습관을 만들고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야죠. 문제는 공부 내용과 진도를 잘 고려해야 한다는 겁니다.

어떤 말인가요.

모든 아이가 학원을 다니긴 하지만, 모든 아이가 힘들다는 걸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 처지에서는 학교 갔다가 학원도 가고, 집에 와서는 숙제도 해야 하잖아요. 학교 학습 시간 자체가 아이들의 발달을 고려한 것이거든요. 그 시간 정도는 집중이 된다는 거죠. 학원과 숙제는 추가적인 학습이 되는 거고요.

아이들 처지에선 쉽지 않겠네요.

직장인으로 따지면 하루 8시간 노동하고 매일 4시간 초과근무를 하는 거예요. 학원 숙제량이 너무 많거나 수준에 맞지 않는 공부를 하면 아이가 학원 가기 싫어하게 되죠. 그래서 제대로 공부시키려면 굉장히 디테일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엄마라기보다 학습 코치 겸 감독이 돼야 하는 겁니다. 그러면 아이 처지에선 엄마가 없어지는 거고, 엄마를 보면 긴장하게 돼요. 그런 아이들은 아무래도 긍정적인 정서가 좀 적은 편이죠.

공부를 잘하게 하려면 ‘엄마’를 포기해야 하는 건가요.

그래서 공부는 남에게 맡기고 엄마는 엄마가 되길 권합니다. 특히 워킹맘의 경우에요. 오후 7시에 퇴근해서 아이 교육시키려면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할 시간이 없거든요. 차라리 공부는 학교 끝나고 학원이나 공부방에 맡기는 거죠. 살림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어요. 여력이 된다면 사람도 쓰고 음식도 사 먹으면 좋죠. 에너지와 시간이 있어야 기분도 좋아집니다. 요즘엔 어머니 중에 모든 걸 다 잘하려는 분들이 있어요. 직장에서 일도 잘하고 살림도 하고, 아이 교육도 잘 시키고 싶어 하죠. 그걸 10년쯤 하다 보면 우울증을 겪을 수 있습니다.

실패의 경험이 학습을 만든다

아이를 행복한 어른으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충분한 시간 동안 아이와 기분 좋게 지낼 수 있어야 합니다. 순수하게 노는 시간을 확보해야죠. 저는 퇴근하고 집에 가면 일정 시간 아이들과 논다고 생각했어요. 저희 집에서는 유머 감각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웃음).

의식적으로 해야 하나요.

저는 그랬어요. 일하고 애도 키워야 하는데 의식적으로 하지 않으면 절대 정서적인 공간이 생기지 않죠. 일하는 부모는 인생이 진지하고 고통스럽잖아요.

학령인구는 줄지만 의대 경쟁률은 계속 높아집니다. 의대 학생을 보실 일이 많을 텐데, 행복해 보이나요.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제 아이들보다 공부를 잘했잖아요. 그래서 한번은 “너넨 부모님이 업어 키우지 않았니”라고 물어봤는데 반응이 싸했어요. 1등만 떨어져도 혼나고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가르치는 학생 중에 의대생도 있고 간호대생도 있는데, 오히려 간호대 학생들이 훨씬 자신감이 높아요. 부모님 관심도 덜 받고, 덜 혼난 거죠(웃음). 아무래도 의대 학생들은 부모에게도, 학교 선생님에게도 압박을 받으니 시니컬한 경우가 많아요. 마냥 행복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좌절과 실패가 필요하다고요.

학습은 불안할 때 이뤄지는데, 실패의 경험이 불안을 만듭니다. 실패하면 불안감이 상승합니다. 그 불안감이 정점을 찍고 약간 내려갈 때 가장 학습이 잘 이뤄집니다. 그러니까 실패가 없으면 학습도 없어요. 많은 부모가 우리 아이는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살면서 좌절을 꼭 겪어야 해요. 회사 출근할 때 집이 멀리 있다고 나만 30분 늦게 가선 안 되잖아요. 아이가 자라면 결국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따라야 하는 룰과 만나게 됩니다. 어른이 되면 해야 하는 일의 비중이 90%를 넘습니다. 그런 상황에 점차 적응해나가야 하는 거죠.

과도한 칭찬은 독이 된다고도 했습니다.

칭찬은 뭔가를 잘했을 때 받는 거잖아요. 그런데 10세 이후가 되면 학교에서나 사회생활에서 칭찬 들을 일이 별로 없어요. 가정과 밖에서의 칭찬 듣는 편차가 너무 크면 아이들이 변화에 적응하는 힘이 약해집니다. 의대생들은 “너 공부 잘한다”를 듣지 못한다는 걸 힘들어해요. 대학에서는 50명 중에 40등 할 수도 있거든요. 너무 많은 칭찬을 해주면 아이가 칭찬을 못 받는 환경에서 적응을 잘 못 해요.

조 교수는 권위 있는 부모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체벌이 필요하다는 말은 아니다. 2021년 1월 부모의 자녀 징계를 인정하는 조항을 삭제한 민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2022년 6월 국제아동권리 비영리기구 세이브더칠드런이 발표한 ‘가정 내 체벌금지 인식 및 경험’ 조사 결과에서 체벌을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응답은 36.2%, 상황에 따라 체벌을 사용할 수 있다는 응답은 28.9%로 나타났다. 조 교수는 “체벌에 대한 인식은 아동 인권이 대두되며 많이 개선된 편이지만, 현관문 안에서의 체벌은 강도만 줄었을 뿐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화낼 원인을 통제하라

체벌은 왜 나쁜가요.

비윤리적, 반인권적이라는 문제를 떠나서 체벌도 결국 훈육을 위한 거잖아요. 그 관점에서 봤을 때 긍정적 효과보다 부작용이 훨씬 큽니다. 체벌의 효과는 지속되지 않으며 아이는 불안과 공포심을 느끼게 되죠.

벌과 체벌은 다른가요.

심리학에서 벌은 어떤 행동을 하지 않게 만드는 걸 말해요. 가령 밥을 안 먹는 아이에게 밥을 더 먹으라고 하면 안 먹게 되죠. 그럼 먹으라는 말 자체가 아이에겐 벌이거든요. 훈육은 좋은 행동을 더 많이 하게 하고 안 좋은 행동을 덜 하게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정확한 훈육을 하려면 아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파악해야 해요. 그런데 보통은 모든 아이가 비슷할 거라고 짐작하니까 혼란을 겪는 경우가 생기죠. 내향적인 아이들은 밖에 나가서 외식하는 거 싫어하거든요.

아이의 부정적인 행동을 어떻게 바꿀 수 있나요.

행동을 바꾸는 데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운전할 때 처음엔 안전벨트를 메고 사이드브레이크를 풀고, 이 순서를 떠올려요. 하지만 계속하다 보면 자동화되잖아요. 아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를 시도하다 화내는 부모도 있습니다.

보통은 “하지 마”라는 말을 반복하다 아이가 그 행동을 계속하면 폭발하거든요. 만약 아이가 위험한 걸 갖고 놀 때 두 번 “하지 마”라고 말했으면 그다음엔 물건을 빼앗아야 합니다. 이렇게 스스로 화가 날 수 있는 원인을 통제해야 해요.

화는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분노라는 건 ‘너를 깨부술 거야’ 하는 감정입니다. 부모가 화내면 아이는 두려움과 불안에 휩싸입니다. 어떤 아이는 가족을 그리라고 하니까 호랑이를 그렸어요. 엄마가 화날 때 호랑이가 된다는 거죠. 작은 동물이 큰 동물에게 느끼는 본능적인 두려움, 부모가 화낼 때 아이가 그걸 느끼게 됩니다.

노력으로도 화가 통제되지 않는다면 병원의 도움을 받아야 하나요.

여성분들은 생리전증후군이라는 게 있거든요. 한 달 중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거의 감정 조절이 안 돼요. 이건 정신과 질환입니다. 그 자체로 치료를 받아야 하고, 이 시기에 아이들은 그 감정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꼭 약을 드시라고 하죠. 성인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환자도 육아할 때는 약을 먹어야 합니다. 보통 아이가 ADHD를 앓아 병원에 오면 아버지가 ADHD 환자인 경우가 많아요. 이분들이 체벌하게 되는 대표적인 집단이기도 합니다. 본인을 통제하지 못하는 거죠.

마지막으로 많은 부모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부모님들은 아이에게 최선의 것을 계속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너무 힘들어지죠. 내가 살아오면서 나에게도 주지 못했던 걸 주려고 해요. 하지만 아이들은 비싼 유모차를 사준다고 해서 행복해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겐 평균 수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만 해줘도 충분합니다.

#조선미 #현실육아상담소 #에듀무물 #여성동아

사진 홍태식 
사진출처 SBS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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