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일 보이 #울보 #걸어다니는 광고판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에이스 손흥민은 연간 1백억원 상당의 수익을 올리는 광고계 블루칩이기도 하다.
손흥민의 ‘오늘’은 아버지 손웅정 씨의 고독하고 끈질긴 훈육에 힘입은 바가 크다. 손흥민은 초등학교 때부터 아버지에게 ‘개인 훈련’을 받았다. 매일 달리고 또 달렸다. 볼 리프팅(양발로 볼을 떨어뜨리지 않고 계속 차기)과 드리블, 트래핑(오는 볼을 자기 몸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게 받아 안전하게 컨트롤하는 기술) 등 기본기 훈련을 지독하게 반복했다. 모두 아버지의 지도에 따른 것이다. 최근 빛을 발하고 있는 중앙, 좌우 등 위치를 가리지 않고 터뜨리는 골도 어릴 때부터 하루 수백 번씩 한 슈팅 훈련의 결과다. 페널티 지역 및 외곽의 중앙과 좌우, 골을 터뜨릴 수 있는 곳에서 오른발 왼발 한 발로 1백 회 이상 슈팅을 날렸는데 조금이라도 설렁설렁하면 어김없이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슈팅 한 번을 해도 혼을 담아야 했다. 이런 훈련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8년 동안 이어졌다. 매일 2시간 30분씩 3백65일 계속됐다. 손웅정 씨는 “좋은 기술은 안정적인 기본기에서 나온다. 어릴 때는 기본기를 쌓고 축구를 즐기는 방법을 배울 때”라고 강조했다.
손웅정 씨는 한때 잘나가던 축구 선수였다. 키는 168cm에 불과했지만 100m를 11초 초반에 주파하는 빠른 발을 이용한 돌파가 일품이었다. 춘천고(강원), 명지대, 상무를 거쳐 프로축구에 입성했고 한때 태극마크도 달았다. 하지만 1989년 5월 프로축구 일화 소속이던 그는 당시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대우와의 경기에서 아킬레스건이 파열돼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다. 수술과 재활 치료를 받은 뒤 복귀했지만 부상 후유증으로 빠른 발은 무뎌졌고, 현란하던 드리블도 수비수에게 막히기 일쑤였다. 결국 1990년 한창 나이인 28세 때 은퇴했다. 은퇴 후 그는 강원도 춘천시에서 유소년들에게 축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첫째 흥윤이와 둘째 흥민이도 아이들 틈에서 축구를 배우기 시작했다.
기저귀를 차고 다닐 때부터 장난감 공을 차고 놀았던 흥민이는 축구를 매우 좋아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직접 축구를 가르치면서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손씨는 “초등학생이었지만 다른 아이들에 비해 중량감이 있었다”며 “잘 가르치면 재목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때문에 더욱 엄격하게 대했다”고 술회했다.
#아버지의 후회와 헌신 #탄탄한 기본기 #월드 클래스의 자신감

손흥민의 아버지이자 멘토, 손웅정 씨.
손흥민은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해서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으로 이적해서도 연습을 거르지 않았다.
손흥민은 독일에선 ‘실전’을 배웠다. 유럽은 유소년도 연령별로 주말마다 국가별 리그를 벌인다. 주로 네덜란드, 벨기에 등 가까운 나라와 리그를 하지만 리그가 없을 땐 잉글랜드, 스페인, 포르투갈 등 축구 강국 클럽팀들이 참가하는 국제대회도 틈틈이 열린다. 네덜란드에서 활약했던 허정무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는 “유럽은 어릴 때부터 덩치 큰 선수, 기술이 좋은 선수들과 치열한 경기를 치르면서 성장하기 때문에 경기 중 주눅 들지 않고 자신 있게 찬다. 손흥민도 많은 실전을 통해 ‘유럽 선수도 별 것 아니다’라는 자신감을 몸으로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흥민이라는 스타는 그냥 탄생한 게 아니었다.
기획 김명희 기자 사진 동아일보 사진DB파트 뉴시스AP 디자인 최정미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