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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진양혜의 그 여자 그 남자

개그계의 대모 이경실 12년 만의 인터뷰

“미숙했던 지난날, 남편·두 아이와 꾸려가는 지금의 삶에 더 바랄 게 없어요”

기획 · 김지영 기자 | 글 · 진양혜 아나운서 | 사진 · 지호영 기자

2015. 08. 25

까칠하고 쉽게 곁을 내주지 않지만 정이 깊은 사람이다. 의외로 애교가 넘쳐 여성스럽고, 사랑과 행복한 가정을 제일 중요하게 여기고, 운동 후 맥주 한잔을 들이켜거나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가장 행복하다며 걸쭉하게 웃어젖히는 아줌마 연예인 이경실. 무더운 여름날 오후, 그와 맥주잔을 앞에 놓고 나눈 살아가는 이야기.

개그계의 대모 이경실 12년 만의 인터뷰
“이경실 씨처럼 강하게 이야기하면 시청률 상승에 도움이 되나요? 난 좀 무섭던데!”

얼마 전 끝난 프로그램 ‘내조의 여왕’을 진행할 때였다. 영화 관련 일을 하는 중년의 남자 지인이 고정 패널로 출연 중이던 개그우먼 이경실(49)에 관해 아주 진지하고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속으로 피식 웃음이 났다. 대한민국의 중년 남성치고 적극적이고 자기주장 강한 아주머니들이 무섭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럼에도 유독 이경실에 대해서 그의 출중한 유머 감각과 재능에도 불구하고 거침없이 하고픈 말을 직선적으로 해서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꽤 있는 것 같긴 하다.

사실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입장에서는 이경실 같은 베테랑 출연자가 함께하는 것은 큰 힘이 된다. 시의적절하게 치고 빠질 때를 잘 알아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살려서다. 패널 플레이-한 프로그램에 고정으로 출연하는 사람의 역할-는 쉽지 않다. 전체의 흐름을 파악할 줄도 알고 출연자 간의 호흡도 고려해야 하기에, 단순히 언변이 뛰어나고 유머 있다고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프로그램을 위해 적절한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것이 생각처럼 간단치 않다. 이런 면에서 볼 때도 이경실은 뛰어나다.

이경실은 1987년 MBC ‘개그 콘테스트’ 1기로 데뷔한 후 한 시대를 풍미했으며 자기 분야에서 정점을 찍었다. 데뷔 30년이 가까워오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맡아야 할 악역을 자청하기도 하고, 자신을 던져 아낌없이 웃기기도 하고, 지나온 삶의 다양한 경험에 비추어 솔직하게 자신을 내려놓기도 한다.

카메라 앞에서는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그녀를 한여름 오후, 브라운관 밖으로 불러냈다. 시원한 맥주를 앞에 두고 ‘내조의 여왕’ 패널이 아닌 인터뷰이로 마주한 그녀는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에서 행복을 찾는 따뜻하고 소박한 내면을 스스럼없이 보여줬다.



사생활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 충족시켜줘야

▼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얼마 전부터 드라마를 찍고 있어요. MBC 아침드라마 ‘이브의 사랑’이라는 작품인데 최근 대사 분량이 많이 늘어났어요. 제 역할은 스토리와는 별개로 웃음을 주는, 일종의 감초 역할인데 점점 비중이 높아져 출연하는 장면이 많아졌죠. 예전에 비해 드라마 제작 환경이 열악해지고 출연료도 많이 줄고 해서 처음엔 출연 여부를 놓고 고민했어요. 그런데 함께하는 분들이 신인 작가, 이 작품으로 입봉하는 감독이에요. 처음 작품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연대의식 같은 것이 있어요. 그런 초심을 느끼고 싶어서 출연하기로 했는데 잘 선택한 것 같아요.

▼ 지금까지 함께 일한 분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요?

아무래도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쌀집 아저씨’ 김영희 PD요. 그분의 일이라면 지금도 100% 지지와 협조를 하죠.

▼ 제가 보기에 이경실 씨는 프로그램을 위해 악역을 자처하는 경우가 많아 오해도 받고 일명 안티도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진행자 입장에서는 참 고마운 점이 많은 패널이에요.

아! 그런 걸 알아보다니 예리하시네요.

▼ 하하. 제가 좀 예리하죠.

대중은 그런 걸 잘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막상 제작자 입장에서 그런 걸 모르고 이상한 요구를 하면 정말 속상하죠. 얼마 전에 한 5년간 진행했던 프로그램의 담당 프로듀서가 바뀌면서 저에게 정말 이상한 캐릭터를 요구했어요. 결국 저는 프로그램에서 하차했죠. 가끔 기존의 틀이 잘 잡힌 프로그램에 새로운 변화를 준다는 명목 하에 무리한 변화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여럿이 함께 참여하는 프로그램은 생명이 있는 유기체 같은 거죠. 서로 호흡이 맞고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시너지가 생기거든요. 그런 것들을 인위적으로 바꾸려고 하면 그동안 쌓아둔 장점이 사라지기 십상이어서 프로그램이 망하고 말아요. 그땐 정말 억울해서 눈물이 막 나더라고요.

▼ 의외군요. 누가 이경실 씨 같은 베테랑이, 더군다나 이렇게 저돌적이고 직선적인 캐릭터의 소유자가 눈물을 흘렸다고 생각하겠어요? 그런데 요즘은 아이들과 함께 출연하는 ‘유자식 상팔자’나 ‘내조의 여왕’처럼 사생활을 노출하는 프로그램에서 정말 솔직하게 속내도 밝히고 눈물도 흘리고 하던데,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게 부담스럽지는 않은가요?

개그계의 대모 이경실 12년 만의 인터뷰
우리나라 대중들은 호기심이 많아요. 특히 연예인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죠. 제가 대한민국의 연예인으로 활동하는 한 그런 호기심을 충족시켜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신비주의를 택한다는 건 말도 안 되죠. 아이들에게도 어릴 때부터 그런 얘기를 많이 하면서 이해시켰어요. ‘엄마의 직업이 이러니 너희도 관심의 대상이 될 거다. 어쩔 수 없다’고요. 그게 싫으면 연예인 생활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이렇게 지면을 통해 개인사에 관한 인터뷰를 한 건 2003년 이후 처음이에요. 오늘 인터뷰하러 오면서 ‘와, 이게 얼마 만에 하는 인터뷰야’ 했어요.

개그계의 대모 이경실 12년 만의 인터뷰
부부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사랑하면 그걸로 충분

▼ 평소 방송에서는 재혼이나 이혼에 대한 언급을 자연스럽게 하잖아요. 그런데 인터뷰는 일부러 피했던 건가요?

사실 관계에 대한 이야기고 다들 아시는 이야기, 또 제 인생이니 방송에서야 하죠. 하지만 이혼 사건이 불거진 이후로는 언론에 이렇다 저렇다 말하고 싶지 않았죠. 아이들도 있고. 사실과 다르게 소설처럼 보도되기도 하고.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땐 제 세상이 무너졌었어요. 안 그랬겠어요? 처음 사랑한 사람이었어요. 집하고 일터밖에 모를 때였는데…. 더 아프고 싶지 않아서 방송 프로그램과 관련된 것이 아니면 언론과는 접촉하지 않았었죠. 물론 지금도 여전히 아프고, 용서도 안 되고 하지만 인생 경험 별로 없는 어린 나이의 일이었다 싶어요. 미숙했죠.

▼ 어떤 점이 미숙했다는 건가요?

지금 같다면 상대의 입장에서 더 생각했겠죠. 다르다는 것도 인정하려고 더 노력했을 거고. 부부란 게 서로 다른 걸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 외에 뭐가 더 필요하겠어요. 저는 다른 거 없어요. 저를 인정해주면 돼요. 그리고 사랑이 정말 중요하죠.

▼ 오랜만에 사랑지상주의자를 만났네요. 남편은 언제 만나셨어요? 참 자상하시던데요.

2007년 결혼했어요. 저를 정말 사랑해줘요. 남편이 비벼주는 비빔밥처럼 맛있는 게 없죠. 특별히 더 바라는 거 없어요. 아이들과도 잘 지내고. 아들 보승이를 위해 저 모르게 선생님과 면담도 많이 했더라고요.

▼ 수입은 어떻게 관리하세요.

각자 하죠. 제가 경험이 있잖아요. 하하하. 남편에게 돈 빌려주면 꼭 받으려고 하죠.

때맞춰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남편과 통화하던 도중 “아무리 보고 싶어도 이렇게 자주 전화하면 못쓴다”며 애교 섞인 농을 건네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니, 참으로 닭살 돋지만 보기 좋아 웃음이 절로 나왔다.

▼ 지금은 힘든 일이 없겠네요.

네. 보승이가 아직 사춘기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안양예고에 진학한 후 집에서 학교까지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야 해서 통학하기가 힘든데도 자기가 좋아하는 공부를 해서 그런지 시간 맞춰 스스로 일어나 등교하는 걸 보면 기특해요. 그동안 보승이 학교에 수시로 불려가고, 학부모들에게 죄인이 돼 울기도 많이 울고, 그런 게 너무 힘들어서 수면제를 잔뜩 먹고 잠든 적도 있었어요. 그런 과정을 거치며 제가 득도했다 싶어요. 이혼할 때보다 훨씬 힘들었어요. 저뿐만이 아니라 할머니도 보승이 잡고 많이 우셨죠. 말씀드린 대로 남편이 저 모르게 선생님을 찾아가 사죄한 적도 허다했고요.

▼ 방송으로 보는 보승이는 생각도 깊고 참 귀엽던데요.

보승이가 여러 가지로 힘든 점이 많았는데 제가 헤아리지 못했죠. 무슨 일이 있으면 무조건 보승이를 야단쳤는데, 자기 나름대로 엄마가 사생활 노출이 불가피한 연예인이니 더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마음을 제가 미처 헤아리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다그치기만 해서 보승이가 맘을 많이 닫았던 것 같아요. 자신의 입장을 이해받지 못하니 혼자 참다가 어쩌지 못해 욱하고 폭발하고 그랬던 거죠. 제가 다정다감한 엄마는 아니에요. 정서적으로 다가가지 못했죠. 아빠 같은 엄마였다고 할까? 대신 저희 어머니가 다정다감한 엄마 역할을 하셨어요. 어버이날, 할머니께 드린 카드에 감사하다는 내용이 빽빽하게 적혀 있더군요. 제게 준 카드엔 ‘엄마 저희를 위해 돈 벌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문장 딱 한 줄뿐이었죠.

아들과 4년째 상담받는 중, 긍정적인 변화 찾아와

▼ 오랜 시간 보승이와 함께 상담을 받았다고 들었어요.

보승이와 같이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에 상담을 받아요. 4년 정도 됐는데 이 시간을 지키는 것이 제 일 중 가장 힘든 일이에요. 선불로 상담비를 지급했는데 늦어도 늦은 시간만큼 보충이 안 돼요. 참석하지 못하면 상담비를 그냥 날리는 거고요.

▼ 상담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각각 다른 방에 들어가서 상담을 받으며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건데 얼마 전에야 비로소 보승이가 마음을 조금씩 열기 시작했어요. 저는 이런 상담 프로그램이 모든 학교에 있으면 좋겠어요. 보승이가 워낙 체격이 커서 놀림도 받고 그로 인한 상처가 많았어요. 화나고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서로 갈등이 생기면 보승이가 워낙 덩치가 크니 대부분 책임이 보승이에게 지워졌죠. 상담을 통해 서로 다른 아이들의 특장점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어요. 저를 포함한 많은 학부모와 아이들이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훈련이 너무 안 돼 있다 싶어요. 오며 가며 다른 점을 이해하는 방법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그 덕분에 저도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죠. 무슨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보승이 입장에서 생각하고 지지하려고 해요. 부당하다고 느낀 점에 대해 제가 더 화내고 억울해하니까 오히려 보승이가 절 위로하며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큰딸 수아가 스스로 잘하는 아이여서 보승이도 그런 줄만 알았는데, 힘든 점들을 이해해주지 못한 게 많이 미안하죠. 앞으로는 더 좋아지리라 생각해요.

▼ 성격이 상당히 긍정적이신 것 같아요.

전 ‘그러나 정신’으로 여기까지 왔어요. 이미 벌어진 일들에 대해 반성은 하지만 후회는 하지 말자는 주의죠. ‘내가 왜 그랬을까’ 연연하다 보면 상황만 나빠지고 개선의 여지가 없어요. ‘일은 이미 벌어졌다. 내가 잘못했다. 그러나 다시 박차고 일어서자’ 뭐 이런 거죠.

▼ 하하. 아주 맘에 드네요. ‘그러나 정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건가요?

저는 정말 특별한 것이 없어요. 경쟁심도 별로 없고, 제가 제일 잘하는 것 중 하나가 포기예요. 안 될 것 같으면 빨리 포기하죠. 특별히 막 하고 싶은 것도 별로 없었어요. 보여지는 삶을 사는 사람이니 건강을 지킬 수 있게 열심히 운동하면서 계속 일할 거고, 아이들은 커서 독립해 각자 자기 인생을 살겠죠. 제게 손 벌리지 않으면 그게 최고죠. 저는 술은 맥주만 마시는데, 운동하고 마시는 맥주가 저를 더없이 행복하게 해요. 워낙 먹는 걸 좋아해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수다 떨면 그보다 더한 행복이 없어요.

▼ 무슨 음식을 좋아하나요?

단것은 별로 안 좋아해요. 고기를 좋아하는데, 생선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에요. 하하하. 제 행복은 참 싸게 먹히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쭉 이렇게 살지 않을까 싶어요.

Epilogue

개그계의 대모 이경실 12년 만의 인터뷰
짧은 반바지 차림으로 ‘이게 얼마 만에 하는 인터뷰야?’ 하고 외치며 인터뷰 장소로 들어서는 이경실의 모습은 마냥 즐거운 여대생의 그것이었다. 그녀의 웃음소리를 들으면 그녀의 배포와 함께 인생의 굴곡을 ‘그러나 정신’으로 버텨온 내공이 느껴진다. 혹자는 그런 웃음소리가 과하다고 하지만 나는 그래서 그녀의 웃음소리가 참 듣기 좋다. 인터뷰를 기획하면서는 그녀의 일반적 이미지와 다른 따듯하고 배려심 넘치는 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그녀도 어쩔 수 없는 엄마였다. 아이들 이야기가 인터뷰의 80%에 가까웠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곧 그녀는 프로그램 촬영차 딸과 함께 이탈리아로 떠난다. 성숙한 딸과 함께 떠나는 모녀 여행. 솔직한 웃음소리에 담긴 그녀의 여린 듯 천진한 속내가 맘껏 드러나길 기대한다. 물론 부러운 마음이 한가득이다.

디자인 · 최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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