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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정유선, 당신 참 괜찮다

뇌성마비 극복한 조지메이슨대학 ‘최고 교수’

글·구희언 기자 | 사진·이기욱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예담 제공

2013. 09. 13

웃음에는 전염성이 있었다. 정유선 조지메이슨대학 교수와 인터뷰하는 동안 기자의 볼이 얼얼할 지경이었다. 작은 것에도 숨넘어가게 웃는 이 여자, 참 괜찮다.

정유선, 당신 참 괜찮다


정유선(43) 조지메이슨대학 교수와는 지난해 6월 그의 어머니이자 1960년대 한국 걸 그룹의 원조인 ‘이시스터즈’ 멤버 김희선 씨를 인터뷰하며 이메일을 주고받을 기회가 있었다. 정 교수는 뇌성마비 여성 최초로 해외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버지니아 주 조지메이슨대학 교수가 된 것은 물론 ‘최고 교수’의 영예도 안았다. 당시 그는 수상 소감과 어머니에 대한 생각, 그리고 가족사진을 보내왔다. 이메일에서의 말투가 살가워서 좋은 기억으로 남은 그가 ‘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고 싶다’(예담)라는 책을 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화사한 붉은 원피스 차림의 정 교수는 기자를 보자마자 활짝 웃었다. 웃음은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그는 사진을 찍던 사진기자가 “머리 위에 비상구 표시가 걸리는데…”라고 한마디 했을 뿐인데 눈물까지 흘려가며 한참을 웃었다. 사진을 촬영할 때마다 인터뷰이를 웃게 만드는 게 인터뷰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기자는 그 덕에 수월하게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출판사 관계자는 “원래 작은 일에도 잘 웃는다”고 귀띔했다. 밝은 에너지 덕에 분위기는 시종 화기애애했다.
“책을 내기 전에 많이 망설였어요. 과연 제 이야기가 가치 있는 것일까. 세상에서 큰일을 한 것도 아니고 독자가 읽었을 때 어떻게 생각할지 의문이었죠. 그런 고민을 하던 차에 제 이야기를 읽고 조금이라도 독자들에게 힘이 된다면 거기에 만족하자고 생각했죠.”

왜 나 같은 사람에게 주목할까 궁금해서
그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2004년 조지메이슨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보조공학을 가르치면서부터다. 세상은 뇌성마비라는 장애를 딛고 일어선 한 자랑스러운 한국 여성에 주목했다. 8년 후인 2012년 정 교수는 조지메이슨대학에서 ‘최고 교수상’을 받았다. 당시 피터 스턴스 조지메이슨대학 학장은 그를 “2시간 40분 강의를 위해 꼬박 이틀을 준비하는 교수”라고 평했다. 이렇듯 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강의에서 할 말을 미리 타이핑해 컴퓨터에 입력하고 보완대체 의사소통 기기를 시연해가며 여러 차례 리허설을 해야 해서다. 그가 최고 교수상을 받은 분야는 ‘기술과 교육’. 강의에서 테크놀로지를 효과적으로 사용해 강의의 질을 높인 교수에게 주어지는 상이었다.
“그때 신문과 방송에서 저를 인터뷰하고 싶어했는데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그냥 혼자 공부해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의 이야기가 무슨 뉴스거리가 될까 싶었죠. 그런데 특수학교 선생님인 지인이 저더러 ‘단 한 명이라도 제 인터뷰를 읽고 희망을 얻는다면 성공한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그가 생각하는 ‘괜찮음’의 기준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 그는 “책 제목을 알려주면 사람들이 ‘넌 이미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말하더라고요. 제가 괜찮나요?” 하고 웃었다.
‘세상의 편견을 이겨낸 장애인의 성공 스토리’에서 빠지지 않는 질문이 바로 “편견을 어떻게 이겨냈느냐”일 것이다. 그에게 “많이 들어서 식상하겠다”고 덧붙이자 그는 “들을 때마다 새로운 질문”이라고 했다.
“살면서 편견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그러다 질문을 받으니까 한번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제가 생각하는 장애는 스스로 심리적 한계를 긋고 자신과의 싸움을 쉽게 포기해버리는 행위 그 자체 같아요. 미국이라고 편견이 왜 없겠어요. 그들이 영어로 질문했다가 제가 동양인이니까 못 알아듣고 영어를 못할 거란 생각에 ‘Can you speak English?’하고 다시 물어요. 제가 박사 과정도 밟았고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인데 그런 질문을 받으면 말문이 막히죠. 지금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에 연연하지 않아요. 가끔 사람들이 장애가 있으면서 어떻게 유학을 갈 결심을 했느냐고 물어요. 저는 이렇게 답해요. 그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아예 안 갔을 거라고요(웃음). 어릴 때는 상처를 많이 받았지만, 이제는 그런 상처도 하나의 추억이에요. 편견이란 깨지라고 존재하는 거니까요.”

정유선, 당신 참 괜찮다

1 조지메이슨대학에서 수업 중인 정유선 교수. 2 정유선 교수는 2006년 독일에서 열린 국제보완대체의사소통기기학회 수상자로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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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진가를 발견해준 ‘고마운 사람’은 가족과 친구. 이시스터즈 멤버였던 어머니는 뇌성마비 판정을 받은 어린 딸을 위해 미련 없이 연예계를 떠났다. 그렇다면 정 교수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일까.
“굉장히 강한 분이에요. 어릴 때는 제대로 서 있지 않으면 ‘무릎 집어넣고 발 똑바로! 똑바로 서라’고 지적하시고, 밥상 앞에서 자세가 흐트러지면 ‘똑바로 앉아라’며 야단치셨어요. 그런데 그게 싫지 않았어요. 제 마음은 따뜻한 어머니를 많이 닮은 것 같아요. 어머니는 항상 남을 배려하고 상대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분이세요. 어릴 때부터 그런 모습을 보며 자라서 사람들을 만나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세 살 터울의 오빠와 다섯 살 아래 동생도 제게 큰 힘이 돼준 존재죠. 할머니께선 권투와 레슬링을 하며 놀아주는 오빠를 보고 ‘유선이 운동은 오빠가 다 시켜주네’라고 하셨어요. 초등학교 시절 학교 갈 때는 늘 오빠가 제 손을 꼭 잡아줬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나이에 주변에서 수군댔을 텐데 개의치 않고 손을 잡아준 게 참 고마워요. 어릴 때 동생에게 ‘누나가 다른 사람과 다른 게 있니?’라고 물어봤어요. 궁금하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때 동생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 똑같은데’라고 해줬어요. 그때 동생의 확신에 찬 눈빛과 목소리가 지금도 가슴에 남아 있죠.”
이어 고등학교 때 친구 이야기를 꺼낸 그는 학창 시절로 돌아간 듯 친구 자랑에 열을 올렸다.
“혜승이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 단짝 친구예요. 이 친구는 서울대에 진학했고, 저는 유학을 떠났기에 졸업 후 다시 만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혜승이도 미국으로 유학을 왔고 이곳에서 배우자를 만나 결혼해 살게 됐죠. 버지니아 주 한인 사회에도 찜질방이 있어서 만나면 거기 가서 이야기도 나누고, 카카오톡과 전화로 안부를 주고받아요. 얼마 전에는 생일 카드에 ‘네가 1970년도에 태어나줘서 고맙다. 나랑 같은 학교에 다녀줘서 고맙다’라고 썼더라고요(웃음). 정은이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알았어요. 만날 때마다 ‘네가 최고다, 예쁘다’고 말하며 용기를 준 친구죠. 예전에 서울에서 선릉역 근처 살 때는 늘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돌아가곤 했어요. ‘너는 정말 짱이야’라고 해준 한마디가 기억에 남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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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유선 교수에게 꿈을 심어준 아버지 정현화 씨. 2 정 교수를 최고라고 생각하는 오빠, 동생과 함께.



정 교수는 유학 생활 중 만난 재미교포 장석화(49) 씨와 결혼해 아들 하빈이와 딸 예빈이를 낳았다. 미국에서 생활하며 문화적인 차이를 느낀 그는 두 아이에게 한국식 예법을 가르쳤다고.
“미국에서 자란 아이들은 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상장을 받아도 한 손으로 낚아채거든요. 거기서 문화적 충격을 받았어요. 어릴 때부터 인사를 잘하라고 일러주고, 식사 예절과 어른 공경하는 법을 가르쳤죠.”
그를 닮아서인지 두 아이도 공부를 곧잘 한다.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에는 지역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AAP(Advanced Academic Program) 시험을 치르고 상위에 든 학생만 따로 모아 공부시키는 AAP 제도가 있다. 한번 AAP에 들어가면 중학교까지 계속 다닌다. 둘째 예빈이가 이 학교에 다니고 있다. 하빈이는 이곳을 졸업하고 미국 최고의 공립 고등학교로 꼽히는 토머스 제퍼슨 과학 영재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다.
“늘 하루가 24시간이 아닌 48시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할 일은 많고, 아이들에게 쓸 시간은 적거든요. 사실 저는 제 공부와 강의 준비할 시간이 부족해서 아이들 공부에 신경 쓰지 못했어요. 아이들이 ‘엄마가 여러 명이었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였죠. 전 아이들이 어릴 때 한글을 가르쳤어요. 앞쪽엔 글씨가 있고 뒤쪽에 그림이 있는 카드를 펼쳐놓고 문제를 내 찾게 하거나, 특정한 그림을 찾아서 발로 밟아보게 했어요. 그 덕인지 아이들이 한글을 꽤 일찍 깨우쳤어요. 서너 살 때 간판을 읽더라고요. 수학적 개념은 놀면서 가르쳤지요. 과자를 펼쳐놓고 ‘엄마가 지금 몇 개 먹었지?’ 하는 식으로요.”

엄마보다 더 어른스러운 두 아이 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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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위해 헌신한 걸그룹 ‘이시스터즈’ 출신 어머니 김희선 씨.



책에는 아이들과의 일화도 담겼다. 하루는 큰아이 하빈이가 “엄마는 영어로 말할 때 가끔 크랭키(cranky·불안정)한데 강의할 때는 어떻게 클리어(clear)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올 것이 왔다고 느낀 그는 ‘disability’라는 글자를 써준 후 “엄마에게 그런 장애가 있다”고 설명했다. 아이가 되물었다. “엄마 머리에 있는 상처는 고칠 수 없어요?” “뇌성마비는 수술해도 소용없어. 어떤 방법으로도 완벽하게 고칠 수는 없어.” 갑자기 아이가 하품을 했다. 하품 때문에 눈물이 났다고 변명할 참이었다. 그 후 박사 학위를 받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엄마에게 아이가 말했다. “저는 지금 아주 감동받았어요. 엄마가 장애를 이기고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첫 번째 사람이니까요.” 이번엔 정 교수가 하품을 했다.
“아이들이 삶의 원동력이다”라고 말하는 정 교수는 “엄마의 장애를 슬퍼하는 대신 당당히 받아들이는 아이들이야말로 인생 최고의 트로피이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존재”라고 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부모님을 위해 살았고, 지금은 아이까지 더해졌으니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어째 듣다 보니 남편 이야기가 쏙 빠졌다. 그는 “남편이 처음부터 끝까지 꾸준한 사람이라 아마 개의치 않을 것”이라며 깔깔 웃었다.
“남편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잘해줘요. 항상 곁에 있어주는 믿을 만한 사람, 좋은 남자죠. 그런 면이 힘이 돼요. 대신 살갑게 대해주는 건 없어서 그 부분이 아쉬워요. 애교를 부려도 통 ‘아, 예쁘다’라고 해주질 않더라고요.”
공부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따뜻한 물속에 들어가 몸을 풀거나 시원한 맥주 한잔을 들이켠다는 그는 “남편이 술을 잘 못해서 냉장고에 맥주가 떨어지면 큰일 난다”며 다시 킥킥댔다. 울고 싶을 땐 일부러 슬픈 영화를 보고 펑펑 운다고. 그는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할 즈음인 10여 년 후에는 한국 학생들에게 한국어로 보조공학을 가르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그가 생각하는 보조공학은 장애인이 한계를 뛰어넘고 희망으로 향하게 돕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학문이다.
정 교수에게 삶이란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로 돌아가더라도 즐거운 여행 같았다. 인터뷰 내내 웃던 그에게 “사는 게 즐거워 보인다”고 했다. 그는 이 말에도 웃었다. 그러고는 “제게만 국한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작은 것에도 행복하다”고 했다.
“화장할 때 예빈이가 부채질을 해주면 그게 참 행복해요. 자신이 행복해야 그 행복감을 다른 사람에게도 나눠줄 수 있는 것 같아요. 주어진 일을 하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해요.”
이는 정 교수가 편견을 뛰어넘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모습이다. 그가 좋아해서 책 머리말에 실은 박노해 시인의 시 ‘굽이 돌아가는 길’은 마치 거울처럼 그의 삶을 투영하고 있었다.
‘곧은 길만이 길이 아닙니다. 빛나는 길만이 길이 아닙니다. 굽이 돌아가는 길이 멀고 쓰라릴지라도. 그래서 더 깊어지고 환해져 오는 길. 서둘지 말고 가는 것입니다. 서로가 길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생을 두고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정유선, 당신 참 괜찮다

3 결혼식장에서 남편 장석화 씨와 함께. 4 5 정교수의 사랑스런 두 아이 하빈이(왼쪽)와 예빈이.



참고도서·‘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고 싶다’(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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