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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월령앓이’주인공 최진혁의 재발견

“연기 그만두려던 순간 만난 ‘구가의 서’, 키 큰 배우 찾는다는 소문 듣고 신발에 깔창 넣고 오디션 봤죠”

글·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MBC 제공

2013. 08. 26

레드카펫 여배우 노출, 열애설, 성형 고백 등 포털 사이트 급상승 검색어 창을 채운 연예인들은 ‘쇼킹’한 이슈의 주인공일 때가 많다. 하지만 본업인 ‘연기’로 올해 상반기 검색창을 들었다 놓았다 한 배우가 있다. 바로 ‘구가의 서’의 최진혁이다. 물론 그냥 잘생겼다고 하기에는 부족한,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비주얼도 한몫했지만 말이다.

‘월령앓이’주인공 최진혁의 재발견

‘구가의 서’에서 구미호 구월령으로 나온 최진혁.



최진혁(28·본명 김태호)은 드라마 ‘구가의 서’에서 인간 여자를 사랑한 비운의 남자 구미호 구월령 역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4월 8일 첫 방송 후 그는 포털 사이트 검색어가 1천 계단 이상 올랐으며, 6월 중에는 몇 차례나 검색어 1위를 할 정도로 큰 관심을 받았다. ‘구가의 서’에서 착한 순정남부터 악귀까지 스펙트럼 넓은 연기를 보여준 그의 이름 앞에는 ‘월령앓이’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 같은 수식어가 붙었다. 각종 뉴스와 방송의 상반기 드라마 결산에서도 그의 이름은 빠지지 않고 있다.

화려한 데뷔, 그러나 빛보다 그늘 많던 신인 시절
이제는 대세가 된 구월령, 아니 최진혁을 소환했다.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동아일보 사옥에 나타난 최진혁은 187cm 키에 모델 못지않은 비주얼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사진 촬영은 꽤나 어색해했다. 윙크를 해달라는 사진기자의 주문에 “제발, 그것만은 못 하겠어요”라고 뺐다. 그러다 연기 얘기가 나오니 달라졌다. 수다스러워졌다. 두 눈을 초승달 모양으로 만들며 개구쟁이처럼 웃었다.
“구월령은 제겐 최고의 캐릭터죠.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저와 맞아떨어진 것도 있고, 애련하고 아쉽고 그런 게 있어요. 차에서 음악 들으면서 마지막 촬영장 가는데 울컥하더라고요. 심지어 곤이(성준)가 ‘형 촬영 끝난 거 축하드려요’라고 하는데 화를 냈어요. ‘그게 축하할 일이냐’고. 좋은 의미로 말했을 텐데, 미안했죠. 작품 끝나고 많이 아쉬웠어요. 많이 허하고. 빨리 다음 작품 들어가야지, 후유증이 커요.”
가수가 되고 싶어 전라남도 목포에서 상경한 최진혁은 2006년 우연한 기회에 드라마 주인공을 선발하는 KBS ‘서바이벌 스타 오디션’에 참가하게 됐다. 여기서 대상을 받으며 연예계에 화려하게 데뷔한 그는 그해 겨울 KBS 청춘드라마 ‘일단 뛰어’를 찍었다. 하지만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멋모르고 한 연기는 독이 됐다고 한다.
“연기를 시작하고 두세 달 됐을 때, 운 좋게 대상을 탔죠. 대상이 아니었으면 지금보다 더 나았겠다 싶을 정도로 오래 안 풀렸어요. 1등 징크스랄까? 4, 5년 동안 심했어요. 힘들고 괴로워서 계속 연기자를 하는 게 맞는 건가 고민했죠.”
‘파스타’(2010), ‘괜찮아 아빠딸’(2010), ‘로맨스가 필요해’(2011), ‘내 딸 꽃님이’(2011), ‘판다양과 고슴도치’(2012) 등에 꾸준히 출연했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작품은 쉬지 않고 했어요. 그게 더 열 받는 거죠. 사람들이 ‘너는 키도 크고, 얼굴도 누구 닮았으니까 노력만 하면 잘될 거야’라고 하는데, 도대체 언제 잘된다는 건지….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동료들 중엔 미니시리즈 주인공으로 자리 잡은 친구도 있는데, 저는 이름조차 알리지 못했으니 힘이 빠졌죠.”
연기를 그만두려는 순간 기적처럼 ‘구가의 서’를 만났다. 최진혁의 출연작을 본 신우철 PD가 만나자고 연락한 것이다. 찾아갔더니 ‘구가의 서’ 대본을 주고 읽어보라고 했다. 오디션이었다.
“어디선가 신 감독님이 키가 크고 풍채가 좋은, 여자가 안기고 싶을 정도로 듬직한 구월령을 찾는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덩치가 커 보이는 옷을 입고 갔죠. 신발에 깔창도 넣고(웃음).”
“오늘따라 너 더 커 보인다”며 놀라던 신 PD는 흔쾌히 최진혁을 구월령 으로 캐스팅했다. 소속사 선배 정우성은 따로 시간을 내 그의 대본 리딩을 도왔다. “구월령은 눈빛이 깊어야 한다”는 조언도 해줬다고 한다.
“이렇게 멋진 역을 연기하고서도 못 뜬다면 그때는 진짜 배우를 그만두겠다고 결심했어요. 누구와 의논한 것은 아닌데, 저 혼자 그렇게 생각했죠. 지금도 연기는 못하죠. 하지만 연기를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안 해요. 자신감이라는 게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자신감이 생기니 모든 게 편해지더라고요. 감독님도 더 잘해주시는 것 같고. 하하. 그전에는 연기하면서도 이게 맞나 눈치를 봤는데, 이젠 그런 것도 없어졌어요.”

콤플렉스던 목소리와 눈웃음이 외려 호감 줘

‘월령앓이’주인공 최진혁의 재발견




지리산 신수 구월령과 인간 윤서화(이연희)의 사랑을 그린 ‘구가의 서’ 1·2회는 그의 독무대였다. 월령과 서화의 비극적인 사랑으로 주인공 강치(이승기)가 태어났고, 바통은 강치와 여울(수지) 커플에게 순조롭게 넘어갔다.
“1부 끝나고 인터넷에서 난리가 나니까 많이 놀랐죠. ‘최가’로 나오신 김동균 선배님이 ‘내가 너는 월령 역이 딱이라고 했지? 신우철 감독은 매의 눈이야’라고 하셨어요. 정말 기분 좋았어요. 항상 중저음 ‘목욕탕 톤’ 목소리가 콤플렉스였는데 그게 드라마에서 빛을 발할 줄 몰랐고, 눈웃음을 짓는 것도 바보 같아서 싫었는데, 시청자들은 그런 것들 때문에 더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2회가 끝난 후 최진혁을 재등장시켜달라는 여론이 폭발했다. 구미호 월령을 일찍 부활시킬수록 컴퓨터그래픽(CG) 처리 부담이 커지지만, 제작진은 당초 계획보다 빨리 그를 등장시켰다. 그렇게 아내에게 버림받아 죽은 월령은 20년 후 천년악귀로 부활했다.
“재등장 후 캐릭터가 어둡게 바뀌니까 스트레스가 컸어요. 다행히 강은경 작가가 대사를 강렬하게 써주셨어요. 헤어스타일도 고민을 많이 하다가 한쪽 눈을 가리면 어떨까 얘기했더니 ‘좋다’고 해서 시도했지요. 작가는 ‘섹시하게’라고만 주문했는데, 사실 섹시한 게 뭔지 몰라서 고민한 거죠.”

‘월령앓이’주인공 최진혁의 재발견

2006년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대상을 받으며 데뷔한 최진혁. 그는 반짝 스타가 아니라 준비된 배우다.



21회에서 죽은 서화(윤세아)를 부여잡고 서럽게 울던 최진혁의 연기는 여성 팬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TV를 보며 펑펑 울었다”는 소감이 인터넷 여기저기에 올라왔다. 최진혁은 월령에게 자신의 모든 걸 쏟아부었고, “최진혁의 재발견”이라는 찬사를 얻었다.
“그 장면을 찍을 때 밤부터 새벽까지 8시간을 울었어요. 분장 바꾸는 시간 빼면 7시간쯤? 재등장이 결정되면서 머릿속에 있는 신은 항상 그거 하나였어요. 분명히 서화를 만나 못 풀었던 얘기를 하며 오열하는 신이 있을 거고 사람들이 펑펑 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예상 못한 난관이 있었어요. 상대역이 윤세아 선배(중년 서화)에서 연희(어린 서화)로 바뀌고, 그 짧은 순간에 다시 신수로 돌아갈 줄은 몰랐죠. 다행히 그동안 감정을 잘 축적해놔서 그런지 눈물은 잘 나왔어요. 촬영 중간 1·2회를 계속 봤거든요. 또 촬영 날 카메라 세팅할 때마다 스마트폰으로 서화와 좋았던 때가 담긴 ‘사랑이 아프다’(‘구가의 서’ OST) 뮤직비디오를 봤죠. 울컥하더라고요.”
최진혁은 ‘울컥’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평소에도 자주 ‘울컥’하느냐?”라고 물어보자, 그는 “나름대로 어린 나이에 별일을 다 겪어봐서 남들보다 눈물이 많은 것 같다. 사소한 일에 감동받는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가장 노릇, 성공에 대한 열망 커

‘월령앓이’주인공 최진혁의 재발견


그는 이번 드라마로 스타덤에 올랐다. 집안에서의 대우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술을 마시고 들어가면 크게 화를 내던 어머니가 요즘엔 해장하라며 북어국을 끓여준다.
“어머니께 잘해드리고 싶은데, 그동안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뜻대로 되지 않아서 속상했죠.”
그의 말 중간에 “진혁 씨는 아직 어리지 않으냐?”고 끼어들었다. 가족에게 왜 그리 부담감을 가지냐고 물었다.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아직 어린데… 제가 가장이에요. 더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군대에 아직 못 간 건 제가 마땅히 벌어놓은 것도 없는데, 그동안 부모님이 생활하실 수 있으려나 고민이 컸기 때문이죠. 그러다가 ‘구가의 서’로 많은 걸 얻었어요. 21회 방송이 끝나던 날, 제 이름이 인터넷 검색어 1위에 오르고 하루 종일 섭외 전화가 오고… 모든 것이 꿈만 같았어요. ‘엄마, 내가 이런 일들을 하게 됐어’라고 하니까, 엄마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시더라고요. ‘엄마 더 행복하게 해줄게’ 하는데 또 눈물이 글썽글썽…. ‘아, 왜 울어!’ 하다가 저도 엄마를 끌어안고 한참 같이 울었어요.”
최진혁은 조금 쑥스러웠는지 “강아지도 울었다. 울다가 눈치 보고 방으로 들어갔다”고 말하곤 크게 웃었다. 최진혁은 외동아들로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고 한다. 그가 처음부터 스타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허리 디스크로 고생하는 어머니, 퇴직한 아버지에게 든든한 아들이 되겠다고 다짐하면서 스타에 대한 갈망도 커져갔던 것이다.
‘구가의 서’에서 구미호 구월령은 사랑하는 여인 서화 곁에서 영면하지만, 구월령을 연기한 최진혁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수십여 매체 인터뷰, CF, 팬 사인회, Mnet 20’s 초이스(Choice) 레드카펫 행사, 영화 VIP 시사회 등 각종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정신이 없다.
현재 그의 선택을 기다리는 영화와 드라마 시나리오는 10여 편이나 된다. 그는 일찌감치 누아르 영화 한 편과 10월 방송 예정인 SBS 드라마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상속자들’(이하 ‘상속자들’)에 출연하기로 결정했다. ‘상속자들’은 ‘시크릿 가든’ ‘신사의 품격’으로 유명한 김은숙 작가의 신작이다. 최진혁이 맡은 역은 주인공 김탄(이민호)의 이복형이자 제국그룹의 젊고 능력 있는 사장 김원으로, 이른바 상위 0.1%의 재력과 훈훈한 외모, 능력을 가진 완벽남이라고 한다.
“새 작품에서는 웃을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아요. 독설왕이래요(웃음). 김은숙 작가님이 ‘멋있게 나오게 해줄게’라고 해서, 설명도 제대로 듣지 않고 덜컥 ‘해야죠!’ 했죠. 김원이 차갑고 시크하고 무뚝뚝한 나쁜 남자라고 하는데, 전부터 그런 역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또 김 작가님은 모든 캐릭터를 다 잘 살려주니까 저도 잘 살려 주겠지 하는 믿음이 있어요. ‘구가의 서’ 2회 끝나자마자 연락한 걸 보고 제게 애정이 있구나 생각돼 감사했어요.”
마지막으로 최진혁은 ‘구가의 서’에서 이순신으로 나온 유동근의 발성과 연기력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유동근 선배님과 한 번도 같이 촬영을 못했어요. 촬영장에서 딱 한번 뵈었는데, 식당 앞 의자에서 낮잠 자고 계셔서 인사도 못 드렸죠. 종방연 때 뵙겠지 했는데, 제가 다른 일 때문에 2차에만 참석해서 못 뵈었어요. 이미 가셨더라고요. 다른 작품에서 한번 뵙고 싶죠. ‘구가의 서’ 1·2회 때 내레이션도 해주셨는데, 저는 성우가 하는 줄 알았어요. 내레이션은 저도 욕심났던 건데…. 하하. 제가 일 욕심이 꽤 많아요. 그동안 일하고 싶은데 일을 안 줘서 한(恨)이 됐나 봐요.”
인터뷰 시간이 예정보다 길어져 최진혁은 결국 끼니를 거르고 다음 미팅 장소로 떠났다. 그는 “고생하셨다. 제가 말이 많아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구월령으로 연기의 참맛을 안, 매너까지 갖춘 배우 최진혁의 비상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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