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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전격 인터뷰

35세 연하 아내에게 경영권 넘긴 영풍제지 이무진 회장

“회사는 아내가 잘 운영할 것”

글·진혜린 | 사진·지호영 기자

2013. 02. 19

최근 한 중소기업의 최대주주 변경이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기존 최대주주였던 창업주이자 대표이사가 2백억원에 달하는 자신의 보유 지분을 재혼한 아내에게 모두 넘겨준 것이다. 대표이사에게는 쉰을 훌쩍 넘긴 아들 둘이 있고, 재혼한 아내와 서른다섯 살 차가 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화제가 됐다. 최대주주 변경 후 지금까지(1월 17일 현재) 이 회사의 주가는 상승세를 타고 있다.

35세 연하 아내에게 경영권 넘긴 영풍제지 이무진 회장

1월 초 이무진 회장을 만나 베일에 싸인 노미정 부회장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패딩 점퍼에 베레모를 쓴 사람이 이 회장이다.



판지 제조업체인 영풍제지가 화제의 근원지가 된 것은 1월 3일. 영풍제지의 최대주주가 창업주이자 대표이사인 이무진(79) 회장에서 노미정(44) 부회장으로 변경된 사실이 공시되면서부터다. 공시에 따르면 이무진 회장은 지난해 말, 자신이 보유하던 주식 51.28%(113만8452주) 전부를 노미정 영풍제지 부회장에게 증여했다.
증여 가격은 주당 1만6천8백원으로 총 금액이 대략 1백91억원이다. 이에 따라 노미정 부회장은 영풍제지의 지분율이 기존 4.36%에서 55.64%(123만 5182주)로 크게 늘어나며 단독 최대주주가 됐다.
이번에 영풍제지의 최대주주가 된 노미정 부회장은 이무진 회장이 2008년 재혼한, 서른다섯 살 연하의 아내다. 노미정 부회장은 2012년 초 영풍제지의 부회장으로 이름을 올린 후 지난해 8월 처음으로 회사 주식을 시장에서 사들였으며, 12월에 남편인 이 회장 보유 주식 전량을 증여받았다.
영풍제지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세워 40년간 이끌어온 이 회장이 하루아침에 아내에게 최대주주 자리와 사실상의 경영권을 넘겨준 이유는 무엇일까? 이 회장에게는 전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장성한 아들이 둘이나 있는데도 말이다.
장남 이택섭(56) 씨는 2002년 대표이사로 취임하며 경영권 승계 과정을 밟아 나갔다. 11년 전 이무진 회장은 업계 1위 업체인 태림포장과 동일제지에 자신이 보유한 전 지분을 매각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위약금으로 7억원을 물어가며 계약을 해지한 후, 큰아들인 이택섭 씨에게 대표이사 자리를 물려주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한경대학교를 졸업하고 영풍제지에 입사한 이택섭 씨는 경영 전면에 나서며 공격적으로 사업 확장을 시작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다. 부동산 관련업과 DMB 관련 회사를 자회사로 영입하면서 회사 재정에 손실을 입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택섭 씨는 2009년 대표이사 임기 만료와 함께 그전까지 보유했던 지분 2.71%도 모두 정리한 채 회사를 떠났다. 이어 차남 이택노(53) 씨가 형이 회사를 떠난 2009년, 임기 3년의 등기 임원으로 선임된 후 2012년 초까지 활동했으나 재임이나 승진하지 못한 채 임원직에서 물러났다.
그렇게 두 아들이 거쳐간 빈자리에 급부상한 것이 바로 지금의 아내, 노미정 부회장이다.
영풍제지 관계자에 따르면 이무진 회장과 노미정 부회장은 노미정 부회장이 취임한 직후부터 경기도 평택 본사와 서울 사무소를 오가며 함께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고 한다.

집 앞에서 만난 이 회장 “아내는 아주 똑똑한 사람”

35세 연하 아내에게 경영권 넘긴 영풍제지 이무진 회장

이무진 회장 부부가 살고 있는 아파트. 노 부회장 명의로 돼 있는 이 아파트의 매매가는 14억원을 웃돈다. 노 부회장은 이밖에 경기도 구리시에 위치한 아파트도 소유하고 있다.



하루아침에 상장 회사의 최대주주에 오른 노미정 부회장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사업보고서에 노 부회장의 이름을 올리며 주요 경력란을 공란(-)으로 처리한 것이 궁금증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 궁금증은 사실상 경영권을 승계받은 노 부회장의 경영 능력에 대한 의문일 수도 있다.
수치만 놓고 봤을 때는 이무진·노미정 부부 경영은 일정 부분 성공을 거뒀다. 2011년 37억원에 불과했던 영업이익이 노미정 부회장이 경영에 참여한 후인 2012년 3분기까지 1백3억원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이에 영풍제지 관계자는 “최대주주가 바뀌었다고 해서 경영 자체에 큰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며 “최대주주와는 상관없이 노 부회장이 1년 전부터 경영에 참여해왔기 때문에 최근의 변동 사항은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장자 승계 구도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이무진 회장의 선택이 이례적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노 부회장이 언론이나 사내외 행사 등에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여러 억측이 나돌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이 회장과 노 부회장이 살고 있는 집을 찾아가 이 회장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갑작스럽게 지분을 증여한 만큼 이 회장에게 건강상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지만 직접 만난 이 회장은 무척 정정한 모습이었다. 이른 아침 함박눈이 쏟아지는데도 치과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먼저 경영 승계 이유에 대해서 물었다.
“이제 나는 나이가 많아서 다 넘긴 거예요. 아이들도 있지만 아직 너무 어려서…. 본인(노미정 부회장)이 아이들 잘 키우고 회사도 잘 운영해야죠. (갑자기)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니고, 조금씩 준비를 해왔어요.”
이 회장은 자신과 노 부회장 사이에 두 자녀가 있고, 첫째가 올해 다섯 살이 됐다고 했다. 이 회장의 나이를 따져봤을 때, 일흔다섯 살에 셋째를 본 셈이다. 서른다섯 살이나 어린 아내이지만 노 부회장이 아이를 낳은 것 또한 마흔 살로 적지 않은 나이다. 이 회장은 “그렇게 됐다”며 털털 웃었다.
“다 큰 아들 둘이 있는데, 그 아이들은 먼저 조금씩 다 가져갔어요. 아직 어린 두 아이도 있고, 나는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까.”
이와 함께 이 회장은 이제 경영권을 노 부회장에게 전부 넘겼다고 말했다. 얼마 전까지 함께 회사에 출근했지만 이제 전적으로 아내에게 회사를 맡길 거라고 했다. 이 회장은 노 부회장에 대해서는 짤막하게 답했다.
“원래 학교 일을 했어요. 아이들 가르치는 것도 기가 막히게 잘하죠. 아주 똑똑한 사람이에요. 머리가 기가 막힙니다. 회사 경영도 아주 잘해줄 거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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