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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인생 사용설명서 세 번째 | 내 나이가 어때서...

‘아너소사이어티’ 최연소 고액 기부자 류원정

“인간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살고파”

글 | 구희언 기자 사진 | 조영철 기자

2012. 01. 17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는 말, 이 청년에게는 통하지 않는 것 같다. 할머니가 손자의 미래를 걱정해 내놓은 1억원을 자기 배를 불리기보다 사회를 위해 쓰기로 ‘통 큰’ 결정을 내린 류원정씨. 최연소 고액 기부자로 이름을 올린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아너소사이어티’ 최연소 고액 기부자 류원정


아버지는 아들에게 “항상 소외되고 그늘진 곳에 있는 사람을 잊고 살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실제로 20여 년간 기업을 운영하며 재산의 절반 가까이 되는 30억원을 꾸준히 기부해온 그는 “남은 재산도 상당 부분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하나뿐인 손자가 나중에 돈 한 푼 없이 살까 봐 걱정이 된 할머니는 평생 안 입고 안 먹고 폐지를 주워 모아 판 돈을 손자에게 건넸다. 할머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손자는 어려운 이들을 위해 쓰겠다며 증여받은 1억원을 기부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고액 기부자 모임 ‘아너소사이어티’ 최연소 회원이 된 류원정씨(27) 이야기다. 그가 50번째 회원이 되면서 그와 아버지 류시문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장(64)은 ‘아너소사이어티’ 최초의 부자(父子) 회원이 됐다.

할머니께서 주신 1억원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 받은 사랑 그대로 사회에 환원키로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는 류원정씨를 만났다. 그는 “혹시나 기부 사실이 보도돼서 진심이 왜곡되지는 않을까 걱정했다”며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돈 욕심이 안 났다고 하면 거짓말이에요. 아버지께서 경영인이다 보니 저도 처음에는 이 돈으로 사업을 해볼까, 다른 일에 쓸까 1년 반을 고민했어요. 그러다 할머니 생각이 났죠. 어릴 적 할머니께서는 박스랑 폐휴지를 주워서 저를 키우셨거든요. 살아오면서 너무 많은 할머니의 사랑과 희생을 요구한 것이 아닌가 싶었고, 그렇기에 이 돈을 자신을 위해 쓰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돈이지만, 제가 번 것이 아니기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면 하루하루 더 열심히 살고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죠.”

‘아너소사이어티’ 최연소 고액 기부자 류원정

류원정씨는 졸업 후 어려운 이들의 삶을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가 기부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자 할머니 장월분씨(88)는 “힘든 시절 누가 도움을 주면 좋더라. 우리 손자가 잘 컸구나”라며 두 마디를 했다고. 그저 자신은 할머니의 사랑을 사회에 전하는 ‘전달자’였을 뿐이라는 류씨. 취약 계층 고용을 돕는 한맥네트워크와 기아로 허덕이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돕는 국제기구 이사로 활동 중인 그가 처음부터 사회복지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려던 그가 사회복지에 눈을 돌린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아버지는 항상 사람을 먼저 알아야 한다고 하셨어요. 돈을 물려주기보다는 살아가면서 어떻게 돈을 벌고 그걸 어떻게 써야 할지, 돈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를 알려주려고 하셨어요. 항상 소외되고 그늘진 곳에 있는 사람들을 잊고 살면 안 된다고 강조하셨죠.”
그는 아버지의 삶에 대해 쓴 ‘아들의 증언’이라는 희망 에세이로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상을 받았다. ‘2009 소셜벤처경연대회-대전·충청 권역 본선’ 우수상, 제10회 사회복지의 날 기념 ‘행복한 동행, 따뜻한 세상 공모전’ UCC 동영상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전력도 있다. “운이 좋았던 것 같다”며 쑥스럽게 웃는 류씨. 시간 나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책과 영화를 본다는 그는 영국 문호 찰스 디킨스의 소설 ‘위대한 유산’을 읽고 인간애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다고 했다.
“군 제대하고 얼마 안 됐을 때, 새벽에 길을 가다가 어떤 할머니께서 찬 이슬을 맞으며 리어카를 끌고 가는 모습을 봤어요. 굉장히 죄송스럽고 왠지 모르게 화도 나더라고요. 제가 복지 기관에서 점심이나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지만 정부 차원에서 사회적인 안전망을 든든하게 펴주는 것이 궁극적으로 그분들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앞으로 졸업하고 어떤 일을 하건 인간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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