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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terview

‘요즘 남자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 탈출 해법’

우종민 인제대 정신과 교수가 말하는

글 이영래 기자 | 사진 조영철 기자

2009. 06. 17

IMF 이후 또 한 번 찾아온 경제 대불황의 한파 속에서 일과 가정, 관계에 지친 남자들이 앓고 있다. ‘이 시대 남자들이 위험하다’며 던지는 우종민 인제대 서울백병원 정신과 교수의 긴급 메시지.

‘요즘 남자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 탈출 해법’


군사문화의 잔습인지 유교문화의 전통인지는 몰라도 한국 남자들에게 ‘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라는 명제는 감히 부정할 수 없는 절대 윤리에 가까웠다. 그러나 우종민 인제대 서울백병원 정신과 교수(41)는 최근 펴낸 ‘남자심리학’(리더스북)에서 그것을 ‘굴레’라고 규정했다.
아니, 그는 더 나아가 한국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남자다워야 한다’는 의식을 일종의 강박관념, 자폐증이라고 진단내렸다.
막상 따져보면 아무도 ‘남자답게 사는 법’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그는 말한다. 단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기보다는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 목적이 되고, 그 목적을 이루며 사는 게 ‘의미 있는 삶’ 혹은 ‘남자다운 삶’이라고 믿는 남자들이 많은 것뿐이라고.
가령 은퇴한 남자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면 자신, 가족, 또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 거의 대부분이 정치 이야기, 나라 걱정 등만 늘어놓으며 시간을 보낸다. ‘남자다움’이라는 가면에 가려 그들은 ‘진정한 나’를 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자신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데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겠는가?
“남자는 일관되게 행동하려는 경향이 강해요. 그러니까 적응이 쉽지 않아요. 가령 해병대 출신 남성은 제대 후에도 해병대의 생활습관을 유지하려고 하지요. 변심을 하면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조직이 그 사람 스타일에 맞춰갈 수는 없거든요. 개인이 맞춰야 하는데 그걸 못 맞추게 되면 사회부적응을 겪는 거죠. 그 심리를 분석해 들어가다 보면 결국 ‘남자다움’이라는 콤플렉스가 나와요.”
우 교수는 역사상 생산자와 고객 간 거리가 이렇게 가까운 적은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지금 산업인구의 50% 이상이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그 상당수가 고객과의 접점에서 일하고 있다. 말 그대로 ‘고객만족’ ‘고객감동’이 생존의 법칙이 되는 시대다. 그러나 인간의 DNA는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으며, 특히 남자들이 적응장애를 호소하고 있다고 말한다. 고객의 요구에 응대하고, 비위 맞추는 것을 ‘남자답지 못한 행동’ ‘자존심이 상하는 행동’이라고 여기는 것은 일종의 비정상적 사고다.
“받아들여야 해요. 자기가 하는 일, 어떤 행동이 남성답지 않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중요한 건 남자다운 행동이 뭐냐가 아니고 지금 어떤 행동을 요구하는 상황이냐는 거예요. 해병대에선 해병대로, 일반 기업에선 일반 회사원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건 평범하면서도 당연한 진리인 겁니다. 남자다울 때 남자답고 그럴 필요가 없는 곳에서는 주변 사람들의 요구에 맞추려는 노력을 해야 해요. 상황에 상관없이 나는 남자다워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는 건 자폐증이죠.”
밖에서는 야수 같더라도 집에 돌아오면 나긋나긋한 남자가 사랑을 받는 법이라고 그는 이야기한다.
“남자다움의 가면 벗어야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어요”

‘요즘 남자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 탈출 해법’


“여자들이 말하죠. ‘나도 너만큼 배웠고, 나도 벌 수 있는데 지금 희생을 하고 있다, 그런데 왜 남자라고 집에 와서 무게를 잡느냐?’ 그런데 남자들이 ‘나는 남자니까 집에서 이런 건 못해’ 하고 우기면 싸움이 되고 갈등이 되고 문제가 벌어지는 겁니다.”
그가 예를 든 갈등은 어느 집에서나 쉽게 벌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집단 자폐증’에 사로잡힌 남자를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내가 무엇을 한다고, 어떤 자극을 가한다고 그런 남자가 변하지는 않는다고 그는 단언한다. 왜냐면 자기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남자 자신이 느끼고 변화를 추구해야 바뀔 수 있다. 이를 강제하거나 핍박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여자들도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해요. 다이어트 결심해서 얼마나 실행했는지, 자신의 의지로 무언가와 싸워서 몇 번이나 이겨봤는지. 자신도 하지 못하면서 남편에게 뭔가를 요구하고 강요하는 것은 잘못된 거죠. 우리나라 여자들은 ‘선녀 콤플렉스’가 있어요. 남편은 불한당 같은 나무꾼이고 자신은 나포된 선녀인 거죠. 도끼질 잘할 때는 가만있다가 이제 늙어서 힘 빠졌다고 구박하면 안 돼죠. 모자란 우군도 없는 것보다 낫다는 말이 있어요. 중년 이후 상실감에 빠진 남편을 감싸고 이해해줘야 합니다.”
남자가 벽에 부딪혀 좌절했을 때 자신감마저 파괴된다면 이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고 만다. 그는 현대 남성들이 겪고 있는 중요한 정신적 문제로 ‘탈진 증후군’ ‘아담 증후군’ ‘오셀로 증후군’을 드는데 이런 증상들은 보통 자신감이 파괴됐을 때 나타난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인데 남성다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이야기지, 자신감까지 버려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남자가 자신감을 잃어버리면 또 다른,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야기합니다. 이른바 탈진증후군이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라고 저는 봐요. 예전엔 몸은 힘들어도 마음이 소진되는 느낌은 없었죠. 그러나 요즘은 노동이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어요. 과도한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 경쟁 때문에 감정적으로 소모되는 거죠. 이게 정신적인 과부하가 되고, 인간관계를 망가뜨립니다. 이게 심해지면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같은 정신질환을 야기하는 겁니다.”
탈진증후군은 이상이나 목표를 향해 무조건 돌진하는 사람이 자신의 한계나 현실의 벽을 느낄 때 마치 다 타버린 것 같은 우울한 상태에 빠지는 것을 말한다. 요즘 남자들 중엔 삶의 희망을 못 찾고 이렇게 무기력한 상태에 빠진 경우가 많다.
또 중년 이후의 남자들 중엔 오셀로증후군에 빠진 경우도 많다. 오셀로증후군은 배우자가 불륜을 저질러 자신이 피해를 받고 있다고 비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증상으로, 자신감을 상실한 남자가 소외감에 빠졌을 때 나타난다. 50대 이후엔 아담증후군도 나타나는데 남성호르몬의 분비가 줄어드는 대신 여성호르몬의 분비가 시작된 중장년 이상의 남성이 여성화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만약 ‘남성다움’이라는 말 속에 ‘자신감’이란 의미가 포함된다면 결국 과해서도 안 되고 모자라서도 안 되는 것이 바로 남성다움인 셈이다.

“스트레스는 현대인 모두의 천형, 다루는 법 배우지 못하면 도태돼”
“케임브리지대 심리학 교수 사이먼 배런코언은 여성과 남성의 뇌가 각각 공감하기와 체계화하기의 두 차원으로 발달했다고 이야기해요. 여기서 주목할 것은 남자 중 공감형과 여자 중 체계화형인 경우인데, 이런 사람들의 비율이 17% 정도라고 이야기하지요. 현대 사회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요. 공감하기를 잘하는 사람은 의사소통을 잘하고, 다른 이의 요구를 쉽게 예상해 재빠르게 반응하기 때문이죠. 결국 남자가 여성성을 겸비하면 사회적으로 더 큰 영향력, 실적을 얻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제 경험으로 보면 사람의 성향은 노력으로 변하기 때문에 태도를 바꾸면 이렇게 될 수 있다고 봐요.”



‘요즘 남자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 탈출 해법’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생활습관도 중요하다. 스트레스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천형과도 같다. 그는 스트레스를 피해갈 방법은 없다고 이야기한다.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를 얼마나 빨리 극복하는가 하는 ‘회복력’이라고.
“스트레스를 어떻게 극복하고 회복할 것이냐를 고민해야죠.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에 들어가자마자 농구 코트부터 만들었어요. 왜냐?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니까. 미국에서 엘리트의 전형적인 모습은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수영하는 거예요. 우리 어머니들이 자녀들에게 매일 공부, 공부 하는데 공부도 중요하지만 스트레스 관리가 성공의 기본입니다. 취미, 운동 등을 해야 회복력이 커지는 데 우리나라 남자들은 그런 게 없어요. 어렸을 때부터 제대로 된 취미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는 이런 현상이 다음 세대에게까지 유전되고 있다고 걱정했다. 그는 얼마 전 자녀를 데리고 농구 코트에 갔다왔는데, 아이를 데리고 농구 코트장에 와 있는 사람 중 아버지는 자신이 유일했다고 한다. 아이들은 아무런 규칙도 없이 농구 코트에서 공을 튀겼고, 엄마들은 한쪽에 모여앉아 “어느 학원이 잘 가르치더라” 등 공부에 관련된 이야기들만 나누더라고 했다. 농구장에 왔지만 아이들에게 농구를 즐기게 하는 것이 아니라 체육 내신점수 때문에 온 게 분명했다.
“운동, 취미에 대해서 잘못된 생각이 있는 것 같아요. 자녀가 좋아하는 운동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운동, 취미가 쓸데없는 시간 낭비가 아니에요. 미국에서는 동네에서 농구를 해도 제대로 룰도 배우고 팀플레이도 배워요. 소통 능력을 키우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을 배우는 거죠. 그게 성공의 기본이에요. 무슨 운동이 됐건 아이가 좋아하는 운동을 3년 이상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운동을 취미로 끝까지 가지고 갈 수 있게요.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사는 법을 알아야 생존하고, 성공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스트레스를 다루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도태되고 만다고 그는 경고한다. 스트레스를 다루는 법을 아는 것도 능력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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