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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화제의 CEO

동대문 상권 부흥 꿈꾸며 백화점식 쇼핑몰 ‘케레스타’ 문 연 배관성대표

기획·송화선 기자/글·오진영‘자유기고가’ /사진·조영철 기자

2008. 07. 17

지난 98년 IMF 외환위기 당시 부도를 맞고 쓰러졌던 서울 동대문의 한 대형 쇼핑몰이 꼭 10년 만인 올해 새 모습으로 문을 열어 화제다. 지난 5월 옛 거평프레야 자리에 문을 연 쇼핑몰 케레스타의 배관성 대표를 만나 포부를 들었다.

동대문 상권 부흥 꿈꾸며 백화점식 쇼핑몰 ‘케레스타’ 문 연 배관성대표


지난 5월 말, 서울 청계천과 동대문운동장 사이에서는 한 쇼핑몰의 화려한 오픈 행사가 열렸다. 지난 98년 IMF 외환위기 때 문을 닫았던 쇼핑몰 ‘거평프레야’ 자리에 백화점식 쇼핑몰 케레스타가 개장한 것이다. 6월 초 아직 내부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건물의 16층 대표 사무실에서 배관성 대표(56)를 만났다.
“지난 10년은 마치 높은 담벼락 위를 아슬아슬하게 걸어온 것과 같은 세월이었습니다. 그 담 위에서 떨어지면 내 어깨 위에 있는 3천명이 같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며 버텼습니다.”
지난 세월을 회고하는 배 대표의 목소리는 비장했지만, 얼굴엔 온화한 미소가 흘렀다.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 이 쇼핑몰의 이름이 ‘거평프레야’였을 때 그는 12층에서 대형 사우나를 운영하는 사업가였다. 그해 5월, IMF 외환위기로 쇼핑몰을 운영하던 거평그룹이 부도를 내면서 그를 비롯해 3천여 명의 임차인은 졸지에 갈 곳 없는 신세가 됐다. 그는 당시만 해도 자신이 그로부터 10년간 쇼핑몰과 다른 임차인의 운명까지 함께 짊어지고 싸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당시 거평프레야에 등록돼 있는 상인이 3천명이 넘었어요. 그들이 날리게 된 보증금만 1천9백45억원이었고요. 그런데 모기업이 그 액수를 상환할 형편이 안 되니 꼼짝없이 거리에 나앉게 될 상황이었죠. 그래서 우리끼리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었는데, 제가 위원장이 된 거예요.”
그때부터 10년 동안 그는 ‘상가 살리기’를 위해 달려왔고, 그 노력은 최근 원래의 장소에서 당시의 상인들과 함께 다시 쇼핑몰 케레스타를 개장하며 결실을 맺었다.
이색적인 건 그가 원래 동대문 상인 출신이 아니라는 점. 사우나를 운영하기 전인 지난 95년까지 그는 서울 강남에서 꽤 성공한 학원 원장이었다고 한다. 충남 아산 근처 시골에서 8남매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한양대 산업공학과에 진학한 뒤 1학년 때부터 과외를 하며 등록금을 벌었다. 당시 고3이던 바로 아래 동생과 동생 친구 다섯 명을 모아놓고 물리를 가르친 것이 시작이었다.
과외를 하는 게 적성에 맞았던 그는 작은 학원에 취직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원에서 월급을 가장 많이 받는 강사가 됐다고 한다. 대학 졸업 무렵에는 이미 자기 학원을 운영하는 원장이 돼 있었다. 졸업 후 잠시 대기업에 취직했는데 월급이 학원장으로 일하던 시절의 ‘20분의 1’밖에 안 돼 이내 그만뒀을 정도로 학원사업은 성공가도를 달렸다고 한다.
학원을 통해 번 돈을 바탕으로 그는 새로운 사업을 구상했다. 목욕탕 운영이었다. 지인들이 “동대문에 대규모 쇼핑센터가 생기는데, 그곳에서 목욕탕을 운영하면 한 달에 2천만원은 벌 수 있을 것”이라고 권했기 때문이라고. 마침 학원운영에 대한 열정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을 때였다.
“젊을 때는 정말 밤을 새워가며 교재 개발에 매달리고, 아이들 가르치는 데 제 모든 걸 쏟아부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니 ‘내가 일만 하느라 한 번 놀아보지도 못한 채 청춘을 보냈구나’ 하는 허탈감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인생의 방향을 바꿔 동대문에 들어온 거였는데, 돌아보니 편하기는커녕 고생문이 열린 거였죠(웃음).”

동대문 상권 부흥 꿈꾸며 백화점식 쇼핑몰 ‘케레스타’ 문 연 배관성대표

‘스무 살의 백화점’을 콘셉트로 삼은 동대문 쇼핑몰 케레스타 배관성 대표.



“여러 시련 이긴 끝에 얻은 기회, 동대문 상권이 다시 일어날 수 있게 최선 다할 거예요”

96년 9월 동대문에서 가장 큰 쇼핑몰로 화려하게 문을 열었던 거평프레야가 부도가 난 뒤 비상대책위원장이 된 그는 쇼핑몰 운영을 정상화하고 입점 상인들의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밤낮없이 뛰었다고 한다. 이듬해 7월 임차인들이 자치경영에 돌입한 뒤에는 관리회사 ‘(주)프레야타운’의 대표이사를 맡았다. 그러나 이때부터 시련이 계속됐다고 한다.
“옛 거평그룹 측에서는 경영권을 되찾으려 하고, 입주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면서 법정 분쟁이 끊이지 않았거든요.”
어려움을 이기고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해 불교에 귀의한 그는 지난 2000년 동국대 불교대학원에 입학해 사회복지학 석사, 응용불교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사이 모든 문제들이 차차 해결돼 그는 거평프레야 자리에 동대문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쇼핑몰을 세우는 데 주력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배 대표는 은행을 중심으로 구성된 프로젝트 파이낸싱에서 자금을 유치하고,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한 끝에 지하 6층 지상 23층, 연면적 12만4000m²(약 3만7천5백평) 규모의 쇼핑몰 케레스타를 오픈했다.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스무 살의 백화점’을 콘셉트로 삼은 케레스타에는 전형적인 동대문 스타일의 의류숍뿐 아니라 수입명품 매장·스타명품관·식당가·스파·오피스텔 등도 들어섰고, 최상층인 23층에는 서울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 ‘스카이 뮤직파크’도 입점했다. 앞으로 종합의료검진센터·방송아카데미 등도 들어설 예정. 배 대표는 ‘원스톱 멀티쇼핑몰’을 표방하는 케레스타가 동대문 의류시장을 부흥시키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쇼핑몰 앞과 뒤에 조성된 넓은 광장에는 우리 전통음식과 관광상품, 문화를 소개하는 시장을 만들 겁니다. 서울을 찾는 해외 관광객의 절반 이상이 동대문을 거쳐가잖아요. 그들 사이에서 케레스타가 새로운 명소가 되게 할 겁니다.”
배 대표의 미래 구상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하루 수십만명이 오가는 동대문 상권의 중심지인 이곳을 생산자와 소비자를 잇는 유기적 연결의 허브로 만들고, 수만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모여 축제를 여는 국제교류의 장으로 키워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우리가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하지만 10년의 노력 끝에 이렇게 멋지게 다시 출발했지 않습니까. 앞으로도 우리가 함께 큰 꿈을 꾸고 열심히 노력하면 분명히 이룰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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