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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발칙한 토크

여자들의 은밀한 섹스 로망 담은 책 펴낸 장원선

글·김수정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2008. 01. 23

성에 대해 보수적인 대한민국에서 당당하게 여성들의 섹스 로망을 고백한 독신 여성이 있다. “섹스는 사랑의 표현이다. 당당하게 즐기자!”는 메시지와 함께 ‘발칙한’ 일러스트를 넣어 화제를 모으고 있는 ‘빨간책’의 저자 장원선씨와 나눈 섹스 토크.

여자들의 은밀한 섹스 로망 담은 책 펴낸 장원선

섹스, 오르가슴, 체위, 콘돔… 인터넷에서 성인 인증을 받아야 검색할 수 있는 이 단어들을 자유자재로 쓰고 그에 해당하는 ‘발칙한’ 일러스트를 그려 책을 펴낸 싱글 여성이 있다. ‘여자들만을 위한 19禁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린 ‘빨간책’을 펴낸 장원선씨(37)가 그 주인공.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그는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면서 국내외 유명 잡지와 출판물의 디자인을 맡고 있는 한편 잡지 ‘Owho’에 ‘도도냥 만화’를, 조선일보 ‘트렌드 샷’에 그림을 연재하는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하다.
“19세 미만 구독 불가”라는 경고문이 적힌 ‘빨간책’은 남녀의 심리 차이로 생기는 갈등과 고민을 29세 싱글녀 ‘레드’의 입장에서 풀어낸 허구의 이야기. 먼저 표지부터가 발칙하다. 이탈리아의 유명화가 보티첼리의 대표작 ‘비너스의 탄생’을 패러디했는데 원래 작품에서 느껴지는 성스러운 비너스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매혹적인 눈빛을 가진 레드가 독자를 유혹한다. 손으로 살짝 가슴을 가리고 있는 책 띠지를 벗겨내면 손은 가슴 아래로 내려가 있어 중요 부위가 적나라하게 보인다.
그는 책 앞머리에서 “섹스만큼 우리를 비밀의 영역으로 가두는 것도 없다. 나는 비밀의 영역을 음지가 아닌 양지로 끌어내고 싶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성에 대해 보수적인 대한민국에서 결혼도 안한 미혼여성이 얼굴까지 공개하며 이런 책을 내는 데는 남다른 용기가 필요했을 터. 지난 12월 중순 홍대 앞에 있는 그의 작업실을 찾아갔다.

Red’s Diary 01 부뚜막에 올라간 고양이? 얌전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의 작업실을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13마리의 고양이었다. 그중 ‘빨간책’에 나오는 고양이와 이름, 생김새가 똑같은 고양이 여섯 마리가 기자의 레이더망에 포착됐다. 이쯤에서 궁금한 건, 그렇다면 주인공 ‘레드’가 과연 저자 장원선이냐는 점. 아무리 허구의 이야기라고 해도 등장인물에 작가가 일정부분 투영되는 건 당연하기 때문이다.
“맞아요, 기본적으로 레드는 저예요. 그러니까 책 내용의 70~80% 정도는 제가 경험한 얘기라고 할 수 있죠. 다만 책에 담지 못할 만큼의 강한 에피소드는 수위를 좀 낮추고 너무 밋밋한 부분에는 상상력을 가미했어요. 대부분 처음 사귄 남자와 있었던 경험담을 쓴 건데, 10년도 더 된 얘기라 어떤 건 가물가물하더라고요.”
생각보다 솔직한 답변에 당황한 건 오히려 기자 쪽이었다. 그는 “부끄러울 거 뭐 있냐. 배고플 때 밥 먹는 게 당연하듯이 섹스하고 싶을 때 섹스하는 게 당연한 거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실제 작가의 경험담일까.
“생리 중에 하는 섹스를 다룬 ‘떡볶이의 로망’이나 ‘오럴섹스의 로망’ 같은 건 제 경험담이에요. 생리 중에 하는 섹스는 위생상의 문제 때문에 보통 꺼리는데 사실 여성의 입장에서는 호르몬이 급상승하는 시기라 무척 당기거든요(웃음). 또 ‘포장마차 꼬장의 로망’을 보면 레드가 남자친구에게 ‘섹스하고 휙~ 자버리면 내가 얼마나 기가 차겠냐?’라고 말하는데 진짜로 그것 때문에 남자친구와 싸운 적이 있어요. 섹스가 끝난 뒤 남자친구가 돌아눕는데 뒤통수를 한 대 쳐주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야, 너만 힘들어? 나도 힘들어!’라고 솔직하게 말해줬어요.”

여자들의 은밀한 섹스 로망 담은 책 펴낸 장원선

“누구나 하나쯤 있는 경험담”이라며 덤덤하게 얘기하지만 그것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친구들에게 ‘나 이러이러한 책을 쓸 거야’라고 말하자 한 친구가 ‘뭐 그런 책을 쓰냐’며 핀잔을 주더라고요. 개인블로그에 책에 쓸 일러스트를 공개했다가 ‘너 섹스 무지 하고 싶구나. 나 그거 좋아해~’ 같은 댓글이 달린 일도 있고요. 며칠 전에는 엄마가 ‘도대체 무슨 책을 썼냐’고 묻기에 책을 보여줬더니, 밤새 다 읽은 엄마가 다음 날 ‘아이고, 내가 못살아. 어쩌자고 여기에 이름까지 썼어’라고 하시더라고요. 가명 쓸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닌데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었어요.”
그는 “레드의 기본모델은 나지만 완벽하게 일치하는 건 아니다. 나이가 다르고 성향도 분명 다르다”고 말한다. 레드는 29세 알파걸에 네 살 연하와 사귀는 인물이지만, 자신은 37세 골드미스에 연하남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다시 말해 그는 “레드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는 것.

Red’s Diary 02 로망은 꿈을 꾸는 것? 로망은 눈을 뜨는 것!
그는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매일 저녁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친구들의 은밀한 섹스 스토리를 레드의 에피소드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특히 같은 상황이 주어졌을 때 남자와 여자의 심리 차이를 알아보기 위해 남자친구들을 불러들였고 애인에게 실망했던 특별한 기억이나 정말 여자친구에게 원하는 것 등을 물어봤다고 한다.
“한번 묻기 시작하면 새벽까지 잠도 안 재우고 집중 조사를 했어요. 섹스 얘기만 했죠. 어떤 친구는 ‘야, 내가 왠지 발가벗고 네 앞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면서 저를 원망하더라고요(웃음). 나중에는 친구로 모자라 친구의 친구, 동호회에서 만난 사람, 외국인 등 다양한 사람을 섭외했죠.”
69체위, 성인용품 사용법, 피임법 등 인터뷰로도 다 알 수 없는 정보는 인터넷 사이트와 번역도 채 되지 않은 성 관련 해외서적으로 채웠다. 알짜배기만 모은 정보에 양념처럼 곁들인 게 그의 경험과 느낌이라고.
“4년 전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섹스를 못해봤으니까 꽤 오래된 경험이긴 해요. 책에 다양한 체위를 소개하기는 했지만 저도 정상위·후배위 같은 기본자세를 주로 했어요. 이 책에 다양한 방법이 나와 있지만 ‘오늘은 이렇게 해야지’ 하고 처음부터 자세를 취하기보다는 느낌에 따라 적절하게 자세를 바꿔주는 게 더 재미있어요.”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행복한 섹스의 조건은 무엇일까. 그는 “설령 하룻밤을 만나더라도 그 순간 사랑이 느껴지면 행복한 행위가 된다”고 말했다.
“단, 행복한 행위가 되려면 피임이 제대로 이뤄져야겠죠. ‘완벽한 피임의 로망’을 보면 흔히 쓰이는 콘돔부터 정·난관 수술까지 여러 가지 피임법이 소개돼 있는데 그중에서 자신에게 맞는 피임법을 찾는 게 중요해요. 저는 콘돔보다 주로 기초체온법이나 점액관찰법을 사용했어요. 그게 은근히 정확해요. 특히 배란일이 가까워지면 끈끈한 점액이 나오는데 점액을 엄지와 검지에 묻혀서 붙였다 뗐다 해보세요. 점액이 죽 늘어나면 섹스를 가급적 피하고 점액이 툭 끊어지면 해도 괜찮아요.”
책 뒷부분에 있는 프리섹스나 SM(일부러 고통스러운 상태를 만들어 하는 성행위) 등은 상상력을 동원해 쓴 것. 말 그대로 이건 ‘로망’이다. 이야기 테마 끝마다 붙는 ‘로망’은 “나도 하고 싶다”는 소망의 표현이자 “이건 내 얘기가 아니다”라고 부인할 수 있는 돌파구로 만들어놓은 장치. “야릇한 상상만 하던 여성이 서서히 본능에 충실하면서 몰랐던 재미에 눈뜨는 과정을 표현한 말”이라며 “솔직히 책에 나온 것들 다 해보고 싶지 않냐”고 거침없이 반문하던 그도 “아직까지 성에 대해 관대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계속 살기 위한 수단”이라고 고백했다.

여자들의 은밀한 섹스 로망 담은 책 펴낸 장원선

“대한민국은 성인용품을 마음껏 구경할 수도 없는 고지식한 나라잖아요. 잘 찾을 수도 없게 꼭 뒷골목에 위치한 성인숍은 낡은 간판과 ‘뒷문으로 들어오시오’라는 푯말을 갖고 있죠. 하지만 오히려 더 음침하다는 생각 안 드나요? 그런 게 싫어서 편의점에서 콘돔을 사려고 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죠. 자연스러운 건데 한순간 ‘밝히는’ 여자가 되고…(웃음) 일본에 가니까 오히려 사람들이 가장 붐비는 거리에 성인숍이 있더군요. 종류도 많고 내부도 깔끔해서 마음껏 구경하고 살 수 있죠. 어쩌면 그곳에서는 이 내용들이 더 이상 ‘로망’이 되지 않겠죠.”
그러나 대한민국에 살고 있으므로 그 역시 아직은 “로망을 꿈꾸는 여자”다. 그렇다면 그는 언제부터 로망을 꿈꾸기 시작한 걸까.
“성에 대해 처음 눈을 뜬 건 일곱 살 무렵이었어요. 큰오빠가 저보다 여덟 살 많은데 하루는 오빠 방에 가니까 야한 비디오와 잡지가 있더라고요. 보통 그 나이에 그런 걸 보면 놀랄 것 같은데 저는 ‘어머, 이런 게 있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죠.”
오랜 기간 고양이와 함께 지낸 것도 ‘로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데 한몫했다고. 장씨는 현재 세계고양이협회에 등록된 순혈통 종인 ‘노르웨이숲고양이’를 번식시키는 브리딩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
“토끼만큼이나 번식을 잘하는 동물이 고양이거든요. 그런데 한 가지 재밌는 건 고양이가 일종의 프리섹스를 즐긴다는 점이에요. 발정이 난 암고양이는 주인인 저도 민망할 만큼 강하게 사랑표현을 하는데, 암고양이가 수고양이 A와 교배한 뒤 수고양이 B와 교배를 하면 A와 B 각각의 유전자를 가진 새끼를 한꺼번에 낳아요. 그런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많은 사람이 여자를 고양이에 비유하기에 저와 같이 사는 이 아이들(고양이)을 책에 등장시킨 거예요.”
하지만 그는 “자유로운 삶과 방탕한 삶은 전혀 다른 것”이라면서 “나를 개방적인 여자로 오해하진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생각의 자유를 주장한 것일 뿐 행동의 자유까지 주장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Red’s Diary 03 나의 변태 성향 테스트 결과는? 진짜 변태!
인터뷰를 하기 며칠 전 홍대 근처에서 ‘빨간책’ 출간 기념 전시회를 연 그는 그곳에서도 ‘발칙한’ 일을 저질렀다. 전시회에 온 사람들에게 콘돔을 무료로 나눠준 것이다.
“원래는 거리에 콘돔을 들고 나가서 나눠줄 계획이었는데 수량이 부족해서 그러지 못했어요. 안타까운 점은 아줌마들은 스스럼없이 콘돔을 받는데 아가씨들은 여전히 수줍어한다는 거예요. 심지어 책을 사는 것도 쑥스러운지 책과 책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워 넣고 가거나 까만 봉투에 넣어달라고 부탁하더라고요.”
그는 “‘빨간책’을 사람 많은 지하철이나 공원 벤치에서 당당하게 보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책 그림을 오려내어 어린 조카에게 종이인형으로 만들어줘도 좋다. 성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청소년들이 읽는 것도 권장한다고. 그래야 오히려 잘못된 성 지식이나 미흡한 피임법으로 초래되는 나쁜 결과를 막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책을 읽은 사람들이 “에이, 이거 별거 아니잖아”라는 반응을 보여야 진짜 성공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앞으로 성에 관한 책을 더 집필하고 전시회도 크게 열 계획이다.
장씨와 헤어지기 전 그와 함께 ‘빨간책’ 뒤편에 수록된 ‘섹스 성향 테스트’와 ‘변태 성향 테스트’를 해봤다. 앞 테스트에서 그는 여성상위가, 기자는 마스터베이션이 나왔고 뒤 테스트에서는 두 사람 모두 ‘진짜 변태’가 나왔다. 우리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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