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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성공한 CEO

(주)제너시스BBQ 윤홍근 회장

국내 BBQ매장 혁신과 해외 진출로 새로운 도전 시작하는~

기획·송화선 기자 / 글·백경선‘자유기고가’ / 사진·김형우 기자

2007. 12. 24

지난 2005년 올리브유 치킨 메뉴를 개발, BBQ 성공 신화를 이끌며 ‘프랜차이즈 업계의 대부’라는 별명을 얻은 (주)제너시스BBQ의 윤홍근 회장. 그가 최근 ‘BBQ 뉴 비즈니스 모델’을 선보이며 또 한 번의 도전을 시작했다. 그를 만나 일에 대한 열정과 글로벌 기업을 향한 꿈에 대해 들었다.

(주)제너시스BBQ 윤홍근 회장

“지난 2005년 일반 식용유보다 여섯 배나 비싼 올리브유로 닭을 튀기고 가격을 올려 판매하겠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이 비웃었어요. 특히 불경기에 치킨 가격을 올리는 건 ‘미친 짓’이라며 회사 간부들조차 반대하고 나섰죠. 솔직히 모든 치킨 메뉴에 올리브유를 사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 결정하는 과정에서 저 스스로도 50번쯤 마음을 바꿨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국 위험 부담이 있어도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자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고, 그렇게 탄생한 올리브유 치킨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출시 석 달 만에 치킨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죠.”
지난날의 성공 신화를 이야기하는 (주)제너시스BBQ 윤홍근 회장(52)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윤 회장은 치킨 전문점 ‘BBQ’와 ‘닭 익는 마을’등 10개의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통해 총 3천2백여 개 가맹점을 운영하고 있는 (주)제너시스BBQ의 CEO로, 그동안 이 같은 도전정신과 ‘하면 된다’는 뚝심을 바탕으로 동네 구멍가게처럼 여겨지던 치킨 전문점을 한 해 매출 규모가 6천8백억원에 이르는 대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는 BBQ를 통해 국내 프랜차이즈 업체 사상 최초로 해외에도 진출했다. 지난 2003년 3월 중국에 점포를 내면서 해외 진출의 물꼬를 튼 BBQ는 이듬해 스페인에 진출했고, 2006년에는 ‘마스터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일본과 미국 진출에도 성공했다. 마스터 프랜차이즈란 본사에서 브랜드와 시스템 등 사업 노하우를 제공하고 투자와 운영은 제휴를 맺은 현지 업체에 맡기는 방식. 현지에서 매장이 늘어날 때마다 계약금을 받고, 매출의 일정액을 로열티로 받는다. BBQ는 이후 동남아·오세아니아·중남미·중동 등 세계 곳곳에 꾸준히 진출해 현재 34개국에서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상태. 앞으로 북유럽과 러시아 등에도 진출할 예정이라고 한다.
“지난 95년 설립된 BBQ는 1년 만에 가맹점이 2백 개로 늘 만큼 급성장했어요. 4년 만에 가맹점 수 1천 개를 돌파했고요. 사실 BBQ의 성장속도는 세계 제1의 프랜차이즈 기업 맥도널드보다도 훨씬 빨랐어요. 맥도널드는 가맹점을 2백 개로 늘리는 데 5년, 1천 개를 돌파하는 데는 14년이 걸렸으니까요.”
윤 회장은 “이 정도 속도라면 맥도널드가 50년에 걸쳐 이룬 전 세계 5만 개 가맹점 운영기록을 창립 25주년이 되는 2020년까지 달성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그때가 되면 제너시스가 세계 최고의 프랜차이즈 기업이 돼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였다. 이처럼 모험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가 올 하반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전국 1천8백50개 BBQ 매장을 대대적으로 변신시키고 있는 것. 변화의 핵심은 배달 중심이던 BBQ를 고객이 찾아와 식사하는 외식문화 공간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한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골목에 있던 매장을 동네 중심으로 옮기고, 8~10평 규모이던 크기를 20평 내외로 확대하는 것. 메뉴에도 기존 치킨류 외에 스낵·음료·아이스크림·샐러드 등을 추가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숍인숍(판매장의 일부를 독립시켜 전혀 별개 점포처럼 운영하는 것) 제도를 도입해 매장에서 유기농 쌀이나 야채 주문 배달, 장난감 및 캐릭터 팬시상품 판매, 택배 취급 및 여행사 모집 업무 등을 병행할 예정이라고.윤 회장은 “2010년까지 국내 모든 BBQ 매장을 이렇게 변화시킬 예정”이라며 “그렇게 되면 새로운 서비스를 원하는 고객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BBQ의 브랜드 가치도 한 단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과 고객의 관계는 연인 사이와 같습니다. 연인들이 끊임없이 서로에게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는 것처럼, 기업도 고객을 향한 관심과 사랑을 멈추지 말아야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랑이 지속되지 않거든요. 저는 BBQ가 사랑받고 있는 오늘도 늘 고객을 두려워하는 자세로, 고객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윤 회장은 고객의 사랑에 보답하는 것 또한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기업의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주)제너시스BBQ가 지난 10월22일부터 매주 고객 한 명을 뽑아 1억원을 주는 ‘BBQ 1억 복권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는 것도 그것 때문. 행사의 공식적인 취지는 ‘BBQ 탄생 12주년과 해외 34개국 진출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돼 있지만, 윤 회장은 “우리가 이만큼 성장하기까지 아낌없이 사랑을 베풀어준 고객에게 어떤 식으로든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생각한 이벤트”라고 설명했다. 이 행사는 ‘BBQ 올리브 럭셔리 치킨’ 구매고객에게 복권을 증정한 뒤 매주 월요일 바로 전주에 BBQ 홈페이지에 등록된 복권 가운데 1장을 뽑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올 연말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윤 회장은 “복권 행사가 끝난 뒤에도 ‘어학연수 프로그램’‘BBQ 자녀교육보험 프로그램’ 등 다양한 고객사랑 이벤트를 펼쳐 고객들에게 받은 사랑을 되돌려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운명처럼 시작된 닭고기와의 인연, 고객 사랑 덕분에 지금의 BBQ로 성장해
(주)제너시스BBQ 윤홍근 회장

발상의 전환과 위기를 기회로 삼는 도전정신으로 BBQ 성공 신화를 이룬 윤홍근 회장.


윤 회장이 닭고기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94년. 그가 근무 중이던 (주)미원(현 대상그룹)이 닭고기 생산업체 천호마니커를 인수하면서 그에게 마니커 영업부장직이 맡겨졌다고 한다. 그런데 부도난 기업 마니커의 상황이 좋을 리 없었다. 부도 전 하루 평균 5만 마리에 달하던 마니커의 닭고기 판매량은 부도 후 1만 마리 수준으로 뚝 떨어졌고, 마니커 사무실에는 신입 영업사원 3명만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고 한다.
“업무 파악을 해보니 제대로 된 서류는 하나도 없고 갚아야 할 미수금만 잔뜩 쌓여 있었어요. 참담했죠. 그렇다고 마냥 손놓고 있을 수는 없어서 좀 허황된 전략을 세웠습니다. 3개월 내에 판매량 5만 마리를 회복하고, 6개월 내에 10만 마리까지 늘리겠다고 한 거예요. 제가 이 전략을 발표하니 아무도 믿지 않더군요(웃음).”
그러나 그는 자신의 목표를 조용하지만 강력하게 이뤄나갔고, 6개월 만에 판매량 10만 마리를 달성했다고 한다. 그 결과 마니커는 업계 매출 순위 1위를 넘볼 정도로 성장했다. 이 같은 일은 ‘타고난 영업맨’인 그가 일일이 대리점 주인을 찾아다니며 닭고기 판매 활로를 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예상대로 6개월 만에 매출이 10배 증가하자 그는 ‘3년 후 20만 마리’라는 다음 목표를 세웠다. 그 목표를 달성하려면 그만한 물량을 소화할 수 있는 또 다른 판매처가 필요했는데, 그때 생각난 것이 치킨 전문점이었다고 한다.
“마침 그때 미원도 외식사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어요. 그런데 회사가 원하는 것은 그룹 이미지에 맞는 대형 패스트푸드점 형태였죠. 저는 치킨 프랜차이즈 형태의 소형점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고심 끝에 제 사업을 하기로 결정한 거예요. 미원의 브랜드를 이용하지는 않지만 마니커 닭을 소비하는 조건으로 독립해 95년 (주)제너시스BBQ를 창업하고 그해 11월 최초의 BBQ 치킨점을 오픈했죠.”
그가 치킨사업에 뛰어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하나같이 “왜 하필 닭고기냐” “발에 치일 만큼 많은 게 치킨집인데 장사가 되겠냐”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창업 전문가들도 치킨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라면서 신규 진입 업체에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고.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고 한다. 틈새만 잘 파고들면 대박을 터뜨릴 수도 있는 사업이 바로 치킨 전문 프랜차이즈 사업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기존 치킨 전문점은 치킨을 술안주로 내놓는 ‘호프집’ 형태가 대부분이었잖아요. 하지만 치킨은 여성과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이거든요. 저는 기존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들과 차별화한 전략으로 가족 단위 고객을 겨냥한 프랜차이즈 업체를 창업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아이디어는 적중했고, 사업은 번창했다. 윤 회장은 “(주)제너시스BBQ가 설립될 무렵 늦둥이 아들이 태어났는데, 그 아들과 회사가 함께 쑥쑥 커가고 있다. 아무래도 그 늦둥이 아들이 복덩이인 모양”이라며 활짝 웃었다. 하지만 그의 사업이 늘 승승장구했던 것만은 아니다. 몇 차례 위기가 닥쳤는데, 사업 초기엔 일부 가맹점 사장들이 BBQ 프랜차이즈의 콘셉트를 이해하지 못하고 ‘술을 팔게 해달라’거나 ‘원가를 낮춰달라’고 요구해 곤란을 겪었다고 한다.
“저는 ‘좋은 제품을 만들려면 비싼 원료를 쓸 수밖에 없다’며 ‘여성과 어린이에게 맞는 고급 치킨이라는 BBQ의 이미지가 소비자에게 전달될 때까지 6개월만 나를 믿고 기다려달라’고 설득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정말 6개월이 지나자 거짓말처럼 매출이 급상승하기 시작하더군요(웃음).”

(주)제너시스BBQ 윤홍근 회장

한숨을 돌리고 나니 이번엔 IMF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그 무렵 환율 폭등으로 사료 값이 급등하면서 덩달아 닭고기 값이 오르고, 밀가루와 튀김유 가격까지 뛰는 바람에 치킨 원가가 30∼50%나 올랐다고 한다. 그때 윤 회장이 선택한 방법은 공격 경영. 그는 원재료 구입대금을 현금으로 선결제하는 조건을 내세워 싼값에 재료를 확보했다고 한다. 그 덕에 경쟁 체인점들이 치킨 가격을 대폭 올리는 상황에서 BBQ는 5%만 인상하는 안정적인 가격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IMF 위기는 다른 의미에서도 BBQ 치킨에 좋은 기회가 됐다. 당시 기업에서 퇴출당한 실업자들 사이에 창업붐이 일면서 가맹점 수가 급속도로 늘어난 것이다. 그 덕분에 윤 회장은 창립 3년 안에 5백 개 이상의 가맹점을 내겠다던 당초 목표를 2년 만에 달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가장 큰 시련은 지난 2003년 찾아온 조류독감 파동이었어요. 거의 2주일을 뜬눈으로 지새우다 결심한 게 소비자에게 잘못 알려진 정보부터 바로잡아야겠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여러 외식업체 사장들을 모아 함께 언론사를 찾아다니면서 ‘조류독감은 호흡기 질환이기 때문에 뜨거운 열로 조리된 닭고기로는 절대 전염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도해달라고 요구했죠. 그 이후 여러 언론사가 닭고기 섭취를 권장하는 프로그램과 기사를 내보냈지만 소비는 좀처럼 늘지 않더군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내민 카드가 ‘닭고기를 먹고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20억원을 배상하겠다’는 광고였어요. 이후 닭고기 소비가 정상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죠.”

“사업에만 빠져 있는 저를 이해하고 사랑해주는 가족들에게 늘 고마워요”
이처럼 남다른 아이디어와 승부수로 위기를 극복하며 사업을 성장시켜온 윤 회장이 사업가의 꿈을 갖게 된 건 어린 시절 받은 아버지의 선물 때문이었다고 한다.
“제 고향은 전남 순천 시골 마을인데,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서울에 다녀오시면서 책가방과 운동화를 사다주셨어요. 그때만 해도 허리춤에 찬 책보와 검정 고무신이 전부인 줄 알고 살던 제게 그 물건들은 신선한 충격이었죠. 아버지께 이런 걸 어디서 만드느냐고 물었더니,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무슨무슨 회사라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그 회사에서는 가방과 운동화뿐 아니라 사람이 필요로 하는 여러 가지 것들을 만들어내 우리 삶을 이롭게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마 그때부터였을 겁니다. 이 다음에 나도 그런 것을 만드는 회사를 운영해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게요.”
그러나 그가 19세 되던 해, 윤 회장에게 꿈을 심어준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가세가 기울어 그는 장학금을 받아야만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고 한다. 조선대 무역학과를 수석 졸업하고 학사장교로 군복무를 마친 뒤에는 취업해 돈을 벌어야 했다.
“그래서 84년 미원에 입사했어요. 하지만 이후에도 여전히 사업에 대한 꿈을 접을 수 없어서 결혼할 때 처가에서 마련해준 집을 담보로 판촉물 관련 사업을 벌였죠. 직장에 몸 담고 있었기 때문에 경영 실무는 동업자인 학사장교 동기생들에게 맡겼고요.”
하지만 사업은 실패로 돌아갔고, 윤 회장은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어리석었다”고 회고했다.
“기업주가 최선을 다해도 성공하기 어려운 게 사업인데, 직장생활을 하면서 하겠다고 마음먹었으니 그게 제대로 될 리가 없었던 거예요. 회사가 부도나면서 빚을 갚기 위해 살던 집을 팔아야 했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어요. 아내와 아이들은 각기 다른 친척집에 가서 지내고, 저는 경기도 안양의 쪽방에서 혼자 살았는데, 정말 힘들고 가슴 아픈 시절이었죠.”
첫 사업 실패 후 윤 회장은 회사 생활 속에서 ‘내가 사장이라면’ 하는 경영자의 시각과 마인드를 갖고 일하는 것으로 어릴 적 꿈을 대신하려 했다고 한다. 1년 중에 밤 12시 이전에 집에 들어가는 날이 열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열심히 일만 했다고.
“두 딸이 지금은 사춘기가 지나 저와 잘 놀아주지 않지만, 어려서는 저를 무척 따랐어요. 그런데 그걸 받아줄 시간이 없었죠. 그런 생활이 반복되니 생각다 못한 아내가 운전기사를 자청하며 딸들을 데리고 회사로 나오곤 했어요. 제가 거래처를 방문하거나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 이동하는 동안이나마 아이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죠. 제가 일을 보는 동안 아이들은 차 안에서 숙제를 했고요. 일을 마치고 차로 돌아왔을 때 아내와 아이들이 차 안에서 새우잠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었죠. 돌이켜보면 저는 결코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윤 회장은 “무언가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는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게 세상의 원리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족하더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는 늘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그는 해외출장을 갈 때면 꼭 가족과 함께 떠나 평소 못 해주는 것을 조금이나마 보충한다고.
“제가 너무 앞만 보고 산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이런 저를 묵묵히 따라준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특히 친정에서 마련해준 집을 날리고, 월급도 제대로 갖다 주지 못한 남편에게 한 번도 불평하지 않은 아내가 늘 고마워요(웃음).”
윤 회장은 11월30일, BBQ의 두 번째 해외 진출국인 스페인 국왕으로부터 훈장을 받는다고 한다. 스페인은 세계 올리브유 사용량의 65%를 생산하는 나라로, 스페인 왕실은 그가 한국과 스페인 양국의 교역에 이바지하면서 동시에 올리브유의 가치를 높인 것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주)제너시스BBQ의 도전은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다음 목표는 2020년까지 전 세계 BBQ 가맹점을 5만 개로 늘리는 겁니다. 최근 진행하고 있는 ‘뉴 비즈니스 모델’처럼 고객의 요구에 맞춰나가는 혁신을 계속해 언제나 사랑받는 프랜차이즈가 되는 것도 목표고요. 앞으로도 (주)제너시스BBQ의 변화를 계속 지켜봐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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