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EOPLE

긍정의 힘

행복 만드는 작은 습관

가정의 위기 극복한 박은영 주부

기획·김명희 기자 / 글·오진영‘자유기고가’ / 사진·조영철 기자

2007. 03. 28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무력감에 시달리며 두 아들, 남편과 불화를 겪었던 박은영 주부. 그가 칭찬과 포옹이라는 작은 습관으로 아이들 인성을 바로 잡고 부부간 행복을 되찾은 비결을 들려주었다.

행복 만드는 작은 습관

언제나 환하게 웃는 모습과 상대방을 배려하는 따뜻한 눈빛, 정감 있는 말투…. 승훈(13)·지훈(10) 두 아들을 둔 주부 박은영씨(40)는 주변에서 ‘행복한 아줌마’라는 별명으로 통한다. 하지만 그는 “눈물겹고 힘들었던 과거가 있었기에 지금의 웃음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단란했던 그의 가정에 처음 균열이 생긴 건 6년 전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다.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는 그의 집으로 출퇴근하며 두 아들을 돌봐주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자 그는 충격을 견디기 힘들었다고 한다.
“젊어 고생만 하시다가 이제 비로소 살 만해졌다 한시름 돌리고 있었는데 뇌졸중으로 쓰러져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 어떤 건지 알겠더군요.”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 탓에 집안에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게 살림을 꾸리던 그는 살림은 둘째치고 두 아들을 돌보는 것조차 버거워졌다고 한다. 당시 남편은 회사에 다니면서 대학원 과정을 공부하느라 밤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았다. 손에서 살림을 놓은 그는 집안을 폭탄 맞은 모양새로 방치해놓고 밖으로 돌기 시작했다고 한다.
“친구들과 늦게까지 술 마시다 새벽에 들어가는 일이 잦아졌어요. 한번은 2주일이나 빨래를 안 해 아이들이 입을 옷이 없을 정도였죠.”
당시 그는 누군가의 위로가 절실히 필요했다고 한다. 그런데 무뚝뚝한 남편은 그걸 몰라주고 아내가 왜 갑자기 딴사람처럼 변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박씨는 ‘내가 이렇게 슬픈데, 하늘의 태양이 없어져서 이리도 막막한데 당신은 왜 따뜻하게 나를 감싸주지 않는 거냐’라는 생각에 남편에 대한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결국 떨어져 살기로 하고 아이들을 시누이 손에 맡기고 집을 나왔다.
“아이들한테는 미국에 공부하러 간다고 했어요. 아이들은 지금도 그렇게 알고 있어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가슴에 오랫동안 쌓인 슬픔과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했던 것 같아요.”
그는 1년간 남편과 별거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는데 그중 아이들에게 소홀했던 자신의 모습이 많이 부끄러웠다고 한다. 그래서 남편과 다시 살림을 합쳤다고. 이후 그는 예전의 살림꾼으로 돌아갔지만 엄마의 부재로 인해 자칫 아이들이 뒤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에 이번에는 아이들을 무섭게 몰아붙였다고 한다. 아침 일찍 아이들을 깨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한 번씩 연주하게 하고, 책을 읽혀 받아쓰기를 한 번 시킨 다음에야 밥을 먹여 학교에 보냈다. 이때부터 시키는 대로 따라오던 큰아들의 반항이 시작됐다.
“학교에서 싸우고 동네 아이들한테 욕하다 얻어맞고, 동생하고 싸워서 야단치면 제가 안 보는 데서 동생을 때리고…. 도대체 누굴 닮아서 저 아이가 저 모양이냐고 기막히고 속상해서 많이 울었습니다.”
힘든 시기를 보내던 그는 지인으로부터 자녀 양육 및 가족 상담 전문기관인 ‘한국부모교육센터(www.koreabumo.com)’를 소개받아 매주 한 번씩 강의를 듣고 상담을 받았다. 그러면서 그는 “문제는 아이들에게 있는 게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상담을 받고 공부를 해보니 아이들과의 문제도, 남편과의 불화도 어린시절부터 오랫동안 가슴속에 곪아왔던 자신의 상처가 원인이었던 것이다.
“엄마, 아버지가 딸을 하나씩 데리고 재혼해서 낳은 첫째가 저였어요. 밑으로 동생 둘이 더 태어나 5남매인데 엄마는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를 대신해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저희들을 살갑게 돌봐주지 못했어요.”

“아이들과의 대화 녹음해 들어보고 반성, 다음 날 ‘미안하다’ 사과하며 안아 주었어요”
행복 만드는 작은 습관

어머니는 무능력한 아버지와 일에 지쳐 늘 피곤했고 그는 그런 어머니를 대신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동생들 밥을 해 먹이며 학교를 다녔다. 동생들 도시락이며 교복, 실내화 준비까지 모두 그의 몫이었다. 야간 고등학교에 다니며 낮에는 사무실 급사로 일하고 밤에는 타자학원을 다니던 시절, 한 번도 부모를 원망해본 적 없고 가난한 걸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나는 완벽해야 하고 모든 사람에게 잘해야 한다. 그래야만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강박증이 뿌리 내렸음을 세월이 지난 후에 알게 됐다.
“악착같이 동생들을 돌보고 살림을 하며 학교에 다녔던 게 사실은 엄마한테 잘 보이고 칭찬받고 사랑받고 싶다는 몸부림이었는데 어머니도, 저도 그걸 몰랐던 거예요.”
아이들에게 무섭고 엄하게 대했던 것도 결국 “무엇이든 다 잘하지 않으면 인정받을 수 없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자신의 문제가 파악되자 아이들을 향한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먼저 엄마로서 자기 모습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그가 택한 방법은 아이가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는 순간부터 녹음을 하는 것. 나중에 밤늦게 혼자 녹음 내용을 들어보면 어쩌자고 아이들에게 그렇게 험하고 독한 말들을 퍼부었는지 얼굴이 뜨거울 정도였다.
“아이에게 하지 말라는 게 얼마나 많은지, 마음 상하고 기죽게 만드는 말은 또 얼마나 많이 했는지 녹음을 들으며 반성했어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다음 날 아이들이 일어나면 안아주며 ‘어제는 엄마가 이러이러해서 미안했다’고 구체적으로 솔직하게 사과하고 안아주었죠.”
부모가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은 “공부를 좀 못해도, 말썽을 좀 부려도 나는 사랑받는 존재”라는 자신감을 갖게 도와주는 것임을 알고 난 후 그는 아이들을 되도록 많이 안아주고 칭찬해주려고 노력하게 됐다.
“처음 아이들에게 가깝게 다가가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어요. 야단만 치다가 살갑게 대하려니 쑥스럽기도 했죠. 그래서 쉬운 것부터 시작했어요. 눈을 마주치면 웃어주고 손잡고 외출하고 ‘미안하다’고 뽀뽀해주고, ‘너희들을 믿는다’고 안아주고….”
그가 변하자 아이들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가 긍정적인 사고와 친밀감을 가지고 대하자 아이들도 자신감이 생긴 것. 학교에서 말썽만 피우던 큰아들은 모범생으로 변했고 성적도 눈에 띄게 올랐다.
“하루는 ‘엄마는 너희들이 믿음직스럽고 기특하다’며 안아주었더니 ‘엄마가 힘을 줘서 그렇다’고 대답하더라고요. 아이들 얼굴에 웃음이 넘치면서 부부 사이도 이전보다 돈독해졌어요.”
그는 지난해부터 원광디지털대학교 얼굴경영학과를 다니면서 심리상담과 명리학을 공부하고 있다. 얼굴경영학에서 이야기하는, “생각이 행동을 바꾸고 행동이 습관을 바꾸고 습관이 운명을 바꾼다”는 말이 요즘 그의 좌우명이다.
“우리 인생은 우리가 믿고 상상하는 대로 만들어진다고 해요. 그 방향을 선택하는 건 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입니다. 칭찬과 포옹이라는 작은 습관이 우리 가족의 삶을 따뜻하고 풍요롭게 만들었습니다.”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