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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긍정의 힘

태균이 엄마 김은아씨가 들려주는 “자폐 아이 키우며 얻은 깨달음”

기획·송화선 기자 / 글·오진영‘자유기고가’ / 사진·문형일‘프리랜서’ ‘오늘의 책’ 제공

2007. 02. 16

자폐증과 정신지체를 함께 가진 열네 살 태균이를 키우는 엄마 김은아씨는 “자폐를 고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나니 세상이 즐거워졌다”고 말한다. “우리 아이는 하늘이 주신 가장 귀한 보물”이라고 얘기하는 김씨를 만났다.

태균이 엄마 김은아씨가 들려주는 “자폐 아이 키우며 얻은 깨달음”

자폐증과 정신지체를 갖고 있지만 김은아씨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이라는 아들 태균군.(가운데)


길을 가다 느닷없이 고함을 지르는가 하면 노래를 부르고 혼자 중얼거리는 아들 때문에 동네에서 ‘유명인사’가 됐다는 김은아씨(37). 그는 심한 자폐증과 정신지체를 갖고 있는 아들 태균이를 키우는 엄마다.
1993년생, 올해 만 14세인 태균이의 정신연령은 2~3세 수준. 늘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는다. 옆에서 누가 뭐라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밀림의 왕 레오! 레오! 왕자님, 도와주세요!”라며 큰 소리로 떠드는가 하면 물건을 집어던지지 말라고 혼을 내며 “또 그럴래?” 물으면 “네~”라고 대답한다. “엄마랑 죽을까?”라고 물어도 “네~” 하고 대답할 만큼 상태가 좋지 않은 ‘악성’ 자폐아다.
벽지도 방바닥도 아닌 옷장에 크레파스로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 서점에 데려가면 새 책을 싸놓은 비닐을 마구 뜯어버리고 지하철을 타면 이 칸, 저 칸으로 뛰어다니며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는 아이지만 김씨는 더 이상 가슴 아파하며 울지 않는다고 한다.
“아이를 세상 기준에 맞춰서 보면 자꾸 울 일이 생기죠. 그래서 언제부턴가 아이를 따라 제 마음을 조절하기로 했어요. 태균이를 ‘영원한 아기’라고 생각하기로 한 거죠.”
‘흔히 자식은 5세까지 부모에게 평생 줄 웃음을 다 준다’는 말이 있지 않느냐고 김씨는 말했다. 태균이의 정신연령은 영원히 두 살이니 오랫동안 웃을 일이 남아있을 것 아니냐고 말하는 그의 눈빛은 따뜻했다. 그 역시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막막하기만 했다고 한다.
“스물두 살에 결혼하고 이듬해 태균이를 낳았어요. 다른 건 다 정상인데 40개월이 되도록 말문이 트이지 않더라고요. 놀이방에 데려가면 다른 아이들은 선생님이 시키는 걸 잘 따라하는데 아들은 혼자 딴짓하며 돌아다녔죠. 아이가 다섯 살이 됐을 때, ‘병원 24시’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자폐증 아이들에 대한 방송을 보고 뒤늦게 ‘우리 아이가 바로 저거였구나’하고 깨달았어요.”
그는 아이를 고치기 위해 안 해본 것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갖가지 치료를 해봐도 달라지지 않았고, 그는 “의사들이 다 놀라 넘어갈 치료법을 내가 알아내고야 말겠다!”며 오기를 부리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렇게 아이를 치료하겠다고 계속 돌아다니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치료해서 꼭 정상아로 만들겠다는 생각만 버리면 되는 거더라고요. 행복과 불행은 마음먹기 나름이니까요. 나이가 먹고 몸집이 커져도 언제나 정신은 천사 같은 아기가 바로 우리 아이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하늘이 준 천사를 내가 잠시 맡아 기르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죠.”
김씨는 태균이의 엄마가 되고서야 비로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행복은 바로 내 곁에 있다는 것,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서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 즐겁게 사는 것뿐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그래서 그는 아들 태균이를 “신이 준 귀한 보물, 로또 복권”이라고 말한다.
태균이는 올해 초등학교를 졸업한다. 다른 아이들보다 1년 늦게 학교를 보낸 데다 특수반 선생님을 따라 학교를 한 번 옮기느라 1년 더 늦어진 것.
“어느 부모나 아이가 처음 학교 들어갈 때는 걱정이 있겠지만, 장애아 부모는 정말 갖가지 걱정을 다 하게 돼요. 하지만 막상 학교에 보내면 알아서 헤쳐나가더라고요.”
세상에는 아픈 아이를 도와주고 힘든 엄마를 위로해주는 따뜻하고 고마운 이웃이 많았던 것이다. 부모 손에서 벗어나면 큰일 날 것 같던 태균이는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건강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다. 특별히 기억나는 고마웠던 사연을 얘기해달라고 하니 그런 경우가 너무 많아 말을 못하겠다고 한다. 몰인정한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 때문에 마음 아팠던 일도 있지만 그런 일은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편이라 더더욱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을 아꼈다.
“제가 워낙 낙천적인 성격이라서요. 얼굴 두껍고 간이 큰 게 집안 내력이에요(웃음). 만일 저한테 잘나고 똑똑한 아이를 주셨다면 주위 사람들 상처 주며 잘난 척하고 다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하죠. 그렇지 않고 사람들에게 사랑받게 된 건 전부 우리 태균이 덕분이지요.”
태균이보다 세 살 어린 둘째 아들 지우에게는 아무래도 엄마 손이 덜 가지만 오히려 아이의 자립심을 키워줘서 얼마나 좋으냐고 생각하는 엄마가 바로 김씨다.
“엄마가 많이 돌봐준다고 아이한테 좋은 게 아니거든요. 지우는 숙제하고 준비물 챙기는 건 자기 책임이라는 것을 빨리 알고 자랐어요.”

“아이가 공부 못한다고 시름에 잠겨있는 부모들, 눈앞의 보석을 두고 울지 마세요”
영화 ‘말아톤’에서 주인공 초원이는 엄마 말을 흉내 내며, “우리 아이에겐 장애가 있어요!”라고 반복해 눈시울을 뜨겁게 했지만 김씨는 그 대신 이렇게 외친다.
“저에게는 보석이 있어요!”
태균이는 그가 처음에 원하지는 않았지만, 하늘로부터 선물받은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보석이라고. 건강한 자녀가 ‘공부 하나’ 못한다는 이유로 시름에 잠겨 사는 부모들에게 김씨는 “눈앞의 보석을 두고 울고 있지 말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김씨는 최근 이런 경험을 담은 책 ‘태균아,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오늘의 책)를 펴냈다.
“장애를 가지고 있든 아니든 슬픔에 젖어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고 아깝잖아요? 우리 태균이의 이야기를 읽고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돌아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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