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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신나는 인생

고물상으로 월 6백만원 수입 올리는 신세대 부부~ 이석수·김미영

기획·구가인 기자 / 글·오진영‘자유기고가’ / 사진·박해윤 기자

2007. 01. 24

고물상을 운영하는 이석수·김미영 부부는 최근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KBS ‘인간극장’에 출연해 전국적인 유명인사가 됐다. 이들 부부를 만나 젊은 사람들이 꺼려하는 고물상을 시작한 사연, 유쾌하게 사는 이야기를 들었다.

고물상으로 월 6백만원 수입 올리는 신세대 부부~ 이석수·김미영

경기도 안성 땅에서 서른두 살 동갑내기인 이석수·김미영 부부는 유명인사다. 젊은 부부가 일반 사람들이 쉽게 하려 들지 않는 고물상을 운영해서 그렇고 월수입 6백만원의 고소득을 올리는 알부자라서 그렇다. 이들은 최근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KBS ‘인간극장’ 등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더 유명인사가 됐다.
그들을 만나러 간 날도 부부는 바쁘게 주문전화를 받고 다녀오는 길이었다. 7개월 전 둘째 아들을 출산한 부인 김미영씨는 오전에는 일터에 나오지 않고 집에서 점심을 준비하는데 이날은 일이 많아서 아침부터 같이 트럭을 몰고 나왔다고 한다.
“고물상 일이라는 게 신속, 정확, 신용이 생명이거든요. 사람들이 고물상을 부를 때는 한시라도 빨리 와서 말끔히 치워가길 바라서입니다. 전화 받은 즉시 출동을 해야 다음에 또 불러주죠.”
고물상으로 대박을 터뜨렸다더니 이석수씨의 말에서는 자신감과 더불어 경영철학이 묻어나왔다. 보통 고물상이라고 하면 혼자 혹은 부부 둘이서 소규모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석수씨의 ‘석수자원’에서는 직원 4명에 아르바이트생까지 쓴다. 이 역시 ‘고물상은 신속해야 한다’는 그의 신념 때문인데 처음에는 아내 미영씨도 남편의 경영방식을 이해 못했다고 한다.
“남들은 엉뚱하다느니, 사람 쓰지 말고 인건비를 줄이라느니 충고들을 많이 하는데 이제 보니 이 사람이 이 일을 하며 나름대로 찾은 노하우더라고요.”
버는 대로 사람에 투자하다보니 자연히 매출이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고물상 직원 구하기는 쉽지 않다. 조심하지 않으면 다치기 쉽고 일을 하다보면 ‘사람 꼴이 우습게 되는’ 이른바 3D 업종이기 때문. 그래서 석수씨는 직원들이 각자 소사업 형식으로 자기 몫의 고철장사를 하다가 큰 일거리가 들어오면 함께 일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덕분에 직원들의 수입도 높은 편. 형 가게에서 함께 일하는 석수씨의 동생 이석하씨(28)의 경우만 해도 따로 월 4백만원의 고소득을 올리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직원 4명에 아르바이트생까지 거느린 어엿한 사장님
부부가 7년 전 고물상을 시작한 건 미영씨의 아버지 때문이다. 처가는 충남 청양에서 큰 철물점을 하는, 알아주는 부잣집이라고 한다. 두 사람이 결혼하겠다고 인사를 드리러 가자 넉넉지 않은 집안의 9남매 중 여덟째 아들에 돈도 없고 학벌도 그저 그렇고, 얼굴은 까맣고 비쩍 마른 석수씨를 보며 미영씨 부모는 “양복입은 모양새가 꼭 나이트클럽 웨이터 같다”면서 탐탁지 않아했지만, 둘이 서로 좋다는데 말린다고 될 일이 아니라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셨다고. 그리고 몇 달 후 석수씨는 장인으로부터 느닷없는 부름을 받았다. 당시 석수씨와 미영씨는 서울에 있는 컴퓨터 학원에서 일하면서 결혼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아버님이 병원에 가셨다가 당뇨가 심해 위험하다는 진단을 받으셨어요. 서울에서 하던 일을 당장 접고 내려와서 철물점 일을 도우라고 하셨죠.”
하나뿐인 막내아들이 겨우 고등학생이었던지라 미영씨 아버지는 두 사람에게 일을 가르쳐 사업을 물려주고 싶어했다.
“집사람이 좋아서 꼭 결혼하고 싶은데 아버님 허락을 받으려면 그 길밖에 없겠기에 당장 처가로 들어갔지요.”

고물상으로 월 6백만원 수입 올리는 신세대 부부~ 이석수·김미영

7년 전 고물상을 시작해 고소득을 올리는 이석수·김미영 부부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두 아들을 키우며 경기도 안성에서 살고 있다.(위) 동생 석하씨(맨 왼쪽)도 이들 부부와 함께 고물상 일을 하며 한 달에 4백만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아래)


장인은 오랜 철물점 운영 경험을 통해 “고물상은 열심히만 일하면 돈이 모이는 사업”이라며 고물상을 권유했고 그때부터 두 사람의 고된 생활이 시작됐다.
“막노동도 그렇게 힘들지는 않을 겁니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밤 10시, 11시까지 일했어요. 밤 12시에도 한 번 붙들고 앉아 말씀을 시작하시면 또 한 시간, 두 시간이었고요. 나중에는 내가 사윗감으로 마음에 안 드니까 떨어져 나가게 하려고 이러시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호랑이 같은 성격의 장인으로부터 불호령을 들어가며 하루 종일 일했지만 월급은 없었다. 가끔 용돈 쓰라고 5천원짜리, 만원짜리 한 장 집어주는 게 고작이었다고.
“그 당시에는 너무 힘들고 많이 원망스러웠는데 돌이켜보면 그때 아버님한테 배운 것이 지금까지 제가 일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당시 장인은 두 사람을 데리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어떻게 거래를 하고 인간관계를 맺으며 장사하는지 몸소 보여줬다.
“아무 말 없이 일단 눈빛으로 상대방을 탐색하고, 가격을 던지고, 언성을 높여 싸우기도 하다가 결국 껄껄 웃으며 타협을 이루는 과정을 옆에서 보고 배울 수 있었죠.”
결국 장인은 3년 전 돌아가셨지만 석수씨는 장인이 누구보다 고맙고 그립다고 한다. 그렇게 6개월 동안 고되게 일을 익히고 나자 ‘이제 결혼식 올리고 살라’는 허락이 떨어졌다. 장인은 계속 함께 살며 철물점 일을 보게 하려 했지만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린 후 바로 안성으로 돌아왔다. 홀로 된 석수씨 어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서였다. 장인으로부터 그동안 일한 수고비로 폐차 직전인 용달차 한 대와 개 두 마리를 받았다. 그 용달차 하나에도 다 안 차는 살림 몇 개를 싣고 안성 어머니 집으로 들어온 게 7년 전 일이다.
처음에는 폐지를 주우러 다녔다. 그러나 아는 사람이 많은 고향 동네에서 종이상자 주우러 다니기가 남부끄러워 처음에는 날이 어두워지면 나가 새벽까지 다녔다.
“길 가다가 종이상자가 떨어져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이 없나 살피고 사람 지나간 다음에 얼른 가서 집어오곤 했죠.”
한 고물상 사장 밑에서 3개월간 일하면서 안성 부근의 고물상 루트를 확실하게 익혔다. 1톤 트럭을 장만해 몰고 다니면서부터 아내 미영씨도 같이 나섰다.
“처음에는 남편이 저더러 창피하게 왜 너까지 따라오려 하느냐고 말렸어요. 저는 운전이라도 해주면 훨씬 낫지 않느냐고 우겨서 따라 나갔고요. 그런데 나중에는 제가 몸살 나서 하루 쉬겠다고 해도 무슨 소리냐고, 빨리 나오라고 막 부려먹었어요. 하하하.”
두 사람은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새벽부터 밤까지 일했다. 보통 비 오는 날은 고물상이 쉬는 편인데 이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을 다녔다고 한다. 어떤 날은 운이 좋아 10만원도 벌었지만 공치는 날이 많았다. 그렇게 1년을 보내니 하루 평균 2만원 정도 벌이를 하게 됐다고 한다. 밤늦게 일을 마치고 돌아와 잠자리에 들어선 부부는 “하루 3만원 버는 날도 올까? 그런 날이 오면 소원이 없겠다”는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곤 했다.
“고향 사람들이 저더러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혀를 찼어요. 어머니도 동네 창피하다고 당장 그만두라고 날마다 다그치셨고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제가 빨리 이 일로 자리 잡는 수밖에 없다고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부부가 함께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일해 하루 2만원 남짓 벌면서도 포기 안해
다른 고물상들이 1톤 트럭 한 대로 하루에 한 번 실어나를 때 석수씨 부부는 세 번, 네 번 실어날랐다. 덕분에 휴일 없는 고물상, 언제든 부르면 바로 달려오는 고물상이라고 소문나면서 거래처는 점점 늘어났다. 미영씨가 큰아들 도연이를 낳은 뒤부터는 동생 석하씨가 합류했다. 군 제대하고 한 대학 근처에서 닭꼬치 포장마차를 시작한 막내동생을 날마다 석수씨가 찾아가 같이 일하자고 설득했다고 한다. 이득이 없어도 거래처 늘리는 재미에 ‘미친 듯’ 일만 하던 시절이라 일손 하나가 아쉬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고물상 싫으니 형이나 잘하라”고 버티던 동생도 형의 집요한 설득에 끝내 손을 들고 말았다. 이제는 석하씨도 매일 저녁 일을 마친 후 자신이 사는 원룸 근처를 돌아다니며 박스와 깡통을 모은다. 그는 적은 액수일망정 노력한 만큼 정직하게 대가를 돌려주는 고물상의 원칙을 배우는 중이라고 한다.
지금 석수자원이 있는 자리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큰형 명의로 남겨준 땅을 석수씨가 사들여 마련한 땅이다. 살림집에서 스무 발짝 떨어진 곳에 만든 석수자원은 이제 한 달 매출 3천만~4천만원을 벌어들이는 어엿한 사업체가 됐다.
“수동 기어 자동차를 몰아보면 처음에 1단, 2단 넣으며 탄력을 받아 속도 내기까지 어렵지, 3단, 4단 들어가면 다음에는 추진력이 생겨 자기 힘으로 달리잖아요. 이 사업도 마찬가집니다. 처음 탄력받을 때까지 시간과 노력을 땀 흘리며 투자하면 결과를 돌려줍니다.”
월수입 6백만~7백만원이 됐지만 부부가 사는 집에 있는 가전제품은 텔레비전에서 냉장고, 에어컨까지 모두 얻어오고 주워온 재활용품들이다. ‘아직 고물로 나온 게 없는’ 김치냉장고 딱 하나만, 그것도 어머니 김종희씨(71)가 몇 달을 사자고 졸라서 장만했다고 한다.
석수씨는 왼쪽 귀에 작은 귀걸이도 하고 다닌다. 올 초 아들과 함께 귀를 뚫었다면서 “머리 아픈 데 좋다더라”고 쑥스러워하지만 아내 미영씨는 남편이 원래부터 깔끔하며 멋 부리기 좋아하는 타입이라고 귀뜸한다. 형 못지않게 석하씨 역시 차림새에 신경 쓰는 편이다.
“일이 고되고 험하지만 저는 제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삽니다. 사람들로부터 고물상을 해도 저렇게 멋지게 잘 꾸미고 다닌다는 그런 말을 듣고 싶고요. 명함을 주면 ‘어! 고물상하시는 분이냐’며 놀랍니다. 그렇게 좋은 인상을 주고 기억에 남게 하는 것도 장사에 도움이 되죠.”
젊은 사람이 할 일이 없어 고물상이냐는 편견에 정면 대결해 멋지게 승부를 낸 것처럼 이석수씨는 고물상에 대한 고정관념도 신선하게 깨뜨리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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