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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특별한 경험

초등학생 두 딸과 보름간 자동차 여행 다녀온 엄마 김선미

“여행을 통해 서로에 대한 배려를 배우고 서로의 이야기에 더욱 귀 기울이게 됐어요”

기획·김명희 기자 / 글·백경선‘자유기고가’ / 사진·조영철 기자

2006. 11. 24

두 딸과 함께 우리나라 내륙을 관통하는 3번 국도를 따라 보름간 ‘유목여행’을 다녀온 김선미씨. “아이들은 길 위에서 자란다”고 말하는 그를 만나, 세 모녀의 여행담을 들어보았다.

초등학생 두 딸과 보름간 자동차 여행 다녀온 엄마 김선미

김선미씨(38)는 지난해 여름 회사에 휴직계를 내고 초등학교 5학년생, 3학년생인 두 딸 마로(13·‘높은 산’이란 뜻), 한바라(11·‘큰 바다’라는 뜻)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 자동차에 야영 장비를 싣고 경기도 광주 곤지암 집 앞을 지나는 3번 국도를 따라 경남 남해까지 이동한 뒤 남해안을 따라 전남 고흥까지, 그리고 고흥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로 가 우리나라 최남단 마라도까지 이어지는 보름간의 여행이었다. 김씨는 아침이면 미련 없이 텐트를 걷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던 자신들의 여행을 ‘유목여행’이라고 표현했다.
김씨의 첫인상은 ‘어떻게 딸 둘만 데리고 여행을 갈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여려 보였다. 그는 “나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지만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의 스트레스에서 어떻게든 도망치고 싶었다”고 말했다.
“산악전문지 기자로 일하면서 잦은 출장에, 마감 때면 자정 넘게까지 야근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라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이 늘 부족했어요. 아이들을 생각하면 늘 미안했죠. 또 직장에서는 직장대로, 남자들이나 미혼인 여자 후배들에 비해 좀 더 적극적으로 일에 몸을 던지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자괴감이 들었어요. 결코 좋은 엄마도 유능한 직업인도 될 수 없겠다는 생각에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허둥거리고 있었던 거예요.”
그는 이제 곧 마흔이 된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졌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슬럼프가 찾아온 것 같다고. 그가 그렇게 ‘두 번째 사춘기’를 겪고 있는데, 딸들 역시 ‘첫 번째 사춘기’를 맞은 것이다. 그래서 사춘기를 맞은 엄마와 두 딸이 함께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었다고 그는 말한다.
“어느 날 갑자기 아이들에게 ‘여름방학에 엄마랑 셋이서 텐트 가지고 여행가자’고 선전포고를 했어요. ‘아빠도 없이 어떻게 우리끼리만 가느냐’며 걱정스러워하기도 했지만, 의외로 마로와 한바라는 ‘전국일주’라는 말과 ‘제주도’라는 말에 솔깃해 순순히 제안을 받아들였어요.”

초등학생 두 딸과 보름간 자동차 여행 다녀온 엄마 김선미

여행을 다녀온 아이들은 “엄마가 그렇게 용감한 줄 몰랐다”며 자랑스러워 했다고.


“반복되는 일상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어 함께 떠나자고 아이들을 부추겼어요”
초등학생 두 딸과 보름간 자동차 여행 다녀온 엄마 김선미

김선미씨는 색다른 곳에서 나와 마주치는 여행을 통해 아이들 뿐아니라 자신도 부쩍 성장한 느낌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행은 정확히 말하면 ‘전국일주’가 아니라 3번 국도를 따라가는 자동차 여행이었다.
“남편은 동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7번 국도를 놔두고 왜 하필 ‘3번 국도’냐며 뜬금없다고 했어요. 내륙을 관통하는 3번 국도에 뭐 볼 게 있느냐는 거죠. 저는 남들이 안 가는 데니까 숨겨진 뭔가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대답했죠. 하지만 사실은 출퇴근을 하면서 매일같이 오가던 3번 국도를 따라 끝까지 한번 가보고 싶었어요.”
구체적인 여행 일정을 짤 때, 아무래도 여자들끼리만 가는 여행인지라 안전을 가장 중요시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휴양림이나 해수욕장 등을 중심으로 동선을 짰다고 한다.
야영을 하기로 결정한 데는 일차적으로 경비절감의 목적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가능한 한 불편하고 힘들게 움직여야 무엇인가 해냈다는 자신감이라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큰딸 마로의 백일 때 잔치 대신 관악산으로 기념 산행을 다녀올 정도로 산을 좋아하는 부모의 영향으로 아이들이 야영생활에 단련돼 있는 점도 큰 힘이 됐다.
출발 일주일 전, 몇 개의 태풍이 북상할 거라는 일기예보는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아무래도 야영은 못하겠다”고 남편에게 하소연하면서, 내심 말려주기를 기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남편 김성희씨(43)는 오히려 머뭇거리는 그를 떠밀었다고.
그는 여행 도중 큰딸 마로와 여러 번 티격태격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다 7일째 되는 날 점심에 섬진강변에서 뜻하지 않은 사건(?)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는 “경북 김천에서 장을 볼 때 아이들 성화에 못 이겨 산 통조림 한 통이 화근이었다”며 당시의 일을 들려주었다.
“가능하면 인스턴트 음식을 먹이고 싶지 않았어요. 또 굳이 프라이팬을 꺼내 햄을 굽는 게 번거롭기도 해 햄을 달라는 아이들의 요구를 자꾸 무시했죠. 그날 점심에도 그랬는데, 그 바람에 마로가 삐친 거예요. 불러도 대답하지 않고 계속 짜증만 부리더군요. 저도 그때는 무더위 때문에 짜증이 난 상태였고, 그래서 그만 화를 내며 해서는 안 될 말까지 뱉어버렸어요.”

초등학생 두 딸과 보름간 자동차 여행 다녀온 엄마 김선미

그는 “여행이고 뭐고 집어치우고 집으로 가자” “호텔에서 자고 맛있는 것만 사주고 그런 편한 여행이 아니라서 그러는 거냐”며 초등학교 5학년밖에 안되는 어린 딸에게 심한 말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자 마로가 펑펑 눈물을 쏟으면서 “엄마, 나도 힘들단 말야” 하는데, 그는 그 말을 듣자 딸에게 그렇게 미안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길 위로 아이들을 끌고나온 것도 어쩌면 아이들에게 특별한 기억을 남겨주겠다는 명분을 핑계로 저 자신이 답답한 일상에서 무작정 도망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는 곳마다 뭔가 특별하고 신나는 일만 가득하길 기대했던 아이들에게 하루하루가 힘겨운 행군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고요. 그동안 잘 참아준 것만으로도 대견한 일인데 화를 내다니, 정말 부끄럽고 미안했죠. 그래 울고 있는 마로를 안아주며 미안하다고 했어요.”
그렇게 세 모녀가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세 모녀의 눈물이 마를 무렵, 섬진강 강물 위로 빗방울이 시원하게 떨어졌다. 비에 젖은 그들은 자동차 안에 쪼그리고 앉아 전날 개펄에서 잡은 바지락으로 배를 채웠다고 한다. 그는 그때를 회상하며 “두고두고 잊지 못할 행복한 밥상이었다”고 말한다.
8일째 되는 날, 여자들끼리만 하는 여행은 끝났다. 여름휴가가 시작된 그의 남편이 막차를 타고 그날 밤 전남 고흥으로 내려온 것이다. 세 모녀가 8일 동안 여행하며 도착한 그곳까지 그의 남편은 다섯 시간 반 만에 달려왔다. 다음 날 그들 가족은 고흥 녹동항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로 가 여행을 계속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또 다른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다시는 여행을 안 가겠다고 선언한 아이들이 요즘엔 배를 타고 중국에 가자고 졸라요”
6일간의 제주도와 마라도 여행을 끝내고, 제주항을 떠나 뭍으로 돌아오는 배에서 마로와 한바라는 “다시는 여행 안 간다”고, 더구나 “야영은 죽어도 안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에 영하 20℃를 기록하던 강원도 평창의 눈밭에서 야영을 했다고 한다. 게다가 요즘은 자신들의 저금통을 털어서라도 배를 타고 중국에 가자고 조르고 있으며 이제 웬만한 여행은 “심심하다”고 이야기한다고.
그는 “길 위를 떠돌던 여행을 마치고 아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것을 꿈꾸고 있다”며, “길 위에서 아이들 가슴에 그런 불씨가 당겨진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또한 “아이들보다 나 자신이 길 위에서 훌쩍 자란 것 같다”고 고백한다.
“산을 오르고 글을 쓰는 일을 하니 겉으로는 진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상 드러나지 않는 내면은 우유부단하고 겁도 많아요. 그런데 이번 여행을 통해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어느 정도 떨쳐버린 것 같아요. 두려움은 단지 저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아이들도 처음엔 엄마가 잘할 수 있을까 하고 의심하더니, 여행을 다녀와서는 엄마가 그렇게 용감할 줄 몰랐다고들 해요(웃음). 두려움을 떨치니 마음의 여유도 찾아오고, 그러면서 두 번째 사춘기도 어느 정도 극복한 것 같아요.”
그는 어린 딸들이 함께 하지 않았다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거라며, 기꺼이 훌륭한 동행자가 돼준 두 딸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리고 함께 고생하고 어려움을 헤쳐나가고, 또 가끔 싸우기도 하면서 “모녀간의 정이 더욱 돈독해졌다”고 말한다. 여행을 통해 서로에 대한 배려를 배우고, 서로의 이야기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됐다는 것이다.
“여행을 할 때 저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마로가 어느새 저보다 훌쩍 커버렸어요. 빠르게 자라는 사춘기의 딸을 보면, 아이들이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기 전에 다녀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딸들이 더 크면 엄마와 여행을 가려고 하겠어요?(웃음)”
인터뷰를 끝내고 서울로 오는 동안, 한바라가 썼던 일기의 마지막 부분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14일 동안 여러 감정과 지식과 행동을 배웠다. 나는 그중에서도 인내심을 얻은 것 같다. 여러 불편한 점, 필요한 것, 짜증나거나 하기 싫은 것들이 있었다. 하지만 가족의 사랑과 의지, 용기 덕분에 여행을 잘 마칠 수 있었다. 그 긴 여행 덕분에 가족의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김씨는 최근 그 잊지 못할 ‘유목여행’을 ‘아이들은 길 위에서 자란다’라는 책에 담아냈다.
김선미씨 추천! 주말 가족여행지
경남 거창 갈계숲 & 수승대
갈계숲은 덕유산에서 흘러내려온 물줄기가 두 줄기로 갈라지면서 물 한가운데 자연스레 섬처럼 토사가 쌓여 만들어진 곳이다. 소나무와 느티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으며 수승대바위 둘레에는 옛 풍류가들의 시가 새겨져 있다. 거북바위 외에도 구연서원, 송림, 현수교 등 볼거리가 많다. 수승대가 자리한 황산마을에는 민박집으로 조성된 전통한옥이 있다. 문의 수승대 관리사무소 055-943-5383 http://ssd.geochang.go.kr

경남 산청 목면시배유지 & 산천재
목면시배유지는 고려 말 중국에서 목화씨를 몰래 들려온 문익점이 처음으로 목화를 재배한 곳. 목면시배유지 내에 있는 문익점 면화전시관에는 목화씨에서 무명옷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는 모형 등 다양한 볼거리가 전시돼 있다. 목면시배유지에서 산천재(조선시대 유학자 남명 조식이 후학을 가르치며 머물렀던 곳) 가는 길에는 ‘남사예담촌’이라는 전통가옥 체험마을이 있다. 문의 목면시배유지 055-973-2445(월요일 휴관), 산천재 관리사무소 055-972-0779, 남명기념관 055-973-9781(월요일 휴관), 남사예담촌 011-855-5410 http://yedam.go2vil.org



경남 진주 진주성
임진왜란 당시 두 번의 큰 전투가 있었던 진주성에는 성내에 촉석루와 진주국립박물관 등이 있어 볼거리가 다양하다. 문의 진주성 055-749-2114 www.jinju.go.kr/etc/cas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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