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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시련 뒤 강해진 그녀

‘제 2의 연기인생’시작한 오미희

암 투병, 두 번 이혼의 아픔 딛고 영화 주연 맡아~

글·김명희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2006. 09. 21

암과의 사투, 두 번의 이혼, 전 남편과의 지리한 법정 싸움…. 그동안 기쁜 소식보다 불행한 소식이 많았던 오미희가 인생의 봄날을 맞고 있다. ‘스승의 은혜’로 처음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데 이어 차기작도 곧 촬영에 들어간다고 한다. 그가 아픔을 딛고 백일 때 헤어졌던 딸과 재회, 행복을 되찾기까지 그간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제 2의 연기인생’시작한 오미희

“그동안은 그냥 옷장 속에 걸려진 옷이었는데 이젠 쇼윈도에 내걸리고 흥정도 제법 들어오고 있어요(웃음).”
요즘 오미희(48)의 주가가 급등하고 있다. 지난 8월 초 개봉된 공포영화 ‘스승의 은혜’에서 데뷔 27년 만에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데 이어 차기작도 결정된 것. 고소영이 캐스팅돼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영화 ‘언니가 간다’에서 주인공의 엄마 역을 맡았다.
‘스승의 은혜’에서 그가 맡은 박여옥 선생은 어린 초등학생들에게 잊지 못할 상처를 주고 그로 인해 복수의 대상이 된다. 그는 “처음에는 악역이라 출연을 망설였지만 교사인 언니의 권유로 출연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언니 생각이 나서 안 하려고 했는데 언니가 시나리오를 보더니 ‘30년 교사생활을 되돌아보게 되더라’며 오히려 출연을 권했어요.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서 비롯된 일을 다루고 있지만 상처를 주고 또 상처받는 관계는 직장이나 가정, 선후배 간 등 다양한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잖아요. 저마다 가슴속에 담고 있는 상처가 있을 텐데, 영화가 그걸 치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영화는 제자들이 만들어놓은 함정에 빠진 박 선생의 생사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채 막을 내린다. 그는 영화 시사회에 참석한 관객들에게 ‘박 선생이 살았을까, 죽었을까’ 물어보았다고 한다.
“학창시절 선생님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은 누구에게나 하나씩 있잖아요. ‘살았을 것이다’‘죽었을 것이다’ 대답이 반반 정도 되는데 ‘죽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크더군요. ‘살았다’고 답하는 사람들은 역시 마음이 여려요. 제가 내놓은 대답은 그거예요. 여러분이 살기를 바라면 살 것이고, 죽기를 바라면 죽을 것이라는 거죠. 사람을 살리고 죽일 수 있을 만큼 용서의 힘은 커요.”
상처의 치유와 용서. 그의 입에서 이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기까지는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딸과는 채 백일도 되기 전 헤어졌다. 두 번째 이혼 때는 여러 해에 걸쳐 소송까지 벌였다. 하지만 시련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2년 10월, 전 남편과의 법정 싸움이 다시금 이어지면서는 라디오 DJ 자리마저 떠나야 했다. 2001년 융피세포성암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놓지 않던 마이크였다. 그는 “라디오는 항암제이자, 좀 더 괜찮은 나를 만들어준 좋은 학교였다. 그만두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캄캄한 동굴에서 하나밖에 없는 성냥개비를 잃어버린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한때 엄마를 원망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는 딸
‘제 2의 연기인생’시작한 오미희

“누군가가 저한테 그래도 두 번째 이혼할 땐 좀 덜 아프지 않았느냐고 물어보더군요. 모르는 소리, 한 번 했든 두 번 했든 그건 저한텐 처음 있는 일이고 아픈 건 마찬가지예요. 고통, 분노, 절망만 가득했죠. 지난해 영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을 찍고 난 후 사람들이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이 언제였느냐고 물어보던데, 제게는 아름다웠던 날들보다 서러운 날들이 더 많았어요.”
처음엔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은 사람을 원망했고 대인기피증도 생겼다고 한다. 그런 그의 삶의 터닝 포인트는 뜻밖인 데서 찾아왔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마라톤 경기를 보던 중 브라질 마라토너 리마가 괴한의 피습으로 억울하게 선두를 빼앗긴 뒤에도 환하게 웃는 얼굴로 결승선을 통과하는 모습을 보면서 닫힌 마음을 열게 됐다는 것.
“보셨죠? 1위로 달리던 리마가 35km 지점에서 갑작스레 튀어나온 괴한의 습격으로 아쉽게 금메달을 놓쳤잖아요. 보통 그런 일을 당하고 나면 억울해서 뛰지도 못했을 텐데 리마는 비행기 세리머니까지 펼치며 환한 미소로 42.195km를 완주해냈습니다. 감동을 받았어요. 당시 TV로 경기를 보면서 가슴속으로 리마를 열렬히 응원했어요. 어쩌면 그 응원은 저 자신에게 보내는 것이었는지도 모르죠.”
그는 “어쨌든 신은 누구에게나 마라톤 풀코스를 제공한다. 코스를 달리는 중 괴한에게 습격을 당할 수도 있고 뜻밖의 행운을 만날 수도 있지만 완주는 달리는 사람의 몫이다”라고 말한다. 올해 대학 2학년인 딸 혜리는 그가 남은 마라톤 코스를 멋지게 완주하는 데 가장 힘이 되는 존재.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사춘기 땐 “엄마가 날 버렸다”며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스물둘 어엿한 숙녀가 된 딸은 이제 그에게 힘이 되고 의지가 되는 친구 같은 존재라고 한다. 평범한 요리에도 딸은 “아~ 맛있겠다”며 군침 넘기는 소리를 내는가 하면, 그가 쓴 낙서 하나에도 “엄마, 나중에 책 내도 되겠다”며 한껏 치켜세운다고. 그런 딸의 모습에서 그는 요즘 새삼 살아가는 이유를 깨닫는다고 한다.
“한번은 딸이 암 투병 소년의 얘기를 그린 ‘안녕, 형아’라는 영화를 보고 나서 전화를 걸어서는 ‘엄마가 암과 싸우는 동안, 난 아무것도 못했어. 미안해…’라며 흐느끼더군요. 우리 딸, 마음이 참 예뻐요.”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는 딸은 엄마 얼굴이 작게 나온 영화 ‘내 생애…’ 포스터를 보고는 한가운데 있던 염정아 자리에 그의 얼굴을 넣어 ‘오미희를 위한 포스터’를 만들어줄 정도로 엄마를 끔찍이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한다고 한다.
“얼마 전 용산 가족공원에 같이 사진을 찍으러 갔어요. 사진을 찍는 아이 모습이 예뻐서 제가 그 모습을 디카에 담았는데 생각보다 잘 나오지 않아 ‘이거 지울까’ 했더니 우리 딸이 ‘엄마, 마음에 안 들어도 일단 집으로 데려가. 그래도 마음에 안 들면 하룻밤을 재워봐. 그럼 생각이 달라질 거야’ 하더군요. 함부로 지울 수 없어서 그런가, 우리 딸이 제 사진은 잘 안 찍어요(웃음).”

“오늘의 행복은 지난날 불행의 한 조각, 시련을 통해 얻은 교훈은 겸손”
암 투병을 오랫동안 한 사람답지 않게 그는 굉장히 건강해 보였다. 1년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고 있는데 현재는 깨끗한 상태라고 한다. 이전보다 몸무게도 조금 늘었다고. 비결을 묻자 그는 “마음 마사지를 잘해서”라고 한다.
“제가 그동안 주름 느는 거 걱정하고 살 만큼 한가하게 살지 못했어요. 일단 살아야 했기에 무조건 내키는 대로 먹고 시간이 나면 책을 읽으며 쉬었죠. 올해 처음으로 음식을 먹으면서 칼로리 계산이란 걸 하고 있어요(웃음). 마사지 한 번 받지 않는 게 배우로서 무책임한 것 같아 마사지도 몇 번 받았고요. 하지만 몸의 마사지보다 중요한 건 마음의 마사지인 것 같아요. 법정 스님이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음을 바꾸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마음가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얼굴도 달라지거든요. 저 역시 고통스러웠던 시절에는 거울 앞에 서는 것조차 두려웠으니까요.”
많은 시간 라디오를 진행하다보니 아침에 눈뜰 때부터 밤에 잠들 때까지 누군가를 향해 말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는 그에게 오늘 인터뷰의 ‘클로징 멘트’를 부탁했다. 이왕이면 밝고 희망적인 얘기로 마무리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그는 솔로몬의 이야기를 꺼냈다.
“고대 이스라엘 다윗왕이 장안의 유명한 보석 장인을 불러 ‘큰 승리를 거두어 기쁨을 억제하지 못할 때 스스로 자제할 수 있고, 절망에 빠졌을 때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글귀를 새겨넣은 반지를 만들라’고 주문했대요.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고도 적합한 글귀가 생각나지 않아 고민하던 장인은 솔로몬 왕자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데 지혜롭기로 소문난 솔로몬이 내놓은 대답이 뭔지 아세요? ‘이도 곧 지나가리라’였어요. 오늘의 불행은 지난날 행복의 조각이고 행복은 불행의 조각이죠. 제가 지난날 시련을 통해 얻은 지혜가 있다면 그건 아마 겸손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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