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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고난을 넘어

3년간 백혈병과 사투 벌여 이겨낸 송현숙·이지헌 모녀의 감동 사연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살고자 하는 의지와 암이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이에요”

기획·이남희 기자 / 글·장옥경‘자유기고가’ / 사진ㆍ조영철 기자

2006. 07. 24

어느 날 갑자기 초등학교 4학년 딸아이가 감기 증상을 보이더니 입술이 새하얘졌다. 병원에서는 딸에게 급성 림프성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내리며 ‘길어야 열흘’이라고 했지만 직장을 그만두고 3년여 동안 간호에 매달린 엄마 덕분에 딸은 결국 암을 이겨냈다. 대한암협회가 주최한 ‘암을 이겨낸 가족수기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송현숙·이지헌 모녀의 감동적인 암 극복 사연.

3년간 백혈병과 사투 벌여 이겨낸 송현숙·이지헌 모녀의 감동 사연

직장을 그만두고 3년간 딸 간호에 매달린 어머니 송현숙씨와 백혈병을 극복한 딸 지헌, 명아 자매(오른쪽부터).


백혈병을 이겨낸 모녀를 만나기 위해 지난 5월 말 경기도 고양시의 한 허름한 연립주택 지하 셋방을 찾았을 때 어머니 송현숙씨(41)는 “3년이란 세월을 지워버리고 싶다”는 말부터 꺼냈다. 그러나 딸에게 백혈병 진단이 내려진 그날은 어제 일처럼 기억이 또렷하다고 했다.
“지헌이가 입술이 자꾸 파래진다. 병원에서 뭔 꼬부랑글씨를 써 주면서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하더라.”
둘째 딸 지헌이(14·당시 초등학교 4학년)가 아프다는 친정어머니 전화를 받은 것이 2003년 7월 초였다. 당시 송현숙씨는 충북 청주 건설업체의 현장소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주중에는 친정어머니가 명아(16)·지헌 자매를 돌봤고, 그는 주말에 아이들을 만났다. 서둘러 일을 마치고 집으로 달려가면서 그는 그동안 일 때문에 아이들에게 소홀했던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며칠 전부터 열이 나고 기운이 없어 잠만 자던 지헌이는 동네 병원 의사로부터 ‘악성 빈혈인 것 같다’는 소견을 들었다. 송씨는 아이를 데리고 곧장 일산 백병원을 찾았다. 소견서를 본 의사들은 위급한 상황이라며 입원실부터 마련했다. 지헌이는 피가 모자라서 골수검사를 받지 못할 만큼 상태가 심각했다. 한참 수혈을 받은 뒤에야 아이는 골수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며칠 뒤 송씨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들었다. 지헌이의 병명은 ‘급성 림프성 백혈병’. 백혈병은 혈액암의 일종으로 백혈구가 암세포로 돌변한 뒤 이상 증식을 일으켜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는 병이다.
“‘딸의 상태가 어떠냐’고 물었더니 의사가 제 어깨를 꽉 잡으며 ‘급성 백혈병입니다’ 하고 말했어요. 순간 저는 ‘악’ 소리를 지르며 쓰러졌어요. 서너 시간 후 눈을 떠보니 응급실이었어요. 하지만 한가롭게 누워있을 상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암은 시간, 돈과의 싸움”이라는 의사의 말에 마음 다잡아
의사는 길어야 열흘밖에 시간이 없다고 했다. 송씨는 백병원 의료진과 상의한 끝에 일산 국립암센터로 옮겨 치료를 받기로 결정했다. 괴로워하던 송씨가 마음을 다잡은 것은 국립암센터 소아종양클리닉 담당의사의 조언 때문이었다.
“지헌이 어머니, 소견서 잘 봤습니다. 그만 우셔야 될 것 같습니다. 이건 소독하고 꿰매서 시간이 지나 아무는 상처가 아닙니다. 암입니다. 이건 시간, 돈과의 싸움입니다.”
송현숙씨는 정신이 번쩍 들었고, 그때부터 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골몰하기 시작했다.
지헌이는 암 전이가 많이 된 상태였다. 우선 척수에 퍼진 암을 잡기 위해 36회의 항암치료 스케줄이 잡혔다. 약을 먹고 주사를 맞고 골수검사를 거치며 지헌이는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졌다. 자고 일어나면 베개에 머리카락이 수북이 붙었다. 그때마다 송씨는 ‘안 울어야지’ 다짐했다가도 눈물이 났다. 지헌이는 머리카락이 베개에 묻어있으면 엄마가 우니까 그걸 막으려고 혼자서 몰래 머리에 테이프를 붙이기도 했다. 어차피 빠질 머리카락인데 엄마가 보지 않게 빨리 떼어내기 위해서였다. 항암치료가 거듭되자 지헌이는 음식을 먹기도 힘들어했다. “먹어야 산다”는 엄마의 애원에 겨우 조금 받아먹는 정도였다.

3년간 백혈병과 사투 벌여 이겨낸 송현숙·이지헌 모녀의 감동 사연

“아이가 ‘엄마 잠깐만요’ 하고 나가요. 나갔다 오면 지헌이가 눈이 빨개져서 돌아와요. ‘화장실 갔다 왔니?’ 하면 ‘쉬하고 왔어요’ 하는데 저는 알지요. 가서 다 토하고 온 거예요. 아이가 너무 많이 토해서 목구멍에서 피가 날 정도였는데 저는 가서 다시 밥을 타왔어요.”
지헌이의 모습은 아프리카 난민처럼 말라있었다. 송현숙씨는 어떻게든 지헌이가 밥을 먹어야 기운을 차리고 다음 치료 스케줄을 이어간다고 생각해, 죽기를 각오하고 밥을 먹였다. 지헌이가 안 먹겠다고 버티면 함께 죽자며 그도 같이 굶었다. 엄마가 이처럼 모질게 나오니 지헌이는 하는 수 없이 밥을 받아먹었다.
그는 딸이 너무 힘들어하자 항암제를 직접 먹어보기도 했다. 대체 얼마나 힘들면 아이가 이럴까 싶어서였다. 송씨는 지헌이가 먹는 알약과 혼합물약을 먹자 1주일간 내내 토하고 설사를 했다. 정상인도 이렇게 힘든데 환자인 아이는 오죽할까 이해가 됐다. 하지만 지헌이가 항암치료 부작용으로 허리를 구부릴 수 없어 마취도 못한 채 척수검사를 받고, 온몸에 두드러기가 돋아 괴로워해도 그는 아이에게 밥을 먹였다.
“한 달 치료비가 정산돼 나왔는데 8백만원이 넘었어요. 그 흔한 암보험 하나 들어놓지 않은 것이 너무 후회됐어요. 하지만 하는 데까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6개월간은 회사를 더 다녔어요. 친정어머니에게 지헌이를 맡기고 청주에 있는 회사에 갔다가 밤에 일산으로 올라와 지헌이 곁을 지키고 새벽에 다시 내려갔어요.”
이혼한 남편이 8년 만에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하지만 병원비를 보태주기는 힘들다며 큰딸 명아를 데려가겠다고 했다. 가족 모두가 백혈병에 걸린 지헌이에게만 매달려 있느라 사실 명아는 관심 밖이었다. 외로움에 지친 명아는 아빠를 따라가겠다고 했다. 명아를 전 남편에게 보낸 후 송현숙씨는 목 놓아 울었다.
“저는 지금도 차를 운전하면 중부 제1고속도로는 안 타요. 일산에서 청주까지 오가며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몰라요. 계절이 여름이어서 비가 많이 왔는데 빗물이 다 제 눈물 같았어요.”
2003년 12월 말, 송씨는 결국 17년간 다닌 회사를 그만뒀다. 남들 잘 때 공부하고 관계자들 만나 주문 따러 다니고 현장을 감독하고…. 힘들게 올라간 자리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새벽에 ‘엄마 간다’ 하면 아이가 벌써 안색이 달라져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지죠. 전화로 ‘엄마 지금 갈게’ 하면 아이 목소리에 생기가 돌고요. 아이를 살리려면 안되겠다 싶어 회사를 그만뒀어요.”
“아이가 아프면 배움도 직장도 다 소용없다”는 송현숙씨의 눈엔 눈물이 맺혀있었다. 매주 청구되는 병원비는 퇴직금과 청주의 숙소를 정리한 돈으로 충당했다.
지헌이는 여러 가지 합병증까지 겹쳐서 앓았다.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이 당뇨. 이번엔 지헌이는 항암제 부작용으로 1년 만에 체중이 60kg으로 늘었다. 항암제 부작용으로 생긴 일시적 당뇨는 고질적인 당뇨로 굳어졌고, 지헌이는 엄지발가락 일부를 절단해야 했다. 또 췌장에도 합병증이 와서 한 달 가까이 금식해야 했다. 눈에는 백내장, 녹내장이 왔고 열로 잇몸이 들떠 전체 잇몸 치료도 받았다.
치료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2004년 겨울부터 송씨는 대리운전에 나섰다. 그것으로도 감당이 안돼 지난해 5월경에는 치킨집을 냈다. 치킨집을 운영하면서 초기에는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대리운전을 병행했다.

투병기간 동안 멸균식 섭취, 의사가 하지 말라는 것은 절대로 하지 않아
지헌이는 아픈 동안 철저히 멸균식을 했다. 생과일은 먹을 수 없어서 바나나는 전자레인지에 익혀서, 사과는 삶아서 먹었다. 고기도 기름기 있는 것은 먹을 수 없어 삶아서 먹었다. 지헌이는 의사가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는 모범 환자였다. 의사가 하는 말을 잘 지키기만 하면 나을 수 있다고 믿었다.

3년간 백혈병과 사투 벌여 이겨낸 송현숙·이지헌 모녀의 감동 사연

경기도 고양시의 연립주택 지하 셋방에 사는 세 모녀는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희망을 잃지 않는다(왼쪽). 어머니 송현숙씨가 지난 98년 두 딸에게 보낸 편지(오른쪽).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그만 하셔도 됩니다.”



지난해 11월 담당의사로부터 마침내 치료 종결판정을 받았다. 완치는 아니지만 더 이상 그 험한 척수치료를 받지 않아도 되고 입원할 필요도 없다는 말이었다. 아직 완치까지는 5년의 예후를 봐야 한다. 한 달에 두 번은 정기검진을 받으러 가고 당뇨 체크, 백내장, 녹내장 검사 등을 받으러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녀야 한다. 남들은 치료가 끝났으니 “지헌이 엄마, 이제는 괜찮겠네” 하고 말을 건네지만,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지헌이는 나았지만, 그 대가로 남겨진 빚이 2천6백만원이에요. 치킨 가게도 내놨어요. 얼마 전에 지헌이가 열이 올라 병원에 가는 바람에 가게 문을 또 닫았어요. 장사가 될 만하면 문을 닫으니 손님들도 끊겨버렸죠.”
3백만원 보증금에 30만원짜리 월세로 살고 있는 지하셋방도 보증금을 거의 까먹어 주인이 집을 비우라고 한다며 송씨는 한숨을 쉰다. 그러나 다음 순간 송씨는 “지헌이가 완치 판정을 받으면 주위 사람들 모두 불러서 잔치를 열 거예요. 그러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겠지요” 하며 씩씩한 엄마로 다시 돌아간다.
얼마 전엔 큰딸 명아도 돌아왔다. 지헌이가 교복 입고 학교 가는 모습을 보면 꿈만 같다는 송현숙씨는 곧 딸의 투병기를 묶어 책으로 낼 예정이다. 송씨와 이지헌양 모녀가 함께 쓴 ‘암 극복기’는 지난 5월 대한암협회가 주관하는 ‘암을 이겨낸 가족수기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암은 결코 불치병이 아니에요. 암, 백혈병은 완치가 가능하다는 걸 사람들에게 입증하고 싶었어요. 각종 민간요법이 많지만 암 치료에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의사에 대한 믿음과 살고자 하는 의지, 완치될 수 있다는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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